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70)
제470화
제470편 레기온의 집들이 (20)
-햐아아아악!!!
천으로 감싸고 있던 손가락이 드러나자마자, 내 어깨 위에 있던 레기온이 온몸을 곤두세우며 하악질을 했다. 아니, 하악질 정도가 아니다. 몸에 어찌나 힘이 들어가 있는지, 녀석의 발톱이 내 옷을 뚫고 피부에 박힐 정도였다.
“레, 레기온……!”
나는 조심스럽게 레기온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게는 상처 하나 내지 않으려고 들던 레기온인데, 발톱이 내게 박히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비늘을 세워가며 하악질을 해대다니.
‘……평범한 손가락은 아닌 모양이야.’
나는 발버둥 치는 레기온을 감싸 안고, 칼리스토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칼리스토가 다시 손가락을 천으로 감싸 자신의 품에 넣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레기온을 진정시켰다. 비늘이 곤두선 등을 살살 두드려 주면서.
레기온은 쉽게 진정하지 못하고 침대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귀도 납작해진 데다가, 방이 어둡지도 않은데 동공은 세로로 날카롭다. 이 녀석, 저게 어지간히 거슬렸던 모양이군. 레기온은 애꿎은 베개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발톱으로 마구 할퀴어 댔다. 베개 속을 채우고 있던 깃털이 눈처럼 주변에 날린다.
“진정해, 레기온.”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길래, 다시 안아주기 위해 레기온에게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샤아악!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이 내 손바닥을 확 할퀸다. 화끈한 느낌과 함께 곧 뜨거운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야야…….”
손바닥이 화끈거린다. 깔끔하게 베인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크윽, 나는 손목을 쥔 채 레기온을 힐끗 바라보았다. 레기온은 자신이 더 놀란 듯 꼬리를 세우고 바짝 굳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레기온.”
사실, 이렇게 베인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손목이 날아가 버린 것도 아니니 [상처 치유] 정도로 쉽게 치유할 수 있기도 하고. 하지만, 레기온은 자신이 내게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느낀 모양이었다. 녀석은 정말 얼어붙은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말이다.
“레기온…….”
정말 괜찮다니까, 하며 다시 손을 뻗으려는 순간, 녀석이 움찔하며 움츠러든다. 발톱을 꽁꽁 숨긴 레기온은 몸을 동그랗게 말아버린 채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또다시 나를 상처입힐 것이 두렵다는 것처럼. 바들바들 떠는 꼬리 끝이 안쓰럽다. 이런……. 어쩔 수 없지.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거두고, 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 레기온이랑 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어.”
“……네!”
엘이 조심스럽게 레기온을 안아 든다. 레기온은 군말 않고 엘에게 안긴 채, 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꼭, 사고 친 강아지 같네. 나는 괜찮다는 표시로 레기온을 향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엘이 레기온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가는 사이, 테오……. 조그맣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타악.
“크으윽…….”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손목을 부여잡은 채 참았던 신음을 흘렸다. 잠깐은 몰랐는데, 꽤 깊숙이 베인 모양인지 화끈거림이 점점 심해지고, 피가 생각보다 많이 흐르고 있었다. 바닥으로 뚝, 뚝, 뚝, 흐르는 붉은 피와 반대로 손은 점점 창백해지는 중이었다.
“테오도르 님.”
“괜찮아, 칼리스토.”
이쯤이야 [상처 치유]로 얼마든지……. 하지만, [상처 치유]를 사용해도 전처럼 빨리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다. 역시, 드래곤의 발톱이다 이건가…….
“역시, 붕대를…….”
칼리스토가 근처에 놓여 있던 붕대를 가지고 온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살피려는 순간,
-툭!
칼리스토가 가지고 있던 천 뭉치가 바닥에 툭 떨어진다. 도로록, 하고 굴러 나온 손가락이 보였다. 비늘이 돋아 있는 손가락. 칼리스토가 회수해 온 유일한 흔적…….
‘손이 이래서야, 지금 당장 살필 수도 없으니 빨리 붕대부터 감고…….’
붕대를 감기 위해 다시 시선을 돌리려는 바로 그때,
-토독.
“……?”
기묘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칼리스토는 붕대를 만지느라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내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칼리스토가 떨어트린 천 뭉치에서 천천히 기어 나오는, 잘린 손가락이.
비늘이 돋아 있는 손가락은 마치 애벌레처럼, 천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어떠한 목표를 향해서.
-토독, 토독, 토독.
그리고 그 목표는…….
-토독, 토독…….
너덜너덜하지만 여전히 날카롭고 뾰족한 손톱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가 난다. 나는 숨을 죽이고 손가락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칼리스토 역시 마찬가지다. 손에서는 여전히 피가 뚝뚝 흐르는 와중에, 우리는 손가락을 지켜보았다.
-토독, 톡…….
손가락이 멈춘다.
칼리스토와 나는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왜냐하면, 손가락이 멈춘 장소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피.’
손가락은 내 피 한 방울이 처음으로 떨어진 그 자리에 멈추었다. 너덜거리는 손톱이 핏방울 위로 탁, 꽂혔다가,
-즈즈즈즉…….
잘린 단면이 핏방울에 도장을 찍듯 꽉 눌린다. 그리고 꿈틀, 꿈틀, 꿈틀…….
‘피를 흡수하고 있어…….’
