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31
신입생 음악회 (2)
아직 수업도 다 안 끝났는데 나를 찾아오다니.
배짱 한 번 두둑한 놈들이다.
나는 재빨리 전화로 도현이와 혁오를 불렀다.
도현이는 같은 특별반이라 괜찮다 쳐도, 혁오는 나오려나?
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갔다 올게.”
“수, 수재야. 선생님 모셔올까?”
“음 ···”
머릿수는 넷.
관자놀이를 때려서 한 명 기절시키면 3:3이 되겠지.
“괜찮을 것 같아.”
나는 패기롭게 연습실을 나섰다.
중앙계단까지 달려가니 도현이가 보였다.
“혁오는?”
“몰라. 근데 쟤넨 왜 널 찾냐?”
“글쎄?”
얘 또 바지 벗고 덤벼드는 거 아닌가?
아니, 보통 상의를 벗지 바지를 벗는 건 대체 무슨 전투태세야?
나는 인상을 한껏 구긴 채 예고 교복을 입은 애들에게 달려갔다.
저 멀리서 혁오가 느릿느릿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내가 김수재다 이 새끼들아.”
“···.”
“아주 그냥 줄줄이 달고 왔네. 가면라이더냐?”
네 명이서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인다.
“네가 나한테 댓글 달았지?”
짙은 갈색의, 투블럭 펌 남학생이 물었다. 얼굴에는 한껏 분노가 서려 있어서, 아주 전투력이 충만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내 얼굴에 주먹이 날아올 것만 같다.
“아아, 맞다 맞아. 왜?”
댓글이라 ··· 아침에 달긴 했었지.
나는 겉옷을 벗었다. 개싸움에서 옷깃을 잡히면 아주 불리하기 때문이다.
선빵으로 한 명을 때려눕힌 다음에, 나머지 한 놈에게 싱글레그 태클을 걸면 ···
시멘트 바닥이라 되게 위험할 거 같은데.
“뭐 ··· 해?”
“응?”
겉옷을 벗고, 조끼까지 벗어 던지자, 예고생 한 명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도현이도 나랑 같이 상의를 허물처럼 탈의하고 있었다.
바지는 벗지 마 제발.
“왜?”
“아, 아니 ···”
조금 왜소해 보이는 남학생이 눈을 내리깔았다. 남의 학교에 쳐들어왔으면서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너희 싸우려고 온 거 아니야?”
“···.”
순간 정적이 일었다.
뭔가 분위기가, 많이 이상했다.
“아니, 우리 지금 수업도 안 끝났는데 그렇게 씩씩대니까 싸우려는 줄 알았지···”
“여기 수업 안 끝났어?”
“싸우러 온 게··· 맞긴 한데.”
예고생들은 전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바로 주먹질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왜, 싸움의 순서란 게 있지 않은가.
말싸움을 하고, 감정이 격해지고, 최종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
얘들은 그런 일련의 과정을 밟을 줄 알았던 것이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다시 한 번 상황을 파악했다.
“너희 왜 왔냐?”
“아, 아··· 그렇구나. 우리는 빨리 끝나서··· 너희도 빨리 끝난 줄 알았지. 여튼.”
그는 다시 눈에 투지를 불태웠다.
“내 옥수수 털어버린다며?”
“넌 내가 주먹질 안 해도 임플란트 해야 할걸?”
“뭐?”
“나보고 절망하면서 이 갈아야지. 빠득빠득.”
나는 새하얀 앞니를 보이며 이를 가는 시늉을 했다. 예고 애들은 치욕적인 표정을 지으면서도, 주먹만 꾹 쥘 뿐이었다.
“이빨 값 비쌀 거다. 기타 팔아야 할지도 몰라.”
“··· 네가 팔아야 할걸? 얘 종합 춘기 콩쿠르 3등 했어.”
“그래?”
3등이라.
잘됐네.
“상금 얼마.”
“뭐?”
“얼마.”
“5, 50인가.”
“1등은?”
“200?”
“아 씹 ···”
나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예고생 넷은 바보같이 움찔, 몸을 떨었다.
“아, 시발 저길 나갔어야 했는데!”
내 눈빛에는, 아마 분노와 서러움이 같이 서려 있을 것이다.
구로구였나, 구로구에서 열렸던 거였나?
우리 학교에서는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내가 왜 저걸 몰랐지? 저기서 1등 먹었으면 200 꽁돈이 들어오는데···
예고생들은 나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3학년 선배들도 있는데 1등을 어떻게 먹어 ···”
“왜 못 먹어.”
“···.”
