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39
142화. 붉은 바람을 타는 연주자 (2)
나는 한초율의 엄청난 논리에 이마를 탁! 하고 두들길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사고 회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감탄을 연신 토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
“… 그쪽 좀 이상한 거 같아…”
소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한초율의 언행은, 그 누가 들어도 충분히 기분이 나쁠 만했다.
거의 저주나 다름없잖아.
빨리 사귀다 헤어지라니.
그냥 사귀라 하는 것도 충분히 실례되는 말인데.
“사귀라고?”
“네!”
“왜?”
“둘이 가까이 붙어 다니던데… 친해 보이던데 …”
“… 어, 음 뭐 친하긴 해.”
“그러니까요!”
친하면 무조건 사귀는 건가?
남녀가 손을 잡는 순간, 손자 이름까지 생각해 둬야 하는 건가?
이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그러니까 둘이 먼저 사귀다 헤어지면, 나중엔 사귈 일이 없겠죠?”
“…그래서?”
반문한 건 소이였다.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목소리도 평소 듣던 사근사근한 톤이 아니었다.
“음? 흐흐흐.”
한초율은 바람 빠지는 듯한 목소리로 실실 웃었다.
그리고서, 잔뜩 공을 들인 것 같은 몽글몽글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표정은 여전히 비릿하기 그지없었다.
“… 만약 사귀다 헤어지면 … 너한테 무슨 득이 있는데?”
“음 ….”
과장된 몸짓으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대는 한초율.
“그걸 왜 말해야 돼요?”
“….”
“무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유도 없이 그런 말을 할 리 없으니까.”
“그냥 궁금해서 질문한 건데요?”
궁금해서라 …
그런 건가?
날 좋아하나!?
머릿속에 무럭무럭 망상이 피어올랐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의 팬.
친근하게 다가와 말동무를 해줬던 여자애.
근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얘와 나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그저 얘만 나를 알고 있는 일방적인 관계였다.
사생팬인가? 싶어도 아다리가 안 맞았다.
난 ‘사생팬’이 생길 정도로 잘생기지 않았으니까.
방송국 가보면 진짜 외계인처럼 잘생긴 사람들 많은데.
뭔가, 내 외모로는 개연성이 한참 모자랐다.
“네가 혹시 얀데레좌야?”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흠칫!
소이와 한초율이 동시에 숨을 삼켰다.
“얀데레좌… 아~”
“수재 동영상에 맨날 댓글 다는 사람….”
맨날 달긴 하지.
나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모양새가, 왠지 모르게 얀데레좌와 오버랩 되는 것 같긴 하다.
근데 …
“….”
이것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된다.
원재선 리사이틀이나, 찜질방 팬 사인회나.
얀데레좌가 있어야 할 장소에 얘는 없었다.
“그렇게 보여요? 흐흐흐흫.”
“그게 또 확신은 못 하겠단 말이야.”
“좋을 대로 생각해주세요~ 아, 제가 한 말은 굳이 안 물어보셔도 백소이씨가 이해했을 거예요!”
“… 이해했다고?”
“아마도요? 그건 그렇고 두 사람 표정 보니까 알겠어요. 이런 질문 받으면 역시 기분 나쁘죠? 죄송해요. 제가 눈치가 없어서.”
… 뭐랄까.
그런 게 있잖아.
꼽 주려고 되도 않는 질문하는 사람한테는 그 특유의 악의가 느껴지잖아.
나는 지금, 악의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저, 뭔가 …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듯한 느낌이다.
“어, 응.”
“….”
우리 둘의 얼굴을 살피던 한초율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 되게 이상해졌다. 저 가볼게요. 또 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후다다닥 뛰어갔다.
뭐 하는 놈인지를 모르겠다.
여자애들은 얘 말투가 이상하게 소름 돋는다고 하던데.
나도 방금 그런 기분을 아주 약간 느끼긴 했는데.
“야아!”
나는 엘리베이터에 막 오르려고 하는 한초율을 불러 세웠다.
“네!?”
“공연은 잘 봤어?”
버튼을 누르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한초율.
은은한 보랏빛 서클렌즈가, 호텔 조명을 반사하며 반짝인다.
