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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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셔도 소용없어요! 이제 나 막 살 거야!”
유지웅은 마치 화를 내듯이 그렇게 으르렁거렸다. 칠드그린은 순간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이, 이 무슨 미친…….’
본래 그는 유지웅이 로버의 존재를 착오한 것이든, 속인 것이든 그에 따라 알맞은 대응을 할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대응 시나리오도 준비해왔다. 그러나 지금 유지웅의 태도는 그 모든 것을 쓰레기통으로 처박고 있었다.
“나 이제 막 살 거예요!”
“회, 회장님!”
미국을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 유지웅이라는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했건만, 그 호랑이는 방울을 달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애처로운 칠드그린의 외침을 뒤로 하고, 유지웅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 * *
“범석아.”
“예, 회장님.”
“공수래공수거라는 말 들어봤냐?”
“물론입니다. 인생의 허망함을 일컫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내가 비록 스무 살 밖에 안 됐지만, 요즘 그 말의 무게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유지웅은 깊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지금은 텅텅 비어 있는 손이다. 하지만 실은 무엇이든지 쥘 수 있는 손이다.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을…… 난 너무 치열하게 살았다.”
“회장님…….”
김범석의 얼굴이 굳었다. 지금 회장님의 모습은 낯설었다. 평소와 너무 달랐다. 마치 세상의 모든 고뇌는 혼자 다 짊어졌다가 해방된 듯이 후련한 얼굴 아닌가.
“음, 이건 뭐냐?”
유지웅은 김범석의 책상 한쪽에 수북이 쌓인 서류를 보고 호기심을 나타냈다.
“아, 비서실에 들어온 일반 민원입니다.”
“일반 민원이 왜 비서실에 들어와? 관공서에 들어가지 않고?”
“보통 관공서로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민원이 종종 비서실에 들어옵니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유지웅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김범석이 얼른 서류 한 장을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이거 하나를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흠, 급발진 교통사고? 근데 차량 제조사가 발뺌을 한다? 차주와 피해자 둘 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고……. 아하.”
유지웅은 이해했다는 듯이 가벼운 탄성을 냈다. 김범석이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경우처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도와달라고 종종 호소가 들어옵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회장님을 모시는 입장에서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여력이 되는 데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뭐야, 재미있는 일 하고 있네.”
흥미가 생긴 유지웅은 서류 더미를 한 장씩 넘겼다. 전자문서를 놔두고 왜 이렇게 종이 문서를 잔뜩 쓰나 했는데, 알고 보니 우편으로 날아온 호소문들이었다.
“졸지에 백수 됐는데, 이참에 자선사업이나 해봐야겠다.”
로버가 사라졌으니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아니, 일반적인 실직자에 비해서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자선사업 말씀이십니까?”
김범석이 의아해서 물었다. 유지웅은 서류 한 장을 들고 가볍게 흔들며 대답했다.
“재밌는 생각이 하나 났어.”
* * *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김찬은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탔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는 순간, 갑자기 자기 총알처럼 튕겨져 나갔다. 미처 브레이크를 밟을 새도 없이 차는 저만치 앞에 있던 아파트 주민을 그대로 들이박고 말았다.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차량은 주민을 완전히 깔고 지나간 뒤였다. 급히 차에서 내려 주민을 살폈지만, 그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이봐요! 도와주세요!”
“무슨 일입니까?”
“사, 사람을 치였어요! 119를 좀!”
“기다려요!”
마침 주차장에 있던 다른 주민이 도와주었다. 잠시 후 119가 도착했고, 구급대원이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조심스럽게 들것에 실었다. 그때였다.
“어, 무슨 일이죠? 사람이 다쳤나요?”
“비켜주세요! 급합니다!”
“나 힐런데요?”
“네?”
구급대원들은 당황해서 되물었다. 힐러라고 밝힌 청년은 차분하게 다시 말했다.
“나 힐러거든요? 지금 사람 다친 건가요?”
“교, 교통사고입니다!”
