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52
레일라, 레일라. (1)
나는 민수의 등짝을 강하게 두들겼다.
대가리를 때릴까 충동이 들기도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애가 고개를 돌린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익숙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확인했다.
“누구···”
잘생겼다.
김태현이 약간 기생오래비과라면, 얘는 진짜 남녀불문 잘생겼다는 감상을 토할 만한 얼굴이다.
아직 젖살은 좀 덜 빠진 거 같은데,
그래도 또래 여자애들한테 되게 인기 많을 것 같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민수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이 갔다.
예상이 갔어도, 그냥 쳤다.
아는 척했다.
반가워서 말이다.
“나 알아?”
실실 웃는 나를 보며, 민수는 두 발자국 물러났다.
잘 알지.
같이 기타에 미쳐 살고,
공연도 하고,
밴드도 하고.
앨범도 내고.
그리고 ··· 나 다쳤을 때 병원비도 다 내주고.
포기하지 말라며, 자기 일감 전부 걷어차 버리고서는 병상에 누워있는 내 옆에서 치킨이랑 라면 존나처먹고. 씨발새끼.
굶어죽지 말라고 괜히 무리해서 유명 가수 곡의 세션 파트 던져주고.
진짜 친구였다.
신발끈은 안 매줘도 차에는 대신 치여줄 수 있는 우정.
“···.”
뭐 그런 거다.
비오는 여름날.
우리는 소주 한 병 살 돈이 없어 자취방에 굴러다니던 잡스러운 물건들을 고물상에 팔았다.
편의점 앞 테라스에 누가 먹다 버리고 간 새우깡 집어 먹으며,
꼭 성공하자며 다짐했던 기억.
그런 기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잊고 있었지만, 잊을 수는 없는,
추억들.
이제는 나 혼자만의 추억들.
“···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거 아냐?”
“그런 거 같다. 미안.”
민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뚜벅뚜벅 멀어져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 후우.”
괜히 고개를 치켜든다.
화장실로 달려가 시원하게 세수를 한다.
만난 게 기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
살면서 느껴본 것 중에 가장 이상한 기분이었다.
“야 뭔 일 있냐?”
내가 걱정된 모양인지, 도현이가 따라 들어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
민수는 지금으로부터 1년 좀 넘어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다.
부모님 회사 사정으로.
어차피 미래에 반드시 만나게 될 놈이다.
“…”
생각해 보니까 진짜 씹 재능충이네.
벌써 지역 콩쿠르 3등 이상 뚫은 거 아니야.
나는 고3 때 참가한 청소년 음악축제가 첫 무대인데.
“··· 아까 걔 누구야?”
“초등학교 동창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음.”
“개쪽팔리겠네.”
“리얼.”
나는 허푸허푸 물로 얼굴을 문지른 후, 화장실에서 나왔다.
“수재야 ··· 무슨 일 있어?”
“너 되게 이상한 표정 짓더라.”
“아니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건가···.
나는 세 사람의 얼굴을 곰곰이 살폈다.
회귀하고 나서 연이 생긴 친구들.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
나는 숨을 크게 토한 다음, 마음을 다잡았다.
“앰프 뭔지 확인이나 해보자.”
“기타 다음에 바로 베이스임?”
“그렇지.”
예선장을 향해 걷는다.
내 옆에서 따라 걷던 소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수재 눈 빨개 ···”
“먼지 들어갔나 봐. 물로 씻어서 빼냈어.”
“그래? 다행이다 ···”
소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시답잖은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대기실로 향하지 않고 대회 홀에 먼저 들어갔다.
본 대회는 미래의 음악인들이 장학금을 목표로 실력을 겨루는 전장(戰場)이다.
참가 자격은 2,3월에 열린 ‘사전 협약된’ 콩쿠르에서 입상을 하거나 입선을 하거나.
사전협약이 되어있지 않은 대회의 수상자는 참가할 수 없다.
“신분증 보여주세요~”
“여기요.”
나는 직원에게 학생증을 보여주고서 예선 홀에 들어갔다.
곧바로 감탄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오 ···”
“되게 넓다 ···”
예선임에도 3월 콩쿠르의 본선장보다 더 넓었다.
역시 전국대회다.
앰프 ··· 앰프를 먼저 보자.