그렇다.
손가락의 잘린 단면이, 내 피를 남김없이 마시고 있었다. 마치 오랜 갈증에 시달리던 것처럼.
게걸스럽게 피를 전부 흡수한 손가락은 다시, 다음 핏방울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톡, 토독, 톡, 토독…….
멀지 않은 곳에, 로이드가 피를 흘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당연히, 손가락이 로이드의 피로 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손가락이 로이드의 피는 본체만체 건너뛰고, 내가 흘린 피 한 방울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나는 칼리스토에게 짧게 눈짓했다. 칼리스토는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몸을 일으켰고, 엘프 특유의 가볍다 못해 마치 바닥을 밟지 않는 것만 같은 걸음걸이로 손가락을 향해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손가락이 다시 피 한 방울에 단면을 붙이려는 순간,
-타악!
칼리스토가 손가락을 그대로 낚아챘다. 칼리스토에게 잡힌 손가락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미친 듯이 관절을 뒤틀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고작 손가락 하나가 칼리스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벌레처럼 쉴 새 없이 꿈틀거리던 손가락은 결국 칼리스토에 의해, 테이블 위에 있던 빈 포션병에 들어가고 말았다. 마개로 포션병을 꽉 닫은 칼리스토는,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다시 붕대를 들었다.
“칼!”
“일단, 붕대부터 감고 살펴보시죠.”
“…….”
크윽. 어쩔 수 없지. 나는 순순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물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피가 흐르는 손바닥에 붕대를 감은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로 다가갔다. 포션병 안에 갇힌 손가락은 손톱으로 톡, 톡, 톡, 하며 계속해서 유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건 또 뭐 하는 물건이야…….”
손가락이 피를 마시다니. 무슨 흡혈귀도 아니고……. 아니, 그럴 수도 있으려나? 나는 잠깐 생각을 해보다가,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기본적으로 흡혈귀라는 존재는 ‘시체’였고, 몸에서 떨어져 나온 신체의 일부분은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저 손가락이 피를 마셨다 한들 흡혈귀의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비늘까지 돋아 있으니…….’
더더욱 흡혈귀의 것이 아닐 수밖에.
그렇다면, 대체 이 손가락은 ‘누구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일까?
칼리스토의 말에 따르자면, 이건 ‘최근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최근에 누군가가 그곳에서 전투와 기타 등등의 이유로 잃은 손가락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이 손가락은 몸에서 떨어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선한’ 것이 아니었다. 핏기와 생기는 존재하지 않고, 자세히 보니 곳곳에 비늘이 떨어져 나간 흔적도 보였다. 누군가 손가락을 잃었다 하더라도 그건 최근의 일이 아닌, 적어도 몇 주, 길게는 몇 달 전의 일일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비늘로 뒤덮인 이 형태. 처음에는 어인의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일단, 비늘의 모양이 물고기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고, 만약 어인의 손가락이라면 잘라냈다 하더라도 갈퀴가 있었던 흔적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인일 가능성은 패스.
그렇다면 코볼트나 리저드맨의 손가락일 수도 있을까? 아닐 것이다. 코볼트의 것이라기에는 손가락이 너무 컸고, 리저드맨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손톱이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리저드맨은 둥글게 휜 날카로운 낫 모양의 손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손가락은 대체 어떤 존재의 것일까?
대체 어떤 존재의 것이길래, 본체에서 떨어져 나왔는데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로이드의 피는 무시하고 내 피만 마시려던 것일까?
신선해서?
아니면, 로이드와 나의 피가 무언가 ‘달랐기’ 때문에?
“칼.”
“네, 테오도르 님.”
“피 한 방울만 빌리자.”
“알겠습니다.”
칼리스토는 망설임 없이 손가락 끝을 그었다. 붉은 피 한 방울이 크게 맺힌다. 나는 포션병 뚜껑을 열었고, 칼리스토는 그 안에 핏방울을 흘렸다.
만약 이 손가락이 평범하게, 아니 딱히 평범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피’만을 탐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칼리스토의 피를 마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피에만 반응했다는 뜻…….’
우리는 포션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톡, 토독, 병을 두드리고 있던 손가락에 피 한 방울이 닿는다. 그리고…….
-톡, 토독…….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핏방울은 손가락에 흡수되지 않은 채 그대로 유리병 안쪽에 자국을 남길 뿐이었다.
그렇다면, 내 피에만 반응한다는 뜻인가. 아니, 어쩌면 칼리스토가 엘프이기 때문에 달랐을지도? 나는 모두에게 부탁해 차례로 피를 한 방울씩 넣어 보았다. 나와 같은 인간인 엘의 것, 드워프인 그레디의 것, 코볼트인 카코의 것…….
그러나, 손가락은 그 무엇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톡.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피를 다시 넣었을 때…….
-스르륵…….
그때만, 단면으로 내 핏방울을 흡수하는 것이 아닌가.
‘움직임도 좋아졌어…….’
마치 에너지를 얻은 것처럼, 손가락은 더 힘주어 유리병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쩐지 끔찍한 모양새다. 나는 손가락이 담긴 유리병을 단단한 철제 상자에 넣은 뒤 자물쇠를 걸어 두었다. 레기온이 마치 감시하듯 상자 근처를 빙글빙글 돌며 이따금 하악질을 한다.
‘……예감이 안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