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57
161화. 태풍을 부리는 남자 (5)
타짜의 명장면이 떠오른다.
원래 이 대사는 ‘승자의 빈정거림’에 가깝지만, 지금의 나는 딱히 승자라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해보고 싶어서 내뱉은 말일 뿐이다.
“Wolves can’t be dogs’ pawns…”
마크 메이어는 눈을 팍 뜨더니, 손으로 입을 감쌌다.
후지와라 미사키는 계속해서 의문스런 표정만을 띠었다.
영어는 못하나 보다.
“[명언이군. 네가 만든 말인가?]”
“[원래 있던 걸 번역한 것뿐입니다.]”
한국어로 해야 제맛이 사는데.
그럼에도 마크는 아주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다.
내가 한 말을 수첩에 받아적고 있다.
갑자기 존나 부끄럽다.
“なにいってるか全然分かんない。通訳お願い!”
마크는 내 눈치를 살폈다.
뒷담을 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앞에서 욕을 박을 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
“캬하하흐힛!”
후지와라는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서,
드르륵-!
의자를 이리로 끌었다.
“I love korea. I like hanryu.”
한국 문화 좋아하는구나.
근데 그게 어쨌단 걸까.
왜 몸을 들이미는 걸까.
“[특별 통역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시급은 한 1천 달러면 될 거야.]”
“[천 원 드릴게요. 부탁드립니다.]”
나는 마크의 도움을 받아 후지와라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엄청 재밌는 애네. 일부러 시간 내서 온 보람이 있어. 그러니까 내 제안 좀 끝까지 듣지그래?]”
“[들어는 봅시다.]”
존나 쾌활한 성격인 거 같다.
‘내가 개냐!’며 화를 내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 텐데.
“[곡 하나 맡아줘. 코드 엄청 간단한 거 있거든. 머니 코드야. 쉽지? 아, 지금 들려줄까?]”
말을 엄청 걸어온다.
불편하다.
꼴받으라고 한 말을 웃으면서 넘겨버리니, 좀 무안해지기도 한다.
후지와라는 내 의사를 듣지도 않고 핸드폰으로 자신의 노래를 틀었다.
말이랑 행동이 정반대였다.
“….”
노래는 확실히 좋았다.
애초에 실력으로 일본 탑을 먹을 정도인데, 두말하면 잔소리겠지.
핸드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아련한 목소리랑,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랑 매칭이 안 돼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다.
“Beautiful voice.”
“[진짜? 그럼 해주는 거지? 아, 돈은 …]”
한 곡에 30만 엔을 준단다.
30만 엔.
한국 돈으로 300만 원이었다.
“[부족해? 그럼 50만 엔은?]”
“….”
마크 메이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나도 같이 굳었다.
돈을 벌면 좋은 건 사실이다.
많이 벌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아빠 차도 바꿔 드리고 엄마 밍크코트도 사드리면 좋지.
근데 500?
“푸흡.”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거만하게 보이도록, 지금부터 할 말이 더더욱 파괴력을 가지도록 말이다.
“[왜? 부족해? 세션비를 이 정도까지 올려주는 사람은 없을 텐데?]”
“[없죠.]”
한국 탑급 세션맨이라도 절대로 500은 못 받는다.
하지만 … 나는.
나는 이제.
세션맨이 아니다.
“[그는 세션맨이 아닙니다. 미사키.]”
“[….]”
마크 메이어의 목소리에는 미미한 짜증이 담겨 있었다.
“[아이돌 애들이랑은 같이 무대에 섰으면서. 당신이랑 세션이랑 무슨 차이인데?]”
“….”
갑자기 존나게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기타세션맨이랑 기타리스트의 차이?
솔직히 딱 잘라 구별하기 쉽지 않다.
정의로는 남의 곡을 연주해주는 사람이랑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긴 한데, 이것도 좀 말이 안 된다.
세션맨이라고 꼭 자기 곡을 안 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냥 내가 생각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입에 담았다.
“[기타리스트라 생각하면 기타리스트죠. 그러니 저는 기타리스트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자신을 세션이라 생각하면 세션이다.
기타리스트라고,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거다.
연봉 2000만 원 이하 기타리스트 자칭 금지 막 이런 지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렵네 … 그래서 못 해주겠다는 거지?]”