그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당황감’이 떠올라 있었다.
얘가 얀데레좌 … 인가?
아닌가?
머릿속이 그냥 뒤죽박죽이다.
만약 얀데레좌라면, 지금까지 내 근처를 맴돌던 이유나, 시계 선물은 또 왜 줬는지 전부 다 캐묻고 싶다.
물어보고 싶은데,
그 전에, 나는.
팬의 공연 감상을 육성으로 듣고 싶었다.
“네… 네! 잘 봤어요! 어엄청 멋있었어요!”
“그래, 다행이다. 조심히 가. 나중에 또 보자.”
“…!”
왼손을 가슴에 가져다 대며 입을 오물거리는 한초율.
쟤가 만약 얀데레좌라 치자.
얀데레좌가 우리 집에 몰래 침입하기라도 했나, 아니면 일하는데 방해를 하기라도 했나.
지금까지 내가 얀데레좌에게서 받은 피해는 아예 없다.
얘가 여길 찾아온 이유는,
묵는 곳 알려주고서 ‘또 보면 좋겠다.’라며 인사치레 나눈 것 때문인 듯하다.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응? 보기 싫어?”
원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난,
아직도 정체불명인 얀데레좌를,
즐기겠다 …!
“… 네! 꼭요!”
한초율은 거세게 손을 흔든 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힙니다.
한 차례의 폭풍이, 얌전하지 않게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이의 안색을 살폈다.
평소 같은 소심한 귀염상 … 이긴 했지만…
“….”
분위기가 되게 미묘해졌다.
남한테 사귀고 헤어지란 소리를 들은 후에는 과연 뭔 말을 꺼내야 할까?
“…소이야.”
“응?”
“괜찮아?”
난 우선, 소이의 안부를 묻기로 했다.
“응. 조금 놀랐긴 했는데 …”
“문에서 쿵 소리 나던데.”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오길래 놀라서 ….”
주먹이 오간 건 아닌 모양이다.
“수재는 괜찮아? 저렇게 가 놓고 나중에 해코지하면 어떻게 해?”
“…그건 ….”
안 할 거 같은데.
확신은 할 수가 없는데.
만약 진짜 정신 나간 사람이었으면 칼부터 들이밀지 않았을까?
쟤는 딱히 그럴 거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 아니야. 너한테 해코지는 안 할 거 같아. 저 사람 되게 머리 좋아 보인다.”
“….”
소이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료수 마실래?”
호텔냉장 고에 들어 있는 음료수가 존나 비싸긴 한데,
갑자기 갈증이 느껴져서 못 참겠다.
“응? 아, 나 사둔 거 있어. 잠시만!”
호다닥 방으로 들어가서 감귤쥬스 두 개를 가지고 나온 소이.
“자.”
“고마워.”
나는 캔을 따서 급히 목을 축였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소이는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수재야.”
“응?”
“우리 내일 아침 일찍 돌아가잖아…”
“그렇지.”
대회도 마쳤고, 놀기도 잘 놀았으니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그러면 내일 쉬고 … 다음날에 …”
영화 보러 갈래?
소이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물었다.
영화라 …
그러고 보니 내 곡이 들어간 영화 개봉일이 내일모레네.
나는 소이의 얼굴을 아주 지긋이 살폈다.
평소보다 얼굴 채도가 확 올라간 듯한 느낌이 든다.
뭐,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다.
괜스레 부끄럽게 만들어 놓고 백윤서랑 같이 나오는 게 이미 뻔히 보이기도 한다.
나는 마음을 가볍게 먹기로 했다.
“그래.”
“…!”
소이는 대답을 듣자마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왠지 … 그렇게 대답할 거 같았어….”
앱으로 예매한 표를 내게 확인시켜 주었다.
내 곡이 삽입되는 가족 영화였다.
“기억하고 있었어!?”
“응.”
소이는 흡, 콧김을 내뿜었다.
도현이랑 혁오한테 영화 개봉일을 물어보면 아마 제대로 된 대답이 안 돌아오겠지.
소이는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역시 소이밖에 없어 …!
“꼭 같이 보자.”
“응! 기대할게!”
