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Flashing Genius At The Magic Academy RAW novel - Chapter (81)
마법학교 앞점멸 천재가 되었다 081
21. 소울 체스(3)
붉은 매 동아리 부실, 부장석.
애드먼 아탈렉은 자신의 부장석에 털썩,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
아직까지 현실을 수용하기가 힘들 었다.
‘내가… 졌다고……?,
그것도, 소울 체스로?
대체 왜? 어떻게? 고작해야, 1학년 신입생 따위에게…… 소울 체스로 패배했단 말인가?
아니, 그전에…….
‘내가 정말로, 아슬란 세미나의 자 격을… 그런 머저리 같은 평민에게 빼앗겼다는 말인가……?’
마력의 서약은 절대적이다.
지키지 않으면, 마법사로서의 모든 능력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마법 계에서 길이길이 웃음거리로 남을
테니까.
“크윽……!”
쾅! 애드먼이 책상을 있는 힘껏 내 려치자, 붉은 매 동아리 부실의 구 석에 모여 있던 부원들이 흠칫 놀라 며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홍비연의 파벌원이었지만, 사실상 애드먼의 라인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기에 그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러나 섣불리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하였다. 혹여나 그의 눈 밖에 나 기라도 하면 도태되는 건 순식간이 었으니까.
애드먼은 덜덜 떨리는 손을 전화기 에 가져다 대었다.
아버지에게는, 무어라 말씀을 드려 야 할까.
아이템의 계약을 채결하지도 못했 는데, 아슬란 세미나마저 빼앗겼다 고.
대체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이대로 가다간 아탈렉 가문이 자신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 다.
아이템의 기술을 가진 알테리샤 학 파와 스스로 척을 지는 바람에 아돌 레비트 왕국 전체를 발칵 뒤집히게
한 건 물론, ‘마법 명가’를 증명하는 아슬란 세미나의 참석권까지 빼앗기 고 말았으니…….
“젠장, 젠장, 젠자앙!!”
쾅, 쾅, 콰앙!
책상을 아무리 내려쳐도, 소리를 질러보아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속 이 터질 듯 답답하고, 앞으로의 미 래는 걱정되는데 도저히 답은 없고, 그 평민이 짜증 나면서도 보복할 방 법이 없다는 점에 더욱 열이 받고.
“후우, 후……!”
이를 빠드득 갈며, 전화기에 억지 로 손을 뻗으려는데.
덜컥!
부실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녀는 햇빛이 들지 않는 위치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후광을 받는 듯, 빛무리가 흐르는 은색 머 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비연아.”
“선배님.”
애드먼은 턱에 힘을 주고서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그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애드먼은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 다. 자신이 여태 권력으로 홍비연을 옥죄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 그 권력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홍비연과 비등하게 유지되 던 힘의 균형이, 순식간에 흔들려 버린 것이다.
,흐음…….’
그리고, 홍비연은 그런 애드먼을 보며 고민하였다.
여기서 그를 내칠 수는 없다. 비록 아탈렉의 힘이 조금 약화되기는 했 으나…… 여전히 홍비연에게는 그들 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부실에 모여 있는 저 학생들 도, 사실상 아탈렉 가문의 충실한 심복이 아니던가.
그녀는 저들을 모두 이끌고 갈 생 각이었다.
다만, 백유설 덕분에 이제부터는 많은 게 달라졌다.
더 이상 아탈렉 가문에게 억지로 얽매이지 않아도 좋다. 은근히 결혼 을 두고 살살 조여오는 애드먼의 압 박에 숨이 막히지 않아도 좋았다.
이제 홍비연은 순수하게 ‘군주’로 서 애드먼 아탈렉을 ‘신하’로 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선배님.”
애드먼이 고개를 들자, 홍비연은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선배님 대신, 그 평민을 설 득해보겠습니다.”
“그 말은…….”
