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28
132화. 김치 기타의 매운맛 (6)
웅장하고 화려한 피아노의 소리.
깔끔하고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일렉기타의 소리.
서로 다른 악기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한여름이라는 계절을 잊어버릴 정도의 시원함을 가져다주었다.
관객들은 연주에 집중하기 위해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날 생각이 없던 사람들조차 앞이 보이질 않아 같이 일어났다.
방학 때마다 부담으로 다가오던 ‘학기 말 발표회’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백윤서는 처음 맞아보는 격정적인 환호에, 가슴을 졸이며 건반을 두들겨 나갔다.
원래 좋은 연주를 들으면 영감을 받는 게 뮤지션이란다.
수재 오빠도 다른 기타리스트의 영감을 받아 자신의 곡을 써 내려간 거란다.
그 이야기를 듣자,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렉기타 곡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선보였던 원재선처럼,
자신 또한 그 광경을 재현해 내고 싶었다.
피아노를 망치로 두들기고,
기타로 앰프를 때려 부수는 과격한 퍼포먼스는 무리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지이이잉-!
디링-!
소이 언니의 연주법이 바뀌며 소리가 변화했다.
자신 또한, 터치에 더더욱 힘을 주며 음량과 음색을 바꾸었다.
두 사람이 만들어나가는 멜로디 연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화음이, 공기 중에 퍼져 있던 ‘무거움’을 지워낸다.
방금 전의 무대와 크게 대비되고 있었다.
나쁜 의미로 대비되는 게 아니라,
좋은 의미로 대비됐다.
대비는, ‘신선함’을 증폭시켰다.
백윤서는 손 땀이 잔뜩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머릿속에 풍경을 그려나갔다.
higher and higher.
높게, 더 높게.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더 높은 경지를 향해 손을 뻗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원재선처럼, 수재 오빠처럼.
한 음 한 음에 감정을 담는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일렉기타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의 곡을 듣고, 편견을 지워지니, 세상도 같이 넓어졌다.
더 많은 것이 보였다.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는 새파란 하늘과 구름이 비치는 에메랄드색 호수는,
혼자서 만들어낸 풍경이 결코 아니었다.
백윤서는 고개를 돌려 관객석을 살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는 자신들의 연주.
항상 적대적이고, 틱틱거리던 외국 학생들 또한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연주.
발음이 조금 어색한 임미래 또한,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만족감이 들었다.
‘꼬시다’는 기분이 잠깐 들기는 했지만, 이내 지워졌다.
만족스러우니까.
지금 이 소리가, 만족스러우니까.
키이잉-!
연주가 끝났다.
한 학기 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긴장 때문에 배어 나온 땀이 너무 찝찝하다.
손에 홍수가 났다.
다음 사람이 건반을 만지면 분명, 소름 돋고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 작은 걱정은 이내 사라졌다.
– 와아아아아아아!
실수 하나 없이 ‘완주’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정적인 박수 소리도 좋지만, 음압감이 느껴지는 함성 또한 기분 좋게 짜릿했다.
“언니 …!”
“응.”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이 언니에게 달려간다.
중간에 낀 기타가 방해되긴 하지만, 그래도 와락 끌어안아 본다.
기타 때문에 안는 자세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언니 진짜 고마워 …!”
오늘 있었던 일은, 이 기분은,
절대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멋지다아~!”
쪽문 쪽에서도 함성이 들려왔다.
감사한 사람들이었다.
– 발표자 백윤서 학생과 보조자 백소이 학생의 연주였습니다!
“엄청 좋네…”
“무슨 곡이야? 뉴에이지?”
“뉴에이지 쪽은 아닌 거 같은데…”
“악보 달라고 할까?”
***
후다다닥-!
땀을 훔치며 무대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윤서.
“고마워!”
그녀는 가장 먼저 나의 손을 맞잡았다.
질척-!
손이 찐득거린다.
아주 찐득거린다.
얘도 엄청 긴장했구나.
나보다 땀이 더 나는 거 같네.
피아노 전공이라 정말 다행인 거 같다.
“그래, 잘했어!”
“응! 고마워 수재 오빠!”
“….”
오빠 소리를 남한테 들으니 여전히 닭살이 돋았다.
근데 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소이도 엄청 잘 치더라.”
“고마워….”
“열~”
“열~”
분위기가 훈훈하게 무르익어가기 시작했다.
혁오가 괜히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뭔데.
-아아, 다음 순서는 … 3학년 피아노 전공 …
발표회는 달아올랐던 ‘흥분’이 서서히 식어가며 진행되었다.
