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90
197화. 장비충의 무덤 (3)
“네! 지금 저는 올림픽 공원에 나와 있습니다. 예선이 열리는 올림픽홀 앞은 인산인해가….”
10월 23일 일요일 오전 9시 30분.
평소에도 방문객이 많은 올림픽 공원에는 오늘따라 더더욱 사람이 몰려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전이, 드디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판매된 예선의 티켓 가격은 무려 55,000원! 유명 가수들의 공연 관람료와 맞먹는데요 …”
“온라인 티켓은 현장에서 교환하셔야합니다아아악!”
“그냥 못 들어가셔요!”
“보시다시피 엄청난 … 꺄악!”
참가자, 진행 스태프, 관객, 취재하러 온 뉴스 캐스터 등등
모두가, 혼란 속에서 아우성을 쳐댔다.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공연장에 밀고 들어가고 싶어하는 관객들,
아무런 장비도 가져오지 못한 채, 그저 덜덜덜덜 떨리는 손만을 부여잡고 인파의 물결에 몸을 맡긴 참가자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
“잠시 인터뷰 괜찮으실까요?”
한 중년 남성.
“… 예? 저요?”
“혹시 이번 예선에서 특별히 응원하는 분이 계신가요?”
“응원이라 ….”
서울예대 박덕철 교수는 오늘따라 아주 일찍 잠에서 깼다.
소풍 가는 어린아이가 된 양 기대하고 또 기대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다만,
‘졸라 외롭구만.’
불만 또한 같이 품었다.
막상 같이 가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혼자 쓸쓸히 이곳에 왔다.
“예선 상위권에는 과연 누가 오를까요?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 대학생들이겠지요. ”
15세에서 21세까지.
참가자의 나이 규정은 그랬다.
‘신예’ 중에서 정상을 가려내려는 대회이기에 당연한 조항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19세와 20세의 사이에는 아주 큰 관문이 존재했는데, 바로 ‘입시’다.
이번 대회는, 입시를 통과한 진퉁배기 전공생들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 ‘대학생’ 중에서도 국내 탑인 서울예대생이 상위권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세히 알고 계시는군요!”
“제가 서울예대 교수니까요.”
“아… 네?!”
“뭐라고?!”
“서울 예대 교수라고!?”
우르르르르-!
흩어져 있던 기자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동시에 박덕철은, 좆됐음을 짐작했다.
“교수님! 예선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선 규정 중 ‘개인 장비 사용금지’ 조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괜히 입을 놀렸나 보다.
참가자 중에는 자신의 학생들도 있으니 그냥 몰래몰래 둘러보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심사위원’으로 뽑힌 이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았었는데.
엄청난 어그로가 끌려버렸다!
그래서,
그냥 질러버렸다.
“잘 모르겠고, 1등은 빨기좌가 할 겁니다.”
“네 …!?”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현물 티켓으로 빨리 교환하셔야 합니다!”
증원된 스태프들이 티켓 발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었던 박덕철은 재빨리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서, 서울예대 교수님이! 빨기좌를 언급했습니다!”
“당연히 서울예대 학생을 지목할 거라 생각했는데 …!”
“SBC 뉴스 … 이소현이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교수씩이나 돼서 허풍을 떠벌리고 다닐 수는 없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자신의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지만 …
‘1위는 못 할 거야.’
상위권은 가능하더라도, 1위는 힘들 것이다.
아무리 지옥 같은 입시생활을 통과했더라도, 이미 실력 증명을 마쳤더라도.
위에는 위가 있으니까.
날고 기는 전공생들 위에 있는 존재.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빨기좌’였다.
“오오오오오!”
“엄청 넓다!”
“….”
올림픽 홀에 들어가자, 중앙에 설치된 무대가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마치 미국 TV 오디션 무대 같은 디자인이라고나 할까.
심사위원석은 총 다섯 자리.
‘다 아는’ 사람들이 앉을 예정인, 다섯 자리.
“준비는 진짜 잘했네.”
박덕철은 순수한 감탄을 토했다.
정말 모든 것이 불친절한 대회였지만, 뭐.
이 정도 환경이라면.
기타리스트를 위해 이 정도까지 준비했다면.
쌓여 있는 불만 정도야, 한순간에 씻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에피폰과 아이바네즈로 기타가 제한되어 있긴 하지만,
상관없지 않은가.
두 메이커가 이상한 메이커도 아니고.
심지어 락 페스티벌에 스콰이어를 들고나온 놈도 있었는데.
띠리리링-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전화가 걸려왔다.
안도하고 있는 틈을 타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이,
“여보세요?”
– 교수니니이임!
전화 너머의 제자가 울부짖었다.
1학년 과대표를 맡던 묵묵하고 침착하던 녀석의 목소리는, 마치 호환을 당하기 일보 직전의 비명처럼 들렸다.
“무슨 일이야?!”
– 그, 그게 … 기타가…! 기타가!
“뭐?”
– 아이바네즈가 아니에요! 스티브바이 시그니쳐가 아니었어요!
