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89
196화. 장비충의 무덤 (2)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리고, 대회를 향한 ‘열기’ 또한 같이 올라갔다.
발표와 예선 사이의 간격은 약 한 달.
그사이에 잡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번 대회는 정말 모든 것이 불친절했기 때문이다.
정보 공개, 티켓팅, 안내사항 등등 모조리 말이다.
하지만,
-1차 예선장 안내
(올림픽 공원 올림픽홀)
10월 23일, 24일
오전 10시 개장
-그 모든 불만을 날려버릴 만한, 확실한 성능이 보장된 ‘환경’이 존재했다.
“와 ….”
“1차 예선을 올림픽공원에서 ….”
아무리 화제가 되었다곤 해도 너무 급발진인 게 아닐까?
인터넷 여론이랑 실제 여론이랑 따로 노는 경우가 정말로 많은데.
손해 엄청 입는 거 아니야?
뭐, 결국 기우였다.
매진됐단다.
표가 다 팔려버렸단다.
쓸데없는 걱정은 이미 저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참가자들은, 분에 넘치는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었다.
“어? 상가엔 왜 들어가?”
“확인 좀 해보려고. 이야, 미어터진다 터져.”
그리고, 우리는 진정한 ‘첫 번째 관문’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개인 장비 사용금지’라는 엄청난 뒤통수를 맞고, 그리고 또 …
– W-legc 한국 예선의 그 기타!
10분 무료 시연 가능!
– 에피폰 레스폴 전 연식
구비 완료.
대여 문의 02-3512-….
– 예선장 규정 충족해 두었읍니다.
1시간 시연 3만 원 ….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눈치 못 챌, 함정까지 파악하고.
“다들 예선 기타 얘기밖에 안 하네….”
“저 사람들이 다 예선 나오는 거지?”
“아마도 그럴걸?”
10월 21일 금요일.
1차 예선이 시작되기까지 이틀 전.
그리고, 우리가 예선을 치르기 사흘 전.
나를 포함한 소이, 최유진, 혁오, 하민서
기타 오인방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낙원 상가로 향했다.
수요일 저녁 즈음 공개된, 매우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정보 때문이다.
-개인 장비 사용 금지-
기껏 구성해둔 장비를 못 쓴다니.
이렇게 불합리할 수가 있을까.
원래 음악 관련 대회는 피아노 같은 걸 제외하고 장비는 제각각 갖다 쓰는 게 관례인데.
손에 익은 물건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데.
불만이 폭증했지만, 주최 측에서 그걸 들어주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자력구제의 방안이 마련되었다.
“어이~ 거기 학생들도 예선 나가지?”
“기타 많~ 다! 빨리 와서 쳐봐야 적응을 하지!”
점점점 한산해져만 가던 낙원상가는 잠깐동안 활기를 되찾았다.
예선에서 쓰이는 기타를 만져보려, 참가자들의 행렬이 이어진 것이다!
“사진 보니까 예선 이틀 차는 에피폰 레스폴 스탠다드야. 준비 다~ 해놨다.”
“아이바네즈 젬도 있어!”
“제, 제가 들어갈게요!”
“어서 와 학생!”
“저도요!”
그리고, 기타 대여업이 순식간에 성행했다.
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상인들은 판매가의 두 배를 올려받으며 폭리를 취했다.
그리고, 예선 참가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순순히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첫 일 차는 아이바네즈의 스티브바이 시그니쳐처럼 보이는 기타.
이틀 차는 에피폰 레스폴 스탠다드 처럼 보이는 기타.
어느 쪽이든 간에, 만져는 봐야 조금이라도 유리하지 않겠는가.
다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둘 다 아니니까.
두 기타는, 놓여 있지도 않을 테니까.
“쟤네 돈 없나 봐.”
악기점으로 들어가던 참가자 무리가 나와 떨어져 있던 친구들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누군데?”
“유산고.”
“아~ 걔네들?”
“지금 안 쳐보면 후회할 텐데?”
“빨기좌도 안 쳐보면 떨어질걸!?”
