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92
199화. 장비충의 무덤 (5)
서재원은 요즘 들어 꿈속에서 사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 세계의 젊은 기타리스트를 모아놓고 최강을 가리는 대회라니,
상상은 해도 막상 실현시키는 건 불가능한 일일 터인데.
실제로 저질러버리는 자가 있다니.
대단했다.
뭐 대회 소식을 듣고 나서는 단순한 ‘감탄’뿐이었지만,
그 감탄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이 w-legc의 공식 영상 촬영자로 선정된 것이다.
“….”
이게 말이 되나?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지만, 헛수고였다.
거짓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이 되자, 더더욱 사무치게 실감이 갔다.
아직 입장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았음에도, 올림픽홀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진을 치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빨기좌’라는 단어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가슴이 웅장해지기까지 했다.
자신이 이곳 무대를 영상으로 담을 수 있다니.
설마 자신의 채널이 ‘빨기좌’의 채널이기도 하기 때문에 특별 대우를 받는 건가? 싶기도 했었지만 …
가만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제가 먼저 설치했는데 왜 마음대로 만지십니까?”
“저희도 어제 여기 놔뒀었는데요?”
“그래서요…?”
“그쪽은 한 명이잖아요! 저희는 회사라고요!”
참가자들이 대기실로 돌아가자, 스태프들은 열심히 무대 준비에 들어갔다.
조명이면 조명, 연출이면 연출, 음향이면 음향.
다들 각자 맞은 역할에 임했다.
다만,
‘촬영’은,
문제가 조금 있었다.
“이 자리는 제가 쓸 겁니다.”
“… 무슨! 엄청 뻔뻔하네!”
“손대지 마세요. 그거 500만 원어치예요.”
“…!”
TV 음악 채널 ‘뮤직넷’과, 구독자 130만에 달하는 A-tra 채널.
두 팀이, 예선 이틀 차 영상을 동시에 담당하게 된 것이다!
“빨기좌한테 배웠거든요. 훌륭한 작품을 위해서라면, 뻔뻔해져야 한다는 걸요.”
뮤직넷의 여직원은 땀에 젖어버린 앞머리를 스윽, 뒤로 넘겼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얼굴을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장비 안 보이세요? 여자 혼자 이거 옮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어제는 몇 분이나 계시더니만.”
“가위바위보 졌다고요!”
어쩌라는 거야…?
“그럼 저처럼 가벼운 걸로 가지고 다니세요. 시대가 어느 땐데.”
“미러리스? 이거 사진 찍을 때 쓰는 거잖아요.”
“나중엔 다 이걸로 쓰게 될 거예요~”
영상 담당 직원일 텐데.
흐름을 모르는구만.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가?
“최고의 인물을 찍으려면, 최고의 장비로 심혈을 기울여야죠.”
“….”
옛날이었으면 그냥 좋게 좋게 비켜줬을 것이다.
하지만 빨기좌를 만나고서 자신은 달라졌다.
자신은, 주어진 권리를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퀄리티’를 위해서.
그리고, 영상을 위해서.
이 위치야말로 빨기좌를 아주 아름답고 간지나게 담을 수 있는 명소란 거다!
“… 참나. 최고는 무슨.”
“뭐요?”
“뭐 빨기좌가 신이라도 돼요? 예선 장비 엄~청 안 좋은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
서재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방송사 직원이 하는 말은 아주 타당하긴 했지만, 뭔가 모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빨기좌는 절대 남이 ‘의도한 대로’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 그럼요? 뭐 에어 기타라도 치시겠다는 건가?”
푸훗.
그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비웃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서재원은,
“아무래도 에어기타는 아니겠죠.”
말을 하다 말았다.
“아니면 뭘 할 건데요?”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기는 한데.
자세히는 못 들어서 반박은 또 못 하겠고.
가슴이 답답했다.
다만,
‘에이트라님, 믿어주세요. 그리고 제대로 소리를 담아주세요.’
믿음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겁니다.”
“….”
“제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이해가 잘 되겠죠.”
“하, 결국 모르신다는 거 아니에요?”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다.
에이트라는 묵묵히 여섯 대나 되는 카메라 세팅을 시작했다.
다섯 대는 무대와 관객석에,
그리고 빨기좌를 처음 영상에 담았을 때 썼던 나머지 한대는 손에.
“핸 샷은 안 찍어요?”
“예선인데요 뭘~”
핸드샷도 안 찍고.
그렇다고 설치 카메라가 많은 것도 아니고.
방송국 팀 vs 유튜버의 구도이지만,
놀랍게도 장비는 자신이 더 좋았다.
