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59
163화. 태풍을 부리는 남자 (7)
후지와라의 무대는 꽤 좋았다.
모든 곡을 다 들어본 건 아니지만,
안태식이가 예고한 퍼포먼스를 본 것도 아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망스러웠다.
“… 시시하다고?”
“그리고 실망스럽다.”
아무도 통역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한국인들과 안태식만이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다.
“안리가 말한 대로 허세끼가 있구나.”
“….”
“우리 연주에는 실수가 아예 없었어. 너도 그건 인정하잖아?”
“인정.”
“근데 왜 ….”
실수 없었지.
박자 칼박이었지.
젊고 싱싱한 탑티어 연주자들을 모아둔 드림팀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너 녹음 자주 하지?”
“어.”
“일렉기타 연주곡도 자주 듣지?”
“물론.”
“미디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알 거고.”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는 건지 이해가 잘…”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답은 나왔다.
알아챘다.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던 기대가 꺼져버린 이유를 말이다.
“우리 지금 ‘라이브’를 하고 있는 거야.”
“… 뭐?”
“나중에 말하자. 아마 조금 있으면 알게 될 듯.”
“….”
대화가 끝났다.
세션 밴드 맴버들은 의문스런 표정을 띠며 내게서 멀어져갔다.
후지와라는 뭔 얘기를 했냐고 캐묻는 듯했지만, 안태식이는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수재씨.”
“네.”
“수재씨는 귀가 진짜 좋은 거 같아요.”
“설하씨도요.”
설하는 프흐흡, 아주 속 시원하다는 듯이 웃었다.
“뭐예요?”
“무슨 얘기하는 거예요?”
“다음 무대 보고 나면 알게 될걸?”
나는 곧바로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리허설 준비를 시작했다.
모니터 스피커는 내가 요구한 대로 배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 내 퍼포먼스용 물품도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허어 ….”
“난 저렇게는 못 할 거 같아.”
콜드 스파크 두 대를 스트렛과 레스폴에 하나씩 청테이프를 감아 매달았다.
인기뮤직 생방송에서 썼던 것보다 더욱더 경량화된 물건이다.
출력은 약하지만, ‘두 대’이기에 불꽃 양은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빌린 게 아니니까 부숴 먹어도 부담이 없다!
“수재씨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후우 ….”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무대 중앙에 섰다.
그리고서,
좌아아아앙-!
파워 코드를 간단히 긁었다.
“….”
웅장했다.
정말 웅장했다.
현의 작은 진동이 이펙터를 거쳐 앰프로 빠져나가고, 그 소리가 또다시 마이킹되어,
아레나 곳곳에 비치된 거대한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왔다.
“소리 좋아요!”
“갑시다!”
나는 곧바로 리허설용 ‘블루 퍼플 바’의 연주를 시작했다.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곡이지만, 몇 번의 개량을 거치니 미니앨범 때보다 훨씬 더 퀄리티가 괜찮아졌다.
우와아아앙-!
와우 페달을 사용한 쫄깃한 사운드가 암전 속을 덮는다.
지금은 텅텅 비었지만 몇 시간 후면 저곳에 사람들이 가득 메워질 거다.
이 소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고막을 두들길 거다.
그생각을 하니 손에 땀이 왕창 흘러나왔다.
흥분된 감정은 필터 없이 기타에 전해졌다.
‘생동감 있게’ 말이다.
“이거야. 이거예요!”
저 멀리서 송아린이 소리쳤다.
직감 하나는 엄청 뛰어난 거 같다.
아이돌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나랑 똑같이 음악으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충분히 알아차렸을 거다.
무슨 대화를 하는 거냐며 의문을 표하던 다른 멤버들도, 이제는 이해했을 것이다.
라이브에서의 ‘음향적 방향’을 말이다.
“뭔가 … 소리가 엄청 생생해요!”
“그러게?”
“진짜 다르구나 ….”
사람들이 라이브를 보러 오는 이유.
간단하다.
팬이니까.
내가 응원하는 뮤지션을 직접 보고 싶으니까.
