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78
78화. Episode. 26 금의환향 (2)
바텐베르크의 앞마당엔 기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큰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제1기사단과 제3기사단, 그리고 리하르트 일행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허어…… 전쟁이라 하시더니, 벌써 돌아오실 줄이야.”
기드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하루빨리 몸을 회복해 리하르트에게 가려 했지만, 사실 몸은 이미 오래전에 회복되었다.
더는 후유증도 없었고 도리어 전성기만큼의 힘을 되찾은 채였다.
하지만 무언가 잡힐 듯 말 듯한 깨달음의 편린이 기드의 발을 붙잡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자꾸만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것이다.
푸우- 한숨을 내쉰 그가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이 무탈히 오신다는데 아쉬워하면 쓰나.’
요 몇 달간 어찌나 보고 싶던지.
제 손자인 아론만큼이나 도련님의 얼굴이 먼저 아른아른 떠올랐다.
환골탈태를 한 덕에 청년의 모습이 된 리하르트.
마냥 어릴 것만 같던 제 도련님이 정말로 훌쩍 커 버렸더란다.
어서 보고 싶다.
기드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흐음.”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정문에 모여든 기사들 모두 어딘가 들뜬 기색이었다.
그들뿐이 아니다.
바텐베르크에서 일하는 시종과 하인들까지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오시는구나!”
“그분만 보면 숨통이 탁 트이는 기분이야.”
“난 어제도 악몽을 꿨잖아. 얼른 복귀하셨으면 좋겠어.”
월등히 좋아진 청력으로 귀를 기울이니, 시종들의 잡담이 들렸다.
‘그분이라…….’
기드의 입꼬리가 움찔움찔 떨렸다.
저들이 말하는 그분이 누구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후후…… 그렇지. 그렇고말고. 리하르트 도련님은 빛을 이끌고 다니시는 분이야.”
다분히 팔불출 같은 발언이지만, 지금에 와선 사실이었다.
리하르트에겐 성골(聖骨)의 여파인지 신앙의 여파인지 모를 빛의 아지랑이가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니까.
바텐베르크의 사람들은 리하르트가 내뿜던 빛을 잊지 못했다.
그 빛을 쬐면 마음이 편해진다.
대륙을 뒤덮은 어두운 하늘도 더는 꺼림칙하지 않아진다.
그래. 지금처럼.
“……응?”
기드가 고개를 확 돌렸다.
도열해 있던 기사들도, 아닌 척 주변을 서성이던 시종과 하인도 마찬가지였다.
“오, 오오!”
흥분한 시종 하나가 소리쳤다.
그를 꾸짖는 이는 없었다.
다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앞에서, 빛이 어둠을 몰아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기억하던 것보다도 더 밝고 찬란한 빛이었다.
◈ ◈ ◈
리하르트를 선두로 기사들이 속도를 높였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복귀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기사로서의 의무를 완수했기 때문이요, 주군의 기상을 드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도열한 수많은 기사들.
그리고 늘 그렇듯 위엄 넘치는 주군이 보이는 흡족한 눈빛.
그 모든 게 제1기사단과 제3기사단에겐 더할 나위 없는 보상이자 칭찬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기대를 접어야 했다.
“충!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레오가 대표로 나서서 루드비히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했다.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다.”
가주의 대답은 한 박자 느리게 나왔다.
으레 터져 나와야 할 기사들의 함성도 없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까.’
한숨을 삼킨 레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
다들 멍하니 리하르트를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첫째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몹시 찬란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세가 소드마스터에 근접했기 때문이며.
셋째는.
“그 휘장은 무엇이냐.”
그와 제3기사단장이 치켜든 호르교의 깃.
십자 문장이 새겨진 휘장 때문이었다.
“가주를 뵙습니다.”
“가, 가주를 뵙습니다!”
리하르트와 모리츠가 말에서 내려 예를 취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온한 표정.
적어도 리하르트만큼은 그랬다.
제가 속한 집단 외의 휘장을 치켜든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진대.
루드비히와 기사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처음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레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 앉은 루드비히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바렌 왕국의 무가 연합은 마기가 두려워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는 싸움도 큰 손해를 입어 가며 겨우 버텼지요.”
함께 부대꼈던 이들에게 내리는 평가치고는 참으로 신랄했다.
“마기 앞에선 지휘도, 독려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이상, 범인들은 겁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흐음.”
툭, 툭-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총 마흔세 번의 격전에 사망한 기사와 병사가 팔천에 육박합니다. 지금 무가연합은 대략 천 명 정도 남았겠군요. 사실상 바렌 왕국은 이전의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겁니다.”
“많이도 죽었군.”
“뭐…… 그래도 지금 당장은 괜찮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루드비히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다.
한창 신랄한 평가를 내리더니 이제는 또 괜찮단다.
“리하르트 도련님 덕분에 그들은 마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
“그분이 합류하고 나서야 연합이 제 기상을 드러내더군요.”
레오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위기의 순간 빛을 흩뿌리며 등장한 리하르트부터 시작해서, 순식간에 기사들을 매료시킨 종교라는 것까지.
특히 리하르트의 활약상을 한참이나 이야기했다.
“뭐든 다 알고 계신 것처럼 행동하셨습니다. 정말 신의 계시라도 받으시는 건지. 참, 제가 연합을 평가하고 있다는 것도 진작 눈치채셨더군요. 하하!”
뚝.
테이블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즐거워 보이는구나.”
주군의 노기 어린 눈빛에 그는 곤란한 듯 웃었다.
참으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반응이었다.
