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54
레일라, 레일라. (3)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최유진은 벽에 딱 붙어서 아기 새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1번인 탓에 괜히 비교당하게 생겼잖아.
“괜찮아 임마. ”
나는 툭툭, 그녀의 어깨를 두들겼다.
“연습한 대로만 해. 심사는 어차피 순번 다 돌아간 다음에 하니까.”
“으 ··· 응.”
나는 무대에 오르는 최유진에게 손을 흔들었다.
“김수재 개레전드.”
“수고했어 수재야 ···”
웃는 얼굴로 맞아주는 소이와 도현이.
나도 같이 웃음을 지었다.
무대 뒤편에 숨어있던 참가자들은 안 보는 척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시선 참 뜨겁구만.
“어떻게···”
넙데데한 얼굴의 남자애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만들었어?”
아까는 대놓고 무시하더니. 태세전환 개빠르네.
나는 영양가라곤 하나도 없는 충고를 내뱉었다.
“열심히 배워야지. 그럼 만들 수 있어.”
“열심··· 히?”
“고럼.”
귀로 음계를 따서 bgm을 만드는 것과 재편곡을 하는 것.
난이도가 차원이 다르다.
오래 배워야 한다.
곡을 어레인지 할 때에는, 원래 있던 곡이 ‘완성형’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넘어 내놓은 음반.
자기 멋대로 변화를 줬다고 해서, 반드시 좋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 귀에 한순간 좋게 들릴 수는 있어도, 이게 ‘색다르기만’ 한 건지, 아니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 건지 구분하기 힘들다.
“···.”
넙데데한 얼굴의 남자애는 푹 고개를 숙였다.
탈락할 줄 알았던 놈이 예선 1위 먹을 것 같아서 그런가.
아마 죽도록 배알 꼴리겠지.
“아 개긴장되네.”
도현이가 뚜둑뚜둑 손을 풀며 말했다.
“콩쿠르에서 젖꼭지 자랑하던 놈이 긴장을 다 하네.”
“암튼 네 탓임.”
그게 왜 내 탓이야.
나는 무대 뒤편에서 앰프 노브를 열심히 돌리는 최유진을 관찰했다.
딩- 디잉~
다행이다.
내가 알려준 대로 톤메이킹을 하고 있다.
펜더 블루스 디럭스는 클린톤이 사기다.
사기니까 잘 이용해야 한다.
회귀전의 나는 저 앰프를 사고싶었지만 못 샀다.
방음 문제도 문제이거니와, 돈이 없어서 그냥 앰프 시뮬레이션으로 만족했었다.
그래도 역시 실물은 못 따라가지.
“유진이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돼야지 고럼.”
나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이는 그런 나를 ···
정말, 지긋이 쳐다본다.
“왜?”
“응··· 아, 아니야.”
말도 더듬는다.
더듬더듬.
나는 기타를 더듬으며 최유진의 연주를 감상했다.
짐 홀의 Im Getting Sentimental Over you
저번에 보내준 1964 라이브 영상을 그대로 카피한 연주였다.
Bgm제작이 어렵지는 않았다. 코드와 비트의 반복이었으니까.
모던 재즈기타의 본좌 격인 짐 홀의 연주를, 최유진은 과연 어디까지 구현해 낼 수 있을까.
“오···”
나는 자연스레 감탄을 토했다.
잘하는데?
보통 대회에서는 재즈나 블루스를 치면 점수를 잘 주는 경향이 있긴 하지.
아니면 아예 ‘색다른’ 걸 치던가.
후자는 도박이고,
전자는 안전빵이다.
최유진의 연주는, 아주 안정적이었다.
영상을 보며 분석을 많이 했나 보다.
당장 저 연주를 녹음해서 클래식 바 같은 데에 틀어도 전혀 위화감이 안 들 것 같다.
짝짝짝짝짝-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소이는 헐레벌떡 뛰어온 최유진을 안아주었다.
“어땠어? 어땠어?”
“좋았어 ···”
“인정. 좋았음.”
“자신감 좀 가져라. 잘 치네.”
활짝 웃는 최유진. 내가 다 대견스럽다.
다음 차례는 소이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응.”
닐 자자의 Celestine.
소이의 연주는 딱히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무대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긴장 안 하고 잘 친다.
악력 훈련도 꾸준히 하는 모양이네.
저번에 재 봤을 때는 중3 여학생한테 발릴 정도 였는데
이제는 또래 수준의 악력은 되는 것 같다.
지이잉-!
톤이 아주 괜찮았다.
닐자자 특유의 풍성한 딜레이와, 미들과 하이가 부스팅된 날카롭고 시원한 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소이 진짜 잘친다 ···”
“맞음.”
200은 넘어 보이는 페달 보드와, 천 만 원짜리 기타.
훌륭한 장비를 훌륭하게 휘두르는 재능.