근데, 꼭 그것만 기대하고 오는 건 아니다.
자신이 동경하는 뮤지션과 한 공간에 있다는 느낌, 즉…
‘생동감’을 원하는 것이다.
치이이잉-!
나는 힘차게 하모닉스 암 업을 하며 헤드에 달린 기계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푸른 불꽃이, 공중으로 마구 솟구쳤다.
“그게 네가 준비해온 퍼포먼스인가.”
무대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안태식이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
이걸 보고 안도한다고?
이해를 못 했다고?
설마 이게 다라고 생각하는 건가?
파란색 불꽃은 시작일 뿐이다!
나는 등 뒤에 매달린 기타 헤드에 손을 가져다 대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덜컹!
갑작스럽게 정문이 열렸다.
웅장하게 흘러나오던 인스트루멘탈 또한 멈춰버렸다.
“수, 수재씨 큰일 났어요! 밖에 …!”
“예?!”
나는 연주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문을 활짝 열어재낀 직원들의 옷이,
“… 어디 홍수 났어요?”
엄청나게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
일본인은 줄 서기를 잘한다는 말이 있다.
자화자찬하려고 만들어낸 말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딱히 거짓은 아니었다.
줄서기를 정말, 너무나 잘하는 것 같다.
– 요코하마 아레나 여름 대합동 콘서트 –
라는 플레카드가 걸린 거대한 건물에는, 1만이 넘는 사람이 쭈욱 늘어서 있었다.
“[ … 하늘은 어두운데 더위는 안 가시는군. 빌어먹을 나라야.]”
“[하하하하하.]”
“[신이 하늘에서 우릴 내려다보면 성냥개비인 줄 알겠지.]”
“[그러니까 그냥 얘기하고 들어가자니까.]”
“[안 돼. 당장은 얼굴 마주할 생각이 없어.]”
“[어휴.]”
마크 메이어는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의 고집 덕에 사서 고생을 하게 됐다.
1만은 넘어 보이는 인파에 파묻히는 상황은 썩 그리 유쾌하지가 않았다.
다행히 해가 짙은 구름에 가려져서 망정이지, 땡볕이었으면 부상자가 나왔을 날씨였다.
“[태풍이라 … 참 가지가지 하는군. 난 걔만 보고서 빠질게.]”
“[왜? 아이돌들도 보다 보면 재밌어.]”
“[난 재미 없어.]”
마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서 조용히, 손에 쥐고 있던 우산을 손에 들었다.
후우우웅-!
바람이 불어왔다.
아침까지만 해도 평온했었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불어온다.
태풍과 관련된 일기예보는 오늘 이미 수차례 정정보도 된 상태였다.
“[신이 정말 우리가 성냥개비인 줄 아나 보군. 불 끄러 왔네.]”
철컥- 여기저기서 우산이 펴졌다.
비가 내렸다.
그리고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 타이밍 기가 막히는구만.]”
“[혹시 모르잖나, 태풍이 그 녀석 연주를 듣고 싶어서 찾아온 걸 수도 있지.]”
스윽-
“[우산은 네 거 써.]”
“[없는데?]”
비가 와도 그냥 처맞는 것이 상남자의 감성이라고 하더니만.
이건 남자니 뭐니 따질 때가 아니었다.
진짜 … 진짜.
엄청나게 쏟아진다!
“같이쓰장~”
“너무 붙지 말아 줄래?”
“안 붙으면 비 맞잖아! 같이 한국에서 빨기좌 보러온 동지인데 뭐 어때?”
“어떻냐니….”
“어엄청 치사하다! 너 너 일부러 귀엽게 보이려고 앞머리 일자로 자른 거지?”
“그런 거 아닌데 ….”
“아니긴 뭘 아니야?”
줄을 서던 사람들은 우산을 나눠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작 ‘우산’으로 태풍을 상대하려는 게 어리석은 생각이란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풍이다아~ 빨기좌가 부른 걸 거야. 오늘 태풍 같은 연주를 하는 거야아~”
“….”