“···.”
“어우야.”
무대 한구석에, 마치 할머니 집에 있을 법한 누리끼리한 앰프가 놓여 있었다.
“소이 이거 써 본 적 있어?”
“아니 ···없어.”
“나도 없는데 ···”
소이와 최유진은 신기하다는 듯 앰프를 쓰다듬었다.
좀 에반데.
펜더 블루스 디럭스 리이슈.
이거 오리지널 첫 발매가 50년대 아니었나?
공연장 같은 데서는 보통 범용성 있는 앰프를 많이 쓴다.
연주자가 어떤 곡을 연주할지, 게인을 얼마나 쓸지 모르니까.
하지만 이건 ···
“김수재 넌?”
“음 ··· 몇 번 써보긴 써봤는데 ···”
드라이브가 많이 빈약하다.
게인을 끝까지 올려도 일렉기타 다운 좡좡좡~ 하는 소리가 안 난다.
자글자글한 느낌이 들 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최유진에게 물었다.
“1차 예선 곡 그대로 갈 거지?”
“당연하지! 연습을 얼마나 했는데.”
“개이득이겠네.”
최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거 클린톤 소리가 진짜 좋거든.”
범용성은 떨어지지만, 클린톤은 우주최강이다.
깁슨기타와 펜더앰프. 아주 잘 어울리는 조합이네.
“이펙터 쓰지 말고, 직결해서 톤만 좀 먹먹하게 만들어 봐.”
“리버브도 안 쓰고?”
“어. 소리 딱 들어보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걸?”
최유진은 앰프 노브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툭!
“어!? 뽑혔다!”
“빨리 다시 끼워!”
“안들어가!”
“미친 ···”
방금 건 못 본 걸로 하자.
“소이는 닐 자자 곡 칠 거지?”
“응. Celestine.”
닐 자자라는 기타리스트에 관심이 없다면 잘 모를 수도 있는 곡이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들어봤을 정도니까.
뭐, 곡 자체는 아주 좋다.
닐 자자 특유의 뉘앙스가 아주 맛깔나게 들어가 있다.
“잠깐 페달 좀”
“응.”
나는 소이의 페달 보드를 까서 설명을 시작했다.
“Ts mini로 앰프 드라이브를 부스팅 하는 게 좋겠다. 앰프 자체 드라이브는 약한데, 부스트 하면 꽤 세. 소리도 괜찮고. 딜레이는 ··· 닐자자가 좀 풍부하게 넣는 편이야. 이건 샌드로 빼야 돼. 전체적으로 좀 날카로운 세팅으로···”
소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띄웠다.
프로가 직접 톤 세팅을 도와주다니.
솔직히 사기 아닌가?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마지막으로 도현이.
도현이는 기타 가방에서 베이스 이펙터를 꺼냈다.
“진심이냐?”
“진심이다.”
“진짜 캐논락 친다고?”
“물론이지.”
대단한 새끼네.
베이스는 내가 딱히 조언을 해줄 게 없었다.
애초에 베이스로 캐논락 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영상으로만 봤지.
“대기실로 가자.”
앰프 확인을 끝마친 우리는, 다시 복도로 나가 [전국 장학대회 예선 대기실 1 ] 이라 적힌 곳의 문을 열었다.
예선은 총 사흘에 걸쳐 진행된다.
우리는 전부 첫날에 몰빵됐다.
하민서랑 일정이 갈려서 다행이다.
덜컥 -!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각기다른 교복과 꽤 화려한 사복, 그리고 이리저리 널브러진 의자들.
우리는 예선을 마치고 학교에 들러야 하기에, 교복을 입었다.
“흠 ···”
시선들이 날카롭다.
옆 예고 애들도 몇 명 있네.
같은 학원 애들은 안 보인다.
우리는 접혀 있던 의자를 펴고서 곧바로 손 풀기에 들어갔다.
김태현은 인맥이 진짜 넓은 것 같다.
어릴 때 tv 나왔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가?
어딜 가든 인기쟁이구만.
나는 레일라를 살살 후렸다.
기타 리프를 살리면서, 보컬의 음계를 약간 가져온,
나만의 레일라.
디리 리리리리링~
코딱지만한 음량의 멜로디 라인이 대기실에 울려 퍼졌다.