김이 빠져버린 느낌이다. 호기롭게 쳐들어왔으면 호기롭게 주먹질을 하던가 아니면 공연을 하던가.
툭-
혁오는 그들의 뒤에서 어깨를 두드렸다.
“안 싸울 거면 가. 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
“아니면 반에 가서 애들 다 불러올까?”
“주먹질하지 말고, 기타쟁이 답게 공연으로 실력을 보여라.”
“큭 …”
4:3이었다. 하지만, 기세에 눌려버린 예고생들은 참 삼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남기며 느릿느릿 뒷걸음질쳤다.
“원정에서 개 털어줄게 진짜.”
“오냐. 연습 열심히 하고.”
일부러 느릿하게 걷는 건, 한 때 호기로웠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무의식적 행동일 것이다.
“··· 혁오 너 진짜 원정 안 갈거냐?”
“간다 가.”
우리는 옷을 주워입으며 저 멀리 달려오는 선생님들을 피해 도망쳤다.
셋이서 말을 맞추고 변명을 짜내느라 생고생을 했다.
“안 다쳤어?”
“물론이지. 애들 잘 타일러서 보냈어.”
소이는 걱정스럽게 나를 올려다보면서도, 안도하는 표정을 비췄다.
“다행이다···. 앞으로도 싸우면 안 돼···.”
“··· 안 싸워 임마.”
4월 4일.
열흘 하고도 하루가 흘렀다.
달력이 한 장 찢김과 동시에 도시를 덮던 한파가 가시며 자연의 포근함이 공기에 스며들었다. 길가나 학교 근처에 심어진 벚나무에서는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얼어 있던 땅은 완전히 녹아 하나 둘 씩 잡초가 피었다.
어디 가나 할 것 없이 풍기던 겨울 특유의 탄내는, 싱긋한 풀냄새로 물들고 있었다.
삭막했던 겨울이 지나고, 또다시 봄이 찾아왔다.
회귀하고 나서 계속 사건에 휘말리다 보니, 쉴 시간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요 며칠간은 학교, 학원, 연습에 매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소이랑 연습하고, 학원에 가서 오른손을 필사적으로 교정하고.
혁오와 도현이랑은 예고에서 칠 곡 몇 개를 선정해 둔 상태였다.
보컬은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된다.
가사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우리가 부를 수 있는 곡만 선정해 놨으니까.
디딩 디리링-
학원의 합주실에 있는 마샬 스택 앰프에서, 내가 튕기는 아르페지오 음이 흘러나왔다.
아르페지오 활용성은 순식간에 ‘b-’까지 올라왔다.
실력이 향상됐다기보다는, 사고당하기 전의 감각이 돌아온 것에 가까웠다.
나는 어쿠스틱 기타가 주력인 기타리스트들보다는 아르페지오에 약하지만, 그래도 취미 수준의 실력은 아니었다.
악력도 ··· 나름 돌아왔다. 지금은 성장이 덜 끝난 상태라 회귀 전처럼 70의 악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굳은살 대충 장전 완료.
“오른손이··· 좀 나아지긴 했는데.”
내 연주를 줄곧 듣던 윤대혁 선배는 그리 말했다.
“나아졌나요?”
“조금 말이다.”
회귀한지 한 달 조금 넘은 시점. 장애가 가져다준 단점은 서서히 극복되고 있었다.
“그 기타 계속 쓸 거냐?”
“이거요? 예. 꽤 좋아요.”
펜더가 아닌데 펜더 소리 난다!
펜더 함유량이 90%쯤 되는 기타. 난 아주 만족스러웠다.
“속주할 때 불리함이 있을 텐데.”
“괜찮아요.”
왼손 테크닉중에 a미만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
“그래도 슈퍼스트랫이 나을 거다. 넥 얇은 모델들로.”
“플로이드로즈 브릿지 개극혐.”
“뭐?”
윤대혁 선배는 슈퍼스트랫을 상당히 좋아하는 모양이다.
슈퍼스트랫은 전통적인 ‘스트라토캐스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굵은 넥을 얇게 깎고, 잡음을 뿜어대는 싱글픽업을 치우고, 아밍이 더 잘되게 플로이드로즈 브릿지를 박고.
“뭐라고 했나?”
“저는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가 싫습니다.”
“후우 ···”
윤대혁 선배는 한숨을 크게 토했다. 저 사람은 아밍을 특히 많이 하니까. 따지고 보면 취향 차이다.
나처럼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근데 나는 싫다.
“그 기타 ··· 어디서 났지?”
“악기점에서 중고로 업어왔어요.”
