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85
192화. 가랑비와 안개의 작곡가, 레드 제플린 (2)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는 이게 대체 뭔 개소리인가 싶었는데, 살다 보니까 완전 개소리는 또 아닌 것 같더라.
위기에 무조건 기회가 붙어 오리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같이 붙어왔다.
뭔가를 뜯어먹을 기회 말이다!
꿀꺽.
황 프로듀서의 침 넘기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달달달달.
최주임이 아주 거슬리게 이와 이를 부딪친다.
타타타탁-!
그리고 나는, 거침없이 키보드질을 했다.
– 자, 이제 나한테 뭔갈 좀 베풀어야 하겠지? 사제지간이라며? 그 둘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그냥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날 건드렸으니, 마땅한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남을 죽이려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하라지 않는가.
상대는 과연 그런 각오가 되어 있을까?
“흐흐흐흐.”
“수재씨.”
“네?”
“표정이 악당 같으세요.”
“악당은 악당이 상대해야죠.”
“멋진 악당 같아요!”
“고맙습니다!”
호구같이 당할 수만은 없잖아.
암!
– 빨리 대답하라고.
기타는 이미 불구덩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경청’하는 자세가 드디어 갖춰진 것이다.
휙, 휙!
공유 화면을 비추는 카메라가 이리저리 회전했다.
그리고, 지금껏 ox 대답을 고집하던 놈이,
– 무엇을 원해요?
처음으로 채팅을 쳤다.
“오오오!”
“대답이 돌아왔어요!”
이제 시작이다.
최대한 많은 것을 뜯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조금 전의 대답으로 나는 …
– 꼬리 자르기는 안 하려는 모양이군.
아까 만났던 예고생 둘과 화면 너머의 저 인간이,
나름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 안 해요.
– 그래. 나도 우선 경찰에 연락은 안 할게.
– 조건은?
– 제시.
“…!”
“수재씨 …?”
협상을 하는 방법.
그리고, 상대를 빡치게 하는 방법.
그것은 바로 … ‘제시’다!
“전 이 사람이 뭘 해줄 수 있을지를 모르거든요.”
“….”
“그러므로 우선 역량파악을 해야겠죠.”
“아하!”
기타 수집가, 작곡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돈이 좀 많아 보이는데.
합의금을 부르지 않을까?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내,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현금도 별로 없어요.
내빼기가 들어왔다.
자신을 협박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 많은 걸 요구하는 게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적정선을 물어보는 거야.
– 돈을 원해요?
– 돈도 좋고. 현물도 좋고.
– 기타는 많아요. 그치만 돈이나 기타를 바로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허, 참.”
나는 혀를 찼다.
상대의 반응이 당당함을 넘어 뻔뻔했기 때문이다.
– 그게 말이 되나?
– 사정이 있어요.
– 사정?
– 잠시만요.
협상 도중에 자리까지 비우고.
“그냥 신고할까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죠.”
옆에서 나와 같이 분노해주는 직원들.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부처가 된 기분으로 상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직접 줄 수는 없어요.
– 그게 대체 뭔 소리야?
– 저는 작곡가고, 돈이 없기도 하고, 필요도 없거든요.
– 돈벌이를 못 하는 상태라는 건가?
– 돈벌이를 하긴 하는데, 그게 제 수중에 들어오지는 않아요.
머리에 슬슬 피가 쏠린다.
친히 피해자께서 협상을 해준다는데, 뭐가 안 되는 게 이렇게 많아.
캠에 비치는 거 보니까 창고도 있고 문밖에 마당도 있고 집 존나 좋아 보이는구만.
나는 후우,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서 마지막으로, 인내심을 단전에서 끌어내어 채팅을 쳤다.
– 나에게 뭘 줄 수 있지?
피해자가 직접 뭘 해줄 수 있냐며 묻는 꼴이라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 레드 제플린 좋아하세요?
씨발 더욱 답답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대화야 ….”
생각을 잘못했던 것 같다.
그냥 경찰에 신고를 먼저 한 다음에, 범인을 잡아서 합의금을 요구했으면 더욱 편했을 거 같다.
괜히 시간만 낭비한 꼴이 돼버렸다.
– 그래 좋아한다. 좋아해. 뭐 레드 제플린 앨범 1집 초회 판이라도 주려고?
– 있어요.
“… 어?”
– … 준다고?
– 당신이 원한다면.
“수, 수재씨?”
“잠깐만요.”
– 뿐만 아니라 레드제플린의 초회판 앨범은 다 갖고 있어요. 사인이 들어간 걸로요. 제가 레드 제플린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 … 그 부분은 나랑 마음이 맞네.
