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91
198화. 장비충의 무덤 (4)
– w-legc 예선 1일 차의 충격 –
세주일보 장인태 기자
10월 23, 24일 이틀간 열리는 w-legc 한국 예선 첫날,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충격적인 정보가 새로이 공개됐다.
‘공정한 조건 아래의 경쟁’이라는 슬로건(비공식)이 걸린 대회이지만, 그게 도를 넘었다는 게 참가자들의 평가였다.
개인 장비의 사용이 불가능한 것이 차별점이라곤 하나, 제공된 장비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사진)
상기 사진과 같이 W-legc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제공한 사진은 아이바네즈 jem 시그니쳐 시리즈(1일차)와 에피폰 레스폴 스탠다드 (2일차)이나, 예상을 깨며 첫날에 제공된 것은 과거 단종된 가와사미의 sme시리즈였다.
두 기타는 외형은 비슷하지만, 가격대와 성능이 크게 차이가 나기에, 지레짐작한 참가자들이 기타에 적응하지 못하여 연주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건 기타가 아니다. 알던 장비를 못 쓰게 하는 것’
대회의 주최 측에서는 여전히 이틀 차 지정 기타에 대한 상세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
단, 예선 첫날과 비교하여 이틀 차 지정 기타는 ‘앞면’이 제대로 공개된 상태기에 에피폰 이외 브랜드의 기타가 지정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 외, 이번 예선에 참가하는 기타리스트 김수재가 1일 차 무대에 난입하여 돌발 행동과 선언을 하며 수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틀 차 예선까지 4시간이 남았다.
광고문의 02-2312-xxxx
– –
월-드 기타 대회 첫날 차가 끝났다.
그리고, 기사가 오질라게 나왔다.
한국만 이렇게 관심을 받는 건가? 싶어서 다른 해외 사이트들도 좀 뒤져봤는데 똑같더라.
예선 기사 하나쯤은 꼭 올라와 있더라.
전 세계가 같은 날에 예선이 열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은 어제 열린 게 맞는 모양이다.
나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종료한 후, 인스타를 켰다.
이미 키노시타의 인스타 염탐은 일상이 되어버린 참이었다.
“엄청나구만.”
역시 이 새끼는 볼 때마다 병신력이 흘러넘친다.
연주 중인 모습에 보정을 엄청 먹여서 사이버펑크 감성으로 찍어 올려놨다.
#予選一位
#見ての通り
#多分、間違いなく
#예선 1위
#보시다시피
#아마도, 틀림없이
태그가 시발 개 레전드다.
“연주는 … 뭐 고만고만한데 ….”
실력이 안 늘었네.
원래 못 치던 놈은 아니긴 한데.
발전이 없구만.
그러니 충격요법을 써야겠다.
내가 너랑 같은 곡을 치는 건,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아 빨리 나와!”
한참을 화장실에서 존버하고 있으니 결국 동생이 폭발했다.
“나간다 나가.”
“아으 ….”
식탁에 앉자마자 투박하게 핸드폰을 터치하시며 회사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보여주시는 부모님.
“너 어제 엄~ 청 멋있었어. 엄마 회사 단톡방에 ….”
“아 맞아 맞아. 우리도…”
두 분은, 월요일 아침임에도 거의 광대가 승천 직전이셨다.
“오늘 무슨 계획이 있는 거지?”
“그런 거지?”
“암요.”
“엄마한테만 먼저 말해주면 안 돼?”
“안 돼요.”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누구나 계획이 있다는 격언이 있긴 하지만, 내가 먼저 얻어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대회 규정은 모두 지킬 거니까.
처맞는 것은, 다른 참가자들이 될 테니까.
어제 같이 몰래 대회장에 잠입했던 친구들은 괜스레 부담을 느끼고 있었지만 뭐.
총대는 내가 메는 건데.
어차피 내가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가는데.
일은 나 혼자 벌여도, 혜택은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쉽다, 일요일이었으면 보러 가는 건데.”
“에이, 나중에 기회가 있겠죠.”
“오빠 잘 갔다와~ 친구들이 어제 댓글 단 거 답글 좀 달아줘~”
“싫은데?”
“아 왜!”
나는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작은 책가방만을 메고 밖으로 나섰다.
장비를 안 챙긴 건 아닌데, 음향장비는 아니다.
전부다 ‘계획’을 위한 물건들이다.
“수재씨!”
“수고하십니다.”
“아니에요!”
도로변에 차를 대고 있던 최주임이 나를 반겼다.
출근을 미룰 수 있어서 그런가 아주 좋아죽는 듯한 표정이다.
우리는 곧바로 올림픽 공원으로 이동했다.
평일이라 사람이 얼마나 올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표가 다 팔리긴 팔렸으니까 은근 기대가 된다.
아니, 기대…를 했긴 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
“… 응?”
사람이,
“와아아아아아아!”
“빨기좌다!”
“빨기좌가 나타났다아아악! 사랑해!”
졸라 많았다.
“수, 수재씨… 3000명이… 넘는 거 같은데요….”
“그러게요.”
나는, 올림픽 홀에 들어가기도 전에 압도되고 말았다.