“하하하하하!”
“빨기좌는 어딨대?”
“몰라~”
못 보던 얼굴들이다.
나랑 같은 대회에 안 나왔었나?
아니면 대학생인가?
존나 자신만만하네.
씩씩거리던 혁오는 간신히 분을 삭이려는 모양새였다.
“개극혐이네 진짜.”
“냅둬라. 다 자기한테 돌아간다.”
“에휴.”
“됐어~ 빨리 가기나 하자.”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낙원 상가를 둘러보았다.
“근데 왜 자기 장비를 못 쓰게 할까?”
그리고 문뜩, 하민서가 턱을 괴며 의문을 토했다.
“응?”
“글쎄….”
“일렉기타는 장비 비중이 커서 그런 거 아니냐.”
“그게 왜?”
“돈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
“아.”
“….”
이번 생의 나는 첫 대회를 콜트로 치렀다.
G290같은 좋은 기타가 아닌, 그야말로 단가를 맞추기 위해 ‘가격만 싼’ 기타로 말이다.
“실력이 똑같아도 방구 소리가 나면 불리하잖아.”
“그건 그렇지.”
“흠….”
경연 대회는 테크닉의 각축장이 아니다.
심사위원은 테크닉 외 순수한 ‘소리의 퀄리티’도 같이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좋은 장비’일수록 좋은 소리가 난다는 거다.
연주자의 자본력에 따라서 유불리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 연구를 참 많이 한 모양이네.”
“응?”
“아니야.”
우리는 낙원상가를 빠져나왔다.
혹시나 싶어 들렸던 낙원상가는 정말 예상대로의 풍경이었다.
불나방처럼 몰린 저들은, 남은 이틀 동안 아이바네즈 스티브바이 시그니쳐나 에피폰 레스폴 스탠다드를 신나게 쳐볼 것이다.
넥감, 소리에 적응하려 할 것이다.
돈을 써서.
장비충의 면모를 뽐내면서.
하지만,
그래서는 의미가 없지.
“… 여긴….”
“어서 오시게. 연금술사의 집에.”
“연금술사?”
“악기점인데?”
“갑자기 뭐여.”
“….”
“2000년대 한국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
“아 또 그 소리야!”
낙원상가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
햇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창이 검게 칠해져 있는, 코딱지만 한 간판이 달린 건물.
윤대혁 선배가 사랑하는, 헤드가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버린 레스폴을 초강력 목공본드로 붙여 팔아먹는 자랑스러운 악기점!
“계십니까~”
타타뮤직이었다.
“아그 왔써? 아니 아그가 아니라 아그들이 왔네? ”
충남인지 전북인지 구별이 안 가는 사투리를 구사하는 백발의 노옹이 우리를 반겼다.
본드의 연금술사였다.
“여기야?”
“우와 ….”
“어여 들어와. 오느라 힘들었제?”
할아버지는 사람 좋은 얼굴로 손짓했다.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친구들은, 그 손짓에 순순히 이끌렸다.
그리고 지하실로 내려가자마자,
“헤엑!”
감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기타 엄청 많다 …!”
“와 … 이게 다 뭐냐.”
“고, 고물밖에 없….”
“쉿!”
조금 다른 의미의 감탄을 말이다.
“어제 대혁이가 기타 꼭 찾아 놓고 줄도 갈아놓으래서 아주 기냥 쌔빠지게 고생했지 뭐여~ 노인네를 아주 야무지게 부려 먹어서 아그가 참 아무져~”
“감사합니다!”
“그려그려. 내가 그 양심이 있지 저 기타는 못 팔것다~ 싶어서~ 그냥 구석에 박아뒀는디, 예전에는 많이들 당했지 흐허허허.”
“흐흐흐흐흐.”
“많이 … 당해?”
“흐흐흐.”
2000년대 한국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이전,
‘뮬’이라는 사이트가 있는지도 모르던 시절.
입문자나 초보자들은 동네 악기점에서 기타를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악덕 사장들의 아주 좋은 먹이가 됐다.
