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55
159화. 태풍을 부리는 남자 (3)
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고급 맨션의 거실.
“[그래? 너를 알고 있었다고?]”
“[예. 완전히 당했습니다.]”
“….”
기타를 짊어진 청년과 손톱을 다듬고 있던 여자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귀국 후 바로 달려온 청년에게 커피 한 잔이라도 내줄법한데도, 그녀는 여전히 소파에 파묻혀 요지부동이다.
평생을 대접받고만 살았기에, 누군가를 대접해준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정보력이 대단하네 …. 역시 우습게 볼만한 회사는 아닌 건가? 설하한테 슬쩍 흘리기는 했는데 …]”
“[저에 대해 말씀하셨던 겁니까?]”
“[응! 그러는 편이 더 재밌을 거 같아서. 불만이야?]”
“[아뇨… 불만은 없습니다. 다만 ….]”
“[다만?]”
“[그를 보니까 조금 묘한 기분이 들어서 … 저를 알고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후지와라 미사키는 쌀쌀맞은 미소를 흘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갔다.
대충 일이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 예상도 갔다.
빨기좌는 방심하지 않는다.
절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호기롭게 도전을 걸어도, 예사롭지 않게 받아친다.
그리고 유유히, 묵묵히. 기타를 친다.
“[그렇구나. 재밌는 애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트위터 같은 웹상에서 은근히 이름이 퍼져 나가고 있는 참이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요상한 마력.
그리고 실력.
심지어 외모도 준수하다.
이 이상으로 일본 팬을 확보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뭐, 나랑은 이미지가 안 겹치니까 원래라면 견제를 안 해도 되긴 하는데 …]”
가수랑 기타리스트는 다르니까.
노래까지 부른다고 하더라도 남자 가수와 여자 가수는 파이가 다르니 딱히 견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설하랑 친해 보인단 말이지. 음 … 그리고 이미지가 너무 세.]”
“[그게 문제입니까?]”
“[많이 문제야.]”
‘개인’ 콘서트가 아닌 대형 합동 콘서트다.
게다가 실시간 방송과 녹화 영상 판매로 영영 기록이 남는다.
시선도 많고 뮤지션도 많으니 아주 당연하게도 관객들의 반응에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한국 쪽 뮤지션의 라인업이 만만치도 않거니와, 자신이라고 곡을 십수 개씩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선보인 무대의 반응보다 빨기좌의 무대의 반응이 더 우렁차고 강렬하다면, 그게 바로 굴욕 아니겠는가.
후지와라는 무대에서 쩌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잘해줘야 돼. 같은 기타리스트잖아? 좀 팍팍 나서서 아무거나 해 보라고.]”
“[…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오호~ 그래? 내 허락도 없이?]”
움찔, 청년이 몸을 떨었다.
하지만,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예. 무대에서 제대로 붙어보고 싶네요.]”
“[흐음 … 한국에서는 어땠는데?]”
“[서로 한 수씩 주고받았는데, 제 밑천만 드러났죠.]”
“[오 …?]”
후지와라는 눈을 크게 떴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자조가 너무 심했다.
10대 중에 실력으로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애인데.
밑천이 드러났다고까지 말하다니.
“[오물 같은 기타를 잡고, 훌륭한 연주를 하더라고요. 제가 하는 말이 무안해질 정도로.]”
“[뭐라고 했는데?]”
“[전 거기서 결판을 지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상황만 보려고 했죠.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을 했는데 … 언뜻 도망친 꼴이 돼 버려서…]”
청년은 말끝을 흐렸다.
그것을 본 후지와라는 화내는 기색 없이 피식, 실소를 흘릴 뿐이었다.
눈빛에 음악인으로서의 투지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28일에는 다를 겁니다.]”
“[오~!]”
“[비장의 수가 남았으니까요.]”
“[퍼포먼스 하려고?]”
“[예, 아껴둘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화려한 소리에는 반드시 호응이 따라오는 법.
후지와라는 벽에 걸려 있는 전자 달력을 주시했다.
행사나 TV 프로그램 등으로 일정이 꽉꽉 들어차 있었지만, 그래도 28일이 너무나도 기다려졌다.