“그럼 비켜 봐요. 그런 건 힐 한 방이면 끝나.”
힐러 청년은 구급대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피해자는 피투성이가 된 여자였다. 나이는 언뜻 30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힐러 청년은 여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빛이 맺히더니 여자를 향해 흡수되었다. 여자의 몸에 난 상처와 기괴하게 꺾인 관절이 놀랍게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힐러 청년은 구급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부상은 다 나았으니 잠시 후 정신을 차릴 겁니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그럼요. 힐은 질병은 치료 못해도 상처는 완벽하게 치유합니다. 힐로 치료 못하는 부상은 화타가 살아 돌아와도 못 고쳐요. 염라대왕이나 가능할까?”
“예?”
“죽은 것만 아니면 상처는 다 낫게 하니까요. 그 뜻이에요.”
그리고 힐러 청년은 휘파람을 휘휘 불면서 사라졌다. 김찬은 연거푸 허리를 숙이며 그에게 고맙다고 했다. 사례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하고 떠나갔다.
잠시 후 피해 여성이 정신을 차렸다. 구급대원은 물론이고, 김찬도 전부 다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아기! 내 아기!”
여자는 깨자마자 울부짖었다. 김찬과 구급대원은 정신이 멍해졌다.
“일단 병원으로 호송하겠습니다!”
구급대원이 얼른 차를 출발시켰다.
병원에 도착해서 급히 진료를 받았지만, 의사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유산입니다.”
“하, 하지만 현장에서 힐로 완벽히 치료를 했는데요?”
“태아가 살아있었다면 괜찮았을 겁니다. 아마 충돌 직후 그 충격으로 유산한 것 같습니다. 이미 유산한 뒤에는 힐은 아무 소용이 없지요.”
울부짖는 여자를 보며 김찬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알고 보니 그녀는 지독한 난임으로, 10년 결혼 생활 동안 임신을 위해서 안 해본 게 없다고 한다. 시험관 아기 비용으로만 날린 돈이 10년 간 수천은 되었다. 이번에 생긴 아기도 수없이 실패했던 시험관 시술이 겨우 성공한 것으로, 부부에게는 첫 아기였던 것이다.
그런 소중한 아기를 잃었으니, 부부가 큰 슬픔에 빠진 것도 당연했다.
“저희 책임이 아닙니다.”
차량 제조사는 차량 자체에 아무 결함이 없다며, 운전자의 과실일 거라고 일축했다. 김찬이 블랙박스 동영상과 증언, CCTV 자료 등을 내놓아도 소용없었다.
“정 억울하면 소송으로 가시죠.”
차량 제조사는 오히려 그렇게 당당하게 나왔다. 김찬은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기를 잃은 부부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차량 문제라고 생각해주었다는 점이다. 차량 정비 기술자인 남편은 블랙박스 영상 등 각종 자료를 보고는, 김찬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주었다.
그렇게 남편과 김찬은 제조사에 대한 힘겨운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제조사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인터넷에 호소문을 올리자, 제조사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일개 회사원과 일개 정비공, 그리고 대기업. 싸움의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어렵겠는데요. 증거는 충분하지만, 저쪽에서 작정하고 물고 늘어지면 3년, 5년 이렇게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합의를 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수임을 맡은 변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합의를 권했다. 김찬과 남편은 분개했다.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고 당당한 놈들이랑 어떻게 합의를 해줍니까? 그것도 쥐꼬리만 한 금액인데요!”
제조사는 4천만 원의 합의금을 제시했다. 이걸 받고 합의를 하던지, 아니면 끝 모를 긴 소송으로 들어가던지 택일하라는 것이다.
변호사는 혀를 찼다.
“그럼 한 번 해봅시다. 아마 긴 싸움이 될 겁니다.”
정말로 싸움은 길었다.
사실심이 끝나는 데만 해도 무려 3년이 걸렸다. 항소심에서 승소한 순간, 김찬과 부부는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파기 환송해서 2심으로 다시 사건을 돌려보냈다. 2심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것이다.