“깁슨이 말이야, 엄청 유명하잖아?”
나는 구석에 처박혀 있는 물수건으로 대충 닦은 듯한 레스폴을 잡아들었다.
헤드에는 epiphone 이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어 … 응.”
“슬래시도 쓰고.”
“근데 비싸잖아?”
“비싸지! 스튜디오도 비싸!”
“그래서 그 대안이 에피폰이란 말이야.”
“응.”
“다 아는 거잖아?”
깁슨을 사고 싶지만, 총알이 모자란 기타키드를 위한 대안.
에피폰.
그리고 그 에피폰을 구매하려던 자들을 등쳐먹으려는 …
“너희들 눈엔 이게 아직 에피폰으로 보여?”
“응 …?”
사기꾼들.
“이게 우리가 쓸 기타야. 잘 들어봐.”
나는 기타를 잡아들고, 구석에 처박힌 ‘rocker’ 저가 앰프에 연결했다.
그리고, 부들부들한 새 줄을 튕겼다.
띠위이이으ㅜ이잉-!
“어으!”
“뭐야!”
정말로 이상한 소리였다.
뭐랄까, 험버커인데 딱히 험버커 같지는 않은.
소리가 텅텅 빈 데다가 중심도 안 잡혀 있고 엄청나게 날리는 듯한…
‘방구’ 같은 소리랄까?
20만 원, 아니 10만 원짜리 기타도 이런 소리는 안 날 거다.
이건 정말로 …
“어떠냐?”
“뭐, 뭐야 이거!?”
“갸아아아아악!”
쓰레기 그 자체였다.
“흐흐흐흐. 아그들은 거, 전공생이니까 기타를 비싼 것만 써봤을 거여~”
“….”
“근데 말이여, 일렉기타란게 사실 납땜기랑 자석이랑 전선이랑 나뭇덩이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거란 말여?”
“….”
“거 초보자 때는! 소리도 자알 모르고 허니께 대충 이름있는 브랜드 갖다 대갈빡에 붙여 놓으면 속을 수밖에 없셔~”
“….”
“어어어엄~ 청 많이 팔렸지~ 암~”
2000년대.
에피폰으로 둔갑한 중국산 싸구려 레스폴은, 그야말로 폭풍처럼 팔려나갔다.
무려 ‘제값’으로 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자신의 기타가 에피폰인 줄 알고 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놀랐냐?”
망치로 머리를 다섯 대 정도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짓는 친구들.
“어떻게 알았어?”
“일련번호가 달라.”
“그것뿐이야!?”
그리고 전생에 낚인 새끼가 있었어.
민수는 정말 븅신이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예선의 진짜 목적이지.”
“이게 …?”
“대회를 주최한 사람은 ‘돈’이 연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생각인 거야.”
에피폰의 레스폴과 아이바네즈 젬 같아 보이는 흐릿한 사진을 선공개한 이유?
선공개 하면 써볼 거 아니야.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또 쓸 거 아니야.
그럼 당연히 돈이 있는 사람이 유리할 테고.
근데,
“뒤통수를 두 번 때리는 거지. 에피폰인 줄 알았는데, 사실 중국산 짝퉁이었습니다~”
“아 아니 그래도 도장 같은 건 괜찮아 보이는데 ….”
“이거 뭘로 만든 건데?”
“톱밥.”
“으, 응?”
“아니면 웨하스.”
한탕 잘 속여서 팔아먹고 도망갈 건데 제대로 된 나무를 쓸 리가 없다.
이 기타는 톱밥 혹은 정체불명의 웨하스 합판과
중국에서 대충 5000원 즈음에 팔리는 픽업과
카피 하드웨어로 이루어졌다.
도장은 우레탄 잔뜩 발라서 예쁘게 잘 칠해놓고,
메이플 탑은 비니어시트지로 올려놓고.
“자, 대륙의 기상을 느껴봐!”
친구들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기타를 잡아들었다.
그리고 짜기라도 한 듯 돌아가며 충격적인 듯한 표정을 연신 지어냈다.
