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2
수재가 아니라 천재다. (3)
난 분노했다.
1교시, 2교시 수업내용이 단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분노했다.
하지만 이내 시간이 지나자, 분노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선생님께서 난청이나 이명이 있으신 건 아닐까?’
사람은 긍정의 동물이다. 우선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지 암.
딱 내가 치는 타이밍에 기타 소리가 이명을 자극해서 연주를 제대로 못 들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이것 말고는 있을 수 없지.
“야, 콜트.”
옆에 있던 최유진이 물었다. 얘는 어느새 내 옆자리로 고정됐다.
“왜?”
“너도 떨어졌다며?”
키득키득.
개때리고 싶네. 나는 분노하는 흑염룡을 잠재우며 반박했다.
“아니야 ··· 선생님께서 외이도에 염증이 생겨서 내 연주를 잘못들은 걸 거야.”
“하민서가 연주할 때 딱 맞춰서 그 염증이 가라앉았고?”
“맞아. 그렇지··· 하민서?”
“걔. 통기타 치는 애.”
“아.”
걔 이름이 하민서였구나.
얼굴은 대충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별 튀는 분위기는 아니라서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세션 할 때도 업계에서 못 본 것 같고. 뮤지션도 아니었고.
“하민서가 나 대신 특별반 들어가나?”
“그렇지 않아? 나랑 걔랑 같은 중학교 나왔는데 되게 잘 쳐.”
“일렉도?”
“일렉은 그저 그런데··· 너보단 잘 칠걸?”
너 내 연주 들어본 적 있어?
“너 당장 쉬는시간에 나랑 즉흥연주 한다. 오만원빵이다.”
“뭐 ··· 뭐!?”
내가 대차게 나가자 최유진은 몸을 움찔했다. 남자는 기세다.
“누가 더 호응 많이 받는지 대결하자.”
“시, 싫어 ··· 돈 없어.”
“기타 부품 뜯어갈 거야.”
“으윽.”
최유진은 꼬리를 내렸다. 생각보다 배짱은 없는 모양이다.
‘하민서라 ···’
다시 한 번 기억을 더듬어봤자 생각나는 건 없었다.
지루한 수업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내 고등학교 때 성적이 어땠냐고?
하루종일 기타만 쳤는데 제대로 된 공부를 했을 리가.
하지만 지능 b의 수치 덕인지 나름 벼락치기에 재능이 있어서 수능 최저 컷은 맞췄던 기억이 난다.
‘···답안지 몇 개는 지금도 알겠네.’
난 피식 웃음 지었다.
애초에 대학에 갈지 안 갈지를 모르겠는데 이게 뭔 상관이야.
“밥 먹으러 가자.”
난 엎드려 자고 있는 최유진을 깨웠다.
“밥 안 먹냐?”
“먼저 먹어~ 속이 안 좋아서.”
얜 쉬는 시간마다 잠만 자네. 벌써 여자애들은 머뭇머뭇 무리를 이루려고 하는 것 같은데.
··· 는 나도 마찬가진가.
난 반에서 느릿하게 걸어나갔다. 곧바로 불량하게 벽에 기대 있는 혁오가 보였다.
“야··· 뭐해. 정신 나갔냐?”
“어?”
혁오는 매우 다급한 표정이었다.
“오늘 오징어덮밥 나온대. 뛰어!”
난 오징어덮밥 소리를 듣자마자 땅을 박찼다. 이미 뒤를 돌아볼 여력 따위는 없었다.
체력 수치는 b. 내가 회귀해봤자 운동선수는 못 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저질급 체력도 아니다.
나는 선두로 식판을 집을 수 있었다.
쿰척쿰척-
순식간에 오징어덮밥을 박살 내버리고 나는 아까 동수가 말한 1층 연습실로 향했다. 혁오는 그냥 심심풀이로 따라왔다.
여긴 원래 거의 쓰이지 않는 곳이다. 1층 행정실에 붙어 있기에, 방음을 잘해도 소리가 새어 나오기 마련.
드럼이라도 치면 벽이 쿵쿵 울린다.
“계세요 ···?”
날 특별반에 떨어뜨리고 이런 데로 부르다니. 무슨 말을 할지 들어나 보자.
무테 안경을 쓰신 여자 선생님이 보였다. 나이는 예상이 잘 안 가지만 ··· 30대 초중반쯤 될까.
“아, 수재 왔구나?”
여자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그리고, 나를 맞아준 것은 한 명이 아니었다.
“··· 어?”
난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건 기억나.
고등학교 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지만, 졸업 후 ‘그런 일이 있었다’며 술 마시며 한참을 떠들었기에 기억이 난다.
-야, 나 1학년 때 나숙호 기타리스트가 강사였다니까.
-구라치네.
-그 양반이 왜 거기서 강사를 해?
-아니 진짜라니까.
난 그때 너무 답답했었다.