“[50만이 아니라 50억이면 무조건 해주죠.]”
“[흐흐흐흐흡!]”
왜, 돈 싫어한다는 사람보다 위험한 사람은 없잖아.
난 딱히 위협적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 돈 좋아한다.
그러니까 50억 주면 해줄게!
“[그래, 너는 이런 선택을 하는구나. 그 아이랑은 다르네.]”
“[안태식이?]”
“[응. 사토시군. 한국 이름은 발음이 어려워서 못하겠어.] 아뇽하세요~ [어때?]”
키키키키킥.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위스키를 홀짝대며 깔깔웃는 후지와라.
그녀와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글라스를 다 비운 후지와라는,
“[내일 기대해. 아마 후회할 거야.]”
핑크 머리에 어울리는 빌런스러운 대사를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나는 마크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은근히 내 시선을 피한다.
후지와라가 어떻게 알고 여기에 찾아왔겠어.
이 사람이 불러서 왔겠지.
“[왜 불렀습니까?]”
“[본인이 만나고 싶다길래. 사실 내가 궁금한 것도 있었고.]”
“[궁금증은 풀렸습니까?]”
“[싸~악 풀렸지. 내 예상대로야.]”
그것 참 다행이네.
뭐가 그렇게 궁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지와라를 극대노 하게 만든 청년이라 … 흐흐. 주변에 기자 한 명만 있었어도 신문에 실렸겠군.]”
“[저게 화난 거라고요?]”
“[돌아가서 아주 이를 벅벅 갈걸? 원래 후지와라는 말을 먼저 잘 안 걸거든. 근데 오늘은 널 보며 화나고, 조급했겠지. 그래서 아무 말이나 쏟아낸 거고.]”
마크는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이 웃어댔다.
그리고서,
턱-
넓적한 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넌 역시 얕은 물에서 놀 놈이 아니야. 그렇게 알아 둬.”
“[오늘 한 말 중에 제일 듬직하네요.]”
“[그래? 기분 좋은데? 아 참. 널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
“[또 온다고요?]”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마크 메이어는 바텐더에게 술을 주문했다.
푸른색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바다색깔 액체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레이디 킬러라는데 솔직히 남 주긴 아까운 맛이지.]”
무슨 맛일지 되게 궁금하네.
한 모금만 달래도 안 준다.
엄격한 성격인 거 같다.
그는 알딸딸해진 얼굴로 호텔로 올라갔다.
“See you later~”
나는 괜히 아쉬운 마음에 호텔 주변을 서성이다가 도현이랑 혁오랑 그룹통화 좀 하다가
소이랑도 짧게 안부전화도 하고.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
벅벅
벅벅벅벅.
지정택시의 뒷자리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났다.
택시기사는 그 소리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지만, 차마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저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 누구라도 같은 반응일 것이었다.
“[늑대 …? 개?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야?]”
후지와라 미사키는 자신이 혼잣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사색에 빠졌다.
쉽게 회유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신의 인지도와 돈이라면 안 되는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안 먹히다니.
얼마나 대단하길래?
후지와라는 기분이 나빴다.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그런 것보다는,
자신이 뭔가,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실제로는 지지 않았고, 공연은 시작되지도 않았음에도.
왠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아아아아악! 기분 나빠!”
“으어엉!”
택시기사의 비명이 롯폰기의 도로에 울려 퍼졌다.
***
8월 28일 오전 6시 30분.
일찍 기상했다.
한국보다 해가 좀 일찍 떠서 신기한 것 외에는 평소와 같은 기상 컨디션이다.
기타 두 대도 잘 있고, 앰프는 어제 미리 옮겨 놨다고 하고.
씻고 옷만 입으면 된다.
나는 20분 만에 상남자식 준비를 마치고서 짐을 챙겨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수재씨 일어나셨어요?”
“오셨다아아!”
준비는 대부분 끝나 있었다.
어제 못 봤던 포 데이지랑 설하도 나를 반겼다.
“컨디션 어떠세요?”
“완전 좋죠.”
“밥 먹어요 밥! 배고파요!”
“송아린 부럽다 살 안 쪄서.”
“흐히히.”
호텔 조식도 아주 훌륭했다.
여기서 평생 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으엑.”
“먹어야 목 보호돼.”
