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8
클래식, 바이올린, 기타. (2)
“우리 딸 집에 남자도 데려오고 많이 컸네!”
“···”
“밥 먹고 갈 거지?”
사람 좋게 웃는 소이의 어머니.
그녀의 손에는, 소이 방에서 본 것과 같은 작은 악기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물론이죠.”
“좋아좋아~ 소이가 집에 친구 데려온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엄마아!”
분위기 자체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딸과 어머니 사이의 경직된 분위기 ···같은 건 겉으로 보기엔 느껴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나는 소이와 소이 어머니를 따라 걸었다.
“아주머니~ 오늘 아주 솜씨 좀 발휘해 볼까요?”
“어휴, 사장님 앉아서 쉬시지.”
“아니에요~ 도와드릴게요.”
왜 부잣집 하면 그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갑질 당하는 고용인과 운전기사.
고통받는 서민들.
근데 그런 장면은 없었다.
회사에도 좋은 상사가 있고, 개미친 또라이 상사가 있듯이,
이 동네에도 각기 다른 근무환경이 펼쳐지는 것이겠지.
물론, 저게 진짜 성격인지 아닌지는 나는 알 수가 없다.
“엄마 도와줄까?”
“그냥 앉아 있어~ 저번처럼 또 손 벨라. 손 잘못 다치면 완전 끝나는 거야 조심해~”
악기 연주자는 손이 생명이긴 하지.
나도 손 때문에 말아먹었으니까.
“방에 들어가 있을까?”
“그러지 뭐.”
나는 소이의 방에 올라갔다.
아까 최유진이랑 있을 때와는 달리, 미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네가 기타 계속 칠 수 있도록 설득해볼게.”
“응···”
문뜩 궁금해졌다.
지금의 나와 소이는 만난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사이다.
17살의 한 달과 30살의 한 달의 시간 감각은 하늘과 땅 차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색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근데, 날 부른 이유 같은 게 있어?”
“그건 ···”
소이는 아주 잠깐의 침묵 끝에 자기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다.
“저번에 윤대혁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 거 보고 ···”
“음 ···”
쌈닭이었지 완전.
17살짜리가 프로 강사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꼴을 소이는 코앞에서 지켜봤었다.
“그리고 ··· 너도 비밀이 있을 것 같아서.”
“···.”
소이는, 내 기타를 보고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었다.
눈썰미가 좋다.
소름 돋을 정도로.
“내 비밀이라 ··· 궁금해?”
“···응.”
“별게 아니긴 한데, 말해줘도 이해가 안 될걸?”
시간을 거슬러 회귀했다.
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자신조차, 처음엔 이해를 못 했으니까
“그렇구나 ··· 알았어.”
소이는 의외로 쉽사리 납득했다.
다른 애들 같았으면 대체 뭐냐고 끈질기게 물었을 텐데.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소이의 연분홍색 기타를 거침없이 잡았다.
천 만원 짜리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저번에 봤던 50년대 오리지널 빈티지보다는 저렴하지만, 현재 생산되는 펜더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소리를 내줄 것이다.
“빈티지랑 모던 파츠를 섞어놨네. 직접 한 거야?”
“색은 내가 정했는데 파츠는 아빠가 도와주셨어.”
“아빠도 기타 치셔?”
“응. 취미로 조금.”
이거 일일이 오더할 정도면 혹시 뮬저씨 아닐까?
하루종일 기타매물만을 훑어보는 ···
가끔 기타 자랑하려고 판매 게시판에 올려놓고 정작 팔지는 않는 ···
뭐, 난 소이의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른다.
저번에 봤을 때는 좀 무뚝뚝한 성격 같았고.
“소이야, 나한테 생각이 있는데 ···”
“응?”
나는 머릿속에 막 떠오른 방법을 소이에게 말했다.
쌈닭이 되기 전에, 설득을 하기 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그게 될까 ···?”
“될까가 아니야. 확인하는 거지. 말이 통하는 상대냐, 아니냐는 난 모르니까.”
“응.”
“만약 후자일 경우, 며칠 시위할 생각은 해 둬.”
우리는 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1층으로 내려갔다.
“와우 ···”
냄새 죽인다.
소고기다 소고기.
어제 반쯤 맛 간 닭갈비 먹고 다 쏟아버렸는데, 오늘은 제대로 몸보신 할 수 있겠네.
“자~ 된장찌개. 이게 글쎄, 천 만 원짜리 레시피라지 뭐야.”
“정말요?”
“사실 그냥 유튜브 보고 만들었어~”
그럼 그렇지.
아무리 부자라도 1000만원짜리 된장찌개 레시피를 누가 사.
원목 식탁에 한 상 차려진 반찬들.
짧은 시간 안에 만들었다기에는 아주 구성이 알찼다.
‘재료가 고급인 거 빼곤 별 차이 없네.’
우리 엄마도 똑같이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어서 먹어! 아주머니도 같이 드세요!”
“괜찮아요. 전 집에 가서 애들이랑 먹어야 돼요.”
소이 엄마는 냉장고에서 고급스러운 봉지에 담긴 과일들을 고용인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우리 집 사람들이 과일을 잘 안 먹어요. 가져가세요.”
