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5)
제135화
제135편 드래곤의 대부 (5)
-구르르릉…….
레기온은 아무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탈피를 하는 건 녀석인데도 불구하고 정신없이 바쁜 건 나다.
“엘, 이게 마지막이니?”
“네. 이게 마지막이에요.”
“좋아, 고맙다.”
나는 따뜻한 온천물 위로, 엘이 가져온 마지막 진흙 한 동이를 뿌렸다. 은색 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온천수와, 만년설 아래 덮여 있던 깨끗한 흙을 섞자 부드러운 진흙탕이 만들어졌다. 온천수가 뿜는 열기와 흙이 가진 특유의 쌉싸름한 냄새가 섞이면서, 익숙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찜질방 같다…….’
황토방, 머드탕, 뭐 그런 거 말이지.
내가 이런 인공 늪지대를 만들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레기온의 탈피를 돕기 위해서다. 톤드라에게 듣자 하니, 드래곤의 탈피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꽤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럼 제가 벗겨주면 되지 않나요?’라는 말에 톤드라는 고개를 저었다. 탈피를 직접 스스로 하지 않으면 다음 탈피도, 그다음 탈피도 힘들어진다나.
그래서 나는 레기온에게 간접적인 도움을 주기로 했다. 껍질이 부드러워질 수 있도록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몸을 담글 수 있도록 인공 늪지대를 만들고, 탈피가 끝났을 때 먹일 간식도 미리 마련해 두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다행히 자정 전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 탈피를 마친 드래곤은 예민해지기 때문에, 직전까지 나를 도와주었던 로이드와 엘은 각자의 방으로 돌려보냈다. 예민해진 레기온이 둘을 공격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다행히 나에게는 샌드 올라푼트의 마정석으로 만든 크리스탈 목걸이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잠을 자지 않아도 생생한 정신으로 밤새 레기온을 돌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잠든 레기온의 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피해서 살살, 조심스럽게.
-구르르릉…….
레기온은 눈을 반쯤 떴다가, 손길의 주인이 나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기분 좋게 잠들었다. 완전한 신뢰가 담긴 붉은 눈동자를 보니 코끝이 찡해진다. 나는 녀석을 두어 번 도닥인 뒤, 미리 마련해 둔 의자에 앉아 ‘낡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 정보를 취합하고, 떠오른 것들을 적기도 하면서.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끄응…….
아주 작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낡은 책’을 덮어 품에 챙긴 뒤 레기온에게 다가갔다. 레기온의 몸은 전체적으로 흐릿하고 투명한 막에 감싸인 것처럼 보였는데, 아마 그것이 탈피가 곧 시작된다는 징조인 것 같았다.
「테오. 나.」
“그래, 그래. 답답하지? 알아. 이쪽으로 와.”
나는 녀석을 다독이며 미리 만들어 놓은 인공 늪지대로 이끌었다. 막 때문에 시야가 불편한 것인지, 레기온은 살짝 비틀거리며 나를 따라왔다.
“여기 들어가서 몸을 좀 녹여, 레기온.”
「테오. 나. 들어가.」
-첨벙…….
레기온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인공 늪지대로 들어가더니 뜨거운 진흙탕에 몸을 푹 담갔다. 그리고 잠시 헤엄치듯 움직이다가, 똬리를 틀듯 둥글게 몸을 말고 꿈지럭거렸다. 나는 녀석의 진정을 돕기 위해 인공 늪지대 위로 말린 물망초 꽃잎을 뿌리며 말했다.
“시간은 많아.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마.”
「테오. 나. 도와줘.」
“아니.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 수 없어.”
「테오. 나. 도와줘.」
“이건 너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야.”
엄격한 목소리로 거절하자, 레기온은 진흙탕에 얼굴을 묻고 성난 숨을 내쉬었다. 코가 묻힌 곳에서 진흙탕이 부글부글 끓는다. 녀석은 짜증스러운 듯 다시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넌 할 수 있어, 레기온.”
「테오.」
“잘해내면 간식을 줄게. 어때?”
그러자 녀석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꼬리도 흔들리며 늪지대에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반응이 좋군. 나는 진흙이 잔뜩 묻은 녀석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힘내라.”
* * *
레기온의 첫 탈피는 무려 여덟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먼저 머리에서 껍질이 벗겨지고, 마치 옷을 벗듯 목부터 다리, 몸통, 꼬리까지 완벽하게 껍질이 떨어져 나갔다. 레기온은 자신이 태어난 알껍데기를 브레스로 태워버렸던 것처럼, 본능적으로 자신의 껍질을 브레스로 태워버리려고 했지만 내가 만류한 덕분에 탈피 껍질은 그대로 건져낼 수 있었다. 진흙을 씻어내자, 평범한 파충류의 것과 다르게 마치 유리처럼 반짝이는 탈피 껍질이 보였다.
‘완벽하군.’
나는 물기를 털어낸 뒤, 탈피 껍질을 아공간 반지에 옮겨 담고 레기온을 살폈다. 탈피를 마친 레기온의 비늘은 이전보다 훨씬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구두약으로 샤워를 한 것처럼.
“수고했어, 레기온.”
레기온은 대답 없이 혀로 발톱 끝을 핥고 있었다. 이해한다. 탈피 직후의 드래곤은 아주 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주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드래곤들은 이런 탈피를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태어나고 일 년까지는 달에 한 번씩 열두 번, 이후에는 그 기간이 점점 길어져 십 년에 한 번, 오십 년에 한 번, 백 년에 한 번, 그런 식으로 바뀔 뿐.