톱밥과 싸구려 부품으로 만들어낸 기타의 소리.
그리고 ‘대회 공식 이펙터’의 이질적인 디지털 냄새나는 소리.
그 모든 것들이, 귀를 유린했다.
“아… 아아….”
“우,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이게 기타야?”
“기타야.”
“….”
“장작도 … 기타인 거야!”
나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연주자의 손가락을 날려버릴 듯이 날카로운 프렛을 짚어나갔다.
“우리는 똥으로 금을 만들어내야 해.”
“어떻게?”
“나한테 방법이 있는데….”
***
‘장인은 장비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경지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탓하지 굳이 장비를 탓하지 않는다는, 초보자들을 타이르는 듯한 격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누군가는 이걸 기분 나쁘다 느낀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격언 자체에 어폐가 존재하니까.
장인은 이미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으니까.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장비’가 가져다주는 이점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게 팩트니까.
“다들 놀라겠지요.”
“놀라고 말고요, 암요.”
F1, motogp같은 모터스포츠는 ’잘 만드는 회사’의 차량을 타는 게 아주 중요하다.
타는 이가 엔진 그 자체인 사이클 대회도 두말할 필요 없다.
다른 스포츠 분야도 영향이 심하든 심하지 않든 간에 똑같다!
장비 사용자의 역량이 뛰어날수록, ‘장비’가 가지는 중요성은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
“이거 만드는데 3만 원은 들어갔을까요.”
“하하하하!”
‘음악’이라는 분야 또한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니까 … 한 2만 원쯤 예상해 봅니다.”
“이야, 예전에 학생들이 많이 사 왔죠. 아는 사람도 한번 당했었고요.”
“첫날 예선 치르는 사람은 운이 좋은 거죠~ 그래도 그건 열심히 만든 ‘기타’잖아요!”
노을이 내리쬐는 올림픽 공원 올림픽 홀의 입구.
자판기 커피를 손에 쥔 중년 남성들은, 반가운 얼굴을 마주 보며 하하 호호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
원래 한국 음악계는 좁다.
그리고 ‘기타’를 다루는 전문가들의 풀은 더 좁다.
거기에 50이 넘도록 살아남은 이들은 아주 그냥 희소종이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
삶을 ‘기타’에 쏟아부은, 얼굴을 보기만 해도 동질감이 느껴지는,
기타의 노장들.
“가와사미라 ….”
“어딜 감히 아이바네즈를! 우리 때는 그냥…!”
“흐흐흐허허!”
나숙호는 껄껄 웃으며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웃음바다였다.
이 모든 것은 국제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기 하루 전에 걸려온 전화 덕분이다.
‘심사의원’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나숙호는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의지가 느껴졌으니까.
신세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이 통했으니까.
제안을 건넨 자의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은,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와, 기타 키드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대회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미칠 것 같다 미칠 것 같아.”
“김선생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내일은 뭐, 애들이 그럭저럭 납득할 수는 있을 텐데, 모레가 진국이에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짓궂어~”
지금껏 훌륭한 음악환경을 누리던 아이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혼란스러워 할까?
현실을 부정할까?
첫날과 비견되는 차별 대우에 역정을 낼까?
“아, 나선생 제자는 요즘 어떻대요?”
“수재요?”
“톤메이킹 엄~ 청나게 고심했을 텐데 말이에요.”
“물거품이구만.”
“하하하하.”
나숙호는 뚜벅뚜벅, 올림픽 홀의 입구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거대한 돔 형태의 건물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렇겠죠. 그래서 그냥 저는 입 꾹 다물고 열심히 하라고만 했어요.”
“아무리 빨기좌라도 힘들 거야~”
“혹시 몰라요. 천상의 소리를 들려줄지.”
“2만 원짜리로?”
“하하하하하!”
세련된 현대식 디자인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사뭇 달리 보였다.
“무덤 … 이구만.”
저것은, 무덤이었다.
돈과 장비에 의지하던,
그러면서 자신을 과대평가하던,
가진 자의 무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