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03
1화. 바텐베르크의 망나니
그 아이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다.
바텐베르크의 혈통이라는 배경만으로도 모두가 그 아이에게 경의를 표했다.
여타 일반인들은 쉬이 올려다보지도 못할 권력과 명예가 그에겐 날 때부터 당연히 주어진 권리였다.
다만 그의 인생은 마냥 밝지 못했다.
“리하르트 도련님이 아직도 마나를 깨우치지 못하셨다더군.”
“벌써 나이가 아홉에 이르셨거늘…….”
모든 걸 손에 쥐고 태어난 줄 알았던 리하르트는 정작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세상은 그에게 혈통이라는 축복을 부여함과 동시에 지독한 저주를 내렸다.
마나 불감증.
귀하디 귀한 영약을 닥치는 대로 섭취해도, 폐가 터지도록 마나 호흡법을 반복해도 그는 눈곱만큼의 마나조차 느끼지 못했다.
올바른 수련법과 한 줌의 재능만 갖고 있다면 누구든 느낄 수 있는 마나가, 꼭 리하르트만 따돌리는 듯했다.
“나는 반드시 아버지처럼 강한 기사가 될 거야!”
흰머리 희끗한 집사를 향해 호기롭게 외쳤던 포부는 어느새 덧없는 꿈이 되었다.
해가 갈수록 꿈은 멀어졌고, 그것이 마침내 절망으로 변모했을 적에, 리하르트는 이미 바텐베르크의 망나니가 되어 있었다.
쨍그랑-
언제부터인가 그는 조금이라도 심기가 뒤틀리면 물건을 집어던졌다.
기사들의 허리춤에 매인 검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꺼져, 뭘 쳐다봐! 너도 내가 우스운 것이냐?”
날 때부터 주어졌던 권력과 명예가 횡포와 악명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망에 닳고 닳은 치기 어린 마음은 날카롭게 갈려서, 주변 사람들을 쉽게 상처 입혔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리하르트의 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모든 이의 멸시를 받게 된 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도련님…… 부디 선하고 올곧은 마음가짐을 잃지 마십시오. 그리하셔야 호르께서도 도련님을 어여삐 여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충성스런 집사의 조언도 리하르트에겐 닿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리하르트를 더욱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웃기지 마. 그분이 나를 어여삐 여기고자 하셨다면 처음부터 이따위 저주를 내리지도 않았겠지. 벌써 수천 번이나 기도를 올렸다고. 그래서…… 결국 이게 그 기도의 답인가? 하!”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응답없는 신을 향해 방향을 튼 것은 차라리 자기방어에 가까웠다.
그렇게 수년이 흘러 대륙이 전쟁의 불씨에 휩싸일 때까지, 리하르트는 제 가슴속에 화를 더 해 갔다.
◈ ◈ ◈
어느 날 마르크스가 남대륙의 병력을 이끌고 북상했다.
그건 전에 없던 대대적인 침공이었다.
불과 몇 해 전 언데드라는 악몽에 시달렸던 바렌은 만반의 준비를 거친 마법사들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괴멸당하고 말았다.
결국 바텐베르크와 북대륙의 무가들은 프로트 왕국에 방어선을 꾸리고 치열한 싸움을 이어 나갔다.
“쯔쯧. 마법사 놈들은 이 땅에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그 난리를 피우는 건지. 뭐, 나랑은 상관없겠지.”
그때의 리하르트는 전쟁과는 동 떨어진 듯 태평하기만 했다.
마나조차 느끼지 못하는 몸뚱이, 가문에선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으니 지옥 같은 전장에 등 떠밀릴 일도 없었다.
약해 빠진 자신은 그저 침소에 처박혀 있으면 된다고.
기사나 마법사나 몇 번 드잡이질을 하고 끝날 것이라고.
바텐베르크의 망나니는 그리 여겼다.
그러나 그건 현실과는 무척 동떨어진 생각이었다.
“……어?”
기사들 틈바구니에서, 궤짝에 실린 채 돌아온 모리츠의 시신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 전쟁은 정말 둘 중 하나가 멸망해야 끝나리란 것을.
“…….”
리하르트는 자식의 시신을 내려다보는 루드비히를 눈에 담았다.
천하의 그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꼴에 형제라고 눈물을 흘리는 제 자신이 우스웠다.
자기를 그리도 못살게 굴던 모리츠가 죽게 된다면 그 날은 축배를 들 것이라 다짐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렇게 리하르트가 충격에 잠겨 있는 사이, 루드비히와 기사들은 복수를 천명했다.
“도련님. 안심하십시오. 가주께서 출전하셨으니 곧 전쟁이 끝날겁니다.”