“쟤 걔 아냐 …?”
“맞네. 에이트라 채널.”
“가서 말 걸어봐.”
먼저 자리를 꿰차고 있던 애들이 나를 보며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핑크색 치마와 바지를 입은 연놈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꼭 만화에 나올 것 같은 교복 색깔이다.
“너 에이트라 채널에 올라간 애지? 영상 봤어.”
“감사.”
“감사할 것까지야. 근데 우리 2학년 ··· 인데. 왜 반말 하냐?”
어쩌라고.
나는 넙데데한 얼굴의 남학생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뭔가 ··· 기억이 날듯 말 듯하다.
회귀전에 일하다가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것 같은데.
참가자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니 대충 익숙한 얼굴이 셋 정도 보였다.
미래의 음악가들이다.
넙데데한 남자애는 내게 대뜸 물었다.
“곡 뭐 치려고?”
“레일라.”
“레일 ··· 라? 에릭 클랩튼 그거?”
“맞아.”
내 대답을 들은 애들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띄웠다.
“그걸로 어떻게 본선에 올라가?”
“맞아··· g 선상의 아리아 좋던데 그거 치지.”
“객기부리네.”
뭘 모르는 구만.
곡이 마음에 들면 치면 된다.
좀 더 어렵게 치고 싶으면 어렵게 치면 된다.
“늬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걸?”
최유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역시 최유진이다.
띠꺼운 상대에게 존댓말 따위 개나 줘버리는구나.
“우리학교 전공 선생님들도 다 칭찬하셨어. 어떻게 편곡을 그렇게 했냐면서.”
“편곡했다고?”
“재즈나 블루스 치는 게 낫지 않나? 그게 더 점수 잘 받잖아.”
분홍 교복 2학년생들은 의문만을 표했다.
내가 ‘레일라’를 친다는 말을 듣고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애들도 있었다.
뭐, 말로는 이해 못 할 거다.
직접 들어봐야 알겠지.
나는 직원이 나눠준 종이에서 공연 순번을 확인했다.
퍼스트.
1번이다.
“오우 ···”
“도현이 넌 몇 번이냐?”
“나도 베이스 1번인데?”
“어 ··· ? 나 3번이야.”
“난 2번 ···”
“우리가 제일 먼저 치는 거네 ···.”
순번을 그냥 학교 순으로 정렬한 건가?
어이가 없네.
예선준비는 척척 진행됐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나름의 실력자들은, 각자의 악기로 짧은 리허설을 했다.
“소리 진짜 좋다아 ···”
“그치?”
“너희 점심 뭐 먹을 거냐?”
우리는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따로 점심을 먹었다.
나랑 도현이, 소이와 최유진.
역시 점심은 제육이지.
이도현 개 맛잘알이야.
“음~”
오후 1시.
마침내, 예선이 시작되려 한다.
“호명 받은 참가자들은 바로 준비해주세요!”
대기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직원이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으으으으 긴장돼!”
“커피 마셔. 커피에는 아세트말로콤···”
“아 됐어! 또 지어낸 얘기잖아!”
“키킥.”
나는 슥슥 기타줄을 닦으며 시답잖은 개소리를 내뱉었다.
“저 ··· 수재야.”
“응?”
옆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던 소이가 물었다.
그녀는 내 귀에 입을 붙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아무 일 없는 거 맞아? 아까부터 계속 ···”
소이는 민수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몇 번 쳐다본 건 맞지만 그걸 바로 알아채다니.
··· 진짜 관찰력이 무서울 정도네.
“진짜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소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첫 순번은 ··· 김수재 학생이네요. 바로 입장할게요!”
대기실의 시선이 전부 나한테 쏠렸다.
예선 순번 1빠따.
영문을 모르겠는 선곡.
다들 나를 보며 미친놈 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상관없다.
제대로 보여주면 되니까.
내가 편곡한, ‘레일라’를.
나는 직원을 따라갔다.
도현이, 김태현, 소이, 최유진도 궁금한지 뒤따라온다.
무대 쪽에서,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왕왕 울려 퍼졌다.
– 2016년도 전국 청소년 음악 장학대회 예선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참가자는 ‘일렉기타’ 전공…
“힘내!”
“화이팅!”
나는 무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