“··· 구성이 아주 특이해. ‘싱글픽업’의 출력이 모자라서 싱글형 험버커로 교체하는 경우에는, 보통 브릿지 쪽에 작업하니까. 근데 그건 미들 픽업 위치에 박혀있군.”
“그러게요.”
미들픽업은 거의 바닥에 붙어있었다.
기타리스트 중에 미들 픽업을 완전히 내리는 사람는 꽤 많다.
피킹 포인트를 신경 쓰지 않으면 미들픽업에 딱딱 피크가 걸리며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니까.
픽업은 기타 현의 ‘진동’을 전기신호로 변환해주는, 일렉기타에서 매우매우 중요한 부품 중 하나이다.
픽업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각기 다른 성향의 소리를 표현한다.
“··· 그 사람이 내 놓은 기타 같군.”
“그 사람이요?”
“이런 구성을 좋아하는 ··· 변태가 한 명 있어. 뭐, 확실하진 않지만.”
윤대혁 선배는 괜히 사람 궁금해지게 말을 끊었다.
이 기타의 원래 주인이라 ··· 누구지?
굳이 스콰이어를 들여서 픽업을 바꾸고 중고로 내놓다니 ···
“오늘은 이걸로 마치지. 신입생 음악회 잘해라.”
윤대혁 선배는 장비를 챙긴 후 급한 걸음으로 합주실에서 나갔다.
30분밖에 안 되는 레슨 시간이었지만 윤대혁 선배의 가르침의 농도는 아주 진한 편이었다.
저 직설적인 어투가 배우는 입장에서는 정말 상당히 고맙다.
10년 뒤에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테크니션 기타리스트가 되는 윤대혁.
지금 이 시점에도, 그의 테크닉은 대단하다.
나는 소이와 학원에 남아서 문 닫을 때까지 연습했다.
곡 하나를 거의 2주간 우렸으니, 궁합은 잘 맞는 건 당연했다.
나는 소이아버지가 선물해주신 와우 페달을 밟았다.
-와아아아앙!
와우 페달은 와우와우와우 하는 소리를 내주는 페달이다.
딱 이름값 그대로 한다.
“··· 크흡.”
소이는 나의 현란한 테크닉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꼭, 어린아이가 입을 오므렸다 벌렸다 하는 듯한 소리가 연습실을 메웠다.
“그거 진짜로 쓰게?”
“잘 봐봐.”
Start의 하이프렛 스트로크.
와우 페달을 미약하게 밟으면서 스트로크를 갈기면, 꽤 재밌으면서도 괜찮은 톤이 나온다.
“합주 한 번 더 하자.”
“응.”
내가 a파트를 맡고, 소이가 b파트를 맡기로 했다.
곡을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일렉기타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약간의 어레인지도 가미했다.
중간중간 섞어놓은 스윕피킹와, 강렬한 슬라이딩.
소이의 실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따라와 줘서 무서울 정도였다.
“좋아. 이대로 하면 돼.”
“응!”
나는 기타를 짊어지고,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바쁘다.
신입생 음악회 참가자들이 부랴부랴 무대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리허설도 없다. 그냥 한다.
연습실은 이미 1학년 애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
“야, 저기 예고 애들 온다.”
나는 창밖을 확인했다.
봉고에서 예고생 아홉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들은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쳐 멘 채, 우리 학교를 훑으면서 강당으로 향했다.
“난 상품 개구려서 안나감.”
도현이가 말했다. 신입생 음악회 상품 정보를 듣고서 실망한 모양이다.
“난 솔로.”
혁오는 오늘도 자기 기타를 열심히 닦고 있었다.
박쥐 같은 모양의 깁슨 sg모델. 올 블랙이라 아주 멋스러웠다.
“가자.”
우리는 강당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마주칠 일 없는 2,3학년 선배들이 강당에 꽉 들어차 있었다.
신입생의 참가는 자유지만, 관중 역할을 하는 선배들은 강제로 이곳에 모인다.
지루한 표정, 졸린 표정, 코파는 표정.
자의가 아닌 타의로 모인 사람들의 얼굴은 아주 가지각색이었다.
강당 단상에는 채미현 선생님과 다른 학년 선생님이 서류를 훑어보고 계셨다.
나는 소이와 함께 무대 뒤편으로 이동했다.
예고생들도 있네.
세 명 빼고는 아예 악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성악 하는 애들 일듯.”
옷도 깔맞춤인게 왠지 그래보인다.
“흠.”
저번에 봤던 펌투블럭도 있네.
그는 나를 노려보다가도, 시선을 맞추니 먼저 눈을 돌렸다.
행동 참 귀여운데?