텅 비다시피 한 바텐베르크의 저택에, 집사만이 그를 다독여 주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은 북대륙의 연전연패.
자꾸만 밀리는 방어선은 어느새 프로트 왕국을 넘어서고야 말았다.
대체 어째서일까.
최강의 기사인 아버지까지 출전했음에도 마법사들을 막을 순 없었다.
줄줄이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가문의 기사들을 리하르트는 몇 번이고 목격했다.
“남대륙의 마갑병들만 수십만 기라고…….”
“마르크스의 괴물이 기사들을 학살…….”
거듭되는 패배 소식에 시녀들이 겁에 질린 사슴 같은 얼굴로 수군거렸다.
그즈음부턴 리하르트도 소문에 귀를 기울였다.
웬만한 기사보다 강한 마갑병들이 해일처럼 들이닥친다더라.
마갑병과 비공정을 활용한 마법사들의 공중 폭격에 기사들이 힘을 못 쓴다더라.
앨런 마르크스라는 괴물이 미쳐 날뛴다더라.
귓가에 들려오는 것이라곤 하나같이 좋지 못한 소문뿐이었다.
그나마 바텐베르크의 가주가 출전하지 않았다면 북대륙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으리란 말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기, 기드…… 어쩌지? 이러다가 정말 망하는 거 아니야?”
태평하던 리하르트의 얼굴에 어느 순간 근심이 들어찼다.
다 괜찮을 거라고, 어서 저를 다독여 달라는 간절한 눈초리가 집사를 향했다.
“……괜찮을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늙은 집사는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일찍이 은퇴했던 그가 다시 창을 쥐고 녹슨 몸을 연마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두려움에 빠진 도련님에겐 비밀이었다.
◈ ◈ ◈
“도련님. 절대 바텐베르크를 벗어나지 마십시오. 이곳이 북대륙에서 가장 안전합니다.”
괜찮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다독이던 집사의 음성은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밀리고 밀린 북대륙의 방어선이 기어코 바텐베르크의 코앞까지 당도했을 적의 일이었다.
이곳마저 뚫리면 북대륙엔 희망이 없었다.
“아, 아아…… 가지 마! 기드, 제발 내 옆에 있어…….”
리하르트는 갑옷을 차려입은 늙은 집사의 손을 붙들고 애원했다.
나약한 자신에 대한 환멸감 따윈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바텐베르크의 혈통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한 모습으로 제 목숨을 집사에게 의탁하고 말았다.
가문의 일원들이 본다면 기함을 토할 광경.
그러나 집사만큼은 리하르트의 편이었다.
“예. 이 기드, 결코 도련님 곁을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이틀 전, 그의 손자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마음 같아선 피의 복수를 위해 출전하고 싶었다.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제가 옆에 있을 테니 한숨이라도 주무시지요.”
하지만 겁에 질린 리하르트를 두고 떠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용의 알에서 태어난 뱀 새끼.
사람들은 리하르트를 그리 불렀다.
다만 기드에겐 여리디여린 도련님일 뿐이었다.
어릴 적 총기 넘치던 모습을 보았고,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던 모습을 보았다.
점차 냉랭해져 가는 아비의 눈빛에 눈물짓는 모습도 곁에서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상처가 많아 비뚤어져 버린 도련님이지만, 죽은 형제를 보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아이였다.
“나도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면…….”
그런 기드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리하르트는 오직 기드에게만 제 속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아니, 마나도 못 느끼는 병신일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단련했다면…… 나도 저 밖에서 싸울 수 있었을까.”
기드는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리하르트가 자조하듯 내뱉은 몇마디 말이 무척이나 달가웠다.
“도련님. 사람은 배우고 성장하는 동물입니다. 후회는 곧 반성이고, 진정한 반성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감히 이 집사가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주름진 손이 리하르트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늘 그래 왔듯 시종일관 따스한 눈길이 리하르트를 향했다.
“도련님께선 지금 무엇을 후회하고 계십니까?”
그건 너무도 쉬운 질문이었다.
후회로 점철된 삶,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 중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가장 후회스러운 건 마나 불감증을 핑계로 도망만 쳐 온 자신이었다.
이제 와 바로잡기엔 너무도 늦은 후회.
진즉부터 인지하곤 있었으나, 죽음을 상정하고 나서야 자괴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리하르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거면 된 겁니다. 지금이라도 후회하고 계시니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이전과는 달라지실 테지요.”
넉넉한 미소를 짓는 기드를 보며 리하르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앞으로…… 기회가 있을까.
콰앙!
저 밖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이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었다.
리하르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하늘을 가린 흙먼지 사이로 폭격을 쏟아붓는 비공정이 보였다.
“……정말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
리하르트는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몇 번이고 믿음을 배반당했던 그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찾은 신이었다.
