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56
160화. 태풍을 부리는 남자 (4)
설하는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내가 건넨 폭죽을 가지고 돌아갔다.
시범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니까.
퍼포먼스 준비는 전부 끝났고, 남은 작업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곡을 두 마디 정도 늘리느라 고생하긴 했는데, 예상보다는 훨씬 일찍 끝났다.
연주곡 네 개 중에 두 개는 나의 자작곡, 나머지 두 개는 공연이 열리는 장소와 찰떡궁합인 놈이다.
“출발할까요?”
“옙.”
8월 27일 토요일 오후.
나는 기타와 앰프, 페달 보드를 최민지 주임의 차에 실었다.
여권은 이미 만들어 뒀고, 비자도 받아 뒀고, 옷은 … 뭐 평소 입던 대로 입으면 되고.
외국에 간다고 해서 선글라스니 뭐니 풀세트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
관광이 아니다.
일하러 가는 것이다!
“수재씨 컨디션 되게 좋아 보이세요!”
“그런가요?”
“네! 선글라스도 잘 어울리세요!”
행보관 선글라스 사 와서 조 새트리아니 흉내 좀 내 보고 싶었는데.
비싸더라.
그래서 그냥 회사 소품이나 가져왔다.
역시 소품이 좋긴 좋아.
씨꺼먼 게 존내 안 보여.
“오늘은 예약해둔 호텔에 묵으시고 … 내일 메이크업 받으신 다음에 요코하마 아레나에 가서 …”
최주임은 일정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통역 겸 매니저 겸해서 따라온다고 하길래 순간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해외 여행 … 아니, 해외 출장이라 엄청 기대되네요!”
본인은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출발해서 약 40분이 지났을 때 쯤, 우리는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수재씨이!”
티켓팅 장소에 먼저 와 있던 아이리즈 멤버들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하이~”
다들 공항 패션으로 중무장 중이다.
아이돌은 어딜 가든 대충 입을 수가 없구나.
“글쎄요, 비지니스 석이래요!”
“오.”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좌석 등급은 안 말해주길래 기대를 안 했는데.
비지니스 석이라니!
나는 들뜬 기분으로 티켓팅을 진행했다.
해외로 나가는 거라 앰프는 비록 한 개밖에 못 챙겼지만, 상관없다.
대형 콘서트인데 당연히 준비된 앰프가 있을 것이다.
“수재씨는 긴장 안 되세요?”
“전혀요. 예전에 한 번 타봤거든요.
“우와!”
수학여행 때지만 말이야.
쨌든 타긴 탔었다.
“저 지금 엄청 걱정돼요… 중간에 떨어지면 어떡하죠?”
“에이, 설마요.”
“그렇겠죠? 안전하겠죠?”
“얘 어제부터 계속 이래요~”
“송아린 완전쫄보.”
나는 티켓팅을 마치고서, 아이리즈 멤버들과 같이 수다를 떨었다.
설하랑 포 데이지는 전 시간대 비행기로 갔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도 출발 시간이 찾아왔다.
“….”
평생 딱 한 번 타봐서인지 비행기는 참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빠, 빨기좌시죠?”
여기서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승무원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아 네, 맞습니다.”
“팬입니다! 이번에 일본으로 공연 가신다는 소식 들었어요 …! 기타 맡아드려도 될까요?”
악기는 원래 위탁 수화물로 붙여야 하는데, 연주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껄끄러운 규정사항이다.
마구잡이로 던져져서 넥이라도 부러지면 낭패니까.
기타를 수화물로 붙였다가 개박살나서 절망하는 노래를 쓴 사람도 있으니까.
갖고 타는 건 이미 사전조율이 되어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와 …! 빨기좌의 기타!”
승무원 한 명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타 케이스를 품에 안았다.
“소중히 다루겠습니다!”
“넵.”
“아 그리고 혹시 사인도 좀 ….”
“물론이죠.”
승무원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매직펜과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선배님! 선배님도 지금 받으세요!”
“너도 참 … 일하는 중인데 ….”
“안 받으시면 평생 후회할 거예요!”
스튜어디스가 유명인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참 신기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나는 시끌벅적 간이 사인회를 마친 후, 자리에 앉았다.
“엄청 넓네.”
“제가 비지니스 석도 다 타보네요. 흐흐.”
나보다 최주임이 더 들떠 보인다.
“으아아아아 무서워.”
송아린은 더더욱 들떠 보인다.
“괜찮으세요? 자리 바꿔 드릴까요?”
“부, 부탁드려요!”
비지니스석은 한 줄에 자리가 세 개뿐이었다.
최주임은 싱글 좌석으로, 내 옆에는 송아린이 와서 앉았다.
“수재씨 수재씨 사고 나면 저 제일 먼저 구해주세요.”
