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88)
00688 흔들리는 대국? =========================================================================
“워싱턴을 움직여야 하오. 그것만이 살 길이오.”
월가의 지배자들이 모인 비밀회의에서 모건은 그렇게 열변을 토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공감한다는 듯이 무거운 얼굴로 끄덕였다. 재판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그들은 사방에서 죄어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청구금액만 자그마치 30조 달러에 달한다. 여기 모인 이들의 전 재산은 물론, 은닉 비자금까지 탈탈 털어도 절대로 갚을 수 없는 금액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청구한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무력을 이용해 손쉽게 월가를 집어삼키겠다는 야욕, 그거 말고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비시 행정부가 우리 말대로 손쉽게 움직여주겠소? 최근 비시 정권이 제니스를 대하는 행보를 보면 굴욕이나 마찬가지인 저자세요.”
“제니스를 외교적으로 공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오. 그자는 후안무치하며, 막무가내로 자기 의지를 관철하고 있소. 일방통보를 좋아하며 협상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미개인이오.”
국제무대에서 제니스가 가지는 힘은 무섭다. 한국을 이용해서 압박한다? 불가능한 방법이다. 막말로 한국이 고립주의를 택하면 망하는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을 뺀 다른 나라들이다. 지금 세계는 한국이 공급하는 블루 결정체 없이는 발전소 하나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판이니까.
금융으로 압박한다? 이미 원화의 가치가 달러의 가치를 넘어선지 오래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달러나 유로화, 파운드화보다 원화를 더 선호한다. 그만큼 확실한 화폐 신용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까지 미국이 거듭된 위기를 겪고서도 달러화가 원화에 버금가는 지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식량도 마찬가지다. 제니스는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곡물로 전 세계를 먹여 살릴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무력? 브라우니 하나가 뉴욕 상공을 휘젓고 돌아다니 대번에 워싱턴이 뒤집어진 꼴을 보고도?
결국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월가에서 세계 금융 시장을 지배해온 이들이 그걸 받아들이기 싫었을 뿐이다.
“항복해야 하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오.”
“…….”
지티그룹 회장, 헨리츠가 무겁게 말했다. 일부가 동의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허나 모두는 아니었다. 모건을 비롯한 다른 일부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게 최선이라 생각하시오? 흑석동은 무자비하오! 틈을 보이는 순간 탐욕스럽게 우리를 씹어 삼킬 거요!”
“그럼 어쩌잔 말이오? 재력, 무력, 식량, 그 어느 것으로도 흑석동을 이길 방법이 없는데! 하다못해 비시 행정부도 흑석동의 눈치를 보느라 쩔쩔매는 판국 아니오!”
“맞소!”
“허, 참! 이해할 수가 없군. 대체 뭘 먹었기에 그리 마음이 나약해진 거요?”
의견이 갈렸다. 유지웅의 힘, 그리고 잔혹함에 겁을 먹은 이들은 자수해서 광명을 찾는 게 낫지 않느냐고 했다. 반면 모건을 비롯한 강경파는 스스로 호랑이 먹이가 되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든 뭉쳐서 반항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였다. 우당탕! 하는 묵직한 소음이 문 밖에서 들려왔다. 참석자들은 일순 긴장해서 입을 다물었다.
“회장님! 피신하셔야 합니다!”
“무슨 일인가?”
피투성이가 된 경호실장이 회의실로 뛰어들며 부르짖자 참석자들은 경악했다.
“침입자입니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서둘러 피신하셔야 합니다!”
“침입자?”
모건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침입자라니? 뉴욕 한복판에 마련한 이 비밀 회합 자리에 무슨 침입자가 있단 말인가?
테러조직이 복수를 노리고? 아니다. 그들은 이미 LA에서 궤멸되었다. 설령 잔존 일당이 있다 해도 뉴욕 중심까지 히트맨을 보낼 능력이 안 된다. 그렇다면?
“고난이도의 훈련을 받은 정예들입니다! 마피아 일당 따위가 아닙니다! 서둘러 피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칠드그린, 이 놈이!’
