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46)
00946 %3C프리시즌 딜러편%3E 균형은 유지되어야 한다 =========================================================================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었나?」
사방이 어둡다. 어디선가 들려온 웃음소리가 자신을 나무란다. 유지웅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봤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안개만이 사방을 가득 메울 따름이었다.
「우습군.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남자였단 말인가!」
“너! 누구야! 모습을 보여라!”
「으하하하하!」
마치 인간이 것이 아닌 양 기괴한, 하지만 호탕한 음색이 크게 웃어젖혔다. 유지웅은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이었다.
「꼴이 아주 우습군. 겨우 이 내가 없다고, 모든 것을 놓고 상심할 남자였단 말인가?」
“너…… 로버로구나!”
「네이놈!」
그때였다. 화악, 하고 안개가 일순간에 걷혔다.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드러났다.
이곳은 지하 공동이었다. 예전에도 본 적이 있는 곳이다. 바로 균열이 있던, 레마시아 연구소 지하 공동이었으니까.
그때와 다른 점은, 지하 공동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사방이 밝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멀리, 균열이 있던 곳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유지웅은 그게 대번에 로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인간을 닮았지만, 칙칙하고 검은 괴물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다.
“로버!”
유지웅은 앞으로 뛰어나갔다. 이 녀석, 역시 존재하고 있었어! 단지 숨어 있었던 것뿐이야!
그는 단숨에 로버를 쳐내려 했다. 그러나 로버의 얼굴을 본 순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멈추고 말았다.
“이럴 수가…… 당신은 정말 로버가 맞아?”
「너의 눈에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나?」
로버, 아니 로버로 추정되는 놈은 오히려 반문했다.
놈의 모습은 분명히 로버였다. 그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던 그 강인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랐다.
그것은 바로, 얼굴이…….
“휘, 휘버!”
휘버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 * *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어났다. 유지웅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헐떡였다. 주변은 어두웠다.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이리저리 뻗어 있는 빈 보드카 병이 보였다.
“후우……. 꿈이었구나.”
그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제야 뻗을 때까지 술을 먹고 기절하듯이 잠들었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꿈을 꾼 것이다.
“휘버의 얼굴이었어.”
가슴이 차가워졌다.
로버와 휘버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로버는 분명히 휘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전생에서 최윤 등 과학자들은 죽은 휘버의 사념이 균열에서 나오는 결정 에너지와 응집된 것이 로버라고 했다.
그것이 로버가 휘버의 분신인지, 아니면 로버라는 괴물이 휘버의 기억만을 가져온 건지는 분간할 수 없지만, 꿈에서 로버가 휘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야야…….”
유지웅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숙취로 인한 두통이 미칠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럴 때는 힐이 안 된다는 게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팔다리를 길게 뻗고, 큰 대자로 누웠다. 멍한 눈으로 천장의 샹들리에만 바라봤다. 탈진한 듯이 온몸에 힘이 없었다. 지끈거리는 숙취의 두통도 어느덧 남의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로버가 없어…… 나는 그럼 대체 왜 과거로 온 걸까…….”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로버 하나만 물리치겠다는 일념으로, 악명을 짊어지는 것쯤 서슴지 않고 한 길만 걸어왔다. 희대의 테러리스트, 다시없을 독재자란 불명예를 얻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명예보다는 세상의 평화가 더 중요하기에.
그러나 로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남은 것은 최악의 독재자, 폭군이라는 떳떳하지 못한 불명예뿐이다.
“크, 크크, 크크크크…….”
어느 순간, 유지웅은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조금씩, 무겁게, 하지만 점점 커져갔다. 마침내 그는 배를 잡고, 세상이 떠나가라 크게 웃어대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마음속의 모든 한을 토해내듯이 실컷 웃고 난 유지웅은 드디어 폭소를 멈췄다.
어슴푸레한 달빛을 노려보는 눈이 차갑게 빛난다.
“좋아.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사양하지 않겠다.”
그는 달을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차피 로버도 없는 세상, 기꺼이 걸어가 주지. 수라의 길을…….”
미래를 바꾸려고 과거로 왔는데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냥 막 살아야겠다.
* * *
햇살이 참 밝았다.
유지웅은 현관을 나서다 말고 멈칫 했다. 폐부를 찌르는 공기가 참으로 상쾌했다.
마음가짐이 변해서일까. 세상이 크게 달라 보였다. 변한 건 자신의 마음 하나일 뿐인데, 어쩜 이리 달라 보일까.