팝 스타같이 알록달록한 염색을 한 소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톡톡히 차지했다.
그 옆에 있던 일자 앞머리 소녀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태풍이, 도쿄를 덮치고 있었다.
***
비가 온단다.
비가 존나 많이 온단다.
아직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았는데.
아레나는 거의 난장판 상태였다.
“早くカメラ確認しろ!”
“リハーサル続けます!短くお願いします!”
리허설은 더더욱 짧게 진행되었다.
다행히 아이리즈, 포 데이지 멤버들은 미리 트레이닝을 해온 터라 문제가 없었다.
무대 주변 십수대의 거대한 카메라는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실시간 방송 준비를 위한 것이었다.
“수재씨. 예정보다 일찍 관객분들을 들여야 할 거 같아요. 우선 저희 쪽은 준비가 거의 다 됐어요. ”
“옙. 알겠습니다.”
텅 비어 있던 아레나는 홀딱 젖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웃으면서 입장하고, 환호 속에서 시작돼야 하는 공연인데.
… 최악이다.
분위기가 싸했다.
“^@!$$#@“
“$%$하아아아아.”
“なんでいきなり台風?私たちずっと濡れたまま?”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한숨들.
타올과 티슈를 나르는데 동원된 행사직원들.
더군다나 무대는 정리가 안 되어 난장판이다.
원래는 모든 준비를 다 마친 다음에 관객들을 입장시키고, 바로 오프닝에 들어가는 건데.
다 꼬여버렸다.
공연을 미리 시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간 맞춰 왔는데 장난하냐?’라는 말이 나중에 반드시 나올 테니까.
즉, 관객들은 지금부터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방치된다면, 불만이 쌓일 것이다.
“[최악이야 진짜.]”
“[진정하십시오.]”
“[진정이 되겠어? 얼마나 준비를 했는데 ….]”
후지와라는 무대 뒤편에서 엄청나게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오늘 함께 무대를 만들어나갈 모든 사람들이,
발만 동동 굴렀다.
관객들 앞에서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터임에도, 그들은 오늘따라 너무 무력해 보였다.
“최민지 주임님.”
“네.”
“우리 좆된 거 같습니다.”
“그러게요!”
불만이 쌓이면, 공연이 좆된다.
“….”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떡하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찾아왔을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플래시백 되었다.
3월 한강 변.
라비다가 버스킹을 할 때, 윤대혁 선배가 줄을 끊어먹은 적이 있었다.
공연이 지체될 수밖에 없는 돌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 라비다 멤버들은 …
“최민지 주임님.”
“네?”
“이판사판입니다.”
땜빵을 세웠다.
“이판 … 사판이요?”
“제가 기타라도 치고 있을게요.”
“네 … 네!?”
100명이든 10000명이든.
어차피 공연은 공연이다.
관객들을 방치하는 건 최악의 수다.
뭐라도 하는 게 낫다.
방귀라도 뀌는 게 낫다.
“뭘 하려는 거지?”
안태식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원맨쇼.”
“뭐? 예정에도 없던 짓을 왜…”
“관객들은 예정에도 없던 샤워를 하고 싶었겠냐?”
나는 급히 무대 책임자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흰 머리가 무성한 책임자는 …
“[부탁드립니다.]”
나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나는 곧바로 스트랫을 멨다.
그리고, 마이킹이 되지도 않은 앰프의 볼륨 노브를 끝까지 돌렸다.
1만 7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 턱없이 부족한 음량이다.
하지만,
디리리리링-!
사람들의 불만을 잠시 동안 억누르기에는 충분했다.
“なに?なんなの?”
”誰?”
일본인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뭐라 하는지 모르겠다.
근데 욕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럼 됐지 뭐.
나는 당당한 걸음으로, 당당히 시선을 받았다.
불만도 같이 받았다.
그리고 무대 끝자락에 서서, 굴러다니던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위기는 위기라고 생각해서 위기다.
“[따분하세요?]”
“…?”
위기는,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
관심을 받을 기회 말이다!
“[그럼 따끔하게 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