경호실장은 훈련받은 정예라고 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워싱턴에서 공작 요원을 마피아로 가장해 침투 작전을 펼쳐 수뇌부를 말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마피아의 범죄라며 소탕에 나서겠지.
‘딱 EIS에서 굴러먹던 짓거리나 하는군.’
모건은 분노를 세게 깨물었다. 시끄러운 총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호텔 지하로 피신한 모건은 방탄차량에 올랐다. 황급히 추격한 요원들이 마구 권총을 난사했지만 이미 차는 출발한 뒤였다.
그날 저녁, 예상대로 FBI는 호텔 무장 소요를 마피아의 짓으로 발표했다. CNN 뉴스를 보며 모건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는 곧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내가 가만 둘 것 같으냐.’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하찮은 인간이 호랑이의 기세를 빌어 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고 눈에 봬는 게 없는 모양이다.
“모건이오.”
「워싱턴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소. 우리를 쳐낼 작정인 모양이오.」
“이쯤에서 누가 진정한 미국의 주인인지 깨우쳐줄 필요가 있는 것 같소.”
모건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공화당에는 아직 굳건한 연줄이 남아 있었다. 허튼 수작을 부린 칠드그린 따위는 손쉽게 날려 보낼 수 있으리라.
정보판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어서 그런지, 총질 말고는 머릿속에 든 게 없는 인간 아닌가? 공작 요원을 마피아로 위장해서 월가 수뇌부를 제거하려 하다니, 어린아이도 이런 시시한 발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 지켜보겠다. 네놈이 얼마나 뒷감당을 잘하는지.’
공화당 내의 인사를 통해 의회를 움직여 워싱턴을 압박하고, 작전에 참가한 요원들의 명단만 알아낼 수 있다면 게임을 끝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 * *
―찰츠 호텔 마피아 난동 사건, 알고 보니 정부의 공작?
「클리언트 상원의원이 찰츠 호텔 마피아 난동 사건에 의문을 제기했다. 범인들이 마피아가 아닌 정보 요원이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의회는 백악관에 특별 감사와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고 연일 의견이 갈리고 있으며, 이에 백악관은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월가의 일부 CEO들은 제니스-월가에 걸린 천문학적인 소송금액에 국부 유출의 두려움을 느낀 연방 정부가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고 일갈했다. 월가 수뇌부를 제거하여 제니스에 성의를 보이면, 소송금액을 대폭 낮춰줄 것이라고 기대한 행위라는 것이다.」
북극곰 괴수가 할퀴고 간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미국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의회는 몇 갈래로 의견이 분분한 채 서로 물어뜯고 싸웠다. 월가와 친한 이들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국가 살인 행위라며 워싱턴을 비난했다.
그들은 제니스의 힘을 두려워하면서도, 이런 일에까지 유지웅이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 과신했다.
“아무리 제니스라 해도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할 명분은 없네. 미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야.”
“소송을 걸고, 브라우니를 뉴욕 상공에 보낸 것이 바로 그 증거지. 실제로 무력을 투사할 수 없으니까 무력시위를 보이는 거야.”
“제니스도 정말 30조 달러를 다 받을 마음은 없을 걸세.”
월가 프렌드측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했다. 월가 금융 재벌들의 몰락은 든든한 돈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시하는 인물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미국이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갔다. 의회는 연일 백악관을 비난하고 나섰고, 의회 안에서도 백악관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고, 그런 이들끼리 서로 갈라져서 싸우고, 다투고, 온갖 음모론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야!”
모건은 눈이 뒤집힐 듯 분노하며 탁자를 내려쳤다. 사진을 쥔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헨리츠 회장, 이놈이!”
사진 속에서는 지티그룹 회장이 어떤 점잖은 백인 남자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것도 한두 장이 아니라 수십 장이었다.
“텍사스를 본거지로 하는 크로이튼 마피아 대부, 케리 크로이튼입니다. 두 차례 비밀 회동을 가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크로이튼의 직속 부하들 중 30여 명이 그날 이후로 행방이 묘연한 것도 확인했습니다.”
