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58
162화. 태풍을 부리는 남자 (6)
나한테 퍼포먼스를 하라니 말라니 명령할 자격 따윈 없다.
오지랖이다.
근데, 지금만큼은 꼭 오지랖을 부리고 싶었다.
아무리 날 적대한다고 하더라도, 불길에 뛰어드는 나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라리니까.
“핵폭탄 ….”
“그래, 핵폭탄.”
안태식이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핵폭탄이 문제인가?
일본에서 핵드립을 쳐서 그런가?
어쨌든 뭐, 비유가 그렇다는 거다.
의도한 건 아니고.
“… 폭발물을 준비했다는 건가?”
“그냥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진 퍼포먼스라는 의미지.”
“[허세 부리는 거 같은데? 괜히 사토시 발목 잡으려고 그러는 거지?]”
기다란 악기케이스를 든 여자가 갑자기 쪼아댔다.
“[사토시도 절대 너한테 안 밀리거든.]”
“[맘대로 해 그럼.]”
경고는 경고로 끝났다.
안태식이는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하긴 말 한마디로 사람이 바뀌어봤자 얼마나 바뀌겠어.
본인이 싫다는데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수도 없고.
“퍼포먼스는 그렇다 치고, 연주 준비는 잘했냐?”
“완벽하게 했지. 네가 놀라 자빠질 정도로 말이야.”
다행이네.
이래놓고 장비 탓하면 진짜 레전드 찍는 거다.
“너는?”
“기타에 페달 보드, 앰프 한 개.”
“그건 기본적인 거고.”
“셋업? 그 외엔 없어.”
“평소대로 할 생각이구나.”
“[사토시 이번에 돈 엄청 투자했거든~? 긴장해!]”
역시 밴드맨들은 장비자랑을 안 하고서는 못 배기는 종족인 거 같다.
씨익,
안태식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긴 채,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곧바로 회사 사람들이 지나간 곳을 따라 걸었다.
무대 쪽으로 향하는 전용 통로를 지나자,
“… 허어…”
‘광장’이 나를 반겼다.
나는, 입을 쩍 벌린 채로 고개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봤을 때도 엄청났는데 안에서 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다.
저 많은 좌석에 사람들이 전부 들어찬다니.
말도 안 돼.
보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엄청 크죠?”
“엄청 크네요.”
“저도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정말요?”
“사실 많이 서 봤어요.”
설하는 놀리는 맛이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킥킥 웃었다.
“둘러볼까요?”
“넵.”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아레나를 누볐다.
무대는 아레나의 한쪽 출입구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표 판매를 하지 않는 사석(死席)이었다.
구조는 잘 알겠다.
복잡하지 않고 간단했다.
나는 무대 위를 꼼꼼히 살폈다.
“오!”
“이건 ….”
“진짜 불꽃이 나오는 기계예요.”
가장자리에는 불기둥 연출기가 제대로 둘려 있다.
내 요구사항이 정확히 전달된 모양이다.
나는 곧바로 최민지 주임을 찾았다.
“아, 수재씨! 지금 수재씨 관련해서 얘기하고 있었어요!”
나는 연출 책임자와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일본어를 못 해서 걱정했는데, 오늘따라 최주임이 아주 듬직하기 그지없다.
“[요구하신 사항 모두 점검 완료했습니다. 모니터 스피커 배치는 지금부터 할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저도 오랜만에 재밌었습니다. 요즘 들어 안전이니 민폐니 참 답답했는데 오늘 속이 뻥 뚫릴 거 같습니다!]”
배 나온 일본 아재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마치, 제일 자신 있는 요리의 주문을 받은 요리사의 표정 같았다.
“[물건 좀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우리 회사 직원 한 명이 낑낑대며 캐리어를 가지고 왔다.
내용물을 확인한 연출 책임자 아재는 …
“[… 테러범의 가방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하하하하!]”
아주 시원하게 웃어 재꼈다.
“흐흐흐흐흫.”
나도 같이 웃었다.
현지 조달한 가지각색의 폭죽들.
오늘을 위한 기계들.
그리고 … 드라이아이스 연무기.