아니, 장비뿐만 아니라 이미 ‘정성’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나중에 영상 달라고 하셔도 절대 안 드립니다.”
“푸훗!”
몇 번이나 비웃음을 당하는 걸까.
그리고 비웃다가 후회하면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아주 거대한 의문이었다.
“폐쇄 끝입니다! 10분 뒤에 입장 시작합니다!”
한참을 준비에 열중하고 있자, 대회 직원이 굳게 닫혀 있던 메인 도어를 열어재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르르르-
공허했던 관객석에,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빈자리도 없이,
들어차 버렸다.
-웅성 웅성
보통 ‘콘서트’ 같은 경우에는 완벽하게 정돈된 환경에 관객들이 입장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크기만 컸지, 대체로 다른 음악 관련 대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다만,
“심사위원 입장하십니다!”
중축이 될 심사위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 와아아아아아아아!
첫날과 달리, 아주 강렬한 함성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 저 사람이 바로 빨기좌 스승이야!
– 스승의 포스가 난다아아아악!
뭐, 함성의 크기가 조금 더 거셌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첫날과 같았다.
두웅-
실내를 밝게 비추고 있던 조명이 꺼지니,
“W-legc 한국 예선 이틀차! 시이이이이작~ 하겠습니다!”
지체없이 예선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
“으악!”
“관계자님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착오 없는데요?”
“아니!”
“여기가 안이지 밖이에요?”
“아니!”
“으아아아아아악!”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거센 비명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
“흐흐흐흫.”
나는 웃었다.
“흐흐흐흐!”
친구들도 같이 웃었다.
“대체 … 뭔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비대한 자신감을 내뿜던 대학생들은,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상태였다.
그야,
– 갸아아아악
– 으아아아아악!
– 이건 정말 미쳤어! 미친 짓이야!
밖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비명소리와 함성소리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지옥도를 그려주었으니까.
“뭔 짓?”
“아니… 저, 저 비명은 뭔데! 넌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알고 있냐고?
알고 있다.
하지만,
“흐흐흐흐흫.”
굳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 저러는 거야… 대체 ….”
“원래 사람은 자기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패닉에 빠지는 법이잖습니까.”
“자기 뜻 …?”
수능을 치러 갔는데 손목시계가 고장 났다.
러시아워 속에서 차를 몰다 급똥이 찾아왔다.
진짜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에피폰’이라 생각하고 있다가 톱밥 기타를 마주한다면,
– 소리가 너무 이상해요!
– 때려쳐!
심하든 심하지 않든,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에피폰으로 연습 열심히 하셨죠?”
“당연하지. 내가 기타 찾아다니느라 돈을 얼마나 쓴 줄 …”
“뭐, 저것도 결국 레스폴 타입이니까 도움이 아예 안 되지는 않겠죠.”
나는 미리 꺼내둔 장비를 점검했다.
전동 드라이버와, 휴대용 고성능 인두기.
상태는 아주 완벽했다.
“레스폴 타입 …? 에피폰이 아니란 소리야?”
“흐흐흐흐.”
“에피폰이라 쓰여 있었다고! 아까 확인 다 했다고!”
“히흐흫히히히.”
“대답 좀 하라고!”
“시룬뎅~”
“와 유진이 엄청 얄미워!”
“갸아아악!”
대학생들은 과연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을까?
이들을 꼬드겼던 낙원상가의 상인 중에, 과거 쓰레기 같은 기타를 유통했던 상인들도 있지 않았을까?
그럼 뭐, 승자는 결국 그 사람들이겠네.
속는 자가 어리석은 자인 세계.
그리고, 깨달은 자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약육강식의 세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그런 세계가 존나 마음에 들었다.
“다음 참가자분 이동하시겠습니다!”
내 차례가 찾아왔다.
“저번에 시비 건 거 후회할 겁니다.”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힘내!”
“화이팅!”
“믿는다!”
“수재 화이팅…!”
대기실에서 무대까지 이어지는 복도는 꽤나 길었다.
“규정은 잘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어긋나면 그냥 실격 처리해주세요.”
“하하. 그걸 결정하는 건 심사위원분들이셔서….”
그리고 그사이, 자연스레 손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들지도 않았다.
그냥 하는 거다.
하는 거다!
“수재씨!”
무대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주임이 나를 반겼다.
“수재씨 앞으로 두 분 계세요! 바로 준비하셔야 돼요!”
“옙.”
나는 직원에게서 기타를 받아들었다.
‘Epiphone’이라는 글자가 아주 선명하게 헤드에 쓰인 레스폴을, 드디어 손에 쥐고야 말았다.
“안 놀라시네요… !?”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직원이 눈을 땡그랗게 뜨며 입을 벌렸다.