저 고지식한 주군이 막내 도련님의 선전 포고에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잘 알고 있는 레오로선 그것이 못내 씁쓸했다.
“호르교라고 했는가.”
서릿발처럼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루드비히가 재차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입 대신 문이 벌컥 열렸다.
“젊음이 좋긴 하구만. 괜한 일에도 이리 열을 내고 말이야.”
발락이었다.
발락이 성주를 벌컥 들이키곤 레오에게 손을 휘저었다.
“꼬맹이. 넌 이만 가 보거라.”
“아직 보고가…….”
“여태 보고도 안 끝냈느냐? 쯧, 내가 대신하마.”
한차례 혀를 찬 발락이 의자를 빼 앉았다.
불청객치고는 굉장히 당당한 모습이었다.
“연합인지 뭐시긴지, 겁쟁이들이 이겼다. 근데 웬 놈이 저주를 걸어서 또다시 괴물 놈들이랑 드잡이질을 하게 생겼다.”
이어진 상황 설명은 너무도 건성이었고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그에 레오가 한숨을 삼켰다.
발락의 기색을 보아하니, 쉽게 자리를 비켜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꼬맹이. 어른들 말씀 좀 나누게 썩 나가거라.”
◈ ◈ ◈
“자아, 이제 불청객은 빠졌구나.”
“불청객은 너다.”
발락은 저 혼자 끌끌거리며 루드비히를 살펴보았다.
옛 호적수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은 노인의 몇 없는 낙이었다.
“꼭 제 아들내미를 빼앗긴 것 같은 표정이구나.”
“시끄럽다.”
“왜, 휘장 때문에 그러느냐?”
리하르트와 제3기사단이 치켜든 십자의 휘장.
대관절 저것이 무엇인가 싶었는데, 레오에게 그 정체를 들은 루드비히는 평생 느껴 본 적 없던 감정이 사무쳤다.
기사된 자가 다른 것의 깃을 치켜든다는 게 어떠한 뜻인지,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끌끌, 아무래도 신이 정말 있긴 한 것 같더군.”
“…….”
그건 신을 섬기겠노라는 의지의 발로.
바텐베르크의 가주인 자기 앞에서.
감히.
“그렇게 화만 내지 마라. 너에게도 꼭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니.”
발락은 아주 작정한 듯싶었다.
호적수의 얹짢은 표정을 술안주 삼은 그가 성주를 거나하게 들이켰다.
“크으…… 리하르트 그놈이 두 번째 별을 뽑아 들었다. 크흐흐! 너는 하얗게 타오르는 별을 본 적 있는가? 아주 아름답더군. 역대 검성들께서도 흡족해하실 게야.”
“시끄럽다 했을 텐데.”
제 아들의 성취를 듣는데도 루드비히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도리어 속만 더 쓰릴 뿐이었다.
아들내미를 빼앗긴 것 같은 표정이라 했던가.
발락이 맞는 소리를 했다.
루드비히는 지금, 리하르트를 잃은 것만 같았다.
“발락. 그래서 너도 그 신이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에게 무릎을 꿇었는가?”
“하! 신이 있든 말든 나와 뭔 상관이더냐?”
“그렇지.”
우문현답에 루드비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그가 원하던 대답이었다.
“내 아들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연신 끌끌거리던 발락이 웃음을 뚝 멈췄다.
인제야 제대로 보게 된 루드비히의 눈은 실망이란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 아이가 검에 뜻을 세운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란 걸 깨달았다. 검은 그저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 하여 검을 놓았던 망나니 리하르트.
루드비히에게 그는 아픈 손가락인 동시에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여도 좋았다. 아니, 더해 재능조차 없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저 검에 뜻을 품기를, 조금 더 혈통에 걸맞은 태도를 보이길 바랐다.”
“…….”
“이제야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뀐 줄 알았건만.”
펄럭이던 낯선 휘장.
제 아비를 향해 내보이던 도전적인 눈빛.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당찬 야심가의 모습.
“그 아인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친 것 같더군.”
어딘가 서글픈 목소리였다.
“멍청한 놈. 네가 바라는 건 모두 네 욕심일 뿐이다.”
발락이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
“몇십 년을 찾아 헤매던 제자가 검에 뜻이 없다는 걸 알게 돼서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루드비히는 답을 원했다.
어찌 눈앞의 노인네는 저리 평온할까.
“끌…… 네놈은 싸움을 좋아했느냐.”
“불필요한 싸움만큼 헛짓거리도 없지.”
“하지만 그 자리에 앉기까지 수도 없이 싸워 오지 않았나. 그중엔 불필요한 싸움도 적지 않았을 터.”
꿀꺽. 성주를 들이켠 발락이 말을 이었다.
“놈도 마찬가지다. 그놈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결국은 힘이 필요할 게야. 검에 뜻? 허울이야 좋지!”
“…….”
“네 아들, 리하르트는 말이다. 우리보다도 크게 될 녀석이다. 곧 세상은 그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갈 게지.”
그 발락이 이런 평가를 할 줄이야.
루드비히의 눈이 커졌다.
“리하르트가 보는 곳은 고작 검의 정점이 아니다. 아들 한번 잘 두었구나, 루드비히.”
“…….”
쿵. 발락이 루드비히 앞에 성주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어서 마셔 보라는 듯, 손목을 꺾어 댔다.
“빌어먹을 노인네가…… 고작 한 모금 남겨 놓고.”
“끌끌, 마지막 한 모금이 진국이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제법 입에 맞을 거다.”
발락은 옛 호적수를 보며 재차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