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84
190화. 기타 도둑을 쫓아라 (3)
“이게 대체 ….”
“업무 메일로 디스코드 화면공유 주소가 날아와서 무심코 들어가 봤는데… 보시다시피예요.”
“실시간인가요?”
“네. 비공개 링크라 인터넷 방송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켰을 때는 50분 남았다고 화면에 쓰여 있었어요.”
황 프로듀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띠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혼란스럽다.
매우 혼란스러운 날이었다.
잉베이와의 결전이 끝나고, 락 페스티벌이 마무리되고.
큰 사건은 전부 다 지나가서 이제 좀 쉬어보나 싶었는데.
갑자기 기타를 도둑맞았단다.
되찾고 싶으면 연락하란다.
그리고, 요구 사항을 들으란다.
시발 이게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하루일까?
“수재씨 죄송합니다.”
“네?”
“바로 연락 못 드려서… 기타 도둑맞았다는 거 저희도 안지 지금 한 시간 됐거든요….”
“아, 맞아요. 그건 맞아요.”
“참나 깁슨 놈들… 이렇게 중요한 걸 지금에 와서야 알려주다니….”
음반제작부 직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모았다.
“언제였대요?”
“… 사건 발생은 수재씨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이틀 전이라고 하더군요. 지금 최주임이 싸우러 가셨어요.”
“아….”
왜, 그렇잖아.
자기 회사 재산을 도둑맞았는데 눈치채도 깁슨에서 가장 먼저 눈치챌 거 아니야.
근데 보아 하니까 지금까지 입 꾹 다물고 있었던 모양이다.
“단순 도난인 줄 알았다는데, 보시다시피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전달 과정에서 일어난 도난이라,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기대를 많이 하고 있던 기타긴 하지만,
날 위해 특별해 AAA등급으로 선별하여 주는 거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냥 그러려니 싶었을 것 같다.
‘아직’은 내 기타가 아니니까.
하지만,
– Live
– 바삭바삭
– 노릇노릇
– 지글지글
공유 화면에, 글자가 하나씩 추가되기 시작했다.
“와 ….”
“개열받네!”
“그아아아아악!”
내 기타는 아닌데, 열이 받는다.
머리에 피가 쏠린다.
너무 쏠려서, 칠공분혈을 할 것 같다!
“악기… 악기는 잘못이 없어….”
“진짜 장작 되겠는데요!?”
장작기타라는 표현을 남 놀릴 때는 자주 써도, 이렇게 실제로 보고 있으니까 존나게 마음이 아프다.
“하아 ….”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안경 소녀와 똥머리 월반 소녀.
그 둘은, 나에게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편지를 전달했다.
자신들이 기타를 훔쳤다는 뉘앙스로 이실직고까지 했다.
그리고 그 이실직고에서 얻은 핵심 키워드는 …
기타,
영국,
도둑,
편지,
그리고 …
“스승 ….”
나는 디스코드 채팅창에 그 단어를 적었다.
– 스승?
스윽,
공유 화면에 처음으로 장갑을 낀 손이 등장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손가락은, 아주 천천히 o를 그렸다.
“스승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음반 제작부 사람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도난 사건에 연관이 있었군요….”
“직접 훔친 건 아닐 거예요. 아마도.”
고딩 둘이 무슨 힘이 있어서 남의 기타를 빼앗는단 말인가.
“하아 ….”
“우선 하나하나 되짚어보죠. 인재관리부 분들 데려오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전 채팅 좀 치고 있을게요.”
황 프로듀서가 급히 자리를 떴다.
나는 곧바로, 키보드를 잡고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 한국어 잘하네.
화면에 검지가 나와서 휙휙 젓는다.
– 다 알아듣고 있잖아?
다시금 손가락은 o를 그렸다.
“알아는 듣는데, 한국어 채팅은 못 치고….”
뭐, 어쩌겠는가.
인질이 잡혀 있는데.
나는 우선 그의 비위를 맞춰주기로 했다.
대답을 ox로밖에 못 듣긴 하지만, 대화가 아예 안 통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 내 기타를 훔친 건 당신인가?
O- 나한테 바라는 것이 있나?
O- 날 지금 협박하는 건가?
O- 요구 사항을 전부 들어줬을 때, 기타도 돌려주고 저기 적힌 협박 사항도 없애주는 건가.
