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63)
00963 %3C프리시즌 딜러편%3E 맷돌, 그리고 맷돌 =========================================================================
칼과 칼집. 칼은 무기이며 칼집은 무기를 보관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당연히 칼집은 공격적인 면에서 효용이 없다.
그래도 경우에 따라서는 몽둥이처럼 쓸 수도 있으리라. 티끌만큼이긴 하지만 어쨌든 공격 수단으로 활용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칼과 칼집의 공격력 차이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아득하다. 본래 칼은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칼집은 보관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192억이라는 수치가 칼도 아닌, 칼집의 공격력이라고 한다. 칼집이 감싸고 있어 칼의 공격력은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회장은 정녕 몰랐소? 왼손에 균열이 있다는 걸?”
“……상상도 못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소. 그런 막대한 힘이 있는데, 얻었는데,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이오? 짚이는 바가 전혀 없단 말이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휘버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무 것도 모른다, 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왼팔에 균열이 있다. 모든 상황이 그 사실을 방증한다. 그런데 본인이 전혀 몰랐다고?
‘거짓말이다.’
균열이라는 사실은 몰랐어도, 뭔가 큰 힘을 얻었다는 것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유지웅이 자는 사이 균열이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왼팔에 깃들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회장, 아는 대로 말해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소.”
“…….”
“회장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균열이 융합되었을 리가 없소. 게다가 균열은 레마시아 연구소 지하에 있소. 회장은 전에 레마시아 연구소에 온 적이 있소?”
“…….”
“아무 거나 좋으니 기억나는 대로, 짚이는 대로 말해주시오. 그래야 우리가 더듬어 갈 수 있소.”
유지웅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짚이는 것? 있다. 바로 전생에서, 균열의 폭주를 막기 위해 오리나가 레드 결정체와 융합한 묠니르를 던져 넣지 않았던가.
그 직후 균열에 빨려 들어가면서 의식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8년 전 과거였으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얻었다.
휘버는 균열이 분명 왼손 내부에 융합되어 있을 것이라 했다.
그에 짚이는 사건이라고는 그것 밖에는 없다. 필경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오리나…….’
과거로 오고,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그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왼손의 오리나가 균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해서 이렇게 된 것쯤으로 여겼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에너지를 흡수한 정도가 아니라, 균열을 통째로 흡수했다니. 아무리 휘버라지만 쉬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어떡하지?’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것은 칠드그린 외에,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효주는 물론이고 그 외 다른 누구에게도 발설한 바가 없다
유지웅은 결단을 해야 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는 굳은 얼굴을 들었다.
“짐작 가는 바가 있긴 합니다.”
“……말해주시오.”
휘버는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충동을 참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지웅의 표정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상상을 넘어서는, 어떤 놀라운 일을 겪은 것은 아닐까.
니트로, 최윤, 가렌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효주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긴장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휘버 박사님 한 분에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가렌이 반발하듯이 나섰다. 유지웅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것은, 휘버 박사님이 균열이 제 왼손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하게 판별하기 위한 단서가 필요하다는 거 아닙니까? 그걸 판별할 수만 있다면, 다른 분들에게까지 이야기를 흘릴 필요는 없죠.”
“저희를 못 믿으시는…….”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내가 쪽팔려서 그런다고요! 이 사람들아!”
유지웅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몹시 서운한 듯했던 니트로 이하 과학자들은 그제야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그런 이유라면야 뭐…….
“뭔가 함부로 퍼트리기 어려운 일을 겪으셨나 보군요. 이해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휘버, 너 혼자 조용히 듣고 있어라. 우리는 나가 있으마.”
니트로와 가렌은 그래도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최윤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은 채 질질 끌고 나갔다.
실내에 남은 것은 휘버와 유지웅, 그리고 정효주였다. 그녀는 아직 발길을 떼지 않고 있었다.
“나에게도 비밀이야?”
“……미안, 진짜 쪽팔린 이야기라서.”
“서운하지만 뭐, 이해해. 알았어.”
정효주는 아쉽다는 듯이 끄덕이고는,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제 실내에는 두 명만이 남았다.
유지웅은 휘버를 바라봤다. 자, 어서 말해주시오, 하듯이 쳐다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까.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머릿속에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결심을 굳힌 유지웅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휘버 박사님, 실은 저는 미래에서 왔습니다.”
* * *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김범석은 출근길 내내 그 말만을 되뇌었다. 며칠 전, 회장님과 함께 한 영광된 술자리에서 들었던 옥음이다.
당시 회장님께서는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흑인 소방관들이 타오르는 불길과 짙은 연기 속에서도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어린 아이들을 구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회장님은 영화 중간에서 순직한 소방관 영웅들을 위한 장례식 장면에서는 눈물을 보이기까지 하셨다.
거대한 소방차에 실린 관이 거리를 행진하고, 모든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묵념으로 추모하며, 뉴욕 시장의 추모사 아래 진행되는 거룩한 장례식에서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소방관은 참 멋진 직업인 것 같아. 우리나라도 저렇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소방관이 싫다는 사람은 저도 못 본 것 같습니다.”
