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53
레일라, 레일라. (2)
톤값은 이미 다 정해두었다.
나는 재빨리 앰프로 달려가 세팅을 시작했다.
Ts 808과 SD-1의 게인을 이중으로 겹친다. 앰프게인은 사용하지 않을 거다.
믿는다 ts808 오리지널.
“세팅이 완료되는 대로 시작하겠습니다~”
훤칠한 키의 사회자가 말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기타를 튕기며 앰프 노브를 돌려댔다.
좌아아앙-
단단하게 먹은 드라이브 사운드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락 하라고 만든 앰프는 아닌데, 나는 락을 할 거다.
“됐습니다.”
“네! 1번 김수재 학생이 세팅을 마쳤다네요. 연주곡은, 에릭 클랩튼의 ‘레일라’입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나는 관중석 제일 앞줄에 앉아 있는 심사위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Bgm은 이틀 전에 제출했지만, 참가자들의 곡을 일일이 들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들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보컬이 있는 곡을 대회에 가져와서 치다니.
에릭클랩튼의 레일라가 명곡이라는 사실은, 기타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회에 어울리는 곡은 아니었다.
“···.”
뭔가, 뒤통수에 시선이 느껴진다.
무대 뒤에서 애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바글바글 하구만.
민수는 보이지 않는다.
일렉기타가 아니라 통기타로 참가한 거겠지.
처음 전학 왔을 때 일렉기타 잡은지 얼마 안 됐다고 했으니까.
십새끼가 어쿠스틱도 잘 친다.
개부럽네.
나는 페달 보드를 발로 툭툭 차며 무대 맨 앞에 섰다.
관중석은 ··· 절반 정도 채워져 있었다.
대부분 대회 관계자들이거나, 참가자들의 부모님이었다.
본선에는 저 자리가 꽉 차려나.
뭐, 반절이라고 해도 적은 숫자는 아니다.
어둠 컴컴한 홀에, 내가 서 있는 곳만이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났다.
“시작하겠습니다.”
기타를 잡으며 마지막으로 손을 푼다.
레일라는 중반까지 보컬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이후 피아노 코다를 필두로 한 멜로디 라인이 들어온다.
곡의 총 길이는 7분이 넘는다.
툭툭툭,
나는 하이햇 소리를 닫자마자 피크를 튕겼다.
따라 라라라라란-!
레일라 원곡보다 10% 정도 빠른 템포였다.
나는 에릭 클랩튼의 톤을 따라 하기 보다는 내 스타일대로 소리를 만들었다.
리어와 미들의 하프톤을 쓴다.
미들에 박혀있는 픽업은 험버커 픽업이다.
총 세 개의 코일 레일이 동작하며, 강력한 잡음제거가 이루어졌다.
쟈 아앙-!
귀를 찌르는 듯한 오버드라이브 톤이 홀에 왕왕 울려 퍼졌다.
“··· 레일라라.”
“저걸 어떻게 치려고 ···”
레일라 반주를 틀어놓고 ‘기타리프’만 친다면.
곡이 아무래도 빌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보컬을 없애고,
보컬의 멜로디를 기타로 대체한다면.
목소리 대신 기타로 노래를 부른다면 어떨까…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그런 단순한 호기심이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
디이잉~
톡특하고 중독성 있는 기타리프가 지나갔다.
등 뒤의 스피커에서는, 내가 손수 제작한 백킹트랙이 흘러나왔다.
나는 기타로 보컬 파트를 대체하여 노래하듯 현을 튕겼다.
지이이이잉-!
What’ll you do when you get lonely
가사는 없지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첫 소절의 멜로디를 연주하자마자 확신을 느꼈다.
이거, 무조건 성공이다.
무대에 정적이 찾아왔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갖가지 악기 소리가 붓이 되어, 내 머릿속에 풍경을 그려나갔다.
“··· 뭐지 이건?”
“편곡 버전 인 거 같은데 ··· 이런 버전이 있었어요?”
레일라는 에릭클랩튼 곡을 통틀어 가장 개막장인 배경을 자랑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지 얘기다.