O- 당신이 경찰에 잡힐 수도 있는데?
슥슥슥,
그는 검지를 펼쳐서 그렇지 않다는 듯 저었다.
“… 참나.”
원하는 게 있으면 그냥 이메일로 협박했으면 됐을 것이다.
여고생 두 명을 내게 보내는 귀찮은 짓 따윈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조금 더 세련되게 요구사항을 들이밀 수 있었음에도, 화면 속 ‘스승’은 그러지 않았다.
사건의 진행이 상식적이질 않고 엉망진창 그 자체다.
그리고 나는, 그게 아주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수재씨!”
최주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이리로 뛰어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오랜만에 보는 곰 같은 인상의 박부장도 같이 말이다.
“지금 OX로 대화하고 있어요. 말은 잘 통하네요.”
“….”
“이걸 진짜 ….”
“경찰에 연락은요?”
황 프로듀서가 최주임에게 물었다.
하지만 최주임은 입을 오물거리며, 나를 지긋이 쳐다볼 뿐이었다.
“그, 그게 ….”
“연락을 할 수가 없지. 약점이 잡혀 있잖아.”
“아…. 그렇죠.”
빨기좌 스콰이어 조작사건 유튜브 업로드.
빨기좌 헌정 기타 화형.
이 두 개 요소가, 우리에게 내밀어진 협박사항이었다.
후자는 기분 나쁜 것 외에는 별 타격이 없다고 하더라도.
전자는 …
“… 큭.”
함부로 경찰을 못 끌어들이게 하려는, 그야말로 저 사람의 비장의 수단이었다.
저게 알려지는 순간, 내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질 테니까 말이다.
“어떻게 할까요?”
“우선 얘기나 나눠 보죠.”
“하아…. 그걸 알아채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나는 다시금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필요한 질문을 했다.
슥-
“양손 …?”
“피아노 치는 시늉 같은데요.”
– 피아니스트입니까?
X아니란다.
– 키보디스트입니까?
X이것도 아니란다.
그럼 남은 건 …
“작곡가 … 겠네요.”
황프로듀서의 말이 맞았다.
화면 너머의 손은, 느릿느릿하면서도 격정적이게 o를 그렸다.
“목소리를 밝히기 싫어하는 영국 작곡가라 ….”
“짚이는 데 있으세요?”
“하하. 그럴 리가요.”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영국에 사는지, 정확히 런던인지, 아까 만났던 여자애 둘이랑 진짜 사제관계인지.
“20분 남았어요!”
정보.
정보가 필요하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야만 한다.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고 순순히 협박에 따르는 것도 나름 방법 중 하나일 순 있겠지만,
일면식 하나 없는 남을 협박하려는 놈의 정체를, 이 기회에 파악해 둬야 후환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성예린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 김수재?! 웬일이야?
전화를 걸자마자, 시끌벅적한 여자애들의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김수재?!
-예린이 빨기좌랑 전화하는 사이야?
-안녀어어어엉!
뭔가 반응이 아주아주 기쁘긴 한데, 당장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나는, 성예린에게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캐물었다.
– 아 걔네? 작곡과 1학년 탑일걸? 대학 추천도 이미 받았고.
“벌써?”
– 선배들보다 실력 낫다던데? 이미 상업 곡도 썼대.
“작곡가 듀오라….”
– 나 오늘 진짜 놀랐잖아. 평소엔 엄청 조용했으면서 막 너 놀리려고 이상한 편지까지 쓰고.
작곡가 스승과 작곡 사제 듀오.
관계도에 오류는 없어 보였다.
“둘 다 영국 살다 왔다며.”
– 어? 맞아맞아. 영국에서 클래식 전공하다가 어찌저찌 만났다는데…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음 … 오케이. 잘 들었어. 나중에 밥 한번 쏠게.”
– 진짜?!
“그래.”
나는 전화를 끊고서 곧바로 채팅을 쳤다.
– 내가 당신 곡을 연주하면 되는 거죠?
O- 악보는?
ㄴ New music.pdf (다운로드)
채팅방에 파일이 전송됐다.
나는 PDF 파일을 클릭해서 열었다.
그리고 …
“…!”
숨이 막혔다.
“헉…!”
뒤에서 지켜보던 황 프로듀서도 같이 숨을 삼켰다.
