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1
수재가 아니라 천재다. (2)
“··· 평범하다. 둘 다 많이 쓰이고, 활용도가 높아. 부스터용 이펙터 하나랑 공간계 둘, 와우만 추가하면···”
윤대혁 선배는 푹 고개를 떨구며 내 이펙터들을 노려보았다.
“마치 미래를 계산해서,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군.”
아이들은 아주 작게 감탄사를 입에 담았다.
프로가 인정한 구성. 그게 그렇게 감격스러운 건가.
애초에 그냥 국민 이펙터 쪼가리 두 개 잖아?
“너희도 경연대회 같은데 나가면 좋든 싫든 톤을 만들어야 한다. 연습해 둬.”
춘기 콩쿠르 학교 근처에서 열리던데.
1등은 내 거다. 돈이랑 상품권 같은 거 받아서 비트코인 사야지.
“자, 그럼 준비된 곡 한 번씩 들어보자.”
가장 왼쪽에 앉은 소이부터 연주를 시작했다.
얘도 펜더네. 기타 색깔이 핑크핑크하고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다.
앰프가 5w짜리라 솔직히 소리는 잘 모르겠다.
그다음은 갈색 머리. 이름이 성 ··· 뭐시기 라는데.
기억이 안 난다. 다음.
성뭐시기의 동성친구 1
윤대혁 선배의 질문에 대답을 못한 또래 남자애1.
이제 내 차례다.
‘어우 뭘 저렇게 쳐다봐.’
네 명의 시선에 나에게 집중되었다.
솔직히 말하자, 학생 넷 정도의 시선이야 별로 안 두렵다. 그냥 관객이려니 생각하면 되니까.
근데 윤대혁 선배는 다르다.
민수와 자주 붙어 다녔고, 나랑 아주 살짝 연이 있었고, 기타도 잘 치는 사람.
부담스럽다. 나에게 악평을 남긴 과거 기억때문에 더더욱.
이사람은, 나랑 완전 스타일이 반대다.
아주 정갈한 연주와 딱딱 맞아떨어지는 청량함이 저 사람의 특징이라면,
내 스타일은 말 그대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성향이 강하다.
‘리프 만들어 오신 거예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을 정도로 나는 대충 후리는 것에 재주가 있다.
곡을 간파하고, 코드를 꿰뚫고, 적절하게 어레인지 된 멜로디를 욱여넣는 것.
그것이 내 재능이다.
“준비된 곡은?”
“없습니다.”
“··· 입시곡은?”
“딱히 안 정했는데요. 그냥 칠게요.”
수강생들은 입을 쩍 벌렸었다. 그냥 치겠다는 말이 그렇게 놀랍나?
나는 아무 이펙트도 걸지 않고, 현을 튕겼다.
기타를 치다 보면, 곡을 외우다 보면, 그냥 지판의 음을 다 알게 된다.
어디로 손가락을 움직여야 조화로운 소리가 날지, 내가 원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그냥 다 알게 된다.
다라랑-
청명한 톤이었다.
5w앰프와 싸구려 기타에 어울리는 음질이지만, 잡음은 없었다.
원로한 기타리스트들 중에는 코드나 스케일을 거의 모르는 분들이 있다.
외우지 않아도 그냥 아는 것이다.
어울리는 음을 잡고 치다가 ‘아 이거 무슨 스케일이네요’ 라고 하면
그래?
라며 반문이 되돌아온다.
음악이 지식의 연장선이 아닌, 마음의 연장선이 되는 경지.
나는 그분들을 그리 표현하고 싶었다.
“··· 무슨 곡이야?”
“몰라 ···”
“펜타토닉 기반인데?”
“아는 사람 없어?”
난 내 손이 따라가는 대로 스케일은 연주했다.
즉흥연주는 만들어져 있던 곡보다는 조잡하다. 하지만, 이게 내가 가진 재능과 만난다면.
뭔가 들어본 듯 하면서도, 적당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멜로디로 변모한다.
일렉기타에서의 작곡은 내 기준으론 별게 아니다.
혼자 기타 쥐고 코드 연습하다가. 아무렇게나 즉흥연주 좀 하면 꽤 괜찮은 멜로디가 어느새 툭 튀어나온다.
그 툭 튀어나온 멜로디 앞뒤에 살을 붙이고 다듬으면, 솔로 자작곡이 된다.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의 솔로가 이렇게 탄생한다.
“··· 자작곡인가?”
“즉흥입니다.”
“즉흥이라고?”
윤대혁은 눈을 크게 떴다. 이 양반은 어레인지에 약하던가. 곡도 그냥 각 잡고 쓰는 타입일 거 같다.
“허 ···”
“말도 안 돼. 저게?”
“··· 즉흥으로 저 구성이 어떻게 나와?”
많이 치면 나와.