“하긴, 나도 경찰, 판사, 변호사, 검사, 재벌 욕하는 건 많이 봤어도 소방관들 욕하는 건 못 봤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하면 아직 부족할 거야. 우리나라도 저기 저 영화처럼 멋있는 소방관이 많았으면 좋겠다.”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그 날 이후로 주문처럼 김범석의 뇌리에 각인된 한 마디다. 그 자리를 물러나온 후, 김범석은 곧바로 소방관에 대해 알아봤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소방관의 세계에 관해서는 잘 몰랐다.
그리고 소방관 생태계는 그에게 웃으면서 발목을 꽉 붙잡았다.
―어서 와, 이렇게 열악한 건 처음이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김범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만큼 소방관의 처우가 열악했던 것이다. 대도시는 그나마 나았지만 조금만 한적한 곳으로 가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소방물품이 제때 보급이 나오지 않아, 사비를 들여서 소방 물품을 사는 소방관들도 있었다.
열악한 근무 환경, 형편없는 예산, 노력에 걸맞지 않는 급여에 신음하면서도, 소방관들은 시민들의 격려와 존경에 힘입어 사명을 완수하고 있었다.
‘회,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는데!’
큰일이다! 이런 생태계를 회장님이 아신다면 어떻게 될까?
“소방관 생태계를 개조해야겠습니다.”
“네? 소방관 생태계를 개조한다고요? 어떻게요?”
“멋있게, 아주 멋있게요! 지금 소방관 생태계는 심해예요, 심해! 빨리 심해 탈출시켜서 천상계급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리 랭크를 치르든 뭘 하든 간에!”
부하는 상사를 닮는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알아본 결과, 소방관은 멋있을지언정 그 환경은 하나도 안 멋있다. 오히려 막장 중의 막장이다. 심지어 어느 정치인은 소방관들에게 소방용품으로 쓰라며 목장갑 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을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김범석은 여야당 수뇌부를 찾아갔다.
“소방관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네, 뭐라고요?”
갑작스러운 방문에 수뇌부는 놀랐다. 그들에게 김범석, 김기영은 2대 사신으로 일컬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유지웅이 낫지, 그들이 한 번 방문하면 기둥까지 털리고 만다.
유지웅은 그냥 생각 없이 한 마디 하고 끝내기에, 비서진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최소한의 출혈로 끝낼 수 있다. 하지만 두 비서는 충성심이 대단하기에, 회장님의 사소한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이행한다. 열 배 이상으로.
“미국을 보세요. 소방관은 그야말로 영웅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시민들은 존경하지만, 근무 환경이 열악하고 정부에서도 제대로 대접을 해주지 않습니다. 소방관은 누구나 존경하고, 어린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직업 1순위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뭐긴요, 환경을 개조해야죠.”
“……?”
“일단 소방 관련 예산을 올려야 합니다. 급여나 복리 등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일단 소방관은 목숨을 걸고 일하는 직종이니 최소 연봉 몇 억 이상은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수뇌부 의원들은 눈이 팽팽 돌아갔다. 그걸 다 하려면 대체 예산이 얼마나 들까?
“그리고 소방관이 근무로 인해 순직하거나 장애를 얻거나, 혹은 중상을 입을 경우 지급하는 보상금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거, 검토해보겠습니다.”
“또 이게 중요합니다. 만약 순직자가 발생하면, 정치인들이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그달 자기 월급 전부를 위로금으로 유족에게 지급하는 겁니다. 순직자가 다수이면 분할해서 지급하고요. 아, 물론 정부에서 법으로 지정한 보상금과는 별도로 지급하는 겁니다. 공직자가 도의적인 책임을 진다는 명목이지요.”
“네, 뭐라고요?”
현재 국회의원 한 달 월급은 1,660만원이다. 국회의원이 300명이니, 다 합치면 49억 8,000만 원, 거진 50억 가까이 되는 돈이다. 그걸 다 주자고?
“그, 그건 너무 부당합니다!”
“월급 털리기 싫으면 순직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면 되잖소! 장비도 첨단화하고, 인력도 늘리고, 재해 매뉴얼과 훈련도 선진국 수준으로 하고!”
“…….”
“최고 공직자로서 그 정도 책임도 못 진단 말입니까! 그 얼마 안 되는 월급 내놓는 게 아까우면 그 자리에 있지를 말던가!”
김범석은 그렇게 일갈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회장님은 소방관이 멋있다고 하셨어.’
회장님이 멋있다고 하셨으니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멋있도록 해야겠다.
============================ 작품 후기 ============================
신작은 오늘부터지만 신작 한다구 해서 프리시즌을 끊지는 않습니다~ 프리시즌도 틈나는 대로 게속 이어가겠습니다~
이제 와서 말씀드리자면, 사실 준비는 올 3월부터 하고 있었어요. 여러 가지 준비할 것도 많고, 구상할 것도 많고 해서 바빴습니다. 뭐 제대로 준비한 건 7월 이후 부터지만요-_-;;;
본격적으로 확정된 것은 10월이었습니다만, 개시 전에 준비할 것도 많고 해서 이제야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