“이… 이게 기타 악보라고?”
“왜요? 무슨 일이에요?”
“아니 악보를 무슨 ….”
“….”
세상에는 수많은 기타 연주곡들이 존재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수많은 기타쟁이들은 실력 향상을 위해 연주곡들을 카피했다.
귀가 트였으면 귀로 카피하고, 아직 안 트였으면 악보를 보면서 카피하고.
그 정도였다.
일렉기타리스트에게 있어서 ‘악보’란, 음계를 파악하고, 테크닉을 확인하는 용도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같은 곡이라도 사람에 따라 뉘앙스가 천차만별인 것이다.
하지만,
“저도 이런 건 처음 봐요.”
이건 다르다.
진짜 이런 악보를 보는 건, 난생처음이다!
“꼭 클래식 쪽 해설 악보 비슷하다고나 할까….”
PDF 파일 전체를 덮은 콩나물들과 타브.
그리고 타브 위를 덮은 기호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하지만,
Pick up selecting 4, volume 6, mid boost ✓
↓
⌢ ⌢ ⌢
l ♫ ♫ ♫ ㅣ
~~~~~~~~~~~~~~~~~~~~
Aarming vibrato + =< hand vibrato
시발이게 대체 뭐야.
악보에 빈 공간이 없다.
물리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에 지시문이 빼곡히 적혀 있다!
“허어…”
“잘 알겠네요. 절대 대중음악 쪽 사람은 아니에요.”
미디 작곡하는 사람이 이딴 짓은 절대로 안 하지.
이렇게 ‘집념’이 느껴지는 짓은 절대로 안 하지.
“수재씨 아무래도…”
“예.”
화면 너머의 손은, ‘화형식까지 남은 시간’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악보를 보고서 치라는 의미 같았다.
“기타 좀 가져다주세요!”
“아, 네!”
나는 곧바로 기타를 받아들고서 악보를 노려보며 연주를 시작했다.
첫 장에 적힌 ‘존나게 빼곡한’ 지시사항을 최대한 지키면서 줄을 튕겨 나갔다.
“…!”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
아마도, 지금껏 이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멜로디.
보고 치는 거라 박자도 안 맞고 엉망이었지만,
그냥 대충 잘 알겠다.
좋다.
다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건 좋은 곡일 거다.
그리고 화면 너머의 저 사람은 …
– 내 팬입니까?
나를,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O’
“패, 팬!?”
“그딴 짓을 해놓고 팬이라고?!”
– 당신은 왜 나한테 이걸 연주시킵니까? 이런 짓을 벌여서 당신은 뭘 얻습니까?
“수재씨….”
“OX가 아니면 안 되지 않나요?”
안 될 거다.
하지만, 꼭 대답을 들어야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
시간은 흘러갔다.
5분, 10분.
동시에, 기타는 점점 모닥불과 가까워져 갔다.
“역시 OX로 질문을 해야…!”
“잠깐만요.”
화면 구석이 흰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채워졌다기보다는 …
“종이?”
종이가 웹캠을 덮은 것이었다.
“… Honor”
“명예….”
무슨 말인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 당신은, 나를 협박해서까지 자신의 곡을 연주시키고 싶었던 겁니까?
– O
광인의 ‘진의’가, 나에게 전해졌다.
“잘 알겠습니다.”
“수재씨 어떻게 하시려는 ….”
어떻게 할 거냐고?
“긴가민가하네요.”
“아니 그래도….”
“곡 써준 것도 너무 고맙네요. 멜로디가 참 좋아요.”
“아니 ….”
“근데.”
좀 선을 많이 넘었잖아.
기타를 훔쳐가고, 내가 짭콰이어 썼다는 걸 폭로한다며 협박하는 행위 자체가 진짜 기분이 드럽잖아.
“전 남에게 놀아나는 걸 정말 싫어합니다.”
“….”
“그리고,”
나는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열었다.
동시에, 아이맥에 달린 카메라에 화면을 들이밀었다.
“저보다 약한 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 … !
부르르르르르르-!
공유 화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을 떠는 듯이, 의자에서 나자빠진 듯이.
아니면 믿을 수 없다며 모니터를 잡고 흔들 듯이.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었다.
중요한 건, 화면 너머의 저놈이 당황했다는 사실이다!
“흐흐흐흐흐흐흫.”
