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47
150화. 붉은 바람을 타는 연주자 (10)
나는 이번 공연에서 ‘겨울 숲의 노래’의 순서를 최대한 미뤘다.
신나게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들려주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
“….”
예상대로 맞아떨어졌다.
관객들은, 다시금 영화를 맞닥뜨렸다.
아까 보았던 장면을 되새김질하며 눈물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고,
그저 해맑게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었다.
한 명의 음악인으로서 가슴이 아주 뭉클해지는 광경이었다.
연주가 다 끝나고 나서는 레이블 발표랑 앨범 발표를 한다던데.
뭐, 그건 박부장이랑 최주임이 어찌어찌 잘할 거 같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름답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뿐.
치이이잉-!
후반부의 밝은 멜로디가 지나가며 겨울 숲의 노래가 끝났다.
“진짜 멋지다 ….”
관객들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은 애매한 감정도 몰려왔다.
한 곡 남았다.
공연이 거의 끝났다.
원래 진짜 다 끝날 때까지 긴장을 풀면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좀 뭐랄까.
아쉽다.
“여러부운! 아쉬우신가요!?”
나는 마이크를 잡지도 않고 목청껏 소리를 내질렀다.
– 네에에에에에에에에!
지치지 않은 팬들의 우렁찬 함성이 되돌아왔다.
아쉬움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팬들도 똑같았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곰곰이 멘트를 고민했다.
새삼 프로 뮤지션들이 대단한 게 느껴진다.
콘서트에서 관객들이랑 막힘 없이 의사소통을 하던데.
난 그게 안 된다.
이 기회에 연습해 둬야지 뭐.
“그럼 더욱더 아쉽게 해드리겠습니다.”
– 예에에에에에에에… 네?
– 더 아쉽게요?
– 빠, 빨기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아쉬워야 다음에 또 보러 올 거 아니야.
… 아닌가?
감질이 나도록, 그러면서도 화는 나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게 최고 아닌가?
근데 이것도 말만 쉽지.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기대해주십시오!”
– 기대할게요오!
‘겨울 숲의 노래’의 초반부로 가라앉은 분위기는, 곡이 끝나며 살짝 밝게 풀렸다.
이제 그 밝은 분위기를 유지해야 했다.
침울하게 공연을 끝내는 건 별로니까 말이다.
나는 앰프를 핫 로드 디럭스로 돌렸다.
그리고 ts808과 sd-1을 밟아서 꺼버렸다.
드라이브 이펙터는 사용하지 않는다.
앰프와 dd3만 사용한다.
베이스와 미드는 중립으로, 트레블은 중립에서 약간 깎고,
프레젠스 노브를 돌려 하이커브를 꺾어주고.
톤이 아주 간단하게 완성됐다.
페달로 삽질에 삽질을 하다가 그냥 대충 쳐보자 하고 만든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고민은 수 시간 했는데, 완성은 불과 5분 걸렸다.
되게 허망하더라.
사실 소리라는 게 복잡할수록 좋으리란 법은 없다.
간단해도 좋은 게 좋은 거다.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 …]”
마크 메이어의 포커페이스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다른 관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이이이이이잉-!
“Vinai t의 new horizon입니다.”
“비나이 … 티?”
“알아요?”
“몰라요.”
“누구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 시간대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곡을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좋아서.
마무리에 어울려서.
아름다워서.
그냥 그뿐이다.
한국에서 유명하지 않은 기타리스트라는 게 뭐 어쨌다는 건가.
좋으면 그만 아닌가?
나는, 픽업 셀럭터를 프론트로 돌리고 줄을 튕겨 나갔다.
치이이잉-
간단하게 만들어낸 간단한 톤은, 멜로디 곳곳에 묻어있는 아름다움을 아주 정직하게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팬들은 …
“와 …!”
“뭐야 …?”
예상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좋다….”
“빨기좌가 치는 곡 중에 안 좋은 곡이 있긴 했습니까?”
“없었죠!”
정말 다행이다.
1.5일이라는 촉박한 시간 동안에 이 곡을 떠올릴 수 있어서 말이다.
마무리 곡 정하려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돼서 말이다.
하늘이 내린 듯한 번뜩임이었다.
지이이잉-!
곡은, 오늘도 어김없이 풍경을 그려내었다.
도시도, 산골도 아닌, 넓은 평야와 지평선을 그려내었다.
제목이 New horizon이라고 지평선이 그려진다니.
참 정직한 상상력일 따름이다.
치이이이잉-!
시원하면서도, 조금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드라이브톤.
과하진 않지만, 매력이 없지는 않은 소리.
여름 새벽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였다.
“Horizon…”
사실 지평선을 한국에서 보기는 아주 힘들다.
국토의 80%가 산지인 나라니까.
도시는 빌딩 숲이, 시골은 산등성이가 거슬리게 시야를 가로막고 있으니까.
