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77)
00977 %3C프리시즌 딜러편%3E 대서양의 군주 =========================================================================
때는 유지웅 원년.
신원을 숨기고, CERC에서 위장 근무를 하고 있던 레지나는 세상 돌아가는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바짝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잘못 걸리면 엿 돼.’
희대의 테러리스트는 희대의 폭군이 되었다. 모두가, 심지어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강대국조차 두려워하고 납작 엎드리는 인물이다.
객관적인 스펙을 보면 할 말이 없다. 레드 괴수 이상의 강력한 괴수를 사냥할 수 있는 인물, 그래서 결정체 시장을 한손에 움켜쥐고 독점할 수 있는 데다가, 핵무기도 통하지 않으며 브라우니를 통해 전 세계 어디든 1시간 이내 무차별 폭격을 가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야말로 경제, 자원, 무력, 이 세 가지를 한손에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인물.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루빨리 CERC에서 몸을 빼지 않으면.’
CERC는 유럽 최대 결정체 연구시설이다. 긴 세월에 걸쳐 누적된 결정체 연구 자료도 엄청나고, 그중에는 불법적인 것들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자본이 흘러들어와 있어, 결정체 연구산업의 허브임과 동시에 국제적으로 공인된 불법의 온상이기도 하다.
유지웅 같은 독재자가 과연 이런 곳을 그냥 넘어갈까? 지금이야 잘 모르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종래에는 그 손을 뻗어올 것이다. 어서 이곳 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사직하려 합니다.”
“아니, 엘리스 연구원? 대체 왜요?”
엘리스, 레지나가 이곳에서 사용하는 가명이다. CERC에 있는 불법 연구 자료를 빼내기 위해 취업한 것이니, 당연히 본명을 사용할 순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요. 그래도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중간에 때려 치고 나올 수 없어 억지로 버텼습니다만, 프로젝트도 끝났고 해서 이제 좀 쉬려고 합니다.”
“저런, 건강 때문이면 어쩔 수 없지요. 일단 처리해두겠습니다.”
최근 CERC도 내부적으로 혼선이 많다 보니, 그녀가 사직을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고 순순히 받아주었다.
‘수확은 없었어.’
연구실 짐을 정리한 레지나는 밖으로 나왔다. 거대한 CERC 건물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이러스 괴수…… 분명히 진행 중이라 했는데.’
이곳 어딘가에서는 바이러스와 결정 에너지를 결합하여 탄생시킨, 세상에서 가장 작은 괴수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 실마리를 잡기 위해 침투했다. 그러나 뚜렷한 결과는 잡지 못했다.
‘혹시?’
유지웅의 존재 때문에 연구를 폐기했나? 희대의 독재자가 혹 눈치 채고 분탕질을 할까 두려워서?
‘수십 만 명을 죽인 사람이니 두려워하고 연구를 접을 수도…… 하지만 정말 그럴까?’
유지웅의 악업을 두려워했다면, 연구를 접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가들이 어디 그런가? 두려운 상황일수록 더욱 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정성스럽게 칼날을 가는 게 그들 아닌가?
‘연구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까?’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채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멈췄다. 눈앞에 웬 남자 둘이 서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어디서 많이 봤던 캐릭터 느낌이다.
‘맨인블랙?’
그녀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왼쪽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가시죠, 레지나 박사님.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순간 레지나는 눈이 휘둥그렇게 커지며 놀랐다. 동시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정체를 알았단 말인가. 설마 CERC의 배후에 있는 자본가가 보낸 사람?
“먼저 오해하지 마시길. 회장님은 CERC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십니다.”
“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밤 바이러스를 폭로할 수 있게 도와주겠노라고요. 이러면 이해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가슴에 쿵 하고 돌이 떨어지는 듯했다. 밤 바이러스? 그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인가?
‘CERC 배후가 아니라고?’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저들이 정말 CERC의 배후라면 이렇게 정중하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다짜고짜 힘을 써서 자신을 잡아갔겠지.
‘밤 바이러스를 알고 있어. 그럼 CERC와 척을 지고 있는 세력자일까?’
CERC는 거대 자본이 만들어낸 결정체 연구시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자본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거대 자본가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카르텔을 형성하고 강하게 뭉치지만, 반대로 성질이 다른 이들끼리는 맹렬히 경쟁하기도 한다.