대가리 한 대 때리고 싶을 정도로.
“1번 준비됐어?”
소이와 나는 6번이었다. 신입생들 모두가 음악회에 참가하지는 않는다.
성악 전공 애들은 단체로 무대에 오르기로 한 모양이다.
아마도, 반나절 안엔 충분히 끝날 거다.
“예.”
펌 투블럭이 대답했다.
“장원영이라 했지? 곡은 ··· 왕벌의 비행.”
“네.”
“부르면 바로 올라오면 돼~”
선생님은 다시 단상으로 돌아가셨다.
– 아, 아. 4월 신입생 음악회가 지금 막 ···
장원수도 아니고 장원민도 아니었네.
규모 있는 콩쿠르에서 3등할 정도의 실력이면 ··· 어느 정도지? 소이보다는 조금 더 잘 치는 수준일까?
김태현은 그나이대에서 아주 잘 치는 편이고.
“왕벌의 비행?”
나는 장원영에게 물었다.
그는 피식, 기분나쁜 썩소와 함께 자신만만한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그래, 왕벌의 비행.”
1번 타자로 왕벌의 비행을 친다라 ···
“패기 넘치는데?”
나는 감탄했다.
실력으로 유산고를 털어준다라 ···
일렉기타 버전으로 편곡된 왕벌의 비행은, 딱 실력자랑 하기 좋은 곡이다.
드라이브톤을 적절히 잡고 연주하면, 정말 벌떼가 날갯짓을 하는 듯한 소리가 펼쳐진다.
저렇게 대담하고 굳건하게 도발을 날리다니. 어떻게 곡을 소화해낼까.
– 1번은 예술고등학교에서 찾아온 학생의 무대입니다! 다들 박수 !
장원영은 기타와 멀티이펙터를 들고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를 따라가는 두 명의 남학생들.
드럼이랑 베이스겠지.
과연 어떨까?
어떤 소리를 가져왔을까?
곡 특유의 전투적인 광경을 어떻게 그려줄까?
나는 무대 뒤에서 빠져나와 장원영의 연주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저정도 자신감이라면 김태현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실력자이지 않을까, 적어도 곡에 휘둘리지는···
“···.”
관중들은 말없이 ‘왕벌의 비행’을 감상했다.
기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화려함에 감탄 토하며 입을 벌리고,
기타에 대해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 또한 연주력을 부러워할 만한 ··· 그런 ··· 실력인데.
내 머릿속에는 벌떼가 백조를 덮치는 모습이 아닌, 참새 무리에게 쫓기는 벌떼의 광경이 그려졌다.
테크닉 실수는 많지 않았다.
아주 잠깐 동수가 쳤던 black star가 떠올랐지만, 그가 비빌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드르르르르르륵-!
지판 위를 춤추듯이 날뛰는 손가락들.
장원영의 얼굴은 극히 진지했다.
여유가 없다.
감정이 ··· 급박함이, 전해지지 않는다.
“고등학생 치곤 잘 치네.”
내 결론이었다.
가장 첫 순번이라 그런지, 2분 채 안 되는 짧은 곡에 쏟아지는 박수 소리는 꽤나 컸다.
나는 문뜩 고개를 돌려 선생님들이 계신 자리를 살폈다.
나선생님 ··· 오늘 오셨구나.
전공 지원 수업이 있는 날도 아닌데.
나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박수를 치고 계셨다.
다만 그의 얼굴에는, 어색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어땠어?”
나는 무대 뒤로 돌아갔다.
어둑한 공간에서, 김태현과 장원영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좋았어”
흡족한 장원영의 표정.
언제나 서글서글한 김태현의 얼굴.
하지만,
“네가 친 게 ‘왕벌의 비행’이 아니라, ‘왕벌의 도망’이라면 말이야.”
표정을 유지하는 것은 김태현뿐이었다.
“풉.”
저 멀리서, 어쿠스틱 기타를 든 하민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
“아니야~ 너보고 안 웃었어. 김태현이 말이 웃겨서 그래.”
하민서는 괜히 쌈닭처럼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우리학교 털어준다면서?”
김태현이 물었다. 장원영이 우리학교를 찾아왔던 사건, 그리고 유튜브에서 댓글로 도발을 한 사건.
이미 1학년들 사이에서는 장원영에 대한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
고등학생 치고는 잘 친다. 연습만 꾸준히 한다면 실력이 차곡차곡 쌓일 거다.
근데이게 ··· ‘턴다’ 라고 자만할 정도가 되나?
“우리가 준비한 게 이게 다일 거 같아?”
장원영의 옆에 있던,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남학생들은 그리 이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