“아유 ··· 뭘 이런 걸 다 ···”
아주머니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 나가셨다.
집안에는 소이와 소이 엄마, 나만이 남게 되었다.
‘맛있네.’
분위기가 좀 불편한 거 빼고는 맛있다.
우리엄마 밥도 맛있지만 이건 더 맛있는 거 같다.
엄마 미안해.
“입에 좀 맞니?”
“아주 맛있어요.”
“많이 먹으렴~”
나는 주저 없이 밥을 한술 크게 떴다.
평소에 쩝쩝대는 습관이 없어서 다행이다.
안 그래도 적막한데 여기서 쩝쩝대면 그 소리만 크게 울려 퍼질 것 같잖아.
“소이, 젓가락 똑바로 잡아.”
“응 ···”
소이 젓가락질이 특이하진 않던데.
나랑 비슷하다. 새끼손가락이 조금 펴진 것뿐.
소이는 재빨리 손가락을 오므렸다.
··· 까다롭네.
사람의 성격은 말의 단편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나는 힐끗힐끗, 거실에 멀리 놓인 수상 트로피를 바라보았다.
많다.
정말 많다.
저게 다 음악 관련 대회에서 따온 거라면, 대체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 걸까.
이름있는 콩쿠르에서 3등을 차지할 정도라니.
음악인으로서 존경을 품을만하다.
다만.
“바이올린 관심 있니?”
소이 엄마가 내 시선을 감지한 것인지, 싱긋 웃으며 물었다.
“아 네··· 조금.”
“그래에?”
난 바이올린 못 켠다.
바이올린 외에도 찰현악기 자체를 잘 못 다룬다.
활이 피크고 바이올린이 조막만 한 기타라고 생각해도 소리가 제대로 안 나던데.
근데 뭐 로직프로에서는 잘 써먹었지.
내장 가상악기도 꽤 쓸만하더라.
“너 저번에 보니까 기타 참 잘 치더라~ 바이올린도 잘 할 거 같아.”
“··· 하하하.”
밥 먹는데 말 계속 거네.
난 소고기로 야채를 싸 놓은 음식을 적당히 집었다.
소스가 아주 일품이다.
“밥 다 먹고 한 번 켜볼래?”
“제가요?”
“소이는 바이올린도 꽤 잘해~”
“···.”
될 리가 있나.
20년 외길 기타인생인데.
“소이 너도, 기타 그만 하고 바이올린으로 전공 돌리라니까. 요즘 연습도 잘 하더만?”
“··· 그건 엄마가 시켜서···”
“쓰읍.”
애가 말하고 있잖아요 아줌마.
··· 아주 잠깐 대화를 지켜본 것뿐이지만, 잘 알겠다.
남에겐 친절한 사람이다.
자기 가족한테는 깐깐하고.
파악을 마친 나는 곧바로 입을 뗐다.
“소이 기타도 잘 쳐요. 저번에 3등 했잖아요.”
“··· 아 그랬지~ 네가 도와줬다며? 고맙다.”
말투가 별로 안 고마운 거 같은데.
“아뇨 뭘, 친구니까 당연하죠.”
“···.”
나와 소이 엄마 사이에 미미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친구 집에 와서 친구 부모님과 말싸움이라니. 진짜 레전드다.
하지만 꼬리 내릴 생각은 없었다.
난 묵묵히 젓가락질하고 있는 소이를 쳐다보았다.
밥이 거의 안 줄어들어 있었다.
“수재라고 했지? 넌 기타 얼마나 쳤어?”
“한 1년 좀 넘게 쳤어요.”
거짓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거짓말이 아니다.
“뭐 ··· 뭐? 1년? 에이~”
소이 엄마는 도리도리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이올린의 프로로서, 한 사람의 음악인으로서.
내 연주가 1,2년 배워서 이룰 수 있는 경지가 아니란 걸 이 사람은 이미 알고 있다.
서로의 분야가 판이하게 달라도 직감이란 게 있는 것이다.
“진짜예요. 2년은 아직 안 되긴 했는데.”
“··· 수재는 농담을 참 잘하는구나? 저번에는 20년이라며.”
“1,2년 했다고 하면 안 믿을 테니까요. 뭐라 해도 안 믿을 거 이왕이면 웃겨버리는 게 낫죠.”
난 묵묵히 소고깃국을 떠먹었다.
“··· 진심이니?”
“예.”
소이 엄마는 어머어머어머 하는 추임새를 넣기 시작했다.
“악기에 소질이 있나 보네~ 소이랑 같이 바이올린 시작해~”
“전 기타 칠 거예요. 평생.”
앞으로 한 70년 더 산다 치면 90년 기타인생이네.
딱 적당하다.
“에이~ 어떻게 그래. 바이올린이 얼마나 좋은데 이따 소리 한번 들려줄게. 들어보면 마음이 바뀔걸? 기타같은거랑은 달라.”
“기타같은거 ···”
“왜 그러니?”
기타같은 거라···
역시 이 사람도 그런 부류였군.