지인과 지인의 아내. 둘의 소홀해져 가는 결혼생활.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에릭.
에릭 클랩튼은 지인의 아내인 ‘레일라’ 라는 여성에게 구애를 한다.
임자가 있는 여성에게 말이다.
이 곡은, 이름 그대로 레일라를 애틋하게 부르는 곡이었다.
“와 ··· 트랙 되게 잘 만들었네 ···. 외주 맡긴 거 아니에요?”
“외주를 맡긴 다고요 ···? 장학 대회인데요?”
“아니면 이 퀄리티가 어떻게 나와요?”
“···허어···”
솔직히, 곡 배경에 이입이 안 된다.
너무 막장이라 그렇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는 것은, 원곡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결혼도 못했고, 결혼 근처까지 갔던 상대도 없었기에, 남의 여자에게 구애하는 감정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렇기에 나는, 곡의 ‘다른’ 감정을 이끌어냈다.
‘애틋함, 간절함.’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나는 레일라에서 간절함을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방식대로 소화해냈다.
가사가 없기에,
멜로디만이 곡에 담기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은, 회귀 전의 풍경이었다.
인디밴드 시절.
곰팡이 냄새가 잔뜩 나는 지하 연습실에서 하루종일 처박혀 연습 하던 그 때.
밴드멤버들이 피운 담배냄새, 술 냄새, 가득 쌓인 먼지냄새.
고막을 두드리는 먹먹한 기타 소리.
항상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언젠가 커다란 무대에 서리라 다짐하면서,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성공을 바라며 살았다.
하지만 현실은 아주 냉혹했다.
사고.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끔찍한 사고.
나는 사고를 당했고,
망했고,
뜨는 건 민수였다.
“···.”
민수에게 질투심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성공이, 나에게도 찾아오기를.
저 영광이, 나한테도 닿기를.
간절히 바랬다.
남의 성공을 바라보기만 하던 그때의 애틋함과 간절함.
지이이잉-!
기타로 보컬을 대체했지만, 그래도 리프는 칠 거다.
이게 내가 편곡한 [레일라]니까.
절묘한 드럼비트와 베이스라인, 앰프 시뮬로 녹음해둔 기타백킹과 가상 스프링 사운드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지금의 나는 혼자이면서 다섯이다.
이건, 김수재 다섯 명이 만든 무대였다.
“··· 보컬이 없는데 ··· 빈 느낌이 하나도 안 들어.”
“어떻게 한 걸까요?”
“글쎄요.”
··· 무릎을 꿇고 빈다.
검고 긴 생머리를 가진, ‘성공’ 이라는 이름의 여성에게.
나한테 와 줘.
부탁이야.
제발.
이번 생에는, 나를 버리고 가지 마.
민수에게만 가지 말고, 나에게도 찾아와 줘.
연주에는 연주자의 경험이 스며든다.
나는 그 때 그 감정을 기타에, 연주에 녹여냈다.
보컬을 대체한 멜로디 연주가 끝났다.
끝 같지만 끝은 아니다.
“피아노 코다는 어떻게 진행 될런지.”
“후반부는 편곡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대로 가지 않을까요.”
중반부를 넘어선 레일라는 보컬이 없어짐과 동시에,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환기된다.
툭.
반주가 잠시 꺼졌다.
딩딩- 딩딩딩-
나는 픽업 셀렉터를 프론트로 재끼고 피크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드라이브 이펙터 두 개를 밟아서 꺼버렸다.
“어 ··· 피아노 없는데요!?”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
피아노가 없다.
내가 만든 레일라에는, ‘피아노’가 없다.
피아노 코다 도입부도 내가 맡았다.
기타로.
지금껏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이제는 서서히 발전 중인 핑거스타일로.
딩 딩딩딩~
락킹한 사운드가 사라지며, 무대에는 색다른 ‘감성’만이 가득 찼다.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연주에 묻어나는 감정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피아노 코다의 초반부를 넘기고, 입에 물고 있던 피크를 다시 손에 쥐며 현을 튕겼다.