“헨리츠, 이 놈!”
“아무래도 연방 정부의 공작이 아닌, 헨리츠 회장이 배후에서 꾸민 일 같습니다.”
같은 배를 탄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친구를 팔아넘긴 배반자였다. 모건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헨리츠 단독으로 벌인 일은 아닐 것이다. 필경 뒤에는 백악관과 은밀한 거래가 존재하리라.
‘대통령마저?’
마음이 다급해졌다. 부통령의 은밀한 공작이 아니다. 대통령이 옛 정을 생각해서 그래도 한쪽 눈은 감아줄 줄 알았는데, 적극 자신들을 팔아넘기려고 판을 벌인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는 것은 위험했다.
“자산 이전 작업을 서둘러야겠다. 얼마나 진행 됐나?”
“약 70% 정도 완료했습니다.”
“서두르게. 그리고 바로 전용기를 준비하게. 지금 즉시 미국을 떠야겠어.”
월가의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해줘야 할까? 모건은 잠시 망설였으나 고개를 저었다.
원래 세상은 비정한 법, 대통령까지 작정하고 나섰다는 것을 알게 되면 친구들은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 불리했다. 시선을 끌어줄 미끼는 많이 남겨둘수록 좋으니까. 친구들은 훌륭한 미끼가 되어줄 것이다.
“FBI다! 손들어!”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무장한 FBI 요원들이 뛰어들었다. 고층 빌딩의 창밖을 순식간에 헬기들이 에워쌌다. 막 나가려던 모건은 놀라서 주춤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모건 회장, 당신을 테러 교사 및 자금 지원 혐의로 체포합니다!”
“무슨 개소리! 난 그런 적이 없다!”
“그렇습니까? 그럼 모건 그룹에서 정당한 수속을 밟지 않고 진행된 해외 송금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무려 5,000억 달러가 넘어가던데 말이지요.”
‘아차!’
모건은 아차 싶었다. LA를 날려버린 테러단과 연결된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그 혐의를 들쑤실 여지는 없다고 자신했다.
헌데 자신이 빌미를 주고 만 것이다. 찰츠 호텔 총격 사건 이후로 불안한 미래를 위해 그룹 자산을 비밀리에 해외로 옮기던 것이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설마 이걸 노리고?’
순간 칠드그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총질 밖에 머릿속에 든 게 없는 그런 애송이가 이런 그물을 펼쳤을 리가 없었다.
* * *
모건 그룹은 테러 지원 혐의로 풍비박산이 났다. 사백만 명이 넘은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한 사건이었고, 미국 시민들의 분노와 증오는 대단했다. 모건 그룹을 시작으로 테러를 지원한 월가의 재벌들이 속속들이 잡혀갔다.
―월가의 지배, 마침내 끝나나?
헤드라인은 연일 월가의 몰락을 놓고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신문을 읽어 내려가는 남자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약속은 지키시겠지요? 지티그룹은…….”
“물론입니다. 지티그룹은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미국의 금융시장이 붕괴하는 것은 워싱턴이 바라는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워싱턴이 아니라 당신이겠지. 헨리츠 회장은 그 말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삼켰다.
모건은 칠드그린을 가리켜 머릿속에 총질 밖에 든 게 없는 미개한 인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헨리츠 회장은 달랐다. 칠드그린은 교활한 맹수였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냉혈한 독사였다.
“그럼 이만.”
“가보십시오. 아참, 금융 시장 정화 정책에는 부디 적극 협조하시기 바랍니다. 워싱턴은 또 다시 그들의 탐욕이 흑석동을 자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부가 있겠소. 염려 마시오.”
헨리츠 회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섰다. 혼자 남은 칠드그린은 비릿한 웃음을 띠었다.
“5년…… 길지 않겠지만 부디 즐거운 꿈을 꾸십시오.”
사냥개를 삶는 건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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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이 망한 이유는 CIA와 EIS를 혼동해서…
연재가 늦었네여. 개인적인 일이 좀 있어서요 죄송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