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89)
00989 %3C프리시즌 헬조선편%3E 첨보는 듯 첨이 아닌 첨 같은 세상 =========================================================================
“어디…… 뭐라고요? 너무 길어서 제대로 못 들었네요.”
“하하, 한국원양산업협회 산하의 참치어업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협회라고 하신 건가요?”
“아, 예. 그렇죠.”
“아하, 그럼 행정기관은 아닌 거네요?”
“……일단은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 협회는 국내 원양산업에 있어 국내 전반적인 종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수렴, 행정기관과 협의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 됐고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김두영 과장은 떨떠름했다. 보통 어업 종사자, 특히 원양어업을 하는 이들은 협회의 이름만 들어도 껌뻑 죽는다. 무식해서 그게 뭔지 모르던 이들도, 협회의 정체성과 그 규모, 설립 목적 및 하는 일을 알게 되면 납작 엎드린다.
‘스물한 살이랬던가?’
김두영은 잠시 유지웅의 인적사항을 떠올렸다.
어느 날 혜성처럼 부산 어시장에 나타난 스물한 살의 어선 선장. 처음 운 좋게 대형 참다랑어를 낚은 이후, 갑자기 어업을 하겠다며 참치 판 돈으로 중고 선박까지 사서 뛰어든 청년.
‘세상 물정 모를 나이이기도 하지.’
사업적인 면에서 과감한 면모는 인정하지만, 나이를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은 잘 모를 것이다. 김두영은 그 부분을 설명하기로 했다.
“우리 협회는 참치어업 같은 원양어업에 있어 수산업 회원사의 권익과 편의를 위해 일하고 있어요.”
“원래 협회가 일단 그런 데잖아요.”
일단? 그 말이 왠지 거슬렸으나, 김두영은 넘어가기로 했다. 새파란 핏덩이가 생각나는 대로 내뱉은 것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기는 머리 아프다.
“일단 유지웅 선장님이 아셔야 할 게 있어요. 다른 어류도 마찬가지지만, 남방 참다랑어도 어족 보존을 위해 각 국마다 어획 가능한 할당량이 정해져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945톤이죠.”
“그래요? 누가 그런 걸 정하는데요?”
“남방참다랑어보존위원회라고, 태평양 수역의 참치자원 보존관리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죠. UN 같은 곳이에요.”
김두영은 ‘국제기구’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무리 어리고 무식해도 UN은 설마 알겠지?
“아하, UN 같은. 쬐끄만 곳이네요.”
‘쬐, 쬐끄만 곳이라고?’
김두영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대체 얼마나 무식하면 저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래서 왜요?”
“유지웅 선장님은 지난 한 달 동안 혼자서만 무려 12톤이 넘는 참치를 잡았지 않습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이대로라면 올해 유지웅 선장님 혼자서 마음만 먹으면 200톤도 생산하실 수 있죠. 우리나라 총 할당량은 겨우 945톤인데 말입니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다른 회원사들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생산량 조율이 필요합니다.”
김두영은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유지웅은 잠시 생각하다가 끄덕여 보였다.
“음, 알겠습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원활한 논의를 위해서…….”
“올해 남은 기간 동안에 잡는 물량은 10톤을 안 넘기도록 할게요. 살짝 넘어가는 건 이해해 주시구요, 그런 경우에는 즉시 중단하겠습니다. 됐죠?”
“…….”
김두영은 입을 쩍 벌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보일 법한 표정이다. 당황 그 자체.
“왜 그러세요? 할당량 때문에 생산량 조율을 해야 한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큰 마음 먹고 양보를 해드린 건데?”
“아니, 저희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
“어, 설마 저더러 지금부터 한 마리도 잡지 말라는 소린가요?”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김두영은 유지웅의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렸다.
할당량 배분 때문에 조율을 하고 싶다는 말에,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이만큼만 잡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이만큼’이 이쪽의 예상을 월등히 뛰어넘는 적은 수치다. 그러니 한순간에 할 말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아니, 그…… 아직 올해는 8개월 넘게 남았는데 그 남은 기간 동안 10톤만 잡겠다면 유 선장님도 손해가 막심하시지 않겠습니까?”