감히 날 협박해?
내 치명적인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했어?
어림도 없지!
“뭐예요?”
“대체 뭘…!?”
“사람은 언제나 대비를 하고 살아야죠.”
핸드폰에 비치고 있는 것,
그것은 ….
“스콰이어네요?”
“신제품이 나온대요?”
“어…?”
– New bbalguijwa squire special staratocater –
special price : 4,999$ !!!
– > Buy now
“에, 에엑?!”
“오천 달러요!?”
락 페스티벌에서 사용한 것과 똑같은 사양의,
펜더 마스터빌더 바디에 스콰이어 넥을 붙인,
500만 원짜리 ‘신제품’ 스콰이어 스트랫이었다.
“흐흐흐흐흫.”
나는 다시금, 채팅을 쳤다.
– 짭 스콰이어 아닌데?
– 빨리 하나 사셈.
191화. 가랑비와 안개의 작곡가, 레드제플린
“수재씨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오백만 원짜리 스콰이어기타라니 ….”
최주임, 박부장, 음반제작부 직원들 등등.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전부가, 경악스런 표정을 띠며 의문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후후….”
“가짜뉴스 그런 거 아니죠?”
“흐흐흐흐흐흐.”
“말을 좀 해주세요!”
왜, 사람은 원래 상상의 동물이라잖아.
근데 ‘펜더 같은’ 스콰이어를 만든 사람은 많아도, ‘스콰이어 같은’ 펜더를 만든 사람은 거의 없었잖아.
그러니 해보기로 했다.
아무도 안 해서,
재밌을 것 같아서,
이기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론적으로, 성공했다.
자그마한 불씨만을 남긴 채로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팬들을 기만할 수는 없잖아요.”
“네 …?”
“스콰이어랑 펜더랑 소리가 비슷하기는 해도, 질적인 차이가 뚜렷하거든요”
부품이 거의 똑같다곤 하지만 100% 일치하는 게 아니다.
‘광적인’ 기타 매니아라면,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수를 썼다.
토요일 밤에,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기 18시간 전에.
펜더사와 협의를 끝마쳐두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뉴 빨기좌 스콰이어 스페셜 스트라토캐스터-
– 가격 4999달러 –
지금까지 출시한 ‘스콰이어’제품 중, 최고 가격.
무려 ‘펜더 커스텀 샵’에 비견되는 가격!
“설마, 락 페스티벌에서 썼던 사양 그대로 … ‘스콰이어’ 마크를 달고서 기타를 만들어 판다는 겁니까!? 펜더에서!?”
“넵.”
“그, 그럼 ….”
“저는 이제 ‘짭 스콰이어’를 쓴 게 아니게 되는 거죠.”
만약 1억 원이 있다며 거짓말을 했다고 가정하자.
당장 통장 잔고가 0원임에도 말이다.
근데 말한 그다음 날 스삐또 당첨금을 수령해서 1억 원을 벌었다면?
거짓말을 한 게 되나?
맞다.
굳이 따지자면 거짓말이 되는 게 맞다.
하지만, 아무도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만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미, 스삐또에 ‘당첨된’ 상태였기 때문이니 말이다!
나는 다시금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 자, 그 기타는 알아서 잘 처리하고. 신제품 스콰이어 나오면 하나 사주고. 그리고 경찰에 잡혀가면 되겠네.
상대의 협박 수단은 이제 없어졌다.
기타를 훔쳐 간 건 ‘이목을 끌기 위함’에 불과하고, ‘킬링 포인트’는 짭 스콰이어 세간에 폭로한다는 거니까.
– ‘단체’로 절도 행각 벌이고,
협박 수단으로 사용하고.
증거도 그냥 빼박이네?
영국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최소 벌금형, 아니면 감옥행 아닐까?
나는 핸드폰을 책상에 올려서 녹화를 시작했다.
화면 너머의 손은, 아주 당황스러운 듯 세차게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몇 십 분 동안 봤던 속도 중에 최고속인 거 같다!
“허… 허어….”
“수재씨는 정말 …!”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직원들과 부둥켜안았다.
“대단하세요.”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
원래 사람은 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내가 벌인 일로 후폭풍이 벌어질 걸 ‘알고 있는’ 상태라면, 더욱이 말이다.
– 어떻게 할 거야? 이제부터라도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어?