민수는 2학년 2학기 때에나 전학 왔지, 1학년 때 친구는 연락도 잘 안 되지.
-넌 왜 그 사람한테 안 배웠냐?
-무릇 천재란 스승을 두지 않는 법이다.
-또 지랄한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던 술자리의 대화.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좀 서글펐다.
내가 내 기억을 조작한 건가? 라고 나중에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니야 ···’
확신할 수 있다.
전생에 내가 연이 닿을 일이 없던, 재야의 기타리스트.
수많은 솔로 음반을 내면서도, tv에는 얼굴을 잘 비추지 않는 뮤지션.
자신이 주역이 되는 ‘스테이지’에는 거의 서질 않는데, 어딜 가든 백 밴드의 리드기타를 꿰차고 있는 업계의 그림자.
나숙호.
“아···”
반가움보다는, 존경심이 끌어 올랐다.
나는 벌떡 뛰어가 백발과 수염이 멋들어진 중년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숙호 선생님 반갑습니다! 김수재라고 합니다!”
난 이 사람을 기억한다.
내가 서른셋 즈음, 지금보다 훨씬 주름진 그는 TV 화면에 자신을 비추었다.
밴드 음악이 양지로 올라와서 아주 기쁘다. 과거에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앞으로 음악업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기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업계인들을 일갈했다.
자신의 소리를 찾으라, 감정 없이 연주하지 말라. 기량을 기교로 덮으려 하지 마라. 가상악기와 당신들의 차이는, 이젠 감정의 유무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기타리스트 나숙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 학생, 나를 알고 있니?”
“알고 있습니다! ‘사막을 걷는 노래’ 정말 잘 들었습니다!”
“··· 허허, 젊은 친구가 그런 노래도 듣고. 참 별일이야.”
회귀 전에는 뵙고 싶어도 뵐 수 없었던 분이다. 서로의 위치나 이런 것을 다 떠나서, 돌아가셨기에 뵐 수가 없었다.
이 중대한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니,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눈깔이 옹이구멍이었던 걸까.
“그래요 채선생님, 이 아이라고요?”
“아 네···”
“저기 있는 아이는?”
혁오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판단한 것인지 구경하는 걸 멈추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쳤다.
“그 ··· 그냥 수재 친구 같은데요.”
“그렇군요.”
나숙호 선생님은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특히 왼손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기타를 친지는 얼마나 됐다고?”
“그··· 1년입니다.”
“계기가 있어?”
“인터넷에서 기타솔로를 듣고··· 저기 있는 친구가 소개해줘서···”
“사실인가?”
나선생님은 혁오에게 물었다.
“아 네··· 마, 맞아요. 방과 후 외부활동 같이 가자고 제가 꼬셨는데···”
“그래.”
나선생님은 의자에 쭉 기댔다.
그리고서 1층 연습실의 풍경을 감상했다.
“복스의 ac30 ··· 꽤 좋은 앰프군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연습실이라 그런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저 앰프 엄청 좋은 건데··· 찐득한 클린톤을 들으면 누구나 마음속 앰프 1순위를 바꾸고 만다.
다만, 공연장이나 연습실에서 자주 볼 수는 없다.
“아 네 ···”
“연식도 좀 오래됐고··· 허허, 이런 명기가 쓰이지도 못한 채 잠들어 있으니 안타깝군요.”
나선생님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앰프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서, 변압기가 물린 낡은 코드를 꼽았다.
“수재학생, 기타 가져올래? 진공관이 달구어지면 한 곡 들려주게.”
“··· 네!”
난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심장이 벌떡거려서 금방이라도 가슴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기분이 꿀꿀 할때 마다 항상 찾았던 감성적인 기타의 멜로디.
그 곡을 만들고, 직접 친 기타리스트.
언젠가 꼭 한번 만나뵙고 싶다 생각했지만, 간망을 이룰 수 없었던 과거.
그가 눈앞에 있다.
“허억··· 허억!”
입에서 쇠 맛이 올라왔다. 나는 교실 뒷편에 놓인 악기더미를 헤집으며 기타를 꺼냈다.
“야! 내 거 쓰러지려 하잖아!”
“미안!”
난 최유진을 뒤로한 채 바로 기타와 이펙터를 들쳐메고 내려갔다. 지금만큼은, 저 녀석의 기타가 깁슨인지 합피폰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가져왔습니다!”
“그래.”
나선생님은 직접 접이식 의자를 펼치며 내 앞에 두었다.
난 곧바로 이펙터들을 연결했다. 안에 건전지가 들어 있으니, 따로 코드는 꼽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
기타를 앰프에 직결했다.
몇 번의 코드연주 끝에 파악한 쫀득한 게인사운드.
이 앰프는 그다지 하이게인형 앰프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함이 느껴지는 정도도 아니다.
“연주 시작하게?”
무테안경의 여자선생님이 물었다.
“아뇨 잠깐만요.”