홀의 수용 인원은 약 3000명 즈음이고, 표도 그쯤 팔렸는데,
정작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빨기좌 나 표 못 샀어!”
“근데 그냥 왔어!”
적어도 5000명은 되어 보였다.
“….”
“밖에서 들을게!”
“여기 은근 방음이 잘 안 된대! 다행이야!”
“하하하하하!”
정상급 가수들의 경우, 밖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러 표를 못 구했음에도 찾아오는 팬들이 종종 있다고 하던데.
“기대할게요!”
“학교 빼먹고 왔어요!”
내 팬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구나.
듣고라도 싶어서 찾아왔구나.
뭔가, 가슴이 매우 웅장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대하십시오!”
나는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으며 팬들을 지나쳤다.
그리고, 아직 관객들이 입장하지 않은 ‘홀’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
어제 본 그대로였다.
락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나 요코하마 돔 같은 데랑은 비빌 수 없지만,
아무리 봐도 ’예선’용으로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관중석도 나름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고.
무대 위도 휘황찬란한 led랑 각종 효과 같은 거 잘 나오고.
기타 장비가 거지 같긴 하지만, MR 소리를 들어보니 모니터 스피커 설비는 괜찮더라.
그렇기에,
“잠시만요.”
나는 무대 위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제와 어제 있었던 기억을 되짚었다.
– 그게 진짜 가능할까?
– 실격 처리당하는 거 아니야?
내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하자, 애들은 곧바로 기가 막힌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었다.
하긴 뭐.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누가 대회에서 그런 무모한 짓을 하느냔 말이다.
반골 기질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이 세상에는 엄연히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는 법인데.
“….”
물론 그래도 할 거다.
이기기 위해서.
방구 소리가 아닌, 예쁜 소리를 위해서.
나는 챙겨온 장비들을 아주 잘 써먹을 것이다.
“흠 ….”
무대 위에는 역시나 세 대의 마샬 mg30이 놓여 있었다.
“엄청 작네요 …. ”
옆에 있던 최주임이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가정용으로 쓰기에 음량이 약간 클 뿐인,
반대로 말하면 이런 ‘거대한’ 무대에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앰프.
끽해야 진짜 작은 라이브 카페 정도나 커버할 수 있을까.
마이킹과 엔지니어링을 거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최 측의 일말의 양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스피커가 교체되어 있다는 점 정도.
“….”
아니 근데 진짜 그럴 거면 그냥 마샬 mg100 갖다 놓으면 안 되나?
정정하자.
이것은, 악의였다.
절대로 니들이 편한 꼴은 못 본다는, 지독한 악의 말이다.
“이걸로 어떻게 좋은 소리를….”
“냉동 고기로 최상급 스테이크를 만들라는 거네요….”
“아하하! 비유가 정말 찰떡이세요!”
“그런가요?”
“그럼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그 정도로 안 좋은 앰프야?”
다른 참가자를 끌어들일 만한 성능 정도는 하는 것 같았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기척.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민수였다.
“졸라 오래간만이구만.”
“한 4개월쯤 지났나?”
뒤통수 후려갈겼을 때가 불과 어제 같은데.
세월 참 빠르다.
“대기실은 저쪽이야. 5분 뒤에 여기 임시 폐쇄된대. 네 친구들이 막 떨길래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빨리 나가야 될걸?”
“땡큐.”
“뭘~”
민수는, 처음 만났을 때와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흥미 돋친 표정이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넌 이거 보고 아무 생각도 안 들어?”
나는 민수에게 담담하게 물었다.
“아무 생각이 안…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응?”
“내가 왜 여깄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 어?”
그건 그렇네.
민수는 원래 어쿠스틱 기타를 치던 놈이다.
일렉기타를 시작하는 건 전학하기 불과 한 두달 전.
그러니 이 씹새끼는, 어쿠스틱 마스터 찍고 와서 일렉기타까지 잘 쳐버리는 놈이란 거다.
“그렇네? 너 일렉기타 개 초짜네?!”
“나 장비 같은 거 잘 몰라. 이제 시작한 지 3개월 됐거든.”
“와 ….”
“저번에 네가 한 말 듣고 시작했는데, 이게 은근 재밌더라고.”
초짠데 어떻게 참가권 얻었을까?
역시 대단한 재능충이다.
“ … 넌 이렇게 될 거란 걸 다 예상한 거야?”
민수는 뺨을 긁적거리며 쑥스러운 듯, 뜬금없이 물었다.
“뭔 예상?”
“내가 일렉기타를 치게 될 거라는 거. 넌 고수니까 … 내가 통기타 치는 거 보고 뭔가 눈치채지 않았나 싶어서.”
나한테 그런 능력은 없다.
하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보다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게 나을 듯싶었다.
“역시 그렇구나! 악기점 가서 일렉 딱 잡는 순간에 필 같은 게 빡 오더라고!”
“그 필이 왔을 때 넌 콜트를 사면 안 됐어.”
“그, 그걸 어떻게 알았어?!”
“흐흐흐흐 아 콜트충 개귀엽네.”
“콜트가 그렇게 안 좋은 거야!?”