즉흥연주 실력은 연력에 정비례하니까.
“··· 2주 체험수강이라고.”
“네.”
“알았다.”
윤대혁 선배는 그렇게 툭 말하고서는 아이들의 연주를 평가했다.
왼손 힘이 부족하다, 잡음이 난다, 피킹 위치가 이상하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크게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말이 되게 직설적이네.’
그냥 못 친다를 반 돌려서 까고 있는 수준이다.
원래 수업하던 강사는 이 정도는 아니었나?
“넌 ···”
윤대혁선배가 내 앞에 멈춰 섰다.
“··· 인정하지. 잘 친다. 17살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의 연주실력이다. 당장 세션으로 활동해도 불만이 거의 생기지 않을 정도야.”
아이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션.
그것은 곧 프로라는 의미이다.
두 발로 직접 무대에 서는 사람은 아니지만, 음악 업계의 한 기둥을 담당하고 있는 존재.
“부족한 점은 ···”
시선이 내 오른손에 머물렀다.
“이상한 버릇이 있군. 최대한, 빨리 고치는 게 좋을 거다.”
날카롭네. 근데 이번에는 조잡하다고 안 하나?
안 그래도 이거 고칠 생각에 머리 빠질 지경이외다.
연주와 평가가 이어지자, 어느새 강의의 끝이 다가왔다.
“연습 게을리 하지 말고, 나중에 기회 되면 다시보자.”
윤대혁 선배는 그렇게 말하더니 기타 가방을 들쳐메고 강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소이야··· 나 그렇게 못 쳐?”
여자애들 셋이 부둥켜 서로가 서로에게 물었다.
잘 쳐 걱정 마.
대충 이런 내용.
아니 너희 못친다.
일반인 기준으론 잘치는데 너희 일반인 할 거 아니잖아?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습실을 더 쓸까 생각했지만, 배가 고파서 집에 가기로 했다.
“저 ··· 수재야.”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소이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어 왜?”
“아니 그냥 ··· 너 특별반 들어오잖아?”
“그렇겠지?”
자만감인가 자신감인가.
딱 잘라 말하자. 자신감이다. 애초에 학생들 몇 명 모아두고 본 테스트인데 떨어지면 내가 병신이지.
썩어도 준치, 아파도 프로다.
“나중에 시간 되면 기타 알려줄 수 있어?”
“··· 내가?”
누구 가르쳐본 적은 거의 없는데
가끔 지인 따라 교회에서 애들 모아놓고 작은 봉사활동 해본 것뿐.
“으응 ··· 안 돼?”
“뭐, 왜 안 되겠어 같은 학굔데.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소이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갈색 펌이 다가왔다.
“소이, 쟤 알아?”
“응? 같은 학교 ···”
“같은학교 ···? 이름 김수재지?”
와 끈질기네. 띠껍게 대했으니 이제 말 안 걸 줄 알았는데.
“맞아. 넌?”
“성예린.”
예림이 그패봐봐.
이게 아닌가.
“내일 봐. 저번에 내가 기타보고 수근거려서 좀 띠껍게 구는 거지?”
··· 아니 전생의 기억 때문에 그런데?
난 마지못해 성예린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소이가 따라왔다.
“연습 안 하고 그냥 가게?”
“응 ··· 오늘은 집에서 하려고.”
난 집과 학원이 가깝다. 근데 얘는 ··· 뭐 타고 가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아주 멋들어진 외제 리무진이, 학원 앞에 주차되어 있었으니까.
소이는 작게 ‘안녕’이라고 말하며 그곳으로 뛰어갔다.
멀어져가는 조용한 엔진음.
“아 ··· 금수저였네.”
하지만 아무리 금수저라도, 비트코인이 오를 거라는 정보는 모를 거다.
난 애써 심심히 위로를 다졌다.
뿌득,
오늘 하루를 잘 버텨준 벨트가 비명을 질렀다.
수고했어.
***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이른 아침의 조용한 상담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연습실 자재를 재활용한 것인지 방음 성능이 유난히 훌륭한 이곳에, 한 여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건 말이 안 돼요. 공정하지 않아요.”
“허허, 왜 그러십니까.”
“··· 걔도 잘 치긴 잘 쳐요. 수상경력까지 있고요. 예고 지원 안하고, 일부러 이리로 온 것도 다 알아요.”
“다 아시는 분이···”
인상 좋아 보이는, 푸근한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밋밋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수재는 경력 자체가 없지 않습니까. 기타 전공생도 이번 년도에는 넘치고 ···”
“정원이야 ··· 나선생님께서 좀 고생 좀 하시겠지만 ···”
“그게 그렇게 안 됩니다. 나선생님은. 아시다시피 귀하신 분이라 ···”
“하아.”
채미현은 혈압이 올랐다.