***
공연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합동 콘서트라 내가 할 수 있는 곡은 네 개뿐이 안 되고, 행사 출자금 자체가 일본 쪽이 더 컸기에 일본 팀의 공연시간이 많았다.
다만, 공연시간과 재미가 비례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무대를 선보인 뮤지션이, 더욱 커다란 호응을 받을 테니까.
라인업은 아주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일본 쪽은 후지와라 미사키를 필두로 하여 유명 밴드와 아이돌들을, 우리는 아이돌 둘에 가수 한 명, 그리고 다른 회사의 가수팀을.
뮤지션들의 장르가 제각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표는 잘 팔렸다.
“오우야.”
나는, 짜장면에 젓가락을 찔러넣고서 입을 틀어막았다.
최주임이 보낸 카톡 내용 때문이었다.
티켓을 예매할 때 누구 무대가 가장 기대되냐는 Q&A에서 내가 한국 1위를 했단다.
무려 … ‘설하’를 넘어버린 것이다!
내 팬덤의 힘이 이렇게 강력했던가?
기분이, 너무 좋다!
“안 먹어?”
“맛있눈뎅.”
“김수재 배불렀음.”
“리얼.”
입 주변에 깜장 소스를 묻힌 친구들이 조잘댄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은 그저, 감격스러운 기분을 한껏 발산할 뿐.
“크아아아아아아앙악! 이거지!”
“흐풉!”
짜장면을 흡입하던 윤수빈이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뿜을 뻔했나 보다.
뿜었으면 레전드인데…
“괜찮아?”
“아으 … 갑자기 소리 지르니까…”
“코로 면발 나옴.”
“악! 보지 마!”
나도 안 보고 싶었어.
안 뿜어서 전설의 레전드를 찍었다.
“짬뽕시켜서 다행이다.”
도현이는 눈 깜짝 하나 하지 않고 짬뽕을 흡입했다.
8월 26일 금요일의 점심시간.
원래 일상은 빨리 지나가는 법이다.
뭐 한 거 같지도 않았는데 일주일이 지나있고, 그러다 보니 또 일주일이 지나있고.
2주가 후딱 갔다.
내가 준비할 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있어봤자 컨디션 관리인데 …
최주임도 컨디션이 중요한 걸 아는지 자주 묻더라.
난 뭐, 상쾌하다.
인생에서 가장 체력이 남아도는 시기니까.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난 지금 내가 가진 체력을, 십분 활용할 자신이 있었다.
“아으 … 코에서 짜장면 냄새 나.”
“괜찮냐?”
“괜찮아.”
윤수빈은 흥! 하고 코에 남은 짜장 소스를 풀어냈다.
오늘 밥맛은 좀 그른 것 같네.
나는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모두 해치운 다음, 당당히 후문을 지나 교실로 돌아갔다.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점심시간에 나가는 걸 통제하던 학교가, 이제는 그냥 방치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점심 퀄리티는 오락가락했다.
아마 내가 졸업할 때까지 이럴 거다.
“김수재 공연 내일모레지?”
“그렇지.”
“와 … 해외여행 부럽다 ….”
“엣헴.”
“수재는 외국 가본 적 있어?”
“당연히 없지!”
그러고 보니 남들 다 간다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본 것 같다.
미국, 유럽권이 외국에 왔다는 체감이 크다곤 하지만 뭐.
아시아라도 어디야.
내 돈으로 비행기 표 산 것도 아닌데 감사히 다녀와야지.
나는 오후 수업을 모두 마치고, 곧바로 학교를 나섰다.
오늘은 소이랑 같이 학원에는 못 가지만, 가는 데까지는 같이 갈 수 있다.
“일요일에 꼭 볼게!”
“그래.”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일본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온라인 티켓을 넉넉히 뿌렸다.
내 무대보다는 아이돌이나 설하의 무대를 더 기대하는 눈치긴 하지만 …
뭐, 그것도 상관없겠지.
“조심히 다녀와!”
“응! 고마워!”
나는 집에서 짐을 챙긴 후, 부모님께 메시지를 보낸 다음,
곧장 회사로 향했다.