전북 같은 곳에서 가끔 평야를 볼 수 있는데, 그마저도 한두 곳뿐이다.
나는 살면서 지평선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곡은, 그런 나의 머릿속에 강제로 풍경을 그려버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허.”
“어떤 곡 들고나오나 했는데 ….”
“대단하네요.”
실음과 재학생들의 시선이 특히나 날카로웠다.
들어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들어본 적이 있다면, 느낌을 살리기가 기가 막히게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원쌉살하면서도 풀 내음이 묻어나는 공기가, 사정없이 코를 두들긴다.
다른 계절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름 새벽의 냄새였다.
“저게 진짜 천재구나…. 교수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가요.”
“하하, 그렇지?”
“네…”
서울예대, 백세대 학생들의 눈에는 내가 그리 비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어떤 모습으로 비치든 간에 상관은 없다.
꼬투리 잡아 욕하면 어쩔 수 없고, 좋게 봐주면 고마운 거고.
나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모두가,
700명이 넘는 관객 ‘모두’가,
내 연주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같이 몰입하고 있었다.
멜로디가 안내하는 대로, 나는 풍경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지평선이 생길 정도의 널따란 평야가 나를 반겨주었다.
드문드문 구름이 떠올라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은, 어두운 새벽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뭐랄까 이 기분은 …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다.
그냥 여행이 아니라,
‘인력’ 이외의 힘을 빌리지 않는, 자전거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고, 한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낭만적이니까.
땡볕을 가르고, 추위를 누비고, 빗줄기에 파묻히고.
날씨가 어찌 됐건 여행자는 페달을 밟았다.
밟다가 지치면, 1인용 텐트에 몸을 누이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찍 잠든 만큼,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금 달리다가, 이 풍경을 맞이했다.
오로지 여행자에게만 허락된 풍경이었다.
도로는 한적하다 못해 차 한 대가 없었다.
밭에 숨어 사는 풀벌레들의 찌르르르 하는 울음소리도 태양이 올라오면 곧바로 사라질 게 뻔했다.
여행자는 페달질을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유를 찾는다느니 삶의 목표를 세우러 간다느니.
그런 장대한 배포를 품곤 하던데.
실제 여행 가서 고생을 해보면 오늘 뭘 먹을지 어디서 잘지, 그런 단순한 고민만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의 예상과는 다른 의미의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이 여행자도 그랬다.
장대한 배포를 품고, 무언가 고생의 결실 같은 것을 기대하며 여행길에 올랐지만,
그를 맞아준 것은 아름다운 새벽녘 하늘과, 끝이 보이지 않는 풀떼기들뿐이었다.
치이이이이잉-!
나는 한 땀 한 땀, 공을 들이며 피크를 튕겨 나갔다.
음 하나하나에 진심을 싣는 것.
쓸데없이 노트낭비를 하지 않는 것.
이 곡을 쓴 vinai-t나, 자신이나.
추구하는 바는 일치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태국 출신 기타리스트를, 나는 연주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를 이해하고, 리스펙하고, 그리고 …
온전히 따라 하지도 않았다.
카아아아아앙-!
바람을 가르는 듯한 후반부의 멜로디에서, 한 줄기의 하모닉스가 터져 나왔다.
내가 만들어낸 소리였다.
“서, 설마 여기서 …!”
“어쩐지 지금까지 안 보여주더니만!”
“…!”
그래 뭐.
넣지 뭐.
개인 콘스터까지 열었는데.
비장의 기술이라고 꽁꽁 싸매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나는,
풍경에 새로운 색채를 입혔다.
그늘이 남아 있는 새벽하늘에,
혜성을 놓는다.
유성우를 놓는다.
내가 추가한, 나만의 노트.
받아라 …
‘빨모닉스’를 받아라아아아아!
카카카카캉-!
“오오오오오오오!”
“빨기좌의 신기술이다!”
나는 손을 오므리듯이 피크를 쥐며, 빨모닉스를 튕겨 나갔다.
‘얼터네이트 피킹 하모닉스’라 주장할 힘은 남아있지도 않았다.
다 빨모닉스라고 부르잖아.
고집을 부리고 싶은데 … 부릴 수가 없잖아!
시발!
“저것이… 빨모닉스 …!”
“찍어 놨어?”
“봐도 모르겠네 …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실음과 재학생들이 이곳에 온 이유를 대강 알 것 같았다.
빨모닉스 알아내려고 그랬구나.
“[대단하군 … 직접 보니 훨씬 더 …]”
마크 메이어도 여간 충격이 큰 모양이다.
이미 에이트라가 카메라를 돌리고 있음에도, 그는 경호원을 시켜 다른 각도에서 추가 영상을 찍고 있었다.
굳이 저렇게 필사적일 필요는 없는데.
물어보면 알려줄 건데 …?
