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68
뮤지션의 자격 (4)
속주의 대가이자
특유의 뉘앙스를 겸비한,
80년대의 초신성.
잉베이 말름스틴은 아주 유명하다.
전성기에는 화려한 외모로,
지금은 눈에 띄게 역변해 버린 외모로.
뚱뚱한 체형에 꽉 낀 셔츠, 여러 의미로 터질 것 같은 바지.
지판을 다 갈아낸 라지헤드 스트라토캐스터.
‘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사실 그냥 뚱베이다.
“···.”
윤대혁 선배가 눈빛만으로 나를 뚫어버릴 듯이 노려본다.
뭐,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 이미 한참 전에 간파한 참이다.
저 사람이 나를 연구한 것처럼,
나도 윤대혁을 연구했다.
테크니션 기타리스트.
그리고, ‘잉베이’ 스타일 솔로에 강한 영향을 받은 기타리스트.
라비다는 대중음악을 지향하는 밴드이지만, 타 밴드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 있다.
보컬 혼자 다 해먹고, 다른 멤버들은 반주 셔틀로 전락하는 양상.
자주 보이는 밴드양상이지만, 라비다는 아니다.
각자의 개성이 있다.
개성과 캐미.
좋은 노래.
좋은 인물들.
그 모든 것이, 라비다를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좋지.”
윤대혁 선배가 나의 도전 아닌 도전을 받아들였다.
“··· 괜찮겠어?”
“BPM 낮춰줄까?”
연지선 누나와 드러머 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라비다는 커버곡도 자주 한다.
이목을 끌기 좋으니까.
게다가 커버곡을 꼭 ‘보컬이 있는 노래’에 국한하지 않는다.
보컬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눈에 띄는 파트.
그건 바로 ‘기타’다.
밴드의 기타.
윤대혁 선배는, 무대에서 가끔 기타 솔로 곡을 연주했다.
자작곡 혹은 커버곡.
높은 확률로 모던 솔로곡을 치곤 하지만, 잉베이의 커버도 은근 비중이 있었다.
그는 잉베이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마, 존경할 것이다.
“··· 잉베이 말름스틴의 far beyond the sun 들어갈게요!”
연지선 누나는 딩딩딩- 키보드를 누르며 코드를 점검했다.
좌아아앙-
나는 프론트- 미들 하프톤으로 픽업 셀럭터를 맞추고, 이펙터의 톤노브를 3시로 돌렸다.
준비 끝이다.
백킹 톤에 약간의 수정을 좀 가한 것뿐인데, 뭐 괜찮다.
마샬 사운드를 쓰고 싶지만 ··· 진공관이 터졌다니까 어쩔 수 없지.
이래서 공연 뛰는 기타리스트들이 프리앰프를 들고 다닌다니까.
“잉베이? 대혁이가 가끔 치는 거 아니야?”
“아~ 그 빠른 거?”
관객들이 하는 이야기가 속속히 귀에 들