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05)
00705 그래도 강국 =========================================================================
국제 핫 이슈의 중심지는 의외로 한국이 아닌 미국이다. 물론 한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최강대국의 반열에 들어섰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유지웅이라는 인간 한 명 덕분에 한국은 동아시아의 소국에서 세계 최강대국의 서열에 올랐다.
그런데 왜 국제 시장의 핫 이슈를 미국이 담당하게 되었느냐? 그것은 지난 몇 년 간 미국이 겪은 수많은 고행 덕분이다.
레드 몹 때문에 휴스턴이 날아갔지, 블랭의 습격이 있었지, 프레온 괴수가 최초 등장한 시발점이었지, 북극곰 괴수의 습격이 있었지, 하필 때맞춰 일어난 테러범 때문에 서부 지역이 방사능으로 몽땅 못 쓰게 돼버렸지…….
다른 나라가 이만한 일을 겪었으면 이미 몇 번은 멸망하고도 남았으리라. 하지만 미국은 버텨 냈다. 그냥 버텨낸 것만이 아니라, 한국에 이은 레이드 강국이자 국제무대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이 지닌 막대한 영향력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도 석년에 미국이 누렸던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한다.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이 지닌 국력은 세계 제일이다. 또한 한국의 현재 국제 위상의 대부분은 유지웅 개인이 만든 것이다. 무수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지금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는 건 그만큼 미국이 지닌 저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엄청난 세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 경제도 빠른 속도로 살아나고 있습니다. 올 한해 경제 성장력은 작년의 네 배, 아니 다섯 배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겨우 다섯 배라니. 적어도 열 배는 되어야지.”
“하하, 다들 그만들 하시오.”
오랜만에 비시는 입가에서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확확 달라지는 국고 계좌의 숫자에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백악관에서는 모처럼 긴장이 풀어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비시는 이 모든 게 꿈인가 싶었다.
서부 지역이 방사능 오염으로 못 쓰게 되고, 사임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지옥의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유지웅의 지지 선언으로 간신히 사임 압박을 피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런 날이 왔다.
한때 미국은 그린 결정체 시장만 1조 달러, 즉 1,000조 원 이상 가는 결정체 대국이었다. 허나 옐로 몹의 극단적인 감소는 그린 결정체 시장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그린 결정체만 해도 연간 2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결정체 원석 거래가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점을 고려한 수치다.)
물론 과거만큼은 아니다. 허나 옐로 몹이 극단적으로 감소한 지금 세계에서, 연간 2조 달러어치 그린 결정체 시장은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여전히 못 미치지만, 어쨌든 미국은 국제 결정체 시장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은 빼고.
“지난 한 달 간 스팟 필드에서 거둬들인 세수가 무려 75조 원에 달합니다. 한국에 설정한 독점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에서 거둬들인 세수입니다.”
“한국 공격대는 세금은 내지 않으나 획득한 결정체를 미국 유통회사와 거래하고 있어 국가 경제 증진에 간접적으로 크게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WCO 정례 회의에서는 제법 큰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 같이 기분 좋은 보고만 들려온다. 한 달 동안 거둬들인 세수의 절반인 37조 5,000억 원은 유지웅에게 지불해야 하지만, 그까짓 거 기분 좋게 내줄 수 있다. 애초에 유지웅이 서부 오염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으면 이런 행운도 없었을 테니.
그러나 무조건 좋은 일만 가득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게 세상사는 이치 아니던가.
“안 좋은 소식입니다. 러시아와 영국, 중국, 독일 등 20개국에서 유지웅 회장에게 제2의 스팟 필드 조성을 요청했습니다.”
“뭐라고!”
비시는 눈을 부릅떴다. 척 듣기만 해도 이게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지 감이 왔다.
스팟 필드 덕분에 미국은 국제 결정체 시장에서 다시 한 번 큰소리를 떵떵 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 떨어지던 국가 주가도 끌어올리고 다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중이다.
헌데 스팟 필드가 다른 국가에도 생겨난다면? 미국이 지금 누리는 독점적 지위(거듭 말하지만 한국은 애초에 논외)가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경쟁국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그래서? 유지웅 회장은 뭐라 하던가?”
“흑석동은 아직 대답이 없습니다만, 제니스 자문단과 청와대는 진지하게 고려 중인 것 같습니다. 특히 러시아는 조성된 스팟 필드 75%에 달하는 면적의 레이드 행사권을 영구적으로 제니스에 부여하고, 나머지 25%에서 거둬들이는 세수의 50%도 영구적으로 지급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 불곰 녀석들이!”
비시는 뒤집어질 뻔했다. 이건 한 마디로 미국 엿 먹어라, 그런 조건 아닌가? 미국이 스팟 필드로 한국과 유지웅에게 보인 성의에 비해서 너무 좋다.
「겨우 백년? 우리는 통이 매우 크다. 영구적으로 준다.」
불곰 녀석이 그렇게 껄껄대며 웃고 있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비시는 위장이 몹시 쓰려 왔다.
막을 수 있을지는 논외하고, 무조건 막아야 했다. 지금의 지위를 어떻게 얻었는데!
“막을 방도는 없나?”
측근들이 이런 저런 방도를 내놓았지만 너무 현실성이 없거나 실현 불가능한 방법뿐이었다. 애초에 유지웅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측근들은 그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탁상공론을 펼칠 뿐이었다.