피아노는 그냥 대충대충 들어도 다 잘 치는 거 같다.
실력이 안 좋은 애들은 없었다.
검은 머리 외국인 여자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걸로 예고는 그냥 올라갈 거 같애. 흐흐흐.”
“좋단다 아주.”
“임화예고?”
“응.”
예중에 입학했다고 해서 무조건 예고까지 진학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다들 열심히인 거고.
열심히라 …
“….”
터벅, 터벅.
검은 머리 외국인 여자애가 자기 무대가 끝나자마자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얼굴은 그냥 대충 아시아 사람처럼 생기긴 했는데
그렇다고 한국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턱, 몇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뭔가 …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할 말 있는 거 같은데.”
“….”
우리는 쪽문을 지나 복도로 나갔다.
검은 머리 여자애도 따라나왔다.
이번에는 충신들을 안 끼고 왔네.
장수로서의 대결을 신청하려는 건가?
누가 나가야 하지?
난가?
“백윤서.”
일기토 신청은 백윤서가 받았다.
“왜.”
“… 너 좀 치사 … 하, 아니 됐다.”
뭐, 공연 한 번 들려줬다고 해서 사람 마인드가 단번에 바뀔 리는 없지.
적대감은 약간 줄어들어 있었지만, 없어지진 않았다.
“저기요.”
검은 머리 외국 여자애는 이어서 날 지목했다.
“왜.”
“신나게 까주셨네요. 영어라고 못 알아들을 줄 아셨어요?”
“… 뭐?”
여자애들은 ‘올 게 왔구나’ 하는 표정을 떠올렸다.
그에반해,
나, 도현이, 혁오는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 네?”
“왜 우리가 … ‘네가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노래를 불렀을 거라 생각하는 거지…?”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알아들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에 가사를 바꾼 거다!
“… 일부러 그러신 거예요?!”
“오브코스.”
“… 세상에.”
얜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빼액, 소리를 지를까?
나는 어떤 모욕을 퍼붓든 똑같이 되돌려 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근데 …
“참나.”
외국인 여자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더듬을 뿐이었다.
“저 연습 많이 해요. 얘보다 더 많이요. 시간 낭비 안 한다고요.”
“뭐? 네가 나보다 많이 한다고?”
“넌 바로 집에 가잖아.”
“난 집에 가서도 계속 연습하는데?”
“구라 치지마.”
중3짜리들 대화를 엿듣고 있자니 아주 그냥 유치해 죽을 거 같다.
나는 커져가는 말싸움을 곧바로 중재했다.
“어 그래 둘 다 연습 열심히 하고, 넌 괜히 죄 없는 사람한테 시비 걸지 말고.”
“….”
짜릿거리는 눈빛이 나에게 날아와 박혔다.
나뿐만 아니라, 도현이, 혁오에게도 날아가 박혔다.
“발표회는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거예요.”
“실력으로 승부했잖아? 원래 반주자 세울 수 있는 거라며?”
“우리 학교에 없는 악기잖아요. 그리고 피아노 발표에 반주자 세우는 사람이 어딨어요? … 당신들도 백윤서 도와준 거 아니에요?”
성적은 아마 윤서가 더 잘 받을 거다.
그게 실력 차 때문이던, ‘색다름’ 때문이던 말이다.
백윤서는 안 좋은 실력을 감추기 위해 소이를 부른 게 아니었다.
좋은 연주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색다름’으로 승부를 보려 부른 것일지라도 그게 시비 걸릴 이유가 되진 않는다.
“색다른 건 나쁜 게 아니야. 다 학교 허락 떨어진 거잖아. 연주도 좋았고.”
“그건 ….”
“아이디어를 모욕하지 마.”
이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대충 알 거 같다.
자기가 좋은 성적 받아야 하는데.
잘 치는 애가 이상한 짓하는데, 그게 또 반응이 좋아서 아니꼬운 거다.
“….”
이름 모를 외국인 여자애는 반쯤 충격받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불만’을 얼굴에서 지우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납득을 시킬 수 있을까.
흠…
흠.
“아니면 둘이서 아예 피아노 배틀이라도 뜨던지.”
“….”
“… 뭐?”
왜, 그 방법밖에 없잖아.
순수 실력을 겨뤄보면 될 거 아니야.
“… 어우 김수재답다.”
“그러게.”
윤수빈과 최유진이 고개를 젓는다.
좋은 방법 아닌가?
… 아닌가?
“피아노 배틀… 맞아. 야, 임미래.”
“…?”
“너 부산대회 나가지?”
“… 그게 왜?”
