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89)
00689 빼앗긴 땅에 오는 것 =========================================================================
「수고하셨습니다. 경매 시작합니다.」
긴 사투였다.
무려 두 달 가까운 시간을 들여 공략에 성공한 정공 대원들은 마이크를 통해 나오는 공대장의 목소리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이윽고 파티창은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안부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와, 졸라 힘들었다. 그래도 잡긴 잡았네.
―으으, 진짜 이 놈 잡으려고 들인 시간 생각하면. 마누라한테 혼나가면서 눈물의 레이드 했네, 진짜.
―이제 진짜 세기말이네요. 이번 확장팩 마지막 보스도 잡았고, 이제 뭐 하나…….
―뭐 하긴요. 계속 공략하면서 템 모아야죠. 다음 확장팩 시작하자마자 뒤쳐지지 않으려면.
유지웅은 기지개를 켜며 몸을 뒤로 젖혔다. 옆에 앉아 있던 장권재가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 정말 고생하셨어요.”
“권재 너도 고생 많았다.”
“아니에요. 형이 정말 고생 많으셨죠. 딜하느라 얼마나 수고하셨어요.”
데미지 미터기에서 꼴찌를 달리고 있지만, 뭐 그건 넘어가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잖은가?
유지웅은 감격한 얼굴로, 모니터 속의 쓰러진 몬스터를 바라봤다.
“잡긴 잡았네. 정말 최고의 레이드였어.”
“그러게요.”
“내 인생에 앞으로 이보다 더 스펙터클한 레이드는 다시없을 것 같아.”
장권재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가 겨우 참았다. 아니, 뭐라고? 현실에서 게임보다 더한 스펙터클로 점철된 레이드를 해왔으면서, 겨우 두 달 동안 마우스 클릭질한 거 가지고 저런 소리를 해?
“형, 경매 시작해요. 형 템도 나왔네요.”
“포인트가 아슬아슬해서 되려나 모르겠다. 그냥 현찰로 사면 안 돼?”
“형, 그러다가 형 정체 또 뽀록나요.”
“알았어, 알았어.”
유지웅은 투덜거리며 경매에 임했다.
게임 정규 공격대, 즉 길드 레이드는 아이템 경매를 포인트로 진행한다. 레이드 참여율에 따라서 포인트를 지급하고, 누적된 포인트를 게임 머니처럼 이용해 경매에 임하는 식이다. 당연히 현실에서 얼마나 부자이냐는 상관없고, 게임에서 얼마나 열심히 참여했느냐로 갈리게 된다.
―앗! 내가 득이다!
―오, 하마네스. 축하해.
―감사감사.
힐러인 하마네스가 원하던 아이템을 얻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게임에 영향이 있는 장비는 아니지만,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상징 아이템이었다. 매번 클리어 할 때마다 나오기에 어차피 다른 대원들도 시간이 지나면 전원 가질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었다.
유지웅도 사심 없이 축하 메시지를 날렸다.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하마네스는 나이가 같아 길드에서 유지웅과 쉽게 친해져, 오랫동안 게임상 친분을 나눠 왔다.
가끔 보이스챗을 켜고 대화도 나누곤 하는데, 한국말도 굉장히 유창해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외국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를 정도다.
‘한국에서 공부해 뛰어난 결정체학자가 되는 게 내 꿈이었거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물어보지 않았고, 하마네스도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하마네스와 유지웅은 꽤 깊은 우정을 쌓았다.
낙찰에 실패한 유지웅이 부러움을 나타냈다.
「좋겠다. 난 다음번에 먹어야겠네. 근데 다음번에 템이 나오려나 몰라.」
「ㅎㅎ. 수고해. 꼭 원하는 템 먹길 빌어.」
유지웅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겜 접어?」
「응. 본국에 돌아가야 될 것 같아서.」
「본국? 갑자기 왜? 장학금 못 받았어? 그러게 내가 게임 좀 그만 하랬잖아.」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하마네스는 먼 타국 생활의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었지만, 성적이 우수해서 한 번도 전액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왜 하필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푸느냐고 물었을 땐 ‘돈이 안 드는 취미’라고 해서 유지웅도 잠시 숙연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를 그만두는 건 아니야. 다시 돌아올 거야.」
「무슨 사정인데? 내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몰라.」
「말만이라도 고맙다. 하지만 네가 도울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야.」
「공부 포기하는 건 아니지? 훌륭한 결정체학자가 돼서 가족들 부양해야 한다고 그랬잖아?」
「절대 포기 안 해. 잠시 쉬는 것뿐이야.」
「…….」
「공부는 나중에라도 다시 할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공부에 매달릴 때가 아닌가 봐.」
하마네스는 정공에 정식으로 작별을 고했다. 잠시 게임에서 떠난다는 이야기에 대원들이 아쉬워하면서 배웅했다. 유지웅은 배웅을 위해 오그리마 은행 앞까지 따라갔다.
「하마네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잘 되길 빌어.」
「고맙다. 다음에 볼 때 너도 꼭 풀템이기를 바랄게. 캐릭터는 여기에 세워둘 거야.」
「로그아웃은 안 하고?」
「응. 좀……. 아무튼 무사히 다시 만나자!」
―하마네스님이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다음에 봐요!”
유지웅이 살짝 불길한 느낌을 받을 때, 하마네스의 캐릭터, 언제나 안정적인 힐로 공격대의 든든한 받침이 되어주었던 사제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이윽고 사제 캐릭터는 ‘자리비움’ 모드로 변했다. 유지웅은 모닥불을 피운 채 한참이나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형? 하마네스 진짜 접는대요?”