“당연하죠.”
“진짜요?”
“글쎄요?”
추락하면 치사율 100%일 텐데?
비행기는 지체없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한 밤하늘이 창밖을 메웠다.
“우와 …!”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송아린은 언제 무서워했냐는 듯, 특기인 수다를 조잘조잘 시작했다.
“별이 엄청 잘 보여요!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봐요!”
“제가 충격적인 사실 알려줄까요?”
“뭔데요!?”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아요.”
“아 진짜요!?”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드는 얼굴.
팩트폭격말고 그냥 공감해줄 걸 그랬나?
“구름이라 ….”
요 며칠간 날씨가 되게 좋긴 했는데.
원래 태풍이 오기 전에는 미세먼지든 뭐든 싹 씻겨나가서 하늘이 청명하지 않은가.
온단다.
근데 한국 말고 일본 쪽으로 간단다.
비껴간다 하니 공연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다.
근데 뭔가,
사소한 걸 하나 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수재씨 수재씨.”
“네?”
“내일 드디어 공연이네요.”
“그러게요….”
“꿈만 같아요. 제가 비행기 타고 해외 공연을 가다니.”
송아린은 불안 섞인 눈으로 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연습생 시절이 그저께 같은데 … 그땐 어엄청 힘들었거든요. 아, 물론 지금도 힘들지만요!”
“옆에서 봐도 힘든 게 보여요.”
“진짜요? 수재씨도 계속 일하시면서. 수재씨도 힘든 게 보여요!”
나보다는 아이돌 멤버들이 더 힘들 거다.
매일매일 운동하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받기 싫은 관심조차 아주 듬뿍 받고.
나 정도면 편한 거지.
“뭐랄까 … 그러니까 저는 약한 소리 하면 안 될 거 같아요.”
조금만 떨어져도 비행기 소음에 묻혀버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제가 약한 소리 하면 같이 연습하던 애들한테 미안해서 ….”
아이돌이 되는 것은 적자생존이다.
가수도 마찬가지고.
넓게 보면 모든 예체능이 그렇다.
“그렇군요.”
송아린은 또래 애들이랑은 다른 주제의 고민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주제로 마음고생을 한다는 것은, 심성이 착한 아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복잡해지려는 생각을 정리하려 머리를 벅벅 긁었다.
벅벅벅-!
“두피 상해요!”
“에이, 괜찮아요.”
“그래도….”
“가끔 좀 징징댈 수도 있죠.”
“네…?”
솔직히 살다 보면 징징대고 싶을 때가 있다.
근데 나이를 먹다 보면 징징대고 싶어도 징징댈 수 없을 때가 온다.
어릴 때 징징대지 않았다면, 나이 먹고 나서 억울하지 않겠는가.
“어릴 때 약한 소리 안 하면 언제 해보겠어요.”
힘들게 사니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주변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말하는 게 낫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그냥 가끔가다가 말이다.
“지금 약한 소리 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해요.”
“아 ….”
“저한테 해도 돼요.”
송아린은 우물우물.
입술을 씹었다.
갑자기 대화가 끊겼다.
일 때문에 만난 사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거의 친구 같은 관계가 됐는데.
이런 말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어렵구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저 멀리서 환한 불빛이 우리를 반겼다.
도착지, 하네다 공항이었다.
-승객 여러분은 …
비지니스 석 특혜 덕에 우리는 다른 승객들보다 조금 더 일찍 내릴 수 있었다.
매니저와 회사 직원들을 포함해서 한 스무 명은 되는 것 같다.
입국심사 3초 컷을 하는 관광객들이랑은 다르게 십 수분 정도 시간이 더 걸렸지만 …
드디어,
“허어 ….”
일본 땅을 밟았다.
생애 첫 외국이다!
“스으으으읍!”
“뭐 해요?”
“냄새가 달라요!”
나는 아린이랑 같이 다른 나라 냄새를 들이켰다.
진짜 다르네.
외국인이 우리나라 왔을 때 김치 냄새 난다고 하는 거 맥일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서야 아니란 걸 알겠다.
8월 말의 일본은, 미미한 탄 간장 냄새가 났다.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바로 호텔로 고!”
뭐 타고 갈지 걱정됐는데 버스가 왔다.
되게 번쩍번쩍한 게 심상치 않은 외견이다.
나는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버스에 올라 창밖을 샅샅이 훑었다.
도심이라 야경은 서울이랑 크게 차이는 안 나는 거 같은데, 자세히 보면 또 조금 다르고.
되게 신기하네.
“우와아아!”
도착한 호텔도 예사롭지 않았다.
매우 화려하다.
부산에서 묵었던 거기보다 더 등급이 높아 보인다.
“짐 푸시고, 호텔 디너 준비되어 있으니 식사부터 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예약해둔 객실에 짐을 풀었다.