뭐, 기타를 수집한다고 하니까.
일렉기타를 치거나 락을 들어본 사람 중에 레드 제플린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다만,
“진짜 수집가긴 하구나.”
사인, 초회판 앨범이라니.
감탄스럽긴 했다.
– 다만, 앨범을 드리는 것보다 더욱 좋은 제안이 있어요.
– 좋은 제안?
– 당신의 명성이 더욱 비대해질지도 모르는 제안, 레드제플린 초회판을 가질 수 있는 제안, 10만 파운드를 가질 수 있는 제안.
– 합의금으로 적당하구만.
– 당신이 가질 수도 있죠.
– 가질 ‘수도’ 있다고?
– 제가 당장 드릴 수 있는 건 그 곡뿐이에요.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서, 아까 받은 PDF 파일을 멍하니 주시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금전적 값어치가 없어 보이지는 않아요.”
황 프로듀서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긴 뭐.
이 곡으로 앨범을 만들고, 수익을 내가 다 먹어버린다면.
이득을 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 기분이 나쁘네.
– 죄송해요. 계획이 조금 틀어져 버렸네요. 하지만 상관은 없어요. 원래 하려고 했던 거니까요.
이러나저러나 당신은 그 곡을 연주하게 될 거고, 제가 위에 나열한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있겠죠.
– 뭔 일을 벌이려는 거지?
– 당신은 기타를 좋아하나요?
또다시 뜬구름 잡는 듯한 대화가 시작됐다.
– 좋아해.
– 레드 제플린을 좋아하시나요?
– 좋아해.
– 지미 페이지를 좋아하시나요?
– 좋아해.
– 나도요.
어쩌라는 거야.
– 하지만 말이죠, 황금 같은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는걸요. 그리고 그 황금 같은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기타를 잡는 시대가 왔어요.
“….”
– 저는 문뜩, 지나가 버린 시대를 그리워하고만 있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대한 기타리스트가 이 세상에 등장한다면, 곧바로 황금 같은 시대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위대한 지미 페이지의 뒤를 잇는 위대한 기타리스트가 등장한다면 말이에요.
“….”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OX 퀴즈로 대답할 때에는 아주 나무늘보같이 느리더니만, 이번엔 타자가 그냥 존나 빠르다.
꼭, 한국인이 치고 있는 것만 같다.
– 당신은, 당신이 미래에 ‘세계 1위’ 기타리스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 세계 1위?
– 예.
나는 아주 잠깐 동안 고민을 했다.
합의금 얘기를 하다가 어떻게 대화가 여기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는데.
대답을 안 하기는 좀 뭐하고.
뭐라 입을 털지 좀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 지미 페이지 이야기가 나와서 간단히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 아니.
– 하하하.
내가 세계 1위 기타리스트가 된다?
불가능하다.
이미 세계 1위의 자리는 정해져 있으니까.
– 2위는요?
– 그것도 안 되지.
2위도 정해져 있었다.
– 3위는요?
– 그만 물어.
– 알았어요. 그럼 질문을 좀 바꿀게요. 만약, ‘젊은’ 기타리스트들을 모아놓고 벌이는 ‘세계적인’경쟁에서 당신은 1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
“이건 … 또 무슨 ….”
“그런 대회가 있나요?”
“실용음악 대회가 없진 않은데요….”
애초에 실용음악은 곧 상용 음악이다.
만들어 팔 수 있는 음악을 공부하는 학문이란 말이다.
그렇기에, 전 세계를 아우르는 권위적인 대회는 전무했다.
일렉기타의 실력을 겨루는 대회는 커봤자 아시아, 유럽, 북미 등의 ‘지역권’이 한계라 매우 국지적이었다.
하지만,
– 불가능하진 않지.
만약 가능성의 여부를 묻는 것이라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1위를 할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자만감인가?
아니, 자신감이다!
–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 ?
– 당신은 이미 세계대회 우승 경력이 있더군요. 1위로요.
– 맞아.
– 하지만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죠? 각국의 탑 클래스들이 모인 건 아니잖아요?
뼈를 때리네.
사실은 사실이었다.
당장 옆 나라 일본 참가자만 해도 후보정빨 SNS 스타가 떡하니 대표로 출전했으니까.
– 하지만, 만약 상금이 10만 파운드라면?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만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있다면?
– 뭘 말하고 싶은 거야.
– 저는 다음 세대의 정상급 기타리스트를 보고 싶어요. 가능한 한 빨리요.
– ?
– 당신의 기타를 돌려 드릴게요, 그리고, 그 곡을 드릴게요. 반드시 쓸 일이 있을 거예요.