나 빼곤 다 목 쓰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버터랑 요거트랑 엄청 먹네.
저거 먹는다고 목이 좋아지는지는 모르겠는데.
프로는 루틴이 중요하긴 하지.
딱히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닐 듯했다.
“바로 출발할게요!”
시간은 많지만, 노닥거릴 시간은 없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곧바로 요코하마로 이동했다.
시끄러운 빌딩 숲이 창밖을 지나갔다.
“….”
“허….”
드디어 기대하고 고대하던 곳에 도착했다.
이미 몇 번 와 봤을 직원들도 묘하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
“어?”
진짜.
뭔가.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그냥 ‘건물 크네’ 싶었는데.
그 수준이 아닌데?
존나 큰데?
“허 … 여, 여기예요!?”
“우와 …!”
설하랑 포데이지 멤버들은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없었지만…
“대바악…”
“여기에 우리가 선다니….”
나와 아이리즈 멤버들은 달랐다.
내가 경험해 본 실내 무대 중에 가장 큰 데가 원재선 리사이틀이었는데.
오늘 바뀔 예정이다.
거기도 엄청 컸었는데 여긴 차원이 다르다.
내 기대는, 아주 좋은 의미로 배신당했다.
“벌써부터 덥네 … 들어가시죠!”
“아, 네!”
공연장까지 향하는 실내 곳곳에는 여러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내 포스터도 있었다.
기타 두 대를 메고 지옥불 속에서 줄을 힘껏 밀어 올리는 모습이었다.
“수재씨 머싯당~”
“오오~”
내가 봐도 멋있는 거 같다.
이 포스터의 불꽃이 의도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딱 적절하기 그지없다.
“수재씨, 준비한 기계 바로 장착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선은 간단하게만요.”
“옙.”
나는 찰칵 찰칵,
관광객이 된 기분을 한껏 누리며 사진을 찍어댔다.
나 말고도 사진을 찍는 사람은 꽤 됐다.
나…
말고도 말이다.
“….”
“….”
나는 후미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익숙한 뒤통수를 향해 걸었다.
‘합동’ 콘서트다.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
얘가 있는 건 당연했다.
“내 포스터는 왜 찍냐?”
나는 익숙한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
움찔!
몸을 떨며 뒤를 도는, 일본색이 물씬 풍기는 패션의 청년.
안태식이었다.
“… 그, 그건 …”
“그사이에 내 팬 됐냐?”
“착각하지 마라. 지피지기 백전백승 차원의 전략이다.”
“한국어 개잘하는데?”
“한자언데?”
그렇네?
좀 쪽팔린데?
“%$#^#@$”
“@#$%!@#”
우르르르-
화려한 옷차림의 일본인들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전부 20대 초반처럼 보인다.
그들의 손에는, 각기 다른 악기의 하드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안태식이 친구 많구나.”
“… 너도 많아 보이는군.”
“[안녕. 네가 빨기좌지?]”
물 묻은 손을 털던 여자가 내게 영어로 말을 붙였다.
안태식이랑 같은 세션 밴드 멤버인 모양이다.
“[영상 잘 봤어. 기대할게. 네 ‘불꽃’을.]”
웃음에는 미묘한 비릿함 같은 게 섞여 있었다.
“[뭐? 불꽃?]”
“[퍼포먼스 할 거잖아?]”
“[근데?]”
“[사토시도 하거든. 불꽃 퍼포먼스.]”
나는 안태식이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얘도 퍼포먼스를 한다고?
음 … 퍼포먼스랑 연이 없지는 않은 기타리스트긴 한데.
회귀 전에 좀 유명하긴 했는데 …
“[사토시 거 엄청 멋있거든. 기타에 불을 붙여서 입으로 술을 뿜는 …]”
“[안리! 그걸 지금 왜 말하는 거야!]”
“아!”
안리라 불린 여자는 방정맞은 입을 틀어막았다.
“불꽃이라 ….”
“들켰군. 뭐, 나도 이 방면으로는 꽤 유명….”
“그만둬.”
“뭐?”
나는 굳은 얼굴로 안태식이에게 일렀다.
“설마 … 겁먹은 거냐?”
그럴 리가.
두려움 따위가 아니다.
이것은 그냥, 일방적인
‘경고’였다.
“핵폭탄 앞의 촛불은 보잘것없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