“엄청 좋은 거야~”
이따 쓸 거보다는 좋은 걸 거야.
“그렇지?! 악기점 아저씨가 할인해 주셔서 35만 원에 ….”
이 시기의 민수는 조금 더 순박한 병신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낄낄 웃으며 무대에서 내려와 대기실로 향했다.
이번 대회의 예선은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사전에 만나는 게 극히 제한돼 있었다.
인사조차 못 한다는 소리다.
내가 나숙호 선생님이 ‘심사위원’이란 걸 알게 된 건 불과 나흘 전이었다.
나는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너라.”
“기, 김수재애애액!”
“왜 이렇게 늦었어!”
“무슨 일 있었어 …?”
“그냥. 무대 좀 둘러보느라.”
“어때?”
“예상대로더라고.”
“으아 … 엄청 나쁘지?”
“당연하지!”
내게 배정된 대기실은 ‘1번’.
그리고 부여된 번호는 8번.
오늘 예선 인원이 수십 명대이니 꽤나 앞 순번이었다.
천운인지 계획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순서대로 뭉칠 수 있었다.
나를 시작으로 소이, 하민서, 혁오와 최유진으로 이어지니 작전을 펼치기 딱 정당하다.
“장비는? 준비 잘 했…”
“쉬잇!”
최유진이 ‘장비’ 소리를 내자, 곧바로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의 시선이 몰렸다.
“장비 …?”
“장비 못 쓰는 거 아니에요!?”
“못 쓰죠.”
“근데 ….”
시선은 내 얼굴에서, 메고 있던 책가방으로 옮겨갔다.
“아! 퍼포먼스용 장비 말하는 거 아니야?”
“퍼포먼스?”
“오늘 뭐 한다고 그랬잖아!”
“하긴, 빨기좌 하면 퍼포먼스지.”
노안의 대학생이 그리 말하자, 다들 납득하는 모양새였다.
“여튼, 반갑다 빨기좌.”
그리고 그는 매우 친한 척을 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교수님께서 너 자주 언급하셨어.”
“고마워요.”
“나도 입시 때 진짜 열심히 쳤는데~ 옛날 생각나네~ 아, 근데 너 락페에서 친 비발디는 좀 아쉽더라. 우리 대학 오려면 그 정도로는 조금 간당간당하다 해야 할까 …? 아니 네가 못 온다는 소리는 절대 아닌데~”
뭔가,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아는 척해주는 것? 고맙다.
칭찬? 존나 고맙다.
근데 말이야.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뉘앙스란 게 있잖아.
“좀 그래~ 조오금만 더 연습했으면~”
그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뉘앙스로 나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다.
“….”
나는 실눈을 뜨며 대학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입시 수고하셨어요. 대단하시네요.”
충분히 부심 잘 부리라고 그의 공적을 리스펙했다.
다만,
“수고했어요 … 는 아랫사람한테 하는 말이지 않나?”
… 아무래도,
이놈은,
나랑 싸우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벌컥-!
“수혁! 준비 잘했냐?”
대기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또 대학생들이었다.
“어… ?”
“응?”
그리고, 눈에 익은 얼굴들이었다.
“얘네들 ….”
“아~ 그때 돈 없어서 악기점 못 들어가던 애들 아니야?”
“맞네맞네.”
“아하하하하!”
대학생 남녀들은 물 만난 듯이 꺄르르꺄르르 아주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어린애들 앞에서 실력을 뽐낼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기쁜가?
양민학살은 역시 세계 만국 공통 남녀를 가리지 않는 재미있는 놀이인가보다.
“… 기분 좋아 보이시네요.”
“좋지~”
“예선 상위권만 해도 상금 나오는 거 알아?”
“너희들은 … 좀 힘들 건데 … 낙심하진 말고!”
나와 친구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같은 대기실을 쓰던 또래의 애들 또한,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저렇게 말해…?”
“몰라….”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날카롭게 귀에 날아와 박혔다.
그만큼, 대학생들의 근거 있는 자신감에 기반한 어그로는 대단했다.
그리고 나는,
어그로에 순순히 이끌려주기로 했다.
“그럼 이제부터 기분 안 좋게 해드리겠습니다.”
“뭐라는 거야?”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노가리를 까고 있으니 시간은 은근 빨리 지나갔다.
그러니 이제 이걸 공개해도 문제없을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가방에서 장비들을 꺼냈다.
“그게 퍼포먼스용 장비야…?”
“인두기랑 … 드라이버랑 ….”
“아닌 거 같은데!?”
“너 어제 한 말 못 들었어?”
“잘 들었죠.”
‘부품 교체는 허용하지 않는다’
사제 물품을 ‘추가’하는 짓 따위, 용서치 않는다.
다만,
“근데, 부품을 교환하거나 추가하지는 말라곤 했어도, 빼지 말란 소리는 안 했는데요.”
“….”
“저는 부품을 뺄 겁니다.”
“….”
“그리고, 여러분이 흉내 내지 못하는 소리를 만들 겁니다.”
“뭐 …?”
파괴와 재생이 아닌,
“기타를 파.괴.한.다.”
순수한 파괴.
그것이 내가 할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