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45)
00745 어둠의 저편 =========================================================================
피즈는 상대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상대는 미동도 않은 채 여전히 허공에 난 틈새만 응시하고 있었다. 어느덧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상대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순간 죽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했다.
호기심이 생긴 피즈는 허공으로 눈을 돌렸다.
‘이건 뭐지?’
저것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허공이 찢어져 있다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까.
그것은 마치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난 상처처럼 보였다. 어둠을 닮은 균열에서 흘러넘치는 검은 오오라는 마치 상처에서 흐르는 혈액 같았다.
피즈는 균열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균열 앞의 괴물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피즈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아니면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있거나.
‘맛있겠다…….’
피즈는 홀린 듯이 균열에 손을 뻗었다. 균열 가장자리에서 넘실거리는 오오라가 손끝을 살짝 스치는 순간이었다.
“꺄아아악!”
피즈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손끝에서부터 짜르르한 느낌이 전해지며 온몸을 강타했다. 참을 수 없는 극통에 피즈는 의식을 잃었다.
* * *
처음 피즈가 사라졌을 때는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미는 ‘애가 또 말썽이네.’하며 한숨을 쉬고는 피즈를 찾아 나섰다. 레지나는 곧 나미가 피즈의 뒷덜미를 잡고 도망치려고 버둥거리는 걸 끌고 돌아올 거라 예상했다. 한바탕 또 재미난 광경이 펼쳐지겠지 싶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건 한참 후 나미가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돌아오고부터였다. 그녀는 대뜸 말했다.
“피즈를 찾을 수가 없어.”
“무슨 말이야?”
레지나의 낯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언뜻 그녀를 스쳤다.
나미는 피즈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피즈가 품은 레드 결정체와 공명하여, 그 애가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나미는 피즈를 못 찾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곳은 균열의 근처 아닌가. 느낌이 안 좋았다.
“다시 찾아볼게. 잠시만.”
나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최윤 등은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정숙을 지켰다.
이윽고 나미가 눈을 떴다.
“역시 느껴지지 않아. 이상해.”
“ZMD망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최윤도 보통 사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단순 가출이라면 모르겠는데 피즈의 존재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ZMD망으로는 추적이 안 될 텐데요?”
레지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제니스 전용 괴수 추적 시스템, ZMD망은 화이트 급은 추적하지 못한다. 레드 결정체가 ZMD망의 탐지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간접 추적을 해볼 거예요. 이 근처에서 블랙 이하 다른 괴수들 위치가 갑자기 변했나 살펴보면 되겠죠.”
최윤은 장태준에게 연락해서 ZMD망의 분석을 부탁했다. 분석 결과가 전달되는 데에는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최근 5시간 동안 해당 지역에서 특이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없습니다.」
“이런…….”
나미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최윤과 레지나, 니트로의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피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떤 존재가? 화이트 급인 피즈를 함부로 해할 수 있는 존재가 저 구역 어딘가에 있단 말인가?
“어쩌면 북극곰 괴수 같은 게 저 안에 숨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니트로가 입을 열었다. 나미의 표정이 더욱 핼쑥해졌다.
“찾으러 가야겠어요.”
“잠시만!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래도 찾아야 해. 정말 그런 녀석이 있다면 시간이 없어.”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인간이 아니라 해도 다를 것이 없다. 나미는 한시가 급했다.
하지만 레지나는 생각이 달랐다. 나미 혼자 저 안으로 가게 뒀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나미야! 그러다가 네가 당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내가 당할 정도면 내 아이는 더 위험한 거야.”
나미는 딱 잘라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ZMD망으로 피즈를 찾을 수 없다면 직접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말릴 길이 없어 보이자 레지나는 체념했다. 대신 무선 통신기를 억지로 쥐어주었다.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가.”
“알았어.”
“통신도 되고 위치 추적도 되는 물건이니까 굉장히 유용할 거야. 전파 장애만 없다면.”
나미는 통신기를 받아 챙겼다. 그리고 폐허가 있는 방향을 향해 뛰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회장님께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겠죠. 제가 하겠습니다.”
최윤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 * *
나미는 잡초만 무성한 허허벌판을 빠르게 달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뛰면서도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여전히 피즈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 어리고 연약한 것이 어디서…….’
걱정이 되고 불안해서 가슴이 조여 온다. 지푸라기라도 있으면 잡고 싶은 심정이다.