“저, 저희가 이런 방 써도 되는 거예요…?”
“그러게요….”
겉만 번지르르하고 1인용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방 잡아주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대우를 제대로 해주는구나.
너무 좋다.
물론 호텔 방뿐만 아니라,
“오 …”
호텔 디너도 아주 훌륭했다.
뭔 해산물이랑 고기랑 해서 엄청 나오더라.
적당히 안 터질 정도로 배만 채웠다.
아이리즈 멤버들은 내일을 위해 먼저 방으로 올라갔고,
나는 아까우니까 음료수나 과일 좀 더 주워 먹으려고 했는데 …
“[저기 있는 남성분께서 보내셨습니다.]”
호텔 직원이 내 앞에 글라스 잔을 내려놓았다.
“[What is…]”
나는 직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호텔 식당과 붙어 있는 바가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중년 백인 남성이 찡긋, 나에게 윙크를 날리고 있다.
마크 메이어였다.
“저 양반이 왜 여깄냐….”
나는 글라스를 손에 쥐고 그에게 다가가
턱-!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엔 왜 왔습니까?]”
“[그건 ….]”
“[그건 …?]”
“[내가 아시아 지부장이니까?]”
그렇네?
유니버스 뮤직의 아시아 지부는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양반이 여기 있는 건 당연했다.
나는 킁킁, 글라스에 코를 갖다 박았다.
브랜디인 줄 알았는데 존나 진한 우롱차였다.
“웩! Shit!”
“흐히흫흐히히히”
“[이딴 건 또 왜 있어요.]”
“[자판기에서 뽑은 거 끓여달라고 했거든. 몸에 좋아. 아마도.]”
아시아 지부장은 할 짓이 드럽게 없는 직책인가보다.
나는 우롱차에 물을 타서 적당히 마셨다.
고급 호텔의 바가 눈앞에 있지만 … 그림의 떡이다.
너무 아쉽다!
“[준비는 잘 됐겠지?]”
“[물론이죠.]”
“[곡은 네 개밖에 못하지만, 우선은 그걸로 만족해 줘. 앞으로 무대 설 일이 아주 많을 거야. 나중엔 도쿄 돔?]”
“Nope. grand park Chicago.”
“으히흫히힣.”
왜,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잖아.
난 딱히 도쿄 돔에 환상이 없다.
근데 시카고 그랜드 파크는 진짜 모든 락쟁이들의 꿈 같은 곳이다.
아직은 아니더라도 … 미래에는 그곳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설 것이다!
“[내일이 정말 기대되네. 일본에서 온라인 표가 꽤 많이 팔렸으니까 잘만 하면 이름을 팍! 퍼트릴 수 있을 거야.]”
“[그렇군요. 기대하십시오.]”
“[그 자세지! 아, 그 밖에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
마크 메이어는 말을 마저 잇지 않았다.
하이힐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턱, 턱.
누군가가 내 뒤에 멈춰 선 게 느껴진다.
진한 여성용 향수 냄새 때문에 대략 여자인 것도 알겠다.
“[남의 인기에 묻어간다는 것도 있지.]”
마크 메이어는 흥미진진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비켰다.
마크가 앉아 있던 자리에…
턱-!
연분홍색의,
매우 빌런 같은 머리 색깔을 가진,
나이 가늠이 잘 안 되지만 일단은 젊어 보이는 여자가 앉았다.
“….”
“… Hey mark! What the fucking are you doing?”
“Come down man~ It could be good for you!”
나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이 사람이?
지나가는 개가 웃겠구만.
나는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그녀가 누군지 알아챘다.
후지와라 미사키.
일본의 탑급 가수이자,
나한테 이상한 놈을 보낸 장본인.
그리고 …
나중에 가서 인성문제가 크게 터지는 인성에 문제가 있는 여자.
“お互い, 挨拶はいらないよね?単刀直入に言う。アタシの手下にならない?”
뭐라는 거야.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최주임 불러와야 하나?
“[통역 필요한가?]”
“[됩니까?]”
“[흐흐흐 넌 내가 누군지 자꾸 잊어버리는 거 같아.]”
그건 그렇네.
마크 메이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후지와라가 했던 말을 그대로 내게 읊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너, 내 부하가 돼라.’
만나자마자 한 소리가 이거였다.
“… Are you serious?”
“Yes~ I’m very very serious!”
아주 쾌활한 씹새끼였다.
난 딱히 고민을 하지 않았다.
“同然、ただってことじゃない。条件は、”
“[공짜는 당연히 아니고 조건은 …]”
굳이 조건을 들을 필요도 없다.
내가 할 것은 그저, 진심을 입으로 읊는 것뿐.
“[늑대 새끼가 어떻게 개 밑으로 들어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