– 합의금을 곡으로 퉁치려는 건 좀 그런데.
– 대답은 이틀 뒤에 들려주세요. 그때 다시 협상해요.
– ??????????
– 생각이 바뀌실 거예요.
– 아니 애초에 아까 그 g3 참가 자격 획득은 또 뭐야?
– 그것도 알게 되실 거예요.
뚝-
연결이 끊겼다.
공유되던 화면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
“….”
“참나.”
정말로 폭풍 같은 하루였다.
그냥 적당히 뒤풀이하고 휴식도 하고.
도움받았던 사람들한테 감사하다고 인사도 돌리고.
한 주 동안 그렇게 지내고 싶었는데.
뭔 일이 갑자기 또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
“수재씨….”
“이 곡 인쇄 가능할까요?”
“아 … 네. 근데 ….”
“기다리라니까 기다려 보죠.”
뭔가, 맥이 빠지는 대화를 해서 그런지 몸에 힘이 동나버렸다.
화가 나야 정상인데,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황 프로듀서가 뽑아준 악보와 파일이 담긴 USB를 받아들었다.
“얼마나 좋은 곡인지 확인은 해봐야겠네요.”
“괜찮으세요…?”
“뭐, 사실상 제가 입은 손해는 하나도 없으니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모레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갔다.
10대의 체력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무거운 몸을 이끌며,
“영국 작곡가, 레드제플린, g3 ….”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정보를 입으로 읊으며 말이다.
“참나.”
다음날, 나는 평소와 똑같이 학교에 갔다.
평소와 같이 친구들이랑 노가리를 까고, 아침조회 시간이 되어 자리에 앉고.
근데,
“자, 자. 폭풍이 지나갔네~ 지나갔어~ 근데 다음 달 4일부터 중간고사인 거 알지?”
“으아아아아악! 더욱 거대한 폭풍이다!”
“비명 지르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두면 대학 가는 데 다 도움이 되는 거야. 아, 그리고 대회 정보가 오늘따라 많이 왔네~ 참가할 사람은 빨리빨리 교무실로 와서 접수하고!”
휙, 휙,
앞자리부터 유인물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렉기타 전공생들 앞으로!”
채선생님이 꽥 소리를 질렀다.
“뭔 일임?”
“뭐예요?”
“쌤! 일렉기타만요?”
“일렉기타만!”
나, 소이, 김태현, 기타 등등 애들이 일어나 교탁으로 나선다.
그리고,
“이거 아침 일찍 도착한 건데 … 잘 생각해 보고 선생님한테 말해줘야 한다?”
“네?”
“왜, 기타 콩쿠르는 보통 클래식 기타나 어쿠스틱 기타만 하잖아. 근데 이번에 영국에서 ….”
영국.
영국 …?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영어 원문 위에 누군가 덮어쓴 듯한 한국어 해설본을 읽어내려갔다.
World – London electric guitar competition
세계 – 런던 일렉트릭 기타 경연대회
참가자격 : 15-21세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
…상금 : 10만 파운드(한화 약 1억 5천만 원), g3 참가 자격.
“월드 컴페티션?”
“일렉기타밖에 못 나가는 거예요?!”
“뭐야뭐야~”
“이런 것도 있어?”
“올해 처음이래! 선생님도 상금 보고서 장난인 줄 알았는데 전화로 확인해 보니까 ….”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어제 있었던 폭풍 같은 사건과, 지금 내 손에 들린 똥 종이에 적힌 문장들이,
각각의 톱니바퀴가 되어 맞물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재야.”
“… 응?”
“G3 자격을 준대.”
소이는 10만 파운드보다 거기에 관심이 있구나.
G3 대단하지.
조 새트리아니랑 스티브 바이랑 같이 무대에 설 수 있 …
근데 가만있어봐.
“지금 9월인데?”
“그게 왜?”
“아니 g3는 벌써 지나가도 한참 전에 지나갔…”
나는 전생의 기억을 되짚었다.
기타로 밥 벌어먹고 살았던 이상, g3를 모를 수는 없다.
일렉기타리스트에게 있어서 g3에 참가하여 공연을 한다는 것은, 피아노 연주자가 쇼팽 콩쿠르에서 수상 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니까 말이다.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켜서 g3에 대해 검색했다.
“이거 왜 이러냐.”
그리고, 이상함을 감지했다.
2016년 7월 중에 이탈리아, 독일에서 열렸어야 하는 g3 투어는,
G3(2016) – Postponed. Performance scheduled for this year.
“연기 … 됐네?”
“응! 이 대회 때문이었나 봐!”
최소되어 있었다.
연기되어 있었다.
“… 어?”
세계의 미래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