완벽하구만.
준비는 끝났다.
나는 이어서 연주에 필요한 장비들을 확인했다.
앰프는 …
“음 ….”
예상대로였다.
내가 굳이 펜더 베이스맨을 가지고 온 이유.
이게 있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역시나, 마샬이다.
전 세계 어딜 가든 마샬이다.
Jcm2000 세 대가 무대 구석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또,
“이건 뭡니까?”
“[아, 그건 후지와라씨 쪽에서 준비한 거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
뭔가 거대한 물건이 앰프 옆에 천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슬쩍, 천을 젖혀 물건을 확인했다.
“…와.”
“… 헉.”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기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최주임도 마찬가지였다.
“집념이 … 대단하네.”
앰프 헤드였다.
“이, 이게 다 기타 앰프예요?”
“맞아요.”
“우와… 옮기는데 엄청 힘들었겠다 ….”
원래 기타리스트는 자신이 만든 ‘최고’의 소리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미리 만들어둔 소리를 다른 장소에 구현하기란 매우 어려운 법이다.
톤의 일관성을 위해서 보통 캠퍼 같은 ‘앰프 시뮬레이션’을 사용하지만…
거기서 더 맛이 가버린 기타쟁이는 그냥 앰프 헤드를 뚝 떼서 들고 다닌다.
나도 반쯤 맛이 가버린 부류였다.
일본까지 앰프를 들고 왔으니까.
하지만 …
“다섯 개나 쓴다고?”
얜 진짜 개미친새끼 같았다.
준비만반이라더니, 그 뜻이 아주 잘 이해가 갔다.
“플렉시 오리지널 … 이건 또 어떻게 구했대.”
“좋은 거예요?”
“오래되고 좋은 거예요.”
기타 관련 용품들은 원래 오래될수록 귀하게 여겨지는 특성이 있으니까.
나도 이거 시뮬로만 들어봤지 실제론 써본 적이 없다.
“Don’t touch!”
“… !”
나와 최주임은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하늘하늘한 평상복을 입은 후지와라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굿 모닝.”
“!!@$”
“!#$$ ok?”
최주임은 한 발자국 물러나더니 눈치를 살피며 통역을 시작했다.
“[신기하지?]”
“예. 이렇게 잔뜩 가져올 줄은 몰랐네요.”
“[난 돈 안 아끼거든.]”
후지와라의 분위기는 어제와는 조금 달랐다.
뭔가, 적대감이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대단합니다.”
“[수재군이 꼭~ 필요다고 하면 빌려줄 수도 있어.]”
“괜찮습니다.”
“[그래? 아, 혹시 그거 쓰려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앰프 옆에 덩그러니 놓인
내 펜더 베이스맨 리이슈.
되게 듬직한 놈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해 보인다.
“[달랑 앰프 하나 들고 온 거야? 귀여워라~]”
아예 안 들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데요.
이 짓거리를 한다는 의미에서 1개든 5개든 이미 레전드다.
“[그럼 수고해~]”
“….”
과연 안태식이는 어떤 소리를 준비했을까.
퍼포먼스보다는 연주가 훨씬 더 기대된다.
우리는 무대 확인을 마친 후, 대기실로 이동했다.
개인실이 준비되어 있긴 했지만, 나는 그냥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썼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수재씨 수재씨.”
설하가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하드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언니 그거 쓰시게요!?”
“진짜 오랜만이다….”
“수리 맡긴 거 찾아왔어! 두 달 걸리더라.”
메이플탑이 올라가 무지막지하게 화려한 어쿠스틱 기타였다.
내 상징이 빨간 스트라토캐스터라면, 설하의 상징은 바로 이 기타다.
“도와줄래요?”
“음 … 네?”
설하는 종이 뭉텅이와 테이프를 내게 내밀었다.
“… 알겠습니다.”
“뭐예요!?”
“뭔데뭔데!?”
다른 멤버들은 얘기를 못 들은 모양이다.
나는 설하를 도와 연주에 지장이 안 가게끔 종이를 기타 헤드에 묶었다.
“오프닝이니까 화려하게 가야지! 리허설 때는 패스하고!”