“아, 상관없어요. 조만간 어종을 바꿔보려고 생각 중이거든요.”
“어종을 바꾼다고요?”
“네, 게나 한 번 잡아보려고요. 참치는 이제 질려서요.”
김두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어업이라는 게 질린다고 취향 따라 바꿔가고 그러는 직종인가? 잘 잡히는 참치를 왜 굳이 안 잡겠다는 소린가?
“게는 참치와 달리 지금처럼 하시면 잡기 힘드실 텐데요. 어선 개조도 해야 하고, 선원도 많이 고용해야 합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문제고요, 아무튼 전 앞으로 10톤 정도만 잡고 참치는 끝낼 예정이에요. 그럼 됐죠?”
“어, 어어, 어어어…….”
“그만 가보세요. 전 바빠서 이만.”
* * *
“뭐야? 실패했어?”
“네, 부장님. 죄송합니다.”
“허어, 그 친구 아주 못 쓰겠구만. 그래, 좋은 낚시터 하나 잡았으니 끝끝내 독식하겠다 이건가? 젊은 친구가 자기만 생각하고 영 글러먹었어.”
“그게 아니라 앞으로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참치는 10톤 이상은 안 잡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어종을 바꾸려고 한다네요.”
“뭐야? 참치를 안 잡아? 어종을 바꿔?”
부장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 달에 120억 가량 되는 돈을 벌어주는 어업을 왜 접겠다는 것인가?
“네, 저도 이해가 안 갔는데 참치는 지겨워서 다른 걸 잡아보고 싶다고…… 게를 잡을 생각이라고 하네요.”
“어린 친구가 운 좋게 참치 낚시터 하나 알게 되니 세상이 쉬워 보이나?”
김두영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느끼기에 유지웅은 참치잡이를 평생 생업으로 여기는 것 같진 않았다. 그보다는 취미 생활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고아 출신의 어린 소년이 취미를 위해서 중고 선박까지 구입해서 위험한 참치잡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부장은 중얼거렸다.
“이러면 곤란한데.”
유지웅에게 직원을 보낸 궁극적인 목표는, 그만이 알고 있는 참치잡이 포인트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좋은 낚시터는 다 같이 공유해야, 진정한 할당량 조율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이러면 다른 회원사들에 할 말이 없어지잖아. 그들이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하지만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명분이 없으면 명분을 만들어야지.”
* * *
다음 날.
유지웅은 김두영 과장의 방문을 받았다.
“참치 어족 보존에 협조해달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전 협회 가입자도 아닌데요? 애초에 전 회사랄 것도 없고, 그냥 개인 어선으로 어업하는 개인 어부일 뿐인데요? 제가 무슨 힘으로 협조해드려요?”
“개인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하는 건 아니지요. 유지웅 선장님은 남방 참다랑어가 모이는 회유지점을 아시지 않습니까.”
“…….”
“아시다시피 남방 참다랑어는 원래 우리나라 근해까지 오지 않는 어종입니다. 하지만 선장님이 잡으시는 어종은 우리나라까지 회유하는 대단히 특이한 녀석들이죠. 만약 그 어군의 생태를 조사한다면, 전체 남방 참다랑어 보존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하.”
유지웅은 알겠다는 듯이 손뼉을 짝 쳤다. 김두영은 이 명분이 먹혔구나, 하고 속으로 기뻐했다.
“그러니까 낚시 포인트를 알고 싶으시다는 거네요?”
“그렇지요.”
“그리고 그 포인트를 다른 회원사들에 알려주실 거고요?”
순간 김두영은 말문이 막혔다. 저도 모르게 바짝 긴장해 있는데, 유지웅은 아무렇지 않은 듯 기분 좋게 웃고만 있었다.