나는 피식피식 흘러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상대방을 슬슬 긁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 Give me time. Just a little.
기타 화형까지, 유튜브 업로드까지 7분 등.
나를 겁박하고 놀리기 위한 글자가 사라졌다.
“공수교대다.”
이제는, 내가 협박할 차례다.
***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곡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자동재생이 됐는데, 뭔가 좋긴 좋은데.
업로드한 채널에 들어가 보니 ‘불펌 채널’이라 괜히 열받고.
검색해 봐도 잘 나오지도 않고.
익명으로 사운드클라우드에 투척된 곡이 정처 없이 유튜브에 나돌거나 하는 일은, 꽤나 흔했다.
그리고, 그 ‘익명’의 곡에 감탄하는 경우도 꽤나 흔했다.
이 세상에는 은둔하고 있는 고수들이 정말 많으니까.
그 ‘고수’들에 의하여, 믿을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하니까.
“대단하네 ….”
9월 27일, 늦은 시각.
언제나 조용한 북정마을의 감동 슈퍼마켙.
오늘도 맥북을 펼쳐 놓고 놀고먹는 슈퍼 주인 겸 작곡가는, 혼자 중얼거리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이미 카운터에는 초록색 술병 두어 개가 굴러다니는 상태였다.
일을 하면서, 쉬기도 하면서, 술을 퍼마시는 것.
너무 좋았다.
내가 사장인데 그 누가 뭐라 한다는 말인가?
안락한 장소,
안락한 냄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고, 음악 감상을 하기 딱 좋은 상태가 되었다.
“흠흠흠~”
작곡가는 언제나 음악을 듣는다.
일 때문만이 아니다.
취미로도 듣는다.
애초에 음악을 안 좋아하면 작곡가라는 개 같은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테니까.
음악은,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니까!
“이걸 그냥 뿌리네 … 제목은 없고….”
화면에 띄워져 있는 것은 사운드 클라우드였다.
초보 작곡가부터 프로 작곡가, 청취자가 한데 모이고, 불법 배포물과 힙스터 합법 배포물이 동시에 난립하는, 그야말로 음악계의 잡탕 같은 사이트.
박현석은 그런 잡탕에서 맛있는 것을 찾아 종종 골라 먹곤 했다.
불법 게시물은 올라오는 족족 신고하고,
가끔가다가 훌륭한 작곡물을 찾을 때는 기분이 아주 좋고.
‘좋은 곡’을 못 찾은 날엔 기분이 다운되기도 했지만, 찾았을 때의 특유의 짜릿함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2시간의 서핑 끝에 한 게시물을 맞닥뜨렸다.
“Fine rain, fog ….”
가랑비와 안개.
그냥 대충 쓴 듯한 곡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익명이구만.”
곡은 대충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디 작곡이라고는 하나, 심혈을 기울여 디테일을 잡은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참 희한해.”
이런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인가, 아주 가끔가다 퀄리티가 상당한 곡이 올라오곤 했다.
서정적인 분위기부터 가슴을 찌르고 젓고 흔드는 듯한 파괴적인 곡까지 가지각색으로 말이다.
얼핏 보면 제각각 다른 사람이 올린 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박현석은 확신했다.
그것들은, 한 사람이 만든 곡이다.
그리고, 아마추어가 작업한 게 아니다.
딸칵- 딸칵-
박현석은 곡을 다운로드했다.
몇 년 전부터의 습관이었다.
익명의 작곡가는 이번에도 조회수로 간을 보고,
가차 없이 곡을 지워버릴 것이다.
“흠 ….”
박현석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서, 음악에 집중했다.
둥둥둥-
완벽하게 조화로운 드럼 킥이 귀를 때린다.
모던 팝 스타일의 피아노 연주와 조화되는 베이스가, 너무나도 감미롭게 느껴진다.
둥둥둥-!
전문가, 아니 ‘노장’이라 칭해도 손색없을 만한 솜씨가 묻어나는 멜로디 진행.
시간과 재능이 쏟아 부어져 있었음에도, 암흑세계에 머무르는 곡.
아까웠다.
이게 세상에 나오지 않고 묻혀버리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저명한 작곡가가 ‘취미 삼아’ 만들어 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명성에 해가 가지 않도록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방법은 많지 않은가.
차명을 써도 됐지 않는가.