“기타가 뭐 어때서요?”
“치는 사람도 너무 많고, 좀 그렇잖아?”
“바이올린도 인구 많아요.”
“에이~”
소이엄마는 손을 휘적였다.
“바이올린은 다르지. 연주자의 대접이 좀 더 좋잖니? 너도 전공생 아니야?”
“그렇죠 ···”
“그럼 더 좋은 대접받는 게 낫지~”
그런 게 있다.
기타 친다고 주변인들에게 말하면 오~ 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바이올린 켠다고 말하면 오오오! 라며 반응이 더욱 격해진다.
인식과 대우에서 차이가 난다. 일반인 수준에서도 말이다.
“기타를 좀 안 좋아하시는 거 같네요.”
“하하, 그런 건 아니야~ 나도 기타 좋아해.”
기타 좋아해.
하지만, 딸이 연주하는 건 싫은 건가.
“···왜, 그렇잖아. 자기 자식 잘 되길 바라는 게 부모 마음 아니겠니?”
“잘 되는 걸 바라는 게 부모마음 맞죠.”
소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걱정 마.
포기할 생각 없으니까.
“그러니까, 소이가 기타 치는 게 잘 되는 거예요. 얘 재능있어요.”
소이 엄마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자기 딸 친구한테 욕을 박을 순 없을 것이다.
포지션은 내가 유리하다.
“그걸 어떻게 알아?”
“한 달동안 계속 들어왔으니까요. 군더더기가 좀 있긴 하지만, 연습으로 극복할 수 있어요. 아마 예대 입시에도 충분히 붙을 거예요.”
회귀전, 작은 콩쿠르에서 본선 탈락했던 최유진은 노력 끝에 음대에 붙는다.
하지만 소이는, 내가 해준 약간의 서포트 만으로 쉽사리 3등을 먹었다.
재능 있다.
확실히 말이다.
“··· 내가 보기엔 바이올린에 더 재능이 있어.”
“그건 모르죠.”
“네가 바이올린에 대해 뭘 알아? 기타도 1년 쳤다면서 제대로 알기나 해?”
소이엄마의 말투가 살짝 격해진 것이 느껴졌다.
좋아.
바라는 바다.
“아예 모르진 않아요. 알려 드릴까요?”
타이밍이 됐다.
나는 전부 비운 밥공기를 내려놓았다.
“소이어머니,”
“어머니?”
“아줌마. 저랑 연주 대결 함 하시죠.”
소이랑 소이엄마, 둘 다 넋 나간 표정으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난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다.
연주로 넋을 빼주마, 라는 의도가 아니라. 그냥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대결 ··· 참나. 어린 애 같네.”
“소이 기타 계속 칠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가르칠게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네가 가르칠 자격이 되냐.
라고 묻는다면 ··· 사실 되긴 한다.
일단 나는, 단 한 방에 예대 수시를 뚫은 사람이다.
오른손을 다친 후 컨디션이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과거로 회귀한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을 가르쳐 본 적은 별로 없지만, 기량이 모자라진 않을 것이다.
“네가 그 자격이 돼?”
“음악인은 연주로 말하지, 말꼬리가 길지 않아요. 말꼬리 늘릴 거면 낙원상가에 취직하는 게 낫죠.”
지금의 나는 17살이다.
여기서 화를 내면, 꼬맹이한테 화를 내는 못난 음악인.
어른의 능청으로 거절하면 마음 한구석이 찜찜함이 남을 거다.
자, 어쩔거냐.
대답해.
심장이 막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너는 일렉기타고, 나는 바이올린인데?”
“베토벤 월광 소나타 어떠세요? 원래는 피아노곡인데, 바이올린 커버도 많이 하더라구요.”
“하합.”
소이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앞에서, 클래식을 내밀다니.
어린 아이의 객기로 느껴졌을 것이다.
난 이 사람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도 곧 음악인이며, 음악인을 파악하는 방법은 쉽다.
연주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거짓을 말할 수 있다.
만약 이 사람이 내 연주를 듣고 거짓을 말한다면.
애초에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럼 내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그러니까 ··· 네가 소이를 가르칠 자격을 실력으로 증명하겠다?”
얼굴에 비웃음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 음악인다웠다.
해외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3등을 먹을 정도니, 이정도 투쟁심은 당연하겠지.
“악장은?”
“악장은 자유롭게 하죠. 전 바이올린으로 못 하는 곡 칠 거니까.”
나는 소이 엄마의 자존심을 살살 긁었다.
새파랗게 어린 애가, 해외 수상경력까지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자극한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들중 일부는, 실용음악 하는 사람을 깔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처럼.
“뭐 …?”
“관중은 딱 한 명 있네요.”
나는 소이를 가리켰다.
보여주마.
기타를 사랑한, 베토벤의 곡을 기타로 쳐주마.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제3악장.
내가 가진 테크닉을 100% 끌어낼 수 있는 곡을.
“이리 따라와. 너도 바이올린 소리 들어보면 마음이 바뀔 거야.”
과연 누구의 마음이 바뀔까.
나는 넘쳐흐르는 손땀을 바지에 몰래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