“그게 무슨….”
바디에 손잡이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기타가 세상에 어디 또 있다고!
양심이 있는 한 그 부분을 베끼는 회사가 있을 리는 …
“이건 …!”
박덕철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온몸에 흐르는 전율을 묵묵히 참아냈다.
자신이 아까부터 불만스런 표정을 짓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비슷한 연배의 동업자들이 심사위원 권유를 받았는데, 자신만 못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료들이 유독 자신과 대화를 피했기 때문에.
소외되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허….”
이제야 의미를 아주 잘 알겠다.
“W-legc 한국 예선의 일일차! 시이이이이작 하겠습니다!”
웅성웅성- 웅성웅성-
예선이 시작되자, 3000명이나 모인 관객들이 커다란 웅성임을 토해냈다.
큰 무대를 앞두고 긴장할 수 있긴 하나, 그 이상으로 참가자들의 몸짓에 자신감이 너무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는거야아악!”
“빨리 연주 들려줘!”
“뭐해!”
“왜 가만히 있어!”
홀 중앙의 무대 구석에서 대기하던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기타를 들고 있었다.
흰색 도장에 금장 하드웨어가 인상적인,
몸통에 손잡이 모양의 구멍이 뚫린,
‘아이바네즈’가 아닌!
“가와사미 ….”
국산 카피 기타를 말이다!
“자, 첫 번째 참가자는 이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던 백석예술대학교 이종서씨! 이야~ 상당히 스트랩을 내려 메는 스타일이 참으로 인상적인데요! 편안함보다는 역시 간지죠! 거센 환호 부탁드립니다아아악!”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평범한 인상의 대학생이 가장 먼저 무대 위에 올랐다.
“이게 아닌데… 왜 이런 걸….”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니 ….”
“큰 소리로 말해주세요!”
“….”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다가, 붉어졌다가.
혈관이 고장 난 듯이 깜박거렸다.
그리고 이내,
“이, 이딴 걸 주면 어떡합니까!”
울분을 토했다.
“왜요? 사진이랑 똑같은 기타잖아요? 여러분은 쓰던 장비 없이, 리허설도 없이! 훌륭한 소리를 들려주셔야 합니다!”
“훌륭한 소리? 이딴 걸로!? 당신들은 우리를 속였어!”
“그거 40만 원이 넘는 거예요!”
“아니!”
“이틀 차가 에피폰인데 여러분한테만 100만 원이 넘는 기타를 줄 리 없잖아요! 하하하하!”
연예인 상의 사회자 남성은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웃어댔다.
그리고,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얼굴들도 웃음을 참느라 생고생을 하는 듯 보였다.
“맞아!”
“니들만 비싼 기타 쓸 줄 알았어!?”
“빨리 쳐!”
“빨리 쳐! 빨리 쳐!”
용기 있는 관객이 불만을 토하자, 다른 관객들도 같이 분위기를 탔다.
벌레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대기자들은 그저 손을 벌벌 떨며, 발치에 놓여 있는 손바닥 두 개만 한 ‘장비’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기타… 는 그렇다 칩시다. 근데 … 하물며 이펙터까지….”
“RP 50. 가난한 기타리스트의 희망이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앰프는 나름 괜찮으니까.”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나숙호가 입을 뗐다.
“….”
“시작하시죠? 톤메이킹 시간은 충분히 드릴게요. 기타랑 이펙터랑 앰프의 노브를 잘 돌려가면서 소리를 만들어 보세요.”
“한 1밀리씩 돌리다 보면 괜찮은 소리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참고로 이펙터는 버튼식입니다~”
“으아아아아!”
참가자들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울부짖음은.
“이건 … 방구톤이군요?”’
“흑… 흑흑.”
거짓말처럼 냄새나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와아아아아아아!”
“기타에서 개 더러운 소리가 난다아아악!”
“하하하하하하!”
땀을 뻘뻘 흘리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참가자들과,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웃고 즐기는 관객들.
“… 재밌네.”
재미있었다.
물론 ‘관객’의 입장에서 말이다.
마치 아이바네즈의 jem시리즈인 것처럼 기타 뒷모습 사진을 찍어 올려놓고, 실상은 가와사미 카피 기타를 가져다 놓다니.
이 얼마나 잔인하기 그지없는 발상일까?
참가자들은, 그야말로 지옥도를 경험하고 있었다.
“소리 … 소리가 너무 안 좋아!”
“마샬 mg30… 트랜지스터….”
“샌드리턴도 없네.”
“앰프는 괜찮죠? 무려 셀레스쳔 골드 12인치를 박아 놨는데 괜찮아야죠!”
“개조할 돈으로 mg100 놔주면 안 됐나요…?”
“아아아암! 어림도 없지!”
저가 연습실용 앰프에, 앰프랑 똑같은 가격의 스피커를 처박아 놓은 괴상한 물건.
기타쟁이들의 추억템 rp50.
입문자들을 연실이 낚던 낚싯대, 가와사미 jem 카피기타.
그야말로, ‘악의’ 없이는 구성할 수 없을 장비 조합이었다.