왜 삭제를 하는 것인가.
차라리 그냥 나한테 주지.
너무나도,
정말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과 비례 되어 귀에 환희가 몰아쳤다.
쿵쿵쿵-!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의자에 진동까지 …!
“박작곡가니이이이임!”
“으아아악! 시발 뭐야!”
박현석은 귀를 덮고 있던 헤드폰을 급히 벗어던졌다.
그리고 목청껏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어우! 뭐! 뭐! 왜!”
“예?!”
“왜 왔어!”
눈을 떠보니, 빨기좌가 있었다.
“와, hd600을 그냥 던지시네. 저 주시지.”
“허억… 허억.”
후다닥 헤드폰을 주워들어서 상태를 확인하는 꼬맹이.
박현석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했다.
“집에 안 가니…? 좀 있으면 12시인데?”
“어제오늘 일이 좀 많았어요. 들으면 놀라실걸요? 아, 근데 락 페스티벌 안부부터 묻는 게 먼저 아니에요?”
“그럴 거면 바로 찾아와야지. 이틀이 지났는데.”
“아.”
“그래서 락 페스티벌 잘 마쳤고?”
“잘 마쳤죠.”
갑작스런 방문객의 등장.
정말 생뚱맞았다.
그리고 동시에, 불안감이 몰려왔다.
“서, 설마 이번에도 기타 망가뜨렸니?”
“아… 그게….”
“진짜?”
“아뇨아뇨. 안 망가뜨렸어요.”
산 지 이제 반년 된 기타가 이리 굴려지고 저리 굴려지고 아주 생난리도 아니더만.
이번에는 안 망가졌구나…!
“참 다행이네….”
“그쵸?”
“그래서, 왜 왔어?”
“아, 그게요.”
수재는 잠시 말을 끊은 다음, 가방에서 종이 뭉텅이를 꺼내어 가게 안쪽을 가리켰다.
“곡 좀 들려 드릴게요.”
“곡 …?”
“옙. 신곡이에요.”
“오호.”
그 사이에 곡까지 다 쓰고.
유명세를 얻었다고 해서 나태해지지는 않았구나.
박현석은 괜스레 이유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한번 들어볼까….”
장비 세팅은 딱히 오래 걸리지 않았다.
3분쯤 지났을까, 기타가 꽂힌 트윈 리버브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멜로디….
멜로디.
박현석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온몸에 바늘이 박히는 듯한 전율을 맞닥뜨렸다.
“….”
머릿속에, 기암절벽이 그려졌다.
이상하리만치 규칙적인 각을 가진 바위가, 산을 이루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산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허어 ….”
숨을 들이켜고 내쉬자, 비릿한 물 냄새와 침엽수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자신은 분명 지금 악기 창고에 있을 터인데.
후각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냄새가, 현실과 맞아떨어지질 않았다.
그 이유는 …
카아앙-!
수재의 연주 때문이었다.
멜로디 때문이었다.
“너 … 너.”
박현석은 소리를 내지르려다가 이내 참았다.
자신이 소리를 지르면, 지금 귀에 들리는 이 멜로디가 끊길 테니까.
그게 너무 아쉬우니까.
드르르르륵-!
멜로디의 진행이 완벽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하지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정녕 눈앞에 있는 소년이, 이 곡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놀라셨죠?”
“놀라고 말고… 너 언제 그만한 곡을 ….”
“아쉽게도 제가 쓴 건 아니에요.”
“뭐 …?”
“그게 말이죠 ….”
수재의 표정은 굳었다가 풀렸다가를 수 없이 반복했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 … 설명하려면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여튼, 박 작곡가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 뭘?”
“절 괴롭히려고 한 사람이 이 곡을 주는 대신 봐달라고 하면요.”
“누가 널 괴롭힌다는 거야?”
“예시가 그렇다는 거죠.”
“괴롭힘의 정도는?”
“업계 매장급?”
“어우야.”
뭔 소리를 하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잘 알 수는 없었지만 …
“이 정도 퀄리티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란 거지?”
“예.”
“근데 이젠 네가 약점을 잡은 거고?”
“넵.”
“넌 이 사람 곡이 필요하냐?”
“아… 그 대회 같은 거 하나 한다던데. 거기에 쓰게요.”
“한 세 개만 더 만들어 달라고 해봐.”
“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