출발은 내일 저녁이지만, 그전에 일 처리를 완벽히 해두어야 한다.
“왔습니다!”
“오셨습니까!”
도착하자마자 들린 곳은 음반 제작부.
연주곡 상의나 MR 제작은 전부 끝마쳤지만, 최종 확인이 아직 남아있었다.
나는 평소대로 스튜디오에 처박혀 앰프를 돌려가며 톤을 체크했다.
기타줄도 어제 갈아 뒀고. 오랜만에 감동 수퍼마켙 찾아가서 전문가 손길의 셋업도 받아뒀고, 그리고 …
“이거군요.”
“예. 도착했습니다.”
‘그것’이 도착했다.
‘나’의 모든 것을 표현해줄, 나만을 위한 물건이 눈앞에 놓였다.
“오 가볍다.”
“이거 외에 말씀하신 거 전부 트렁크에 넣어 놨어요! 테스트해보실래요?”
“여기서요?”
“어 … 음… 주차장?”
나는 황 프로듀서와 같이 초딩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주차장에서 장비 확인을 마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미친놈 보듯 쳐다보긴 했지만, 상관없다.
존나 잘 된다.
가볍고, 거추장스럽지도 않고, 값은 좀 비싼데 …
어차피 회삿돈인데?
이것만 있으면 화려함으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일본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선보이시다니 …”
“흐흐흐흐.”
“으아… 저도 꼭 보고 싶은데 이건 진짜… ‘대한민국’ 그 자체네요.”
일본에서 당당히 ‘한국 기타리스트’를 주장하는 퍼포먼스.
완성됐다.
가능할까? 싶었지만.
가능할 것이다.
내일모레가 너무나 기대된다.
빨리… 빨리 보여주고 싶어!
“뭐 하세요?”
나는 불장난하다 걸린 꼬맹이처럼 움찔! 몸을 떨었다.
연구에 집중하느라 누가 다가오는지 눈치도 못 챘다.
설하였다.
“퍼포먼스 연구 중입니다.”
“퍼포먼스요?”
“설하씨도 보실래요?”
“어… 네.”
나는 기계 하나만 가지고 간략화된 시범을 보였다.
“우와 …! 엄청 화려하네요.”
설하는 사방팔방으로 튀기는 불꽃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서,
“역시 빨기좌 …. 저는 오프닝 맡은 주제에 퍼포먼스 준비 못 했는데 ….”
갑자기 침울해졌다.
“어 ….”
뭔가 좀 신기하다.
정상급 가수도 저런 고민을 하는구나.
설하가 오프닝을 맡는다고 듣긴 들었는데.
퍼포먼스랑은 연이 먼 사람인데 왜 침울해할까?
“무슨 일 있으세요?”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그게 ….”
그리고서, 거의 처음으로.
설하와 ‘일’ 외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합동 콘서트는 일본 쪽 정상급 가수와 한국 쪽 정상급 가수가 동시에 참가한다.
설하는 ‘오프닝’이라는 거대한 역할을 맡았지만, ‘오프닝’만 맡는 것이기도 했다.
그에 반해 일본 쪽 후지와라 미사키는 여러 곡을 아주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한다.
“제가 오프닝을 하니까… 퍼포먼스 준비도 하는 게 나았을 거 같아요. 지금은 늦었지만….”
“….”
설하가 단 한 곡만 하는 건 회사의 결정이다.
아이리즈랑, 포 데이지랑, 나를 밀어줘야 하니까.
하지만 설하는 그게 좀 아쉬운 모양이다.
“제가 잘하면 … 여러분이 더 주목받을 수 있을 텐데.”
자신 때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설하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냥 유명 가수라고만 안다.
하지만 …
“설하씨.”
“네?”
방금 나눈 대화로,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란 건 아주 잘 알겠다.
나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서,
“최고의 퍼포먼스 … 까지는 아니겠지만 도움이 될 거예요.”
“어어….”
비상용으로 준비해뒀던 물건을 설하에게 넘겼다.
[무지개 오로라 분수 불꽃 20g]“… 네?”
“예술은 폭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