“세상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는데, 나는 혼자서 병신같이 존재하지도 않는 로버나 쫓아다니고 있었어.”
유지웅은 우두커니 선 채 중얼거렸다. 양손에 힘이 꾸욱 들어가며 주먹이 쥐어졌다.
“좋아, 기꺼이 걸어가 준다.”
그렇게 칩거를 깨고 나오자, 그동안 밀린 외부 연락이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회장님. 사회 개혁을 완료했습니다. 기소자들 대부분이 자기 비리를 순순히 시인했습니다.”
목숨과 재산, 그 어느 쪽이 아까운지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자명하다. 유지웅을 잔혹한 폭군으로 여기고 있는 기소자들은 체념해서 순순히 따랐다.
“좋군요. 하지만 억울한 이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회장님, 전에 말씀하신 기초과학연구단지를 WCO내에 부속시키는 문제로…….”
보고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어려운 내용도 많았지만 비서들은 그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중에는 ‘내가 언제 이런 걸 시켰나?’하고 기억이 안 나는 것들도 있었다.
물론 하나도 남김없이 승인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회장님, 칠드그린 페이커 의장이 찾아왔습니다.”
“아, 어서 들어오라고 하세요.”
미국에 다녀온 칠드그린이 찾아왔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칠드그린이 들어섰다.
“반가워요, 칠드그린 의장님.”
“칩거에 들어가셨다 들어서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별 탈 없는 듯해서 마음이 놓입니다, 회장님.”
“나름대로 고민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그 고민은 로버 문제겠지요?”
칠드그린은 정직한 직구를 던졌다. 유지웅을 상대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의외로 유지웅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끄덕였다.
“그래요, 혹시 알고 계셨나요?”
“저도 WCO 소속입니다. 모를 수가 없지요.”
“백악관에는 말했습니까?”
“……백악관과 회장님이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악관이 회장님을 적대할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그런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칠드그린은 변명 비슷한 설명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유지웅은 가만히 끄덕였다.
‘원래 이런 분이었지.’
전생에서 칠드그린은 자신에게 매수되었지만, 그 본질은 누구보다 미국을 위하는 애국자였다. 나라를 팔아넘긴 것이 아니라, 나라가 번창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비록 불법일지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전생에서 미국은 여러 모로 자신의 덕을 받을 수 있었다. 종래에는 칠드그린의 활약으로 연방이 쪼개지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이번 생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화를 내지 않으시는군요.”
“제가 화를 내야 하나요?”
“그래도 회장님 아래로 들어왔으면서 사전에 승인도 구하지 않고 정보를 넘겼는데, 화나지 않으십니까?”
“전혀요. 전 원래 선조치 후보고를 좋아합니다. 알아서 자기 일을 해내는 인재들을 좋아해요. 그리고 의장님은 저를 배반한 게 아니라 저와 미국이 다 함께 잘 되는 길을 선택하신 거죠. 그렇지 않나요?”
“…….”
“그런데 제가 왜 화를 내야 하죠? 오히려 칭찬을 해줘야지요.”
잠시였지만 칠드그린은 감동받을 뻔했다. 이 사람, 어쩌면 의외로 그릇이 아주 거대한 걸지도? 그래서 범인의 눈으로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걸지도?
“로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회장님의 착오입니까, 아니면…….”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착오인지, 아니면 저의 거짓말인지는 의미가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어차피 로버는 존재하지 않는 걸요.”
거짓말이라고 했다. 자신의 발언이 세상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짚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무의미하다고도 했다. 그 표현에 담긴 뜻을 칠드그린은 읽었다. 마른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설마 이 사람, 지금…….
유지웅은 한탄하듯이 말했다.
“로버는 없습니다. 예, 저의 착오였지요. 누군가는 제가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최악의 폭군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요. 이제 와서 제가 착오라 한들 세상이 믿어주겠습니까?”
“회장님, 잠시만요.”
“아아, 됐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저 막살기로 했어요. 어차피 버린 몸, 멍청하게 착오나 일으킨 놈보다는 세상을 얻으려고 거짓말한 사기꾼이 되겠습니다.”
유지웅은 주먹을 꽉 쥐고,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제대로 막 살아볼 거예요.”
“아, 진짜. 회장님, 잠시만요.”
============================ 작품 후기 ============================
아 쫌 잠시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