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64
168화. 정상에 설 기타리스트를 위하여 (1)
가을.
비염이나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기가 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고통받지 않는 계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가을은 아주 완벽한 계절이었다.
푹푹 찌는 듯한 열대야는 이제 없었다.
도로에서 쏟아져 나오던 아지랑이도 모습을 감췄다.
서울에도, 가을이 성큼 찾아왔다.
그리고, 그 의미는 즉 …
“흠 ….”
세후 인터네셔널 건물의 회장실.
무서운 인상의 중년 사내가 모니터를 뚫어버릴 듯이 쳐다본다.
얼핏 보면 회사에 관련된 중대한 고민을 하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사실 모니터에 비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
예매 ‘D-1’
1인 관람권 66,000원.
“예약까지 하루 남았군.”
가을은 락의 계절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내지르는 비명과 같은 함성,
가슴과 귀를 쿵쿵 때리는 엄청난 사운드.
탁 트인 평지와, 솟아 있는 스테이지.
청명한 하늘.
언제나 꿈에 그리는 광경이 머지않았다.
원래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애라는 소리가 있지 않은가.
반쯤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락은 참 대단했다.
락은 나이를 가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20대도 듣고 60대도 듣는다.
젊었을 적 취미를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락의 정수인 ‘락 페스티벌’은, 안 가본 락쟁이는 있어도 한 번만 가본 락쟁이는 없을 정도로 매우 흥미롭고 매혹적인 행사였다.
그 또한 이번 연도에도 들릴 생각이었다.
표를 구하고,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대충 주워입은 다음 몰래 사람들 속에 섞이면 그게 바로 일탈이자 해방이다.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자꾸만 달력을 확인했다.
동그라미가 쳐진 날짜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똑똑똑-
문이 두들겨졌다. 그리고,
“들어오세요.”
덜컥-
“실례하겠습니다.”
익숙한 얼굴의 임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예매 창을 숨긴 후, 임원들이 조심스레 건넨 서류를 검토했다.
“저번에 직접 말씀하신 건은 ….”
원래 취미랑 일은 별개다.
취미가 일이 되어버리면 고통스러워진다고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지 않은가.
일이 취미가 되는 것.
그럼 과연 어떻게 될까?
그는 답을 알고 있었다.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어두운 목소리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흐.”
그리고 그와 동시에,
꿀꺽-!
임원들의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려왔다.
“처리가 잘 됐군요.”
“그렇습니다! 전국에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등에 스폰서 제의를 하여 외부에서도 좋은 반응이 ….”
세후 인터네셔널은 레인악기 뮤직을 인수했다.
돈이 많이 들었다.
그러니 잘 굴려야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락 페스티벌에 … 우리 회사 이름이랑 제품이 걸리는구나….”
기분이 좋았다.
돈을 버는 것, 재산을 증식하는 것.
중요하다.
중요하긴 한데,
“흐흐흐흐흐흐.”
자신이 꿈에 그리던 짓을 한다는 게 훨씬 더 만족감이 높았다.
젊었을 때부터 매년 몰래 참석하던 페스티벌에, 자신이 소유한 회사 이름이 큼지막이 장식된다.
무대 위에, 회사의 앰프가 비치된다.
아티스트들이 회사에서 만든 악기를 사용한다.
경영인으로서, 그리고 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저희도 매우 고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 차원에서의 세력확장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임원들은 아마 그런 의미에서 기대된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회장님, 혹시 직원들이 제안한 내용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보고서를 내려놓자, 오상무가 조심스레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해보세요.”
“이번 9월의 중순의 인천 페스티벌 진행 시, 보고서에 적힌 내용대로 회사 차원의 스폰서 광고가 진행될 예정입니다만, 이번에 인수한 회사는 그 ….”
“인지도가 부족하지요.”
“…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과연 비치된 앰프가 꾸준히 사용될까 하는 의문이 …”
스폰서 활동.
돈을 들여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활동.
기업이라면 어디든지 하는 짓이었다.
신생 브랜드, 중견 브랜드, 업계의 최정상 브랜드 모두 가리지 않고 모두 브랜드 메이킹에 열중한다.
단, 브랜드 메이킹을 시도한다고 해서 그게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흠….”