“2학기 되면 이제 별소리 못 하겠네.”
“무슨 뜻인데?”
“너 나보다 순위 낮을 거니까.”
두 사람이 다시 말싸움을 시작했다.
다만, 언성이 방금 전보다 높아지진 않았다.
격정적인 티키타카가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 약 5분.
둘은 씩씩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너 맨날 치사하게 쳐서 더 짜증 나.”
“오~ 칭찬도 하네.”
“….”
치사하게 한다.
때리고 싶게 플레이한다.
개같이 한다!
이게 진짜 한국 정서가 담긴 ‘극찬’ 아닌가?
얘 한국어 잘하네.
“… 칭찬… 하. 그래요, 칭찬.”
“치사한지 안 치사한지는 그때 봐.”
아무래도, 여름 방학에 열리는 콩쿠르에서 자웅을 겨루려는 모양이다.
… 내 제안이 먹혔다.
“어~ 도망치지 마~”
“너나 도망치지 마.”
흥.
콧김을 뿜으며 뒤를 도는 외국인 여자애.
외국인… 이 아닌가?
“임미래…?”
“아.”
여자애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나의 얼굴을 흘겼다.
“전 제이미도 아니고 임미래도 아니고 하야시예요.”
“….”
“히야시?”
“뭔 맥주가 히야시도 안 돼있….”
드립을 치려던 혁오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잘 참았다.
나도 참았다.
일본인이었구나.
“하야시요. 프로라 그런지 엄청 잘 치시네요. 부산 대회에 나가면 일본 사람들이랑도 … 아, 일렉기타는 없나?”
“….”
“….”
그녀는 도도한 걸음걸이로 다시 쪽문으로 들어갔다.
부산대회라…
“부산에서 대회 열리나?”
“… 응? 열리는데? 국제대회….”
“국제 대회?”
“아 맞다, 오빠 전국대회 1등이라며. 출전자격 안 받았어? 클래식 기타는 있던 거 같던데 … ”
“못 들었는데. 너희는?”
“우리도.”
다 못 들었다.
“얘기 없었으면 없는 거 아니야?”
“일렉기타 차별 … 분하다 …!”
“에이. 오빠가 나가면 사기잖아. 거의 프론데.”
“그런가?”
연락이 안 왔으니까 일렉기타 부문은 아예 없는 거겠지 뭐.
보통 피아노, 관현악기, 성악 쪽만 국제대회가 활성화되어 있으니까.
“이거 언제 끝나?”
“오래 걸려~”
“얼마나?”
“한 여섯 시?”
“헉 ….”
우리는 홀 구석에 틀어박혀 나머지 발표회를 감상했다.
“이야~ 반갑습니다. 교무부장입니다.”
힘껏 소리를 지르던 둥글둥글한 인상의 아재는, 무려 교무부장이셨다.
“아들내미가 참 좋아해서… 아, 물론 저도 팬이고요. 하하. 사진이나 한 장 어떠신지 …”
중간중간 말 거는 학생들한테 사인 좀 해주고.
강사들이랑 한 마디씩 대화도 나누고.
불만을 느낀 외국 애들이 다시 한번 더 찾아오긴 했는데,
“이 이상 깝치면 아까 가사 그대로 커버곡 낸다.”
“… 헉!”
“… 죄송합니다!”
나의 정신 나간 선언에, 다들 부리나케 도망쳐버렸다.
사람 봐 가면서 까부는 모양이다.
“바다 갈 거지? 바다지?”
“그냥 친척네 가면 안 돼?”
“친척네?”
“근데 거긴 좀 먼데 … 나 대회도 있고 …”
“흠 …”
우리는 발표회가 끝난 뒤, 분식집에서 여름방학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서로가 의견을 굽히지 않아 대치상태에 돌입했을 즈음일까,
티링-!
나, 최유진, 소이, 도현이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날아왔다.
“… 대회?”
“국제대회 참가 메시진데? 우리한테 이게 왜 날아와?”
“일렉기타 부문은… 안 써 있는데….”
“잘못 날아온 거 같음.”
“선생님한테 전화해보자.”
티링-!
난 하나 더 날아왔다.
– 황 프로듀서 : 준비완료입니다!
작업 스피드가 진짜 엄청나시네.
트랙 제작이 완료됐으니 뭐 한나절이면 다 녹음할 수 있을 거다.
놀 시간은 충분하단 소리다.
대회 메시지야 잘못 날아온 것일 테니…
“… 실음 부문도 있어요?!”
나는, 도현이의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대회 … 있대?”
“헐.”
“헐 ….”
“대박.”
언제 놀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