“빨리 좋은 소리 들려줘어어어어!”
“빨기좌는 그걸로도 그냥 다 씹어먹었을 거야!”
“맞아맞아!”
흩어져 있던 빨기좌 추종자들의 목소리가 한데 모였다.
“아니 이딴 환경이면 아무리 빨기좌라도 ….”
“빨기좌를 모욕하지 마라아아아!”
“닥쳐 기알못새끼들아!”
“니들이 빨기좌를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오늘 일정이 중반 정도에 달했을 즈음, 슬금슬금 관중들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빨기좌라도! 저딴 장비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맞아!”
무대 뒤쪽에서 한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관객 여러분들 조금만 조용히 …!”
“정숙 부탁드립니다!”
스태프들의 만류에도 소용이 없었다.
“참 … 나.”
진짜 개판이구만.
아니 오히려 이런 개판 같은 상황을 주최 측에서 노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재밌다.”
박덕철은 피식, 썩소를 흘겼다.
말싸움을 하는 양상을 보아하니, 아마 금방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조치를 취해도 그때뿐일 것이다.
“꼭 외국에 온 것 같네.”
한국에서 보기 힘든 이국적인 장면.
정말로, 락쟁이의 마음 한켠이 훈훈해지는 광경이었다.
“아저씨.”
“예?”
박덕철의 옆에 있던 아저씨가 질린 듯한 얼굴로 물었다.
“빨기좌가 그렇게 대단해요? 참가자들 분위기 보니까 완전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거 같은데… 빨기좌 팬이란 사람들은 빨기좌는 그래도 다를 거라고 하고 ….”
“하하하하하.”
“제 눈에는 꼭 불난 데 기름 붓는 꼴로 보여서요 ….”
뭐, 이게 정상인의 반응일 것이다.
“… 팬들의 말에 논리는 없어요.”
“그럼 ….”
“믿음이죠. 그냥 믿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네?! 그쪽도 빨기좌 팬이세요?”
“팬이라 …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빨기좌의 연주곡을 자주 듣긴 하지만,
앨범… 을 구매하긴 했었지만,
학생들한테 무의식적으로 레자바지를 권유하긴 했지만!
잘 모르겠는데 …
“갸아아아아악!”
“구와아아악!”
언성은 낮아지질 않았다.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사회자나 심사위원들이 마이크를 붙들고 말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본인이 등장하지 않고서야 진정이 안 되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터벅 – 터벅-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듯,
관중 속에 파묻혀 있던 마스크를 쓴 소년이 중앙 무대로 걸어 나왔다.
“…!”
빨기좌였다.
“조용히 하세요!”
키이이이잉-!
그는 마이크를 주워 앰프에 가져다 댔다.
극심한 하울링이 일자, 사람들의 시선을 모였다.
그리고 곧바로,
“심사위원님들과 관계자분들께 질문 몇 개만 하겠습니다.”
아주 자신만만한 얼굴로, 자기소개도 없이 자기 할 말만 했다.
답변은 나숙호가 맡는 듯 보였다.
“… 무슨 질문이지요?”
“여기 있는 훌륭한 장비들을 … 저도 내일 똑같이 쓸 수 있는 거죠?”
순간 밀어닥치는 정적.
그리고, 이번에도 가장 먼저 말문을 트는 …
“훌륭한 장비 …! 거봐! 빨기좌가 훌륭한 장비랬어어어억!”
빨기좌의 팬들!
“뭐… 뭐!?”
“이딴 게 훌륭한 장비라고!?”
“대체 뭔 소릴 하는 거야!”
갑작스레 등장한 빨기좌의 어이없는 언행을 듣자마자, 참가자들은 급격히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물론 빨기좌는 눈 깜짝하나 하지 않았다.
“… 기타 빼고요. 기타는 첫날과 둘째 날이 다르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 장비를 얼마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제 자유인가요?”
“….”
나숙호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의미심장한 얼굴로,
“기타의 픽업을 바꾸거나, 앰프의 스피커를 바꾸는 짓을 할 생각이라면 당연히 안 돼요. 사제 물품을 들이는 거니까요. 앰프는 보다시피 세 개뿐이고, 분배기를 못 쓰니 동시에 앰프를 켜는 것도 불가능하죠.”
핵심을 짚어냈다.
“기타 케이블은 허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둘게요. ‘연주 중’에 사용하는 장비는 기타 케이블, 피크, 스트랩 외 사제 물품을 ‘추가’할 수 없어요.”
“‘추가’가 안된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
씨익,
빨기좌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고,
“… 저 표정이지.”
관객 속에 섞인 팬들의 모습을 눈에 새기며,
“그럼 여기 있는 물건이랑 ‘케이블’로 무슨 짓을 벌이든 괜찮은 겁니다?”
순수하면서도 순수하지 않은,
악동의 미소를 지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내일을 기대하십시오. 심사위원님들.”
– 와아아아아아아!
그의 퇴장을, 오늘 들었던 것 중 가장 거대한 함성소리가 마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