“아이템의 거래권을 받고, 아탈렉 가문을 두고 했던 말을 취소해 달라 고 부탁해볼게요.”
그렇게 되면, 최소한 아돌레비트 왕국 내에서 아탈렉 가문의 입지가 배척당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애드먼은 떨리는 눈동자로 홍비연
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건……
그녀는 겉으로 곤란한 표정을 지으 면서, 속으로는 웃었다.
이미 백유설과는 이야기를 모두 끝 낸 참이다. 계약서에 지장까지 찍었 으니까
그때, 백유설은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일개 학파가 아돌 레비트한테 덤비는 건 어불성설’이 라며. 다만, 그는 아탈렉의 힘을 깎 아내리고 홍비연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글쎄요. 많은 대가를 치러야 겠죠.”
많은 대가. 흥비연은 일부러 에둘 러서 말했다. 애드먼의 어깨에 짐이 내려앉도록.
‘너는 나에게 빚을 졌다’라는 현실 을 똑똑히 인지할 수 있도록.
**……고맙다, 비연아. 정말로 고마 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 뿐입니 다.”
홍비연은 뒤돌아서며, 마지막으로 그렇게 덧붙였다.
“저는 왕이 될 운명. 그러니 제 ,신하,가 될 사람을 챙기는 건 당연 해요.”
그리 말한 뒤 홍비연이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 나가자 애드먼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그 뒷모습만을 좇았다.
‘신…하.라고?’
그래, 원래부터 그녀와 그는 왕과 신하의 관계와 비슷했다. 애드먼이 힘으로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관계 를 수정하려고 했을 뿐.
그런데 그 힘의 균형이 깨져 버렸 으니,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하, 하하……「
다시금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애드 먼은 자신의 머리칼을 부여잡은 채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아슬란 세미나의 참석권 따위를 빼 앗겼을 때보다도 더욱 깊고 짙게 다 가오는 상실감.
그 평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빼 앗겨 버린 기분이었다.
* * *
스텔라 아카데미에는 무려 공중 전 화부스가 있다. 물론, 사용하는 사람 은 그리 많지 않다. 전화를 하려면 상대방도 전화기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히 들어줘야지. 누구 부탁인 데.
알테리샤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로 들려오자 백유설은 웃음을 터뜨 렸다.
피곤에 찌들었지만, 어쩐지 행복해 보이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지금 쯤 연구개발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전화를 하겠다고 시간을 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무튼, 아돌레비트 왕실 거래 건 은 네가 해결했다고 그랬지?
네. 아돌레비트의 상회나 기업과 거래하는 건 한 달쯤 미뤄주세요. 당분간은 왕실을 통해서만 유통할 거니까요.”
그 한 달 사이에, 홍비연은 조국에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아돌레비트의 시장 전체를 홍비연의 이름으로 선점할 수 있다면 그건 그 거대로 좋은 일일 테지.
사실 이런 도움 따위는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홍비연은 그 어떤 권 력이나 정치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 는,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직 스스로가 모르고 있을 뿐.
-아, 그리고 네가 보내준 영상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어. 솔직히, 처음 사용하는 마도구였을 텐데 그렇게 1 00%, 아니, 200%까지 활용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거든.
**제가 좀 치죠.”
사실 이미 엄청 많이 사용해 본 것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각각의 성능 자체만 놓고 보자면, 솔직히 아직까진 사용도가 조금 그
렇잖아? 네 덕분에 스폰서에서 엄청 좋은 반응을 얻었어. 앞으로 빠르게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 같 아.
“오, 다행이네요.”
-네가 부탁했던 그 아이템들도 조 만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게임 내에서만 사용했던 아이템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니. 어쩐지 백유설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저기…… 유설아.
“네?”
一 고마워.
난데없는 감사 인사에 그는 살짝 당황하였다.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하는 입장이 죠.”
-으응, 아니. 전부 네 덕분이야.
“네?,,
-나 요즘, 매일매일이 행복해.