카아아아아아앙-!
전신이 날에 베이는 듯한 강렬한 하모닉스가, 감미로운 멜로디로 변하여 스퀘어 홀을 메운다.
졸음이 가시지 않은 여행자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별이,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끼긱 끼긱-
먼지를 잔뜩 먹은 자전거 체인에서 쇳소리가 났다.
대지가 태양 빛을 반사하며 푸르르게 빛났다.
그는, 오늘도.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았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치이이잉-!
MR의 음량이 점점 줄어들어 갔다.
동시에 나는, 볼륨노브를 0으로 돌려버렸다.
연주가 끝났다.
갑작스레 잡힌 일정을, 모두 소화해냈다.
아직 앨범 발표니 레이블 소개니 다른 애들 홍보니, 일정이 남기는 했지만
당장은,
-와아아아!
-최고야아아아아아아아악!
밀어닥치는 환호성에, 잠시 취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보러 오길 진짜 잘했어 ….”
“이게 공연이지!”
“맞아! 이게 진짜 공연이지!”
필사적으로 나를 ‘분석’하고 있던 실음과 재학생들도 어느새 팬들과 동화되고 있었다.
환경에 녹아들고 있었다.
열기에 …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코를 슥, 닦으며 다시 한번 마이크를 잡아들었다.
그리고 최민지 주임과 박부장에게 눈짓을 했다.
사회 짬밥을 먹어서 그런지 눈치가 상당히 빠른 사람들이었다.
후다다다닥-!
둘은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무대로 올라왔다.
손에는 종이백과 상자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앵콜! 앵콜!
-제발 앵콜해줘어어어어어어!
연주를 더 듣고 싶은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지금 잘 마무리 됐는데 앵콜을 외친다고?”
“공연 그렇게 듣는 거 아닌데?”
하지만 과도한 열기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을 거 같은데 …
이걸 어떡하지 …?
“지금까지 빨기좌의 공연을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아아악!”
무선 마이크를 손에든 최주임이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웅성거림이 팍! 줄어들었다.
그래, 어지간한 볼륨으론 진정이 안 될 게 뻔하지!
드디어 그녀도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다.
“여러부운! 중대 발표가 있습니다! 여기서요!”
흥미가 끌릴만한 단어를 연발하는 최주임.
그녀는 쇼핑백에서 작은 과자박스 같은 걸 급하게 꺼내 들었다.
“…!”
과자박스 … 크기긴 한데.
과자박스는 아니었다.
‘스트라토캐스터’와, ‘레스폴’을, 양손으로 잡고 있는 …
‘내 모습’이 인쇄되어 있다.
이거 … 내 1집이다!
“어 … 어어어어어어!?”
“진짜야?! 실물 앨범!?”
“와아아아아아아! 드디어 나왔다아아아!”
다시한번 드높아지는 아재들의 목청.
하지만 최주임의 목소리가 더 컸다.
“이 앨범은 …! 저희 다운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레이블, ‘플레이어’에서 유통될 예정입니다!”
“플레이어?”
“잘 모르겠으니까 빨리 팔아줘요!”
“아 그 … 판매는 1주일 뒤에 예약으로…”
“장난해애애애애액!”
“뭐하자는거야아아아아!”
… 여기저기서 절규가 쏟아져 나온다.
뭔가, 내가 잘못한 건 아닌데 존나 미안하다.
팬들은 코앞에 있음에도 살 수 없는 앨범을 향해 팔을 곧게 뻗기만 할 뿐이었다.
“is this all planned? You’re sucking smart man.”
코앞에서 영어가 들려왔다.
마크 메이어였다.
그는, 주저 없이 무대에 오르더니 내 앨범을 멋대로 쇼핑백에서 꺼내어 손에 쥐었다.
“어 …?”
“허어 … 내 살다 살다 ….”
최주임과 박부장은 마크의 얼굴을 보자마자 감탄과 헛숨을 터뜨렸다.
표정이, 얼굴이.
공연 시작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흠 ….”
그는 곧바로 는 턱턱-
내 앨범을 두들기더니.
최주임과 박부장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돈을 좀 더 들여도 될 텐데.]”
“… 네?”
“[뭐 상관없나.]”
마크는 내 무대를 자기 안방이라도 된다는 양 이리저리 누볐다.
한참을 만족스레 훑어본 뒤에는 내게로 돌아와,
“[김수재씨.]”
척-
오른 손을 내밀었다.
“[예.]”
“[당신은 플링글스가 아니라 크라켄이었군요. 해외에 유통할 때 앨범 재질은 … 좀 더 좋은 걸로 하죠.]”
동시에,
아주 순수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7월의 마지막 날.
하민서와 뒤늦게 도착한 아이리즈 멤버들은 관객들 앞에서 아주 짧은 ‘자기 PR’의 시간를 가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