“대, 대체 뭘 하시려는 거예요?”
“우흐흐흐.”
대기실에서 노가리를 까고 있으니 시간은 꽤나 빨리 지나갔다.
“아뇽하세요!”
“곤니치와~”
“오~ 빠르기좌~ 방가워요~”
후지와라를 제외하고는 다들 친절했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초면의 동업자한테 얼굴 붉히는 게 비정상인 거다.
“Your realy realy crazy guy.”
“I know bro.”
“하하하하하하!”
일본 밴드맨들이 내 모습을 보고서 미쳤다고 한다.
근데 기분이 좋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개인적인 준비를 끝마친 다음, 다시금 무대 위에 섰다.
“….”
천장에 달린 전등이 모두 꺼졌다.
어두컴컴한 아레나에, 무대의 형형색색 조명과 대형 디스플레이만이 밝게 빛난다.
“허….”
솔직히, 오금이 좀 저렸다.
어깨도 무거웠다.
뭐, 부담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
진짜 ‘물리적인’ 의미로 존나 무겁다.
“… 김수재.”
안태식이는 직원들과 함께 사운드 체킹을 하고 있었다.
“내가 쓸 건 하나 남겨 두라고.”
“아 … 어. 근데 너 ….”
“뭐.”
“아니 그게 ….”
“쌍기타 처음 봐?”
“….”
그는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션 밴드 멤버들의 얼굴이 꿀 먹은 벙어리 같이 됐다.
“[저, 저게 바로 ‘쌍기타’인가!]”
“[진짜 기타 두 대를 같이 메는구나 ….]”
“[안 불편할까?]”
“[영상으로 봤는데 잘 치던데?]”
직원들이 뭐라 떠드는지 궁금했는데, 때마침 설하가 몰래 통역을 해주었다.
신문물을 마주한 사람들의 감상이 계속해서 귀에 들어왔다.
“수재씨, 사운드 체크!”
“아, 넵.”
나는 앰프로 달려가,
“잘 돼가냐?”
“말 걸지 마라.”
안태식이 옆에서 담당 엔지니어와 같이 톤 메이킹을 시작했다.
“끄으응.”
“다했다.”
“벌써!?”
응 1분 컷이야.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이곳은 리허설을 빡세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
한 팀당 10분씩만 잡아도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니까.
대형 아레나를 수십 일씩이나 대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리허설은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 디리리링~
암전 속, 설하의 기타소리가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아직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
“역시 일류구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설하의 리허설은 단 한치의 어색함이 없었다.
나와 회사 사람들은 놀람과 감탄을,
“….”
후지와라는 경계를.
서로 다른 반응을 내비쳤다.
“이 다음은 … 일본 밴드네.”
진행과 연출 순서는 이미 며칠 전에 상세하게 안내받은 참이었다.
설하를 시작으로 일본 밴드와 여자 아이돌로 이어지다가,
후지와라 미사키가 등장한다.
치이이잉-!
팝 성향의 깔끔깔쌈한 기타 소리가 가장 먼저 귀에 들어왔다.
“….”
솔직히, 매우 조화로웠다.
단단하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악기들에게 둘러싸여, 넓디넓은 아레나를 꽉 메워버렸다.
“진짜 잘 부르네요.”
“그러게요 ….”
송아린은 홀린 듯이 내 말에 동조했다.
완벽한 무대를 만든다고 자신하더니만, 진짜 완벽했다.
하지만.
“… 기타 소리 수재씨랑 완전 다르당.”
“….”
“아, 아니 수재씨보다 잘 친다는 게 아니라요. 뭐랄까 ….”
나는 위화감이 들었다.
어딘가 익숙한 위화감이었다.
그리고 그 정체를 파악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좌아아아앙-!
밴드 사운드가 멎고, 직원들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고, 그리고 …
“[어때?]”
후지와라와 세션 밴드 멤버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엄청 좋았어.]”
“[그치그치?]”
설하는 미사키의 물음에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어떠냐?”
하지만 나는,
안태식이의 질문에,
후지와라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아주 좋아 죽어할 거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대답을 내뱉었다.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