레기온이 몸 상태를 살피는 동안, 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간식을 가져왔다. 트레이에 담긴, 사람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은쟁반 위에 레기온이 가장 좋아하는, 라즈베리 잼을 올려 구운 산양의 갈빗대가 몇 덩이 놓여 있었다. 만드는 동안 레기온이 왜 지금 당장 먹으면 안 되냐고 그토록 졸랐던 간식이다. 녀석은 발톱을 핥던 것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뜬 채 요리를 내려다보았다.
“첫 탈피 축하해, 레기온. 마음껏 먹어.”
레기온은 이를 드러냈다. 나는 이제 그것이 레기온의 ‘미소’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환하게 웃은 녀석은 한층 날카로워진 발톱으로 갈빗대를 움켜쥐고, 천천히 맛을 보기 시작했다. 신선하고 달콤한 라즈베리 잼과 고소한 육즙이 흘러넘치는 산양의 갈빗대. 녀석은 뼈도 남기지 않고 은쟁반 위의 요리를 전부 먹어치웠다.
그리고…….
「고마워, 테오도르.」
어쩐지 전보다 굵어진 목소리로,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아닌가. 첫 탈피를 마쳤다, 이거냐? 이제 사춘기도 오는 거 아니야? 나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긴 뭘.”
“테오도르.”
그때, 문이 열리면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사히 끝났나?”
톤드라다.
“예. 보시다시피.”
우리 애 정말 완벽하지 않습니까? 나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톤드라는 레기온을 위아래로 한번 슥 훑어본 뒤 씩 웃고,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때에 맞춰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군.”
“뭐가 말입니까?”
“이것.”
톤드라가 내게 내민 것은, 얼음처럼 투명하고 얇은 명함 크기의 크리스털 조각이었다.
“이건…….”
“그대가 준 마도구의 해석본이다.”
톤드라가 USB를 이쪽 방식으로 읽어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나는 놀란 얼굴로 톤드라와 크리스털 조각을 번갈아 보았다.
“한참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대단하시군요.”
“이봐, 난 드래곤이라고.”
톤드라는 눈썹을 찌푸린 채 피식 웃었다가, 크리스털 조각을 톡톡 쳤다. 그러자, 크리스털 조각에서 옅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어떠한 형체를 이루었다. 마치 물결처럼 흐르는 빛의 조각들…….
“하지만, 이건 아주 복잡한 암호로 이루어져 있어.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상징과 문자들……. 수치스럽지만, 나조차도 그 비밀의 열쇠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
나는 잠자코 톤드라의 말을 경청하면서, 빛의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전광판의 글자처럼 글자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글자들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글이잖아.’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위대한 세종대왕의 발명품, 그 ‘한글’ 말이다!
굳이 [통역가] 특성이 없어도, 술술 읽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고유 문자!
일이 이렇게 쉽게 풀려도 되나?! 나는 신나서 환호를 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억누르며,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톤드라에게 말했다.
“……어쩌면, 제가 연구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게 뭔지 알겠나?”
“조금은요.”
나는 최대한 뻔뻔하게 대답하며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톤드라는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다면 후에 큰 도움이 되겠지.”
나는 톤드라가 건넨 크리스털 조각을 받아 품에 챙겼다. 여기, 까마귀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 과연 어떤 것일지는, 까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지만.
‘제발 도움이 되는 종류이기를.’
* * *
레기온의 탈피도 끝났겠다, 더 이상 은색 산맥에 머물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톤드라의 호의로 편하게 은색 산맥을 내려왔다. 아퀼라를 비롯한 셰르파들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마을에 맡겨 두었던 스톰과 마차를 찾아 다시 솔렌으로 향했다.
칼리드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런 인물과는 앙금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되지.’
나는 마차 창 너머로 가까워지는 솔렌의 관문을 보며 무릎에 앉은 검은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실은, 고양이가 아니라 레기온이다. 첫 탈피를 마치며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레기온에게 여행을 위해 ‘평범한’ 모습을 할 것을 부탁했더니……. 이렇게 되었다.
‘뭐, 집채만 한 드래곤을 끌고 다니는 것보다는 확실히 눈에 덜 띄지.’
마차는 칼리드의 저택 앞에 섰다. 어째서인지 한층 더 음침해 보이는 모습이군. 문을 두드리자, 칼리드의 흙 골렘이 나왔다.
“칼리드 님을 만나러 왔는데.”
-…….
골렘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기 힘든 얼굴로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면전에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좋아. 이게 대답이라는 거지?”
후우.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나는 잠시 문 앞에 서 아공간 반지에서 두툼한 천 보따리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문을 두드리자, 골렘이 다시 문을 열었다. 나는 골렘에게 보따리를 건넨 뒤, 녀석이 문을 닫아버리기 전에 재빨리 소리쳤다.
“선물, 선물이라고 전해드려!”
-쾅!!!!
휴, 다행히 문이 닫히기 전에 말할 수 있었다. 아, 귀가 다 얼얼하네.
‘뭐, 저 정도 선물이면 칼리드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하겠지.’
비록 드래곤의 대부 자리는 아니지만…….
드래곤이라는 드래곤은 전부 알탄 너머로, 니람 너머로 사라진 요즘 같은 시대에 ‘드래곤의 완벽한 탈피 껍질’이라는 부산물을 어디서 얻겠냐고!
-쿠당탕!!!
그때, 저택 안쪽에서 뭔가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랑곳 않고 마차에 몸을 실었다. 동시에, 저택의 문이 열린다. 모습을 드러낸 건 계단에서 넘어진 것인지 꼴이 엉망인 칼리드였다.
“테, 테오도르! 잠깐만! 멈춰!”
거의 비명 같은 외침에, 나는 창 너머로 피식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출발해, 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