당장에 준비한 것만으로도 이름을 알리는 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하긴 하지요.”
“그렇습니다.”
참가팀 중 소수만이 앰프를 사용한다고 해서 효과가 대단하지는 않을 터.
돈을 왕창 때려 박아서 강제로 제품을 사용하게 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좀 그렇다.
공격적인 마케팅은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사실 ‘음향 앰프’라는 게 그다지 매출을 많이 올려주는 품목도 아니다.
다만.
“제가 생각해 둔 게 몇 개 있긴 합니다.”
“오오…!”
나중을 위해서라면.
근 미래가 아니라, 더 멀리를 내다본다면.
과감히 투자할 때였다.
회사의 이득이 4할, 자신의 욕망이 6할인 판단이긴 하지만.
어쨌든 간에 득이 안 되는 제안은 아닐 것이다.
“이미 한 번 맡긴 적이 있지 않습니까. 시그니쳐 모델 말이에요.”
“시그니쳐 … 아, 혹시 나숙호 기타리스트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곧바로 수배를 ….”
“아니 나숙호씨도 좋긴 한데 페스티벌에 나오실 리가 ….”
“아! 죄송합니다. 빨기좌 말씀하시는 것이라 이해했습니다.”
임원들은 눈치가 기분 좋게 빨랐다.
“소속사 측에 페스티벌 참석 여부를 바로 문의해보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주 확신에 찬 어투로 답했다.
“그는 반드시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할 겁니다.”
“…네?”
“락 페스티벌 중에 가장 큰 페스티벌이니까요.”
“아….”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락의 성지에, 과연 그가 참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은, 기회이기도 했다.
“굳이 나설 필요도 없어요. 내가 직접 말해 놓을 테니까.”
“빠, 빨기좌에게 직접 연락을 하시는 겁니까?”
“뭘 그렇게 놀라요?”
“아닙니다!”
사실 놀랄만하다.
일본 공연을 마치자마자 기사가 수십 개나 쏟아져 나올 정도로 유명세를 얻었으니 말이다.
유명 뮤지션과 기업인이 커넥션을 갖는 경우는 많지만, 자신은 순전히 비즈니스 관계만이 아닌 …
말로 표현하지 못할 조금 더 끈끈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소리를 판단함에 있어서 색안경을 끼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품을 사용할 겁니다.”
기술력이 없는 회사는 아니었다.
음향 개발 연력만 20년이 넘어갔다.
그리고 그런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쥐어짜내어 만든 앰프가 안 좋을 리 없었다.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개인용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화면은 곧바로 어둡게 변하며 ‘예쁜 딸’이라는 글자를 비추었다.
뚜르르르르 …
“그래 딸아, 수재 저번에 돈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니?”
– 아, 아빠 수재가 …
“아… 그렇구나.”
“…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아니에요.”
무서운 인상의 사내는 벙찐 얼굴로 턱을 쓰다듬었다.
딸의 입에서 정말 터무니없는 말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설마 … 벌써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우리도 빨리 준비해야겠네요.”
***
그야말로 부정할 것도 할 수도 없는 금의환향이었다.
귀국하자마자 회사에서 아주 찐득하게 파티도 벌이고,
– 앞으로 수재씨 만나면 맨날 징징대야징~ 나 꼬셨으니까~
같이 일본 공연간 멤버들이랑 관계가 되게 돈독해진 것도 같고.
대충 술 먹고 지른 발언 때문에 하루아침에 기사가 수십 개나 났다.
– 충격, 기타리스트 김수재 일본 유명 가수에게 ‘날 쓰고 싶으면 1000억 가져오라’ 발언.
시간이 없어서 취재 거부하니까 아주 어그로를 제대로 장전시키더라.
그리고 또, 유튜브 커뮤니티의 반응도 엄청났었다.
– 요코하마 콘서트 진짜 레전드였다. 내가 살면서 이런 퍼포먼스를 볼 수 있을 줄이야.
ㄴ ㄹㅇ 카메라가 머리 위에서 태극기 딱 찍는데 눈물 흘리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했다.