최고의 연주를 보여야 한다.
이 사람 앞에서는, 내가 존경하던 사람 앞에서는 대충 후리고 싶지가 않았다.
앰프는 방치되어있었다고는 하나, 사운드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았다.
진공관이 터지지 않은 것이다.
‘앰프 드라이브를 활용하자.’
침착하자. 시간적 여유는 조금 있다.
난 연결순서를 생각했다.
기타 – sd1 – 앰프 -샌드 -dd3- 리턴
케이블은 모자르지 않았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추가로 구매해 놓은 덕분이었다.
“호오 ··· 앰프 드라이브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다··· 그러면서 딜레이도 쓰고 싶다. 욕심쟁이구나.”
“가, 감사합니다.”
좋은 소리를 뽑기 위해.
난 앰프와 이펙터의 톤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원래 톤 메이킹이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나는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다.
“···.”
채선생님은 조금 초조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선생님의 얼굴은 평온했다.
“··· 끝났다.”
톤 조정에만 5분을 쏟았다. 별로 좋은 기타가 아니더라도, 좋은 앰프빨을 받으면 그나마 나아지겠지.
“곡은?”
“··· 레드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솔로 부분이요.”
“70년대 곡이구나. 좋아.”
··· 나도 좋아한다. 아주아주. 하루종일 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버전은 두가지다. 스튜디오 버전이냐, 아니면 라이브 버전이냐.
스튜디오 버전은 어렵긴 하지만 연습 좀 한 사람이라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은 정도다.
하지만 라이브 버전은 다르다.
애드립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선뜻 귀 카피 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난,
이 곡에 내 애드립을 넣을 거다.
가득.
난 심호흡을 한 뒤 연주를 시작했다. 따로 bgm을 틀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나는 회색빛 숲속에 있었다.
어디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상한 공간.
그곳을 천천히 걸어간다. 안개 가득한 나무사이의 수상한 송진냄새가 내 몸을 휘감는 것만 같았다.
상쾌하면서, 찐득거린다.
‘레드제플린 ··· 좋아한다. 치는 것도 자신 있고.’
70년대의 정수이니까.
해체는 비극적이었지만, 볼품없지 않았다.
레드제플린은 전설이다. 지금 내가 치는 ‘기타’ 파트를 맡고 있던 ···
지미 페이지도 전설이다.
난 연속 밴딩 구간에 들어갔다.
밴딩과 속주, 그것이 이어지는 멜로디라인에 나는 ···
‘마디’ 하나를 더 끼워 넣었다.
공간 없이 꽉 차 있던 그 부분에, 나만의 속주를 욱여넣었다.
손가락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나만의 Stairway to heaven 솔로.
수많은 커버연주의 결과물.
난 그것을 아낌 없이 토해내었다.
곡의 끝이 다가온다. 이 앞으론 full 더블밴딩으로 격하게 음을 올려야 한다.
끝은, 화려해야한다.
난 망설임 없이 넥에 힘을 주며 잡아 재꼈다.
“···!”
나선생님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뜨였다.
곡이 끝난 뒤 수 십초가 지나서야 그는 나에게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 친지 1년이 되었다고.”
“네···”
“1년만에, 넥으로 음정을 흩트린다고.”
“네.”
잡기술이다. 넥에 무리도 가고.
하지만 어차피 싸구려 기타. 나의 연주 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 짓을 하지 않았다면 넥을 순간적으로 재끼며 음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기술을 하지 않는다면.
지미페이지와 나선생님을 앞에두고 자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감이 아닌, 자만감이라 내 스스로가 느꼈을 것이다.
“왜?”
“밴딩도 하면서, 비브라토도 넣고 싶어서요.”
“하하하하하하!”
나선생님은 아주 호쾌하게 웃으셨다.
“대단하다, 대단해. 내 여태껏, 이런 학생은 본 적이 없어. 채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내 연주를 들으신 것은 불과 2분정도의 찰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선생님은 아주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셨다.
“톤노브 ··· 아주 성심성의껏 만지더군요. 저런 자세가 필요해요. 요즘 애들한테는 없는, 이런 자세가.”
“··· 아하하.”
채선생님은 멋쩍게 웃음을 흘리셨다.
“이런 일화가 있죠 어느 유명 밴드에서 기타파트를 모집하는데, 지원자가 톤 잡으려 수 십 분을 매달리더랍니다. 근데 더 웃긴건, 연주를 듣기도 전에 그냥 합격을 줘버렸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 왜일까요?”
채선생님은 되물었다.
“자기 소리를 찾으려는 사람이니까. 그 정도 열정이 있는 사람이, 기타를 허투루 다룬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저도 방금 그걸 느꼈습니다.”
나선생님은 신기한 것을 봤다는 듯, 계속 입에서 미소가 떠나가질 않으셨다.
“특별반, 들어와요. 채선생님은 도박을 한 게 아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