“김 과장님, 멀쩡한 사람을 호구로 보시면 어떡해요. 기분 몹시 나빠지려고 하잖아요.”
“아니, 그런 뜻은 일절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생태 조사를 위해서…….”
“멀리 나돌아 다니는 참치들 생태계를 무슨 재주로 조사한다는 건데요? 그냥 제가 잡아서 파는 참치들이 다 엄청 크고 비싸고 맛이 좋은 놈들이니까, 그 놈들이 도대체 어디에 몰리는지 궁금해서 핑계 대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것이…….”
“핑계를 대려면 좀 사람이 속아 넘어갈 만한 걸 대던가. 그런 어린아이도 안 넘어갈 거짓말을 하면 내가 기분이 나쁘겠어요, 안 나쁘겠어요?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요, 김 과장님?”
“유 선장님. 진정하시고, 저희는 전혀 그런 뜻이…….”
“협회장 뜻인지 아니면 회원사들 뜻인지 모르겠는데, 가서 똑똑히 전해요. 좀 사람을 구슬리고 달래려면 말이라도 그럴 듯하게 하던가, 개도 안 넘어갈 거짓말 하면 안 속는 건 둘째 치고 기분이 몹시 나쁘다고요. 자, 가세요.”
“어어어…….”
김두영은 아무 말도 못하고 쫓겨 나왔다.
* * *
유진산업 사장 박정우.
33세의 재벌 2세인 유진그룹 회장을 친아버지로 두고 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국내 최대의 선단을 보유한 수산회사, 유진산업의 사장이 될 수 있었다. 상성그룹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만큼은 못 되어도, 국내 최고의 수산회사라는 자부심만큼은 언제나 놓지 않는다.
그런 그는 요즘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못 알아냈다고요?”
“예, 죄송합니다.”
“이봐요, 협회장님.”
머리가 희끗희끗한 협회장은 새파랗게 젊은 재벌 2세의 타박에 찔끔했다.
“죄송한 일을 하시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일 한두 번 해보신 것도 아니잖아요.”
“그, 그것이…….”
“남방 참다랑어가 현재 어획량 감소로 얼마나 많은 우려를 사고 있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걸 철부지 어린 어부 한 명이 싸그리 긁어서 몰살시키는 걸 가만 두고 보는 게 말이나 됩니까.”
협회장은 속에서 욕지기가 나왔다. 어족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골든 포인트를 알아내기 위해서면서, 말만 곱게 하는 게 영 아니꼬웠다.
“돌아가세요. 다음에는 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
“반드시요.”
늙은 협회장은 반드시, 라는 나지막한 어조에 실린 무게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때였다. 비서가 급히 들어오더니 당황한 얼굴로 박정우에게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인가?”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그 유지웅이라는 어린 어부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가 왜?”
“지금 부산 어시장에 들어왔는데, 300kg은 넘어갈 듯한 남방 참다랑어를 족히 3천 마리 가까이 가져왔다고 합니다. 거의 900톤 가까이 되는 물량입니다. 올해 우리나라 남방 참다랑어 할당량을 다 소진할 것 같습니다.”
“뭐야, 900톤?”
박정우 사장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노도 있지만, 그보다는 당혹감이 더 컸다.
“그 친구, 겨우 9톤짜리 어선 하나 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나? 대체 며칠 사이에 어디서 대형 어선을 구한 건가?”
900톤의 생선을 9톤짜리 선박에 싣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다른 대형 배를 구해야 하는데, 겨우 며칠 사이에 대형 배를 구해서 출항하고, 그 많은 참치를 잡아서 다시 가져온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애초에 다른 배를 구하는 움직임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게……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비서는 태블릿을 꺼내어 사진을 보여 주었다. 드론을 이용해 상공에서 촬영한 부두 사진이었다. 박정우는 그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대체 뭔가?”
9톤짜리 자그마한 어선이 선두에 서 있었다. 그리고 수천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대형 생선 그림자가, 군집을 이루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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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소년… 아니, 피리 부는 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