알테리샤는 이전에 들려주지 않았 던 묘한 목소리로, 그저 시를 읆는 사람처럼 나긋하게 말했다.
-나, 항상 꿈을 꾸고는 했어. 나만 의 작은 연구실을 차리는 꿈.
-성능은 좋지 않더라도, 나만의 실 험도구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항 상 기다리고, 고대해왔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꿈은 역시 꿈일 뿐이라고 단념하였 을 그녀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그건…… 세상에서 제일가는, 황금 동앗줄이 었다.
– 내 꿈조차도, 이건 상상하지 못했 을 거야. 세계 최고의 환경에서, 뛰 어난 박사님들과 함께…… 최고의 실험도구와 진귀한 재료를 내 마음 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 누가 상상했을까.
골방조차 되지 못하는 초라한 창고 에서 조잡한 실험도구로 연구를 해 오던 그녀가, 갑작스레 세계 최고의 연금술사가 되어 그에 걸맞는 시설 에서 연구를 하게 될 줄을.
-이제는 누구도 내가 뭘 해도 반 대하지 않아. 모두가 내 의견을 존 중해주고, 나의 말에 경청해줘.
항상 무시만 받던 삶을 살아오던 그녀에게 있어서, 그건…… 그야말 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요즘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실감 돼.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면,
막 두근거리는 게 느껴져. 이건, 전 부 다…… 네 덕분이야.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또다시 누 군가가 나의 소중한 아이들을 빼앗 아 가려고 했는데…… 네가 전부 막 아준 거잖아. 그렇지?
“그렇긴, 하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한 번 꼭 전하고 싶었어. 그냥…… 응, 그랬어.
그녀의 말이 끝났고.
백유설은 어렵게 속마음을 털어놓 았을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신
중하게 고민하였다.
“저……
一앗!
하지만, 뒤늦게 부끄러운 속마음을 털어놓았단 사실을 깨달은 알테리샤 가 먼저 반응하였다.
그녀는 황급히 말을 더듬으며 소리 를 쳤다.
-나, 그, 저! 활석코든 박사님이 찾는다! 도망가야 흐!!! 이만 끊을게!
“네? 아니, 잠깐만요! 조수님?”
뚜뚜뚜….
대답하기도 전에 알테리샤가 전화
를 끊어버리スト, 백유설은 허탈하게 웃었다.
“허 참……
전화를 끊은 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 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으나, 여전히 햇살은 눈부셨다.
“정말 정신없는 사람이네…….”
지금쯤 화끈해져서 얼굴을 붉히고 있을 알테리샤를 떠올리며 피식 웃 은 백유설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 다.
문득, 방금 있었던 일이 파노라마 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소울 체스.
솔직히 조금 긴장되긴 했다. 직박 구리 안경의 성능이 과연 현실에서 도 통용되는가. 컴퓨터 속 NPC에게 한정된 능력이 아니었을까.
그게 살짝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는지, 직박구리 안경은 아주 놀라운 성능 을 자랑하며 애드먼 아탈멕이라는 소울 체스 신동을 아예 찢어버렸다.
하긴, 인간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길까.
이세돌 9단이 오면 또 모를까.
어쨌거나 직박구리 안경의 성능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도 충분히 좋은 수확이었다.
그나저나, ‘아슬란 세미나’의 참석 권을 얻은 건 좋은데 이걸 쓸데가 없는 게 문제였다.
주요 주인공들은 알아서 떠오르는 샛별 12인 안에 들어갈 테니 필요 없을 거고.
‘음, 어떡한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평민.,,
“응?,,
옆을 돌아보니, 홍비연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 채 벽에 어깨를 기대 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 지는 햇살이 은은하게 새어 들어와 은색 머리칼에 부딪혀, 마치 빛가루가 터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 었다.