원래는 바이올린 전공. 하지만 그녀는 현악기 대부분에 소질이 있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기타까지.
안 다뤄본 악기가 없었다. 가장 조예 있는 것은 바이올린이지만, 다른 현악기를 이해 못 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수준을 판가름 하기에는 역량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건 이미 결정된 사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선생님 초청비가 얼마인 줄 아십니까? 간신히 스케쥴 맞춰서 1학년에 넣은 건데···”
“김태현이랑 하민서 때문에요?”
“잘 아시잖습니까. 예고에 갔어도 학년 탑은 할 애들입니다.”
학교의 사정. 3년 차인 채미현은 어렴풋이 이해했다.
예고도 아니면서 예고의 색채를 띠고 있는 학교. 재단의 사정과 특목고 전환반려 등등, 들려오는 풍문은 이미 귀에 익은지 오래다.
재단 소유로 주변 상가를 갖고 있다던가, 근처의 부지 매입에 관한 설이라던가.
학교는 배움의 터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돈놀이 끝 피난처이거나 새 돈놀이를 할 수 있을 텃밭이기도 했다.
“하여튼, 하민서 넣을 겁니다. 아니면 나선생님이랑 재협상을 해야 해요. 계약조건이 있으니까.”
“하 ···”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채미현은 확신했다.
그 아이는 천재다.
Tv에서 어릴 때부터 이름빨 날리던, 이미 단어 의미가 조금 퇴색되어버린 신동이 아니라, 그냥 천재.
김수재라고 했던가 ···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걔는 저희가 가르쳐야 해요. 그냥 놔두면 재능이 썩어요.”
“재능은 가만히 있으면 쑥쑥 자라는 거지 설마 썩기야···”
“썩습니다. 억센 풀도 물이 없으면 말라죽는 것과 같아요.”
채미현의 얼굴에 광기가 서렸다.
안경을 벗자, 옅은 쌍꺼풀에 큰 눈이 격한 감정을 그대로 내비쳤다.
“허허 ··· 이것 참. 얼마나 연주가 대단했길래 그러십니까?”
“그 나이에··· 감정을 담고 있어요.”
“··· 감정이요?”
“네.”
연주에 감정을 담는 것.
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어느 정도 숙련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요소, ‘감정.’
연주에 감정을 담기는 어렵다. 이걸 말로 표현하는 것도 웃기다.
기쁨, 즐거움, 슬픔.
곡조에 묻어나는 분위기는 감정에 좌우된다.
“대체 무슨 감정이었길래 그렇게까지…”
“··· ‘희망’이요.”
“희망?”
고차원적인 감정이었다.
슬프고, 기쁘고, 분노하고, 이런 게 아니라.
그야말로 표현 자체가 힘든, 차원이 다른 영역의 감정.
채미현은 분명 그것을 느꼈다.
“··· 제가 바꿔 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나선생님이 허락하신다면 모를까. 근데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 될 수도 있는 사항이라···”
“하아···”
채미현은 벌떡 일어나 상담실에서 나갔다.
수확은 없었다.
같은 전공도 아닌 학생을 보고 이런 기분을 느껴보는 것은 처음이다.
만약 그 아이가 바이올린 전공이었다면. 그럼 정말, 성심성의껏 지원해 줄 텐데.
채미현은 창밖 너머의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분위기도 못 읽는 맑은 날씨가, 마치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갖다버리고 싶네.”
“어제 산걸?”
이펙터는 무겁다. 그냥 멀티이펙터 살 걸 그랬나?
교문 앞, 내 옆에는 혁오가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하나만 줘.”
“웨엡-”
혁오는 껌 묻은 혀를 내밀었다. 난 그런 갑작스런 안구테러에 고통을 느끼며 혁오에게 로우킥을 날렸다.
내 고통을 나눠주마.
“악! 너 격투기 배웠냐?”
“실전압축 근육이다 이말이야.”
“실전압축은 개뿔. 아 존나 아프네.”
나는 반을 향해 뛰었다. 혁오는 내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것인지, 아픈 다리를 이끌고 뒤쫓아온다.
고등학생이 되니까 맘이 편하네.
4층에 달하는 계단을 주파하니 있던 체력도 없어졌다.
“허억 ··· 허억···”
혁오는 날 때리려는 것도 잊어버렸나 보다.
다른 반이라 정말 자연스레 찢어졌다.
개이득이네.
오늘부터 정규수업인가. 이제 기타는 몇 시간 동안 애물단지 취급 ···
“야 김수재. 너 점심먹고 1층 연습실로 오래.”
자리에 가만히 있던 김동수가 대뜸 말을 걸었다.
“그리고, 너도 특별반 떨어졌대.”
···어?
“난 ··· 그런말 없었는데 왜 너만 부른 거지···”
동수는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떨어져?
뭐하는 놈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