변호사가 연락을 해왔다.
“제조사 변호단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지금까지 들어간 소송비용과 3천만 원의 합의금을 주겠다고 합니다.”
“…….”
3년의 시간을 소모했건만, 합의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여기저기 호소를 해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3년의 투쟁 동안 김찬과 두 부부의 생활은 엉망이 되었다. 두 부부는 여전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참다못한 김찬은 최근 나라를 쥐락펴락 하고 있는 유지웅 비서실에 호소문을 보냈다. 비록 테러리스트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한 사람이다. 어떻게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호소문을 보내고 2주일 후, 짙은 선글라스를 쓴 청년이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공항상사’에서 나왔습니다.”
“공항상사? 그건 뭡니까?”
“아, 이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은 자선 사업 관련도 하고 있습니다.”
공항상사? 자선사업? 뭔가 접점이 어긋난 듯한 네이밍 센스에 김찬은 멍해졌다.
문득 김찬은 청년을 어디서 봤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큰 선글라스로 얼굴을 많이 가리고 있지만, 왠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혹시 유지웅 회장님 아니십니까?”
“저,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유 부장’이라고만 불러 주십시오!”
얼굴선이 닮았는데, 아닌가? 하긴 그런 대단한 양반이 직접 자신을 찾아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 피해자 부부도 같이 불러주시죠.”
그렇게 셋이 한 자리에 모였다. 두 부부는 제니스에서 도와주기 위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격해했다.
“그런데 이 분은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3년 전 당시 여자를 치료해준 힐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같은 아파트에 친척이 있어 부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유 부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청년이 입을 열었다.
“지난 3년 간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떡하면 적절한 도움이 될까 저희 제니스 상사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손해배상청구권을 사려고 합니다.”
“손해배상청구권을 산다고요?”
“네, 그럼으로써 세 분은 이제 모든 걸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 거지요.”
마음이 차분해졌다.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이 갈리는 제조사에게 겨우 3천을 받고 합의를 해주느니, 제니스 상사에 넘기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견적을 내기 시작할 때였다.
“3년 간 재판 비용만 3천이 들었군요. 요새 대부업체 이율이 최고 40%였나요? 일 년에 1,200씩 3년이니 이자만 3,600만 원, 원금까지 해서 모두 6,600만 원이군요. 이건 당연히 우리가 드리겠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얼떨결에 고맙다고 하긴 했는데, 뭔가 이상한 계산에 김찬과 두 부부는 다소 황당했다.
“불량차량으로 김찬 씨께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셨군요. 이건 위자료 1조 원을 하면 되겠고.”
“예?”
“아기를 잃었네요. 그것도 십 년 만에 생겼고, 다시 얻을지 모르는 소중한 아기네요. 저도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유 부장은 진심으로 분개하는 듯이 보였다.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피해배상을 위해서 적절한 사회적 통념에 따라 환산을 하자면…… 10조 원으로 하겠습니다.”
“예?”
“그리고 뻔히 줘야 할 돈을 안 주고 3년 넘게 차일피일 미루면서 합의를 강제했으니, 괘씸죄로 2조 원 추가.”
그렇게 유 부장은 13조 6,600만 원을 세 사람에게 지급하고 청구권을 사들였다. 두 부부는 11조 3,300만 원을 받았고, 김찬은 2조 3,300만 원을 받았다. 각자 자기 피해 지분만큼 가져간 것이다.
* * *
“이사님. 큰일 났습니다.”
“뭔가?”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한 번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H자동차 법무이사는 급히 청구서를 받아들였다.
「귀사의 번영을 기원합니다. ……중략…… 청구권을 매입한 관계로 이제부터 본사가 대신 청구할 권리가 있음을……중략…… 총 13조 6,600만 원을 청구하는 바이며, 이 시간부로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이율이 적용되며……중략…….」
「제니스 공항상사 코퍼레이션.」
이 나라에서 제니스의 이름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없다. 법무이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청구서를 구겼다.
“제니스가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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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대신 받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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