허허벌판은 군데군데 잡초가 무성하게 나 있었다. 그 외는 황량하게 마른 모래만이 가득했다.
과거 레마시아 연구소가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이 부근은 고농도의 결정 에너지에 오염되었다. 그 뒤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본래는 풀 한 포기 없던 지역이다. 하지만 지금은 잡초가 뭉쳐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정 에너지가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나미는 저 멀리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보니 녹슨 철근이 삐죽하게 솟아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너진 건물 잔재였다. 아마 연구소 폭발 당시 후폭풍에 휩쓸린 어느 건물이겠거니, 하고 돌아서려던 때였다.
“……!”
나미는 눈을 치켜떴다. 녹슨 철근의 뾰족한 끝에 걸려 있는 뭔가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옷 조각이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서둘러 옷 조각을 살폈다. 오래 된 흔적은 없었다. 틀림없이 새 것이었다. 무엇보다 피즈가 입고 있던 원피스와 같은 색이었다.
“설마?”
나미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곧 부러진 철근 바로 옆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했다. 입구는 아이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구멍이 작았지만 몸으로 부대끼며 강제로 부수고 들어갔다. 입구를 통과하자 곧 바닥이 꺼졌다.
그녀는 벽에 손을 번갈아 박아 넣으며 빠르게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공터에 착지했다.
‘여긴 어디지?’
지하 동굴? 그러기에는 너무 크다. 마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땅 속에 만들어놓은 공터 같은 느낌이 난다. 인공 설비는 보이지 않지만 벽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치고 비교적 깨끗한 단면을 이루고 있었다.
나미는 어두운 공터를 천천히 걸었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라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통신기를 입에 가까이 가져갔다.
“레지나. 레지나. 들려?”
치익, 치익, 치이익…….
통신기에서는 잡음만 흘러 나왔다. 나미는 디스플레이를 조작해 위치 정보를 열었다. 그러나 ‘Signal lost’라는 표시만 뜰 뿐이었다.
‘완전히 먹통이네.’
기기 고장이 아니다. 나미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통신을 교란시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긴장이 곤두섰다. 나미는 더 이상의 교신 시도를 포기하고 통신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벽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나미는 꿈틀거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어둠 속이지만 그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뛰어 움직이는 물체를 낚아챘다. 아니, 낚아채려고 했다. 그러나 녀석은 놀랍게도 재빠르게 움직이며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저건?’
나미는 녀석이 자신의 손길을 피해냈다는 것보다 녀석의 모습을 보고 더 놀랐다. 분명히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전갈 괴수?’
놀랍게도 녀석은 저번 제니스 예비대를 습격했던 바로 그 전갈 괴수였다. 다른 게 있다면 단 하나, 손바닥만큼 작은 크기라는 점이었다.
녀석은 어딘가로 빠르게 기어가고 있었다. 나미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그녀는 내면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쏜살처럼 전갈 괴수를 향해 뛰어나갔다.
“어딜 가려고!”
그녀는 폭발적인 기세로 전갈 괴수를 낚아챘다. 녀석을 우악스럽게 움켜쥔 순간, 손안에서부터 엄청난 반발력이 돌아왔다. 예상 밖의 강한 힘에 그녀는 순간 놀라서 그만 놓치고 말았다.
전갈 괴수가 몸을 돌렸다. 나미를 쳐다보고는 마치 으르렁대듯이 꼬리를 높이 치켜 올렸다. 드디어 나미를 적으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나미는 조금 긴장해서 자세를 낮췄다. 분명 저 녀석도 괴수가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불안했다. 그것은 곧 녀석이 얼마만큼 강한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치이이익!
갑자기 전갈 괴수가 낮은 위협소리를 냈다. 그것은 울음소리라기보다는 쇠를 거칠게 부딪쳐서 울리는 불협화음에 가까웠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긴장하던 나미는 전갈 괴수의 주변에 일어나는 검은 오오라를 볼 수 있었다.
검은 오오라는 순식간에 전갈 괴수의 온몸을 감싸며 무섭게 팽창했다. 나미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뭉게뭉게 일어난 검은 구름 사이로 커다란 발톱이 튀어나왔다.
이윽고 검은 구름이 완전히 걷혔다.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거대해진 모습이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갓사딘 파트 플롯과 연출을 다듬느라고 시간이 좀 많이 걸렸습니다. 죄송해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