문득 칠드그린이 말을 꺼냈다.
“발상을 전환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말해보게, 부통령.”
비시는 큰 기대감을 갖고 물었다. 차세대 미국을 이끌어갈 이 남자는 중요한 고비마다 미국을 견인해준 구원투수였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생각했을까?
“어차피 유지웅 회장이 다른 국가에 스팟 필드를 만들어주고자 한다면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 미합중국에 더 큰 스팟 필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바로 그거요!”
얼핏 보면 아주 간단한 발상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방해 공작에 급급할 때, 칠드그린은 역으로 쉬우면서도 실현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른바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막상 해놓고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는 그런 것.
* * *
정혜주는 집무실에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 보따리를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걸 다 어떻게 들고 집에 갈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저 선물들이 다 뭐냐고? 스팟 필드 조성을 위해 힘써달라며, 유지웅이 아끼는 처제에게 여러 나라들이 보낸 선물이다. 즉 로비 품목들이다.
“언니도 참…….”
정혜주는 제니스 공격대 관련해서 로비를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녀가 하나뿐인 처제이며, 흑석동 저택에서 끼고 살 정도로 아낀다는 사실쯤은 이미 오래 전에 알려졌다.
당연히 그녀는 여러 국가, 단체, 부호들의 로비 순위 톱클래스에 올라 있다.
이에 관해 그녀는 여러 번 언니에게 문의를 했는데, 언니는 그때마다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냥 주는 거 사양하지 말고 다 받아. 공짠데 뭐 어때.’
‘하지만…….’
‘대신 로비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거 있으면 형부 말고 나한테 말해. 알았지?’
‘그러면 돼?’
‘응. 어차피 공짜잖아.’
언니가 맘 편히 선물 받아먹으라고 해서 그 뒤로는 부담 없이 받아 챙기고 있긴 한데, 날이 갈수록 들어오는 선물들이 무서워진다. 물방울 다이아몬드 같은 것은 액세서리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고가 선물들이 마구잡이로 들어온다.
어느 정치가는 고급 호텔 이용권을 로비스트에게 받았다가 큰 곤혹을 치렀다는데, 그녀에게는 호텔 이용권이 아니라 호텔 소유권이 로비품목으로 들어온다.
세계 제일의 부자가 아끼는 처제니까 이 정도는 선물해줘야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들 로비 경쟁에 혼을 불태운다.
“뭐야, 왜 이리 좁아?”
마침 들어선 니트로는 집무실 가득 쌓인 선물을 보고 기겁을 했다. 농담 조금 보태서 발 디딜 자리도 없을 정도로 집무실이 좁아 터졌다.
정혜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스팟 필드 때문에 요즘 여러 나라에서 선물이 쏟아지고 있거든요.”
“역시 국가가 직접 하는 로비는 클래스가 다르군. 뭐야, 이건 황금 아니야?”
“황금이 아니라 황금 조각상이거든요?”
“어쨌거나 황금이잖아? 현찰을 주긴 뭣 하니까 이런 걸로 떼우는 건가?”
황금은 결정체 다음으로 현금화가 쉬운, 사실상 준현금으로 취급되는 귀금속이다. 니트로는 척 보기에도 엄청난 가격이 나갈 것 같은 황금 조각상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가지실래요?”
“뭐? 됐어. 누가 여자한테 빌붙어 살 것 같냐.”
“빌붙으라고 주는 게 아니라 연구 예산에 보태 쓰시라고 선물하는 건데.”
“그럼 고맙게 받지.”
손사래를 치던 남자가 연구 예산이라고 하자 대번에 태도를 뒤집어서 얼른 받아 챙긴다. 정혜주는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웃었다.
문득 책상에서 일어난 그녀는 사뿐사뿐 다가갔다. 또각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크게 울린다. 황금상을 쥐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니트로는 순간 긴장했다.
어느덧 정혜주는 그의 앞에 섰다. 힐을 신어서인지 그보다 눈높이가 조금 더 높았다. 이 남자, 대체 언제쯤이면 다 자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정혜주는 그의 목을 팔로 감았다. 그리고 속삭였다.
“예산도 줬는데, 뭐 없어요?”
“뭐, 뭘 바라는데?”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 아나요?”
“……아니. 저기, 우리 이건 좀…….”
너무 빠르지 않느냐고 말을 하려는데, 정혜주가 불시에 그를 기습했다. 촉촉한 입술로 그의 입술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는 놀라서 그만 쥐고 있던 황금상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잠시 후 정혜주가 입술을 뗐다. 그녀는 얼굴 가득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느리잖아요. 꼭 내가 먼저 나서야 해요?”
니트로는 굳어 있었다. 116년을 솔로로 살아온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은 너무 낯설었다. 무슨 생각을 하면 좋은지, 무슨 말을 하면 좋은지, 무슨 행동을 하면 좋은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을 표백제로 깨끗이 날려버린 것만 같았다.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장난기가 완전히 지워진, 성숙한 여인의 눈빛이었다. 말투도 변했다.
“누나랑 사귀면 좋은 점 되게 많다? 뭔지 아니?”
“뭐, 뭐야. 갑자기 말투가 왜…….”
“너 쓰고 싶은 대로, 아무도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예산 쓸 수 있어. 어때, 탐나지?”
“그러니까 말투가 지금 그게 뭐냐고…….”
“누나랑 사귈래?”
============================ 작품 후기 ============================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