팍-
드라이브 이펙터를 ‘하나만’ 켠다.
아주 미약하게 걸린 ts808의 부드러운 사운드가 대회장에 울려 퍼진다.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분위기가, 내 머릿속에 새로운 풍경을 그려냈다.
추운 겨울날, 얼마 되지도 않는 세션비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집에 돌아갈 때.
골목 한구석에 있는 붕어빵 노점과, 겨우 천 원이 아까워서 고민하던 자신.
참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성공했다면, 이런 하찮은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붕어빵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을 수 있을 텐데.
소박한 꿈이었다.
나는 그 때, 떨이로 파는 눅눅한 붕어빵을 입에 물었다.
디이이잉-
심사위원들은 내 연주를 들으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나는 손목을 격하게 떨며 프렛을 짚어나갔다.
그리 빠르지도 않고, 현란하지도 않다.
한음 한음에 감정을 녹여내기만 할 뿐.
멜로디 중간중간에 임의로 넣은 짧은 속주 외에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곡이었다.
좌아아아앙-!
곡이 끝났다.
가슴을 쥐어짜고 있던 격한 감정이 조금씩 씻겨 나간다.
하지만, 여전히 미미하게 남아 있었다.
간절함이라는 놈이 말이다.
“···후우.”
나는 숨을 크게 토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의아함을 품고 있던 관중들은 이제 없었다.
새로이 얼굴에 떠오른 감정.
그것은, ‘놀라움’ 이었다.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고생해준 김수재 학생에게 ㅂ···”
사회자가 표정을 가다듬고 전형적인 멘트를 이으려고 할 때,
벌떡. 심사위원 한 명이 일어났다.
50대 초반 정도 될까.
대머리 아저씨였다.
“··· 어떻게 만든 겁니까? 아니 그전에, 어떻게 ··· 친 겁니까?”
그는 눈을 땡그랗게 뜬 채,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제가 만들었고, 열심히 쳤습니다.”
나는 그의 물음에 아주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본인이 만들었다고요?”
“아니, 이걸 본인이 만들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아니에요?”
“옙. 맞습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구상 자체는 옛날 부터 했던 거니까.
레일라를 좀 더 색다롭게, 기타를 부각시키면서 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줄곧 고민했으니까.
“ ··· 어디 전문 업체에 맡긴 줄 알았는데 ···.”
“참나··· 피아노 코다에서 피아노는 또 아예 빼버렸네요? 그 부분만 3기타인가?”
“네. 톤이 너무 겹칠 거 같아서 녹음할 때 어쿠스틱 시뮬레이터를 썼습니다.”
“허어 ···”
대머리 아저씨 옆에 앉아 있던 뽀글머리 아저씨도 괜히 말끝을 흘렸다.
“아니, 레일라가 맞기는 한데··· 보컬이 있는 것도 아닌데···”
“··· 기타로 노래하는 느낌이 들어요. 정확히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마는.”
뽀글머리 아저씨와 대머리 아저씨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심사위원 여성 둘은 묵묵히 노트북을 두들기기만 할 뿐이었다.
“이 곡, 본인이 편곡한 거 확실하죠?”
“예.”
“인터넷이나 어디 공개된 건 아니죠?”
“아 ··· 예.”
뽀글머리 아저씨는 요상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알았어요. 그리고 또 ··· ”
“저, 저기··· 심사평가는 예선이 끝난 다음에 ···”
“아 예. 한 마디만 더 할게요.”
사회자의 제지를 뽀글머리 아저씨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제가 들어본 레일라 커버중에 최고였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커다란,
정말 커다란 박수소리가 홀에 울려퍼졌다.
스피커를 거치지 않은, 손과 손이 만들어내는 화음.
나는 꾸벅, 힘차게 고개를 숙이고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 뒤편과 복도에는 수 십 명의 참가자들이 내 연주를 훔쳐 듣고 있었다.
내가 ‘레일라’를 친다는 말을 듣고 안도하던 애들은 이제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만이 떠올라 있었다.
자, 이제 어쩔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