“어… 어떻게?”
“알고 있던 거예요?!
“알죠. 알다마다요.”
“….”
뭐, 솔직히 말해서.
눈치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선공개된 이미지의 해상도가 그리 좋지도 않았고.
나처럼 의심암귀가 도져 있지 않은 이상에야, 의심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설마?’ 해도 ‘에이~ 그렇게까지 하겠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합피폰 ….”
그것은, 그리 불렸다.
모두를 속였고,
모두를 고통스럽게 했다.
과거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지유우우우웅-!
쥐에웨에이이이잉-!
‘저가’ 그 자체인 장비들과, 쓰레기 기타가 만들어낸 하모니가 관중석과 무대를 메웠다.
불쌍한 참가자들은 힘껏 소울을 살리며 밴딩을 했지만,
– 으하하하하하하하!
– 와! 진짜 저거 진짜 누구 싼 줄 알았다!
– 프하하하하하하!
일렉기타지만 일렉기타 같지 않은 소리에 관중들은 한껏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으아아아아!”
“집에 갈래 ….”
비명과, 비애.
‘괜찮아!’라며 격려를 받기는커녕, 웃음바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
나는 묵묵히 무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아아아아음 참가자느으으으은!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좋아하고! 또 사랑하는!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 이름은 바로오오오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엄청나게 과한 수식어를 받으며,
“빨기좌아아아아아악!”
휘황찬란한 효과가 휘몰아치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 으아아아아악!
거대한 함성소리가 나를 맞았다.
심사위원들이 내뿜는 날카로운 눈빛이, 미간에 날아와 꽂혔다.
그중엔 나숙호 선생님도 계셨다.
머리에 피가 끓어오르고, 손이 연주를 직감하여 열을 내뿜었다.
“자, 빨기좌! 자기소개 부탁드립 …”
고개를 숙일까?
아니다.
아니다!
재빨리 널브러진 케이블을 잡아들고 기타에 꽂은 다음,
좌아아아앙-!
현을 긁는 게 먼저다!
– 역시 빨기좌야!
– 빨기좌는 자기소개를 할 필요가 없는 거야!
– 심사위원한테조차도 머리는 안 숙이는 거야!
나는 대단한 짓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단한 짓’을 더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즁 즁즁즁즁-!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방구 같은 소리를, 반드시 들어놓아야만 한다.
“톤 … 메이킹 중인 거죠? 연주가 아니죠?”
“맞습니다. 톤 메이킹 중입니다.”
“….”
– 좌아아아아앙!
기타가 울리자,
– 아아아아아아아!
관객들도 울었다.
“빠, 빨기좌라도 역시 장비가 없으면 ….”
그리고 좌절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지이이이이잉-!
“저, 저건!”
“드라이버 …?”
“다른 손엔 인두기를 들고 있어요!”
비장의 수를 꺼내면,
끝.
End
이거다.
끝났다.
이제, 이겼다.
“부품교체… 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나숙호선생님 옆에 있던, 장백발의 중년남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부품 교체가 아니죠.”
“그럼 ….”
“부품을 빼는 것이죠.”
“뺀다고요? 멀쩡한 부품을?”
더하는 것에 미학이 있다면,
빼는 것에도 미학이 있으리.
“심사위원님들, 싱글코일 기타 소리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뭐라고요?”
“뭔 말을 하는 거야?”
나는 드라이버질을 계속했다.
이미 프론트 픽업은 거의 적출된 상태였다.
“… 어제랑 오늘은 못 들어봤네요.”
“대회에는 ‘험버커 픽업’ 기타밖에 제공되질 않았으니까요.”
“그럼 여기서 제가 싱글픽업을 쓰면 아주 좋겠죠?”
“….”
“교체도 없이 어떻게 ….”
어떻게 만드냐고?
역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경험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일렉기타는, 싱글픽업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험버커 픽업은 …
“험버커 픽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다 아실 거라 믿어요.”
“네?”
“그거야 ….”
“수재군 설마 …! 픽업을 …!”
‘싱글픽업 두 개’를 묶어 버리며 탄생했다.
그러니까,
아주 당연하게도,
반대도 가능할 것이다.
추가 부품 없이.
오로지, 빼는 것만으로.
이 쓰레기 같은 기타의 소리를, 180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파.괴.한.다.”
심사위원들의 웅성거림은 이젠 귀에 들리지 않았다.
디리리리링-!
오로지 청명하면서도 깨끗한,
이번 대회에서 절대로 들어볼 수 없을 터였던 ‘싱글코일’의 소리가,
귀와 올림픽홀을 가득 메웠다.
“재규어 13.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