완벽하구만.
예선은 내가 1위 할 거 같은데, 그렇다고 두 사람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청명하면서도 경쾌한 선율을 귀에 새겼다.
“··· 2번이랑 3번도 잘하네 ···”
“쟤네 어디 학교야?”
“예고 아냐?”
“아까 듣기론 ···”
궁지에 몰린 참가자들이 우리를 가리키며 속닥속닥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대를 마치고 돌아온 소이를 최유진은 힘차게 안아 들었다.
“소이 너무 멋있었어!”
“으..응···”
얼마나세게 안은 것인지 소이의 목소리에서 삑사리가 났다.
대회 예선은 척척 진행되었다.
무대를 무사히 소화해낸 애들도 있었던 반면, 망한 애들도 있었다.
핑크 교복 애들은 부담을 느끼기라도 한 건지, 실수를 연발했다.
도현이는 ···
두증- 두증-!
베이스에 먹인 오버드라이브 이펙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슴을 쿵쿵 때리는 엄청난 박력이다.
베이스로 캐논락을 치다니.
리프가 조금 간소화되긴 했지만, 5현 베이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연주였다.
B현을 손가락 받침대로 쓰지 않는구나.
대단하네.
“와 ···”
“베이스로 캐논 치는 거 처음 들어봐.”
도현이가 편곡한 곡은 아니지만, 카피를 꽤 잘했다.
감탄을 뱉는 것은 소이와 최유진뿐만이 아니었다.
오오오오-!
무대에서도, 무대 뒤편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신문물을 접한 구시대 인들이 내지르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 실수가 좀 있었다.
고난이도 테크닉이 전부 들어가는 곡이니 뭐 어쩔 수 없다.
나는 멋들어진 표정을 지으며 무대에서 내려오는 도현이를 반겼다.
“수고했다.”
“암~”
심사위원들은 아리까리한 표정을 띄웠다.
관중 반응은 엄청 뜨거웠는데.
역시 실수 때문에 그런가 ···
우리는 대기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꺄르륵 꺄르륵-
여자애들이 나와 도현이를 앞서 갔다. 화장실에 가는 모양이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왜 여자들은 꼭 화장실을 ‘같이’ 갈까.
물어보기 참 껄끄러운 주제다.
뚜벅뚜벅.
복도 저 끝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
익숙한 얼굴이,
익숙한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민수였다.
눈깔 저렇게 뜨는 건 미래나 지금이나 똑같네.
딱 오해사기 좋은 눈빛이다.
“쟤 왜 꼬라보냐.”
도현이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가서 대가리 한 대만 때리고 와.”
“그럴까?”
잘생긴 재능충은 때려야 제맛이지.
도현이 피지컬이면 충분히 쫄 것 같은데.
민수랑 나는 키가 똑같 ··· 지는 않네.
지금은 내가 더 크다.
우리는 뚜벅뚜벅- 민수에게 다가갔다.
움찔-
쫄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내 옆의 키큰 병신이 괴상한 표정을 지은 탓에 놀란 거였다.
마치 현대미술 같은 얼굴이었다.
안면근육이 참 대단하다.
나는 민수에게 물었다.
“할 말 있냐?”
“···.”
입이 근질근질해 보인다.
“너 일렉기타 되게 잘 치더라. 이름이 김수재라 했지?”
“어.”
“··· 왜 아까 나한테 말 건거야?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이해가 안 가서.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참 의심이 많은 놈이네.
나는 그럴듯한 대답을 짜내었다.
“너도 이름이 이민석이야?”
“··· 아니? 이민수인데.”
“난 아까 이민석이라 불렀는데? 아는 애랑 뒤통수가 똑같이 생겨서.”
“아 ···”
민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도현이는 흥미 없다는 듯 코딱지를 파고 있었다.
덩어리를, 나한테 던지려 한다.
휙-
“웰케 잘피함.”
“개드럽네 진짜. 본선 진출 기념으로 음료수 쏠라 했는데 넌 안 사준다. 절대 안 사줌.”
“아 미안 진짜 미안 ···”
도현이가 내 팔에 매달렸다.
민수는 그런 나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음료수 마시고 싶나?
“본선 ··· 갈 거라 확신을 하고 있네.”
“그럼.”
“자신감 괜찮네.”
견제하는 건가?
뭐, 말을 띠껍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야 봐줄 만 하다.
자신감은 이놈도 나 못지않다.
나는 흡, 헛숨을 토한 다음에 뭐라 말을 이어야 할지 고민했다.
“연습 열심히 해라.”
튀어나온 것은, 평소 입에 달고 살던 말버릇이었다.
연습 열심히 해라.
비꼬는 말이 될 수도, 격려가 될 수도, 응원이 될 수도 있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아주 중의적인 표현.
“그래! 너도 연습 열심히 해라!”