ㄴ 충
ㄴ 충 지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미친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충격’ 요코하마에 들린 일본인들이 심장을 부여잡고 자지러진 이유 ㄷㄷ 세계가 경악하는 빨기좌 ㄷㄷㄷ
ㄴ 국뽕튜브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일본반응 한편 다봤다 ㄹㅇ 꺼억
– 근데 솔직히 이정도 퍼포먼스면 국뽕 480시간 우려먹기 가능.
ㄴ 빨기좌는 그 자체로 뽕이라 국뽕이란 단어가 안 어울리지 않음?
ㄴ 그럼 빨뽕임?
ㄴ 어감이 좀 그렇네요 …
ㄴ ㄹㅇ ㅋㅋ
– 다음콘서트언제하는데제발와줘제발한5천명급으로만해줘제발다살게
ㄴ 그냥 바로 이번 주에 공연일정 잡아도 갈 사람 많을 듯요 ㅋㅋ
ㄴ 아사실난일본에도갔다오긴했엉ㅎㅎ
ㄴ 아 개소름돋네 얀데레좌였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ㅋㅋㅋㅋㅋㅋㅋ
반응이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긴 했는데, 그래도 실제로 보니까 기분이 아주 좋았다.
“….”
8월 29일 등굣길.
콘서트를 마치고 바로 다음 날.
나는 어김없이 학교에 갔다.
피로가 좀 쌓이긴 했지만, 감당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와 ….”
“나 빨기좌 처음 봐…”
“저기요! 학교 가는 거예요!?”
“잘생겼다 ….”
물론, 감당을 못할 정도로 등굣길에 관심을 받긴 했다.
힐끔.
힐끔힐끔.
예고랑 우리 학교랑은 등굣길이 겹치지 않는다.
근데 오늘따라 유독 예고 교복이 많이 보인다.
설마 날 보러 일부러 우회하는 건가?
부끄럼쟁이들이 많은지, 직접 다가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깨를 으쓱거리며 정문을 지났다.
그러자 곧바로,
“오오오오오오!”
“10억좌다!”
“10억 국뽕!”
환호성이 나를 덮쳤다.
뭔가 존나 부끄럽다.
나는 창문을 열고 꽥꽥 소리를 지르는 선배들에게 척- 엄지를 날린 뒤, 건물로 들어갔다.
“수재 공연 잘 봤어~”
“다음은 어디서 해?”
선생님들도 일일이 말을 걸어 주신다.
“김수재 왔다 ….”
“10억을 거부한 상남자가 왔다 …!”
교실로 들어가자, 나는 10억을 거부한 전설이 되어 있었다.
막 환호성이랑 비명이랑 장난이 아니더라.
최유진이 우리 반까지 찾아와서는,
“10… 10억 …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다 날라갔지.”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나 같으면 2년하고 20억 받고 놂.”
“리얼.”
“20억이라 ….”
“김수재 설마 20억 넘게 번 거임?”
“리얼?”
20억까지는 없는데.
그래도 뭐 ‘못 노릴’ 경지는 아니다.
이번 생에는 20억을 만질 수 있을 거다!
“수재야.”
“응.”
“수고했어….”
“고마워!”
소이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뭔가 한차례 거대한 태풍이 지나간 후,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내가 돌아올 곳은 이곳이다.
이곳.
이 자리 …
“….”
“….”
에 뭔가.
이상이 생긴 거 같다.
“… 이거 뭐냐?”
“편지?”
“기, 김수재 러브레터받았다아아아아악!”
“와!”
“러브레터!”
“미친놈들아 서류봉투잖아.”
피로를 견뎌내며 돌아온 내 책상에는, 떡 하니 수상하기 그지없는 등기 봉투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곧바로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동시에,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어?”
“뭔데?”
“이거 기타 살 때 주는 거 아님?”
“김수재 기타 샀음?”
“기타 또 샀냐?”
아니, 기타 안 샀어.
지금 기타가 아주 마음에 드니까.
살 필요가 없지.
근데 순간,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만약 기타를… ‘사는 게’ 아니라면?
공짜로 주는 것이라면?
– 정상에 설 기타리스트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습니다.
Support by Fender.
이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하여금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수재야! 소포 왔는데? 소속사에서 보냈어!”
“… 네?”
나는 선생님이 급히 가져다주신 물건을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똑같았다.
똑같은 봉투였다.
“… 깁슨?”
좌 펜더 우 깁슨이
일순간, 내 손에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