“응? 아냐. 잠깐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서 본국 가나 봐.”
“혹시 돈 문제 아닐까요? 하마네스 집안 꽤 가난한 거 같던데…….”
유지웅은 조금 입맛이 썼다. 돈 문제라면 자신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만, 정체를 밝힐 수 없으니 그럴 수 없다. 하마네스가 자세한 이야기라도 해주면 간접으로 도와줄 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자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하마네스 한 번 알아볼까요?”
“……아니. 됐어. 알아서 잘하겠지.”
“네, 알았어요.”
정상에 군림한 자의 고독함이랄까. 유지웅은 친구가 거의 없다. 원래 있었던 친구들은 언젠가부터 연락이 닿지 않게 되었다. 유지웅이 배척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격차가 벌어지자 친구들이 스스로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어쩌다가 만나더라도 친구들은 그를 불편하게 여겼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어린 나이였기에, 대단한 친구를 두었다는 뿌듯함보다는 너무 멀리 가버린 친구에게 부담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들도 나이를 먹었으니 다를 테지만, 그런 서먹서먹한 태도에 유지웅도 자연히 연락을 안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안슐뿐이다. 그 외의 지인들은 친구가 아니라 아랫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를 친구로 대하기보다는, 그의 아랫사람으로 들어가는 것을 더욱 편하게 여긴다.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음에도 부하 직원, 후배, 협력업체, 어떤 식으로든 핑계를 대서 그의 아랫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게 마음이 편한 모양이었다. 애석하게도 세계 제일의 부자와 편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자전거 동호회 등 오프라인 동호회도 자주 나갔지만, 아무리 감추려 노력해도 사람들은 그가 대단한 부자라는 걸 눈치 채곤 했다. 심지어 제니스 공격대장인 것을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그가 정체만 밝히지 않으면, 게임 속에서 그는 평범한 한 명의 게이머일 뿐이다.
게임 속에서는 몬스터를 잡고, 던전을 공략하고, 그렇게 칼과 마법을 부딪치며 순수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빠져드는 건지도 몰랐다. 아무런 부담 없이, 순수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으니까. 비록 온라인으로 연결된 인연의 실이 쉽게 끊어진다 할지라도.
* * *
오랜만에 유지웅은 모교 대학에 들렀다. 최소한의 경호원만 거느린 조용한 방문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던지라 학장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어쩐 일로…….”
“그냥, 요즘 학교가 어떤지 궁금해서 한 번 보려고요. 우수한 학생은 많이 유치하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우리 학교는 지금 세계 각지에서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연주대는 세계 대학 순위 평가에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100위에도 들지 못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무서운 상승세였다. 등록금이 전혀 없다는 점, 최첨단 실험설비를 갖춘 대학 연구소를 갖추고 있다는 점, 나아가 제니스 연구단지와 연동해 졸업 후 진로가 밝다는 점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우수한 인재들이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그래서 연주대 공학과는 인종시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을 자랑한다. 우수한 인재에는 우수한 교수가 필요한 법, 연주대는 외국의 명교수들을 초청하는데 돈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는 기존 교수들을 자극해 자기 계발에 힘쓰게 하는 건전한 항상성을 낳게 되었다.
“우수한 학생들이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부디 없었으면 해요.”
“물론입니다. 기숙사와 학내 식당 이용도 전부 무료로 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생활비 지원도 일부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몸만 있으면 누구나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지요. 이게 다 회장님 덕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말씀은 왜…….”
“아니, 그냥요.”
유지웅은 괜히 멋쩍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눈 후 학장실을 나섰다.
그는 캠퍼스를 거닐었다. 바쁘게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신도 저 중 한 일원이었는데. 그 생각을 하니 괜히 가슴이 아련해진다.
학생일 땐 잘 몰랐는데, 졸업생의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보니 새삼 몰랐던 게 보인다. 우리 학교가 이렇게 작았구나, 우리 학교에 이렇게 외국인 학생, 교수들이 많았구나, 우리 학교가 이렇게 활기가 넘쳤구나…….
‘돈 준 거 말곤 한 게 없는데.’
몇 년도 안 돼서 세계 대학 평가 순위에서 5위를 차지하다니, 유지웅은 내심 흐뭇해졌다.(결정체학과만 따지면 1위다) 자신의 손이 닿은 존재가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인정을 받았다. 그 뿌듯함은 감히 어디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때였다. 시끌시끌한 소음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니 운동장 단상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저마다 피켓을 들고 있는 걸 보니 무슨 항의가 있는 모양이다.
“이스라엘이 또다시 가자 지역에 폭격을 했습니다! 괴수가 없는 구역이라고 무력 투사를 서슴지 않는 그들의 행위에 수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학살을 막아야 합니다!”
‘그 동네는 하여튼, 여전히 시끄럽네.’
또야, 하는 마음으로 유지웅은 몸을 돌렸다.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지구 곳곳에는 괴수가 서식하지 않는 지역 포인트가 다수 존재한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폭격을 해도 괴수를 자극할 일이 없었다. 괴수의 존재는 국가 간 전쟁을 사라지게 했지만 무력 투사 그 자체를 없앤 것은 아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꿈을 안고 온 우리의 학우는 그들의 학살에 저항하기 위해, 책을 놓고 조국으로 달려갔다가 무참히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뚝.
왜인지 모르게, 정체불명의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멈췄다가 등을 돌렸다. 이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단상 뒤에 크게 걸린 플랫 카드에는 해맑게 웃는 한 청년의 모습이 박혀 있었다. 그제야 학생들이 든 피켓 카드의 문구가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의 친구, 하마네스를 살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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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네스가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것으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