소이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며 방으로 돌아갔다.
나 또한 보금자리로 돌아와 도현이와 혁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친척 집에서 신나게 기타를 치며 노는 듯했다.
-형 이거 뭐야?
-형 이거 풀면 어떻게 돼?
-안돼애애애애!
-갸아아아아아악! 그거 만지지마아아아!
조카들이랑 잘 놀아주는 정 많은 삼촌들의 모습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울로 향하는 ktx에 올랐다.
돈이 좀 아까워서 일반 열차도 알아보다가 소요 시간 5시간 뜨길래 그냥 포기했다.
딱히 확 저렴하지도 않더라.
도착한 뒤로는 곧바로 해산.
나도 학원을 거르고 집으로 향했다.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동생을 발로 찬 뒤, 받은 상패 좀 구경시켜 주고.
부모님께는 …
“우리 아들 …!”
“장하다!”
오랜만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 보고.
“회사에서 참 난리라니까. 허허허.”
“당신도요?”
“우리 아들이 기타 잘 친다~ 하니까 한 귀로 흘려넘기던 양반들이 말이야.”
“맞아 맞아. 갑자기 아주 친한 척이란 친한 척은~ 아들 덕분에 잘 얻어먹고 다녀 호호.”
고생했다고 오랜만에 갈비찜을 해주려 하시는 어머니와,
‘내년엔 차 바꿔 드리겠다’라는 나의 제안에 손사래를 치시며 모아두라고 하는 아버지.
가슴이 훈훈해지고, 힐링이 되는 하루였다.
그리고 …
7월 28일 오후 8시.
저녁을 다 먹고 가족들이랑 같이 TV를 보고 있을 때,
티링-!
내 핸드폰이 울렸다.
최민지 주임이었다.
“누구냐?”
“회사예요.”
“일 관련해서?”
이 사람이랑은 가끔 대화를 하긴 하는데 그렇게 친분이 깊은 사이는 아니다.
이모티콘은 언제나 참 다채롭네.
“… 영화 보자는데요?”
“…?”
동생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서,
“어, 언년이 꼬리를 치는 거야아아악!”
마침 나오고 있던 주말 드라마의 시어머니에 빙의해 버렸다.
“꼬리 친다고 …? 아들 매니저가 여성분이야?”
“매니저 … 는 아닌데. 그냥 일 관련해서 전달해주시는 분이세요.”
“말투가 사무적이지가 않잖아! 엄마 이거 봐봐!”
내 핸드폰을 보고서 돌려보는 부모님과 껄껄 웃으시는 아버지.
“회사가 참 자유분방하고 좋나봐~”
이 사람이 유독 자유분방하게 문장을 쓰는 거 같은데요….
나는 곧바로 거절 답장을 보냈다.
선약이 있으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
‘약속’이 있다고 알렸음에도, 최주임은 쉽게 포기를 하지 않았다.
뭘까.
없던 의욕이 갑자기 생겼나?
상사한테 쿠사리라도 들은 건가?
일 관련이냐고 다시 물어봐도 갑자기 또 답장을 안 한다.
대체 뭐야 이게.
나는 계속해서 드라마를 보다가,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걸려온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아까 문자 주셨다가 갑자기…”
– 안녕하십니까~ 박요한 부장입니다.
… 수화기에서 들려온 것은 굵직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아~ 안녕하세요. 부장님.”
– 하하. 이 시간에 갑자기 전화해서 좀 그렇죠? 사실 영화 관련해서 …
나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박부장이 가져온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 좋네.
상당히 좋네.
이게 기획사지.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을 거 같아서 들어간 건데.
이렇게 해줘야 연예기획사라 할 수 있지!
여태까지 나는, 대관 콘서트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찜질방에서 한 건 엄밀히 말해 ‘공연’이긴 했지만 ‘대관’은 아니었다.
근데, 드디어.
무대를 잡아주고, 표를 팔아 준다고 한다.
거기에 음반 해외 유통 관련해 좋은 소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힐링은 다 됐다.
일정에 차질은 없다.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가즈아아아아!”
나는, 기쁜 마음에 몸서리를 치며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내질렀다.
고막 파괴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