요정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진 짜 요정보다도 더 요정 같지 않을 까. 그녀의 붉은색 눈동자는 노을보 다도 더 깊게 타오르고 있었는데, 기분 좋은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어, 왜 또 뭐 문제 있어?”
어차피 홍비연과는 이미 계약까지 끝마친 상태였다. 따로 찾아올 이유 가 더 있나? 백유설이 그런 고민을 하는 와중,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쓸어 넘겼다.
“……이번에는 내가 빚을 단단히 졌어. 정말로 고마워.”
와. 살다 살다 쟤한테 감사 인사도 다 받고.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백 유설은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조심스 레 말했다.
“그때 네가 말했잖아. 대가가 있어
서 나를 돕는 거라고……. 그 대가 가 뭔지, 지금 알려주면 곧바로 보 답하도록 할게.”
대가라.
사실 백유설이 원하는 대가라는 건 참으로 간단하였다.
그녀가 악(惡)에 물들지 않고, 선 (善)의 편에 서서 자신과 함께 최대 한 ‘해피엔딩을 꾸려가는 것.
그것만이 백유설이 바라는 대가였 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뜸 ‘네가 착해 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상하다. 그래서 그는 29년의 인생 경험을 통해, 이 상황에서 가장 이 상적인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밥 사줘.”
“……뭐?”
“밥이나 한 끼 쏘라고. 공주님이 대접해 주는 식사나 한번 제대로 배 부르게 먹고 싶으니까.”
설마 백유설이 그런 대답을 할 줄 은 몰랐기에, 홍비연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 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식사 정도야, 얼마든지 대접 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따라오라는 제스처였다.
참으로 시대에 맞지 않고 우습게도 들리겠지만, 스텔라 아카데미의 부 지에는 무려 주차장이 있다.
이 세계관에 자동차가 존재하는 이 상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다.
자동차 자체는 현대보다 훨씬 더 희귀하여 부잣집만 사용한다지만, 스텔라에 다니는 생도의 대부분은 돈이 많았고 주차장에는 형형색색의 자가용이 가득했다.
홍비연의 자동차는 그중에서도 가히 돋보였는데, 누가 봐도 엄청나게 비 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본래라면 호위 마법사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니겠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늙은 운전기사가 고개를 꾸벅 숙이 고선 문을 열어주자, 홍비연은 우아 한 걸음으로 자동차에 탑승하였다. 그 옆에 어정쩡하게 백유설까지 승 차하자, 부드럽게 자동차가 출발하 였다.
과연, 현대의 자동차와 비슷한 수 준의 탑승감이었기에 백유설은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값비싼 음식을 얻어먹을 생각 에 입꼬리를 올렸다.
‘흐흐, 뭘 먹으려나?’
일전에 흑돼지를 먹긴 했다만, 솔 직히 아돌레비트의 공주에게 얻어먹 기는 조금 아까운 메뉴이긴 했다. 그녀의 재력이라면 ‘아이테르 오대 진미조차도 배 터지게 먹여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사실.
홍비연은 식사 제안을 받은 순간부 터 무엇을 먹을지 정해놓았다.
그녀는 백유설이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다. 그는 워 낙에 비밀이 많은 신비로운 존재였 으니까
문득, 일전에 그가 각종 유명 마탑 에서 들어온 스폰 제의나 러브콜을 모조리 무시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건방진 평민이 제 분수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단순하게 도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계획이 있었 다.
자신처럼 ‘아돌레비트 왕가’라는 정해진 길을 걷는 게 아니라, 그는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어제는 절망하고, 오늘은 그 절망 을 받아들이고, 내일은 또 다른 절 망에 맞서야만 했던 백유설의 과거 를 이제는 알게 되었다.
상처로 가득한 백유설의 추억 속 가장 응어리진 것이 무엇인지를.
숨을 쉬기 위해서 산소를 호흡하는 것처럼 그는 고통을 호흡하며 살아 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 너무나도 낡아버려서 삭막해졌다고 느낄 때, 무얼 하는가.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빛
나는 무언가를 찾게 마련이다.