민수는 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놈이었지.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
포기하지 않는 놈.
참 나랑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나는 민수가 메고 있는 기타 케이스를 훑어 본 다음,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통기타로 참가하냐? 시간 되면 일렉기타도 시작해봐.”
“응? 갑자기?”
나는 손을 한 번 흔든 다음에, 도현이와 같이 자판기로 향했다.
민수와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격정적인 재회도 아니었고,
회귀로 인해 뭔가 새로운 관계가 쌓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대충 평범했다.
길가다 만난 같은 또래 남자애와 말 몇 마디 섞은 정도
나는 그걸로 만족했다.
괜히 여기서 친한 척을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우리 학교에 전학 오니까.
그때까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음료수를 마시며 노가리를 까고 있자, 첫날 일정의 끝이 다가왔다.
휴식 타임 없이 계속 무대가 돌아갔던 1일 차.
참가자 전원이 무대에 섰다.
그리고서, 심사위원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회자의 호명과 함께 대머리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렉기타부문부터 심사평가와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평가 없이 결과만 통보할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대머리 아저씨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일렉기타 부문 1번 김수재 학생은 예선 1등으로 본선에 진출합니다. 그다음에는 ···2번 최유진 학생. 재즈기타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짐 홀의 연주 느낌을 아주 잘···”
··· 뭐지.
대머리 아저씨는 나에 대한 심사 소감을 단 한마디도 내지 않았다.
바로 최유진의 연주에 대한 소감으로 넘어갔다.
최유진은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아주 그냥 칭찬 일색이다.
다른 심사위원이 따끔하게 부족한 점을 찝어 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였다.
“2번 최유진 학생, 본선 진출합니다.”
“얏호!”
최유진은 꽥 환호를 질러댔다. 마치 날아갈 듯한 표정이다.
잘됐네.
그 기세로 장학금도 타가라.
소이도 당당히 본선에 진출했다.
여자 심사위원은 말이 너무 길고 어려워서 뭔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도현이는 ···
“어?”
심사위원의 표정이 애매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곡은 아주 신선했습니다만··· 음정이 어긋난 게 많았습니다. 오버드라이브에 묻혀 상대적으로···”
심사위원이 엄청난 악평을 쏟아내었다.
도현이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도현이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선구자는 항상 고통받는 법이지.
“하지만.”
분위기가 반전됐다.
“특유의 구루브와 도전정신이 있었고, 연주 완성도는 조금 떨어질지언정 화려한 테크닉이···”
이 개 씹 운빨충새끼.
표정봐봐. 진짜 개때리고 싶다.
“다붙었네?”
“다붙었어!”
우리는 서로에게 축하를 건넸다.
당연히 김태현도 붙었다.
재능충새끼.
민수는 ···
떨어졌다.
뭐, 장학대회에 참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훌륭하다.
민수가 어쿠스틱 기타를 잘 치는 건 맞지만, 저놈의 진짜 재능은 일렉기타에서 뿜어져 나온다.
빨리 그 사실을 깨닫기를.
예선 첫날은 적적하게 끝났다.
본선 진출자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떨어진 이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치킨이나 오지게 먹고 가자.”
“그래.”
“어디로 가게?”
“글쎄··· 역시 치킨은 네ㄴ···”
“떡볶이 먹으면 안 돼?”
“난 수재가 먹고 싶은 거 먹을래 ···.”
맥주 땡기네.
미성년자라 못 사겠지만.
우리는 뒤풀이를 계획하며 짐을 챙겨 대기실에서 나왔다.
“김수재 학생.”
“어…? 심사위원님?”
반짝-
순간 눈이 부셨다.
대기실 문 뒤에 숨어있던 대머리 아저씨가 두광(頭光)으로 대뜸 나를 불러 세웠다.
뭐지. 할 말이 남아있는 건가?
“잠깐 따라와요.”
대머리 아저씨는 내게 손짓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뒤를 밟았다.
“김수재 뭐임.”
“따로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1등이잖아.”
도착한 곳은, 더는 사용되지 않는 폐문 앞이었다.
“우선, 받아요.”
대머리 아저씨는 나한테 누런 명함을 내밀었다.
··· 뭐지? 게임회사?
“내가 여기 이사예요. 장학대회 후원자 대표 겸 심사관이죠.”
“아 네···”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 초창기 ‘레브 소닉’의 개발자이기도 해요.”
“···.”
레브 소닉 ··· 이라고?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스마트폰, 오락실, 포터블 게임기.
신작 나오면 또 나왔구나~ 한번 해봐야지~ 라며 무의식적으로 깔던 마성의 리듬게임.
10대, 20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게임.
얼떨떨했다.
게임회사에 취직이라도 시켜주는 건가? 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
“아까 그 레일라 말이에요. 게임 수록곡으로 쓰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