레지나는 지금 눈앞의 남자들을 보낸, ‘회장님’이란 인물이 바로 그런 자일 거라 생각했다.
CERC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자본가. 그렇다면 자신의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본래 적의 적은 동지라고 하지 않던가.
그녀는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안내하세요.”
* * *
“레지나 박사가 수락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김범석이 벗겨진 머리를 허리가 부러져라 숙인 채 대답했다. 일을 잘 처리했다는 보고에 유지웅은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조손지간을 부하로 받아들여 대대손손 맷돌에 넣으면?
‘세계평화지.’
“그런데 회장님, 뭘 그렇게 열심히 작성하시는 중이십니까?”
김범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유지웅이 손수 자필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보통은 타이핑을 하거나 아니면 부하들에게 시킬 텐데, 저리 긴 내용을 일일이 손으로 적고 있었던 것이다.
“아, 별거 아니다. 탄원서지.”
“탄원서요?”
“어, 판사님한테 보낼 탄원서야. 한 번 볼 테냐? 안 그래도 검수 좀 받고 싶은데.”
“여, 영광입니다.”
주인이 보여주겠다는데 사양을 하면 종의 도리가 아닌 법, 김범석은 두말 않고 유지웅이 내민 탄원서를 받아들었다.
「판사님 이거 보세요.
제 비리 캔다고 여기저기서 고발 들어오는 건 저도 알겠는데, 전 비리 같은 거 없거든요? 제가 푼돈이 아쉽다고 비리를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세요? 그럴 바엔 당당하게 약탈하고 맙니다.…….」
쓰다 만 탄원서라 그런지 내용은 거기까지였다. 김범석은 속으로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 이래야 내 회장님이시지!’
통상 탄원서에 붙이는, ‘존경하는 판사님’ 같은 가식적인 수식 따위는 없다. 그나저나 김범석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들이 회장님을 고발한다는 걸까?
‘잠시 격무에 파묻혀 있던 사이 이런 놈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
김범석은 김기영 비서실장 다음 가는 서열이다. 당연히 그의 몫으로 주어진 업무량만 해도 엄청났다.
알현을 마치고 돌아온 김범석은 급히 무슨 일인지 알아보았다. 대체 어떤 놈들이 회장님을 감히 고발한다는 등 하면서 탄원서까지 쓰게 만들었을까?
“그거 동물보호단체라던데요.”
“동물보호단체가 왜?”
“그게 뭐더라? 무슨 맹견 한 마리가 히카리를 물려고 덤벼서 히카리가 깜짝 놀라서 엉겁결에 한 대 쳤거든요.”
“저런.”
히카리가 깜짝 놀라서 엉겁결에 한 대 쳤다? 그 결과야 불을 보듯 뻔하다. 김범석은 그 맹견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래서 맹견 주인이 빡쳐서 고발한다 난리 치고, 동물보호협회는 또 거기에 한 발 거들고, 회장님은 회장님대로 또 화가 나셔서 탄원서 쓰신다고 난리고, 뭐 그렇게 된 겁니다.”
“그자들은 회장님이 무섭지도 않다고 하던가?”
“안 무서운가 봅니다. 회장님이 일반인 상대로 크게 위협을 하신 적도 없고, 오히려 구국적인 이미지도 있다 보니까 좀 만만하게 보나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 김범석은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미국 대통령도 설설 기는 인물에게 감히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니. 그만큼 소신이 있다는 건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지는 두고 봐야 알 테지만.
“그래봐야 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니 김 비서님이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애초에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 자체가 적용 안 되는지라 각하될 겁니다.”
“어째서?”
“히카리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 * *
“아니, 맹수끼리 서로 싸우다 보면 하나가 죽을 수도 있고 그러는 거지, 그게 무서우면 먼저 덤비지를 말던가. 개 관리를 왜 그렇게 개 같이 하는 거야 도대체.”
“지웅아, 제발.”
“내가 그 개주인 새끼 찾아가서 한 마디 해야겠어.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치와와나 키우던가 진짜!”
“지웅아! 제발 좀!”
“회장님, 레지나 박사를 데려왔습니다!”
“어, 그래요? 지금 당장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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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뭘 했다고 벌써 2월달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