그 어떤 값지고 비싼 보석과 요리 조차도, 백유설에게는 아무런 가치 가 없다.
찢어지고 부서지고 망가진 그의 가슴을 치유해 줄 수 있었던 유일 한 가치가 있다면, 바로 짜장면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으리라.
[뒤져라 짜장반점]
그렇게 도착한 장소.
“……진심이야?”
“그래.”
백유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 로 홍비연과 가게를 번갈아 보았지 만, 그녀는 확신을 가진 듯 성큼성 큼 걸어 들어갔다.
그는 황망한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 을 쫓았다.
“진짜로……?”
내 푸아그라 앙티에는?
캐비어 카나페는…?
블랙 트러플 크림 리조또는……?
온갖 산해진미를 맛볼 생각이었던 그는 힘없이 홍비연을 뒤따라 가게 로 들어갔다.
“어서 옵쇼!”
홍비연의 기품은 일반들을 압도하 기에는 충분하여, 하품 쩍쩍 내뱉던 짜장집 사장님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후다닥 다가왔다.
“메뉴판.”
“여,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당당하게 자리에 앉아, 메 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는 메뉴가 없다.
하지만, 딱 하나는 알고 있다.
짜장면.
“이걸로 주세요.”
홍비연은 먼저 주문한 뒤, 맞은편 에 앉은 백유설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도 메뉴판을 읽고 있었는데, 어 쩐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왜?’
백유설은 한참을 고민하였고, 간신 히 메뉴를 고른 듯 힘겹게 입술을 떼었다.
“음. 짬뽕 세 그릇에 탕수육 중 (中) 자 하나요.”
“.어?”
그 주문은, 홍비연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왜? 세 그릇은 안 돼?”
“아니… 그건 아닌데……「
머뭇머뭇, 왜 짜장면을 시키지 않 았느냐고 물으려다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설마…….’
흥비연은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왜, 나는 평민이 과거를 극복했다 고 생각한 거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적어내라고 했 던 과제물에 왜 그는 어머니와 짜장 면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을까.
왜, 그 모든 단어와 글귀는 슬픔으 로 가득하였을까.
백유설은…… 여전히 그 과거를 후 회하고 있던 것이다.
비쩍 마르고 아픈 몸으로 힘겹게 모으고 모은 비상금을 탈탈 털어서 아들을 위해 짜장면 한 그릇 사주었 던 어머니.
백유설은 나이를 먹고 나서야, 어 머니의 그 은혜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효도
를 하기도 전에…… 그분은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까.
그는 분명히 미래만을 바라보며 달 려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저토록 이나 필사적으로 살아갈 수 없을 테 니까
하지만…… 백유설은 여전히 과거 의 족쇄에 묶인 채 발버둥 치고 있 었다.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음식.
짜장면.
그러나 이제 백유설에게 짜장면이 라는 음식은…… 후회의 상징이 되 어 버렸다.
그 사실을.
지금 와서야 깨닫다니.
죽을 만큼 창피하고, 또 미안해서.
홍비연은 뺨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이런 데서 식사를 대접해서.”
“어? 아니 뭐, 상관없는데.”
어쩐지 고개를 푹 숙이고서 손가락 을 꼼지락대는 홍비연.
‘거 참, 이상한 친구네.’
그래도 미안한 걸 알긴 아는 걸 보면 지갑 사정이 안 좋았겠거니 생
각하며 그는 단무지를 우걱우걱 씹 었다.
아무리 지갑 사정이 안 좋아도, 그 래도 공주는 공주니까 추가 주문은 괜찮겠지?
백유설은 그리 생각하고서 주방장 에게 외쳤다.
“아저씨, 여기 군만두 추가요!”
“군만두는 서비습니다, 손님!”
오.”
오늘은 그럭저럭 운수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