다만 신은 역시 기도를 들어 주지 않았다.
콰아앙-!
기사들과 함께 마갑병을 막아섰던 지크 바텐베르크가 비공정의 폭격을 피하지 못하고 전사했다.
출전 이래 홀로 마르크스 전원을 상대하던 루드비히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프로트 왕국에서부터 밀려난 방어선은 바텐베르크의 대저택에 이르러 괴멸하였다.
“호르시여! 보고 계시나이까!”
승리의 도취감에 젖은 마법사들이 바텐베르크의 가신들을 학살하며 신의 이름을 외쳐 대었다.
마치 신으로부터 명령이라도 받았다는 듯이.
저들이 자행하는 학살이 모두 신을 위해서라는 듯이.
리하르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비록 친애하는 집사마저 잃어 두 눈에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으나, 가슴속에 들끓는 독기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한 가지 묻겠다. 신이란 게, 정말 있기는 한 거냐? 아니, 아니다. 있기는 하겠지. 그러니까 너 같은 광신도가 넘쳐 나는 것이겠지.”
그는 저를 죽이기 위해 친히 발걸음한 마르크스의 괴물에게 말을 쏟아 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무슨 용기가 샘솟은 것인지는 그 자신도 몰랐다.
“내가 장담하건대, 호르 그 새끼는 공감 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놈이야. 인간이 벌레의 생각을 알 수 없듯이, 그 잘난 호르도 우리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게 뻔하지. 그럴 거면 존재하지나 말지, 안 그래?”
시간이 멈춘 듯한 세상 속에서, 리하르트 홀로 참람한 말을 이어 나갔다.
“크흐흐…… 느그들이 물고 빨기 바쁜 그놈은 인간이든 뭐든 관심 없다에 내 모든 걸 건다, 이 광신도 새끼야.”
신이 자비로웠다면 세상은 이래서는 안 되었다.
저를 믿는다는 놈들이 한낱 괴물처럼 사람을 죽여 대는데, 신이 가만히 있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는 구분을 지었어야지.
기도 하나하나에 응답하며 뭐든 떠먹여 주는 사육사는 아닐지언정, 방관자처럼 모든 걸 방치해선 안 되는 거지.
카악, 퉤.
리하르트가 피가래를 뱉었다.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이따위로 무책임하게 굴지는 않았을 거다. 일평생 손가락질받던 나 같은 망나니도 세상이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하진 않았을 거다.”
그건 아무런 힘이 없는 말이었다.
자신의 인생조차 똑바로 살지 못해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일개 바텐베르크의 망나니가 내뱉은 말엔 그 어떤 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리하르트 바텐베르크.』
『너는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다만 신이 그 몇 마디 말을 들었을 때, 그건 영혼을 건 언약이 되었다.
『네게 모든 것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겠다.』
『그러니 너도 나에게 모든 것을 바로잡을 기회를 다오.』
그리하여 바라마지 않던 기회가 찾아왔다.
◈ ◈ ◈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소년이 거울 속에 있었다.
눈가를 찌르는 새까만 머리칼이 거슬려 손으로 쓸어 올려다보았다.
“히, 히익!”
그 작은 행동 하나 했을 뿐인데, 구석에 시립해 있던 시녀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명백히 나를 두려워하는 반응.
저 여자가 왜 저러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리하르트 바텐베르크.
태어났다 하면 검호가 되는 이 집안의 유일한 낙오자,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망나니가 지금 이 몸의 원주인이었으니까.
‘왜 하필 이딴 놈의 몸뚱이를…….’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떠올랐다.
바텐베르크의 멸문과 리하르트의 최후, 그리고 앞으로 대륙을 강타할 온갖 재앙까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골이 아파오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 해 볼만 했다.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니까.
비록 신앙심이 사라진 세계인 데다가,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지만, 뭐가 어찌 됐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만 잘 활용해도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 집안이 박살 나는 꼴도 면할 테지.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꼭.”
주먹을 꽉 말아쥐고 중얼거리던 나는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는, 이라니.
내가 말해 놓고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참 나. 무슨 회귀한 것도 아닌데.”
이 몸뚱어리를 하고 있어서 일까.
나는 ‘이지훈’인데, 마치 정말 리하르트로서 다짐이라도 한 듯해서 피식, 하고 너털웃음이 나왔다.
“히, 히이익!”
“아 씨, 깜짝이야!”
그러다 바짝 쪼그라든 구석의 시녀 덕분에 나까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저 여자 이름이 메리였던가.
“죄, 죄, 죄, 죄송합니다! 흐윽!”
아, 쟤 운다.
잔뜩 겁에 질린 모양새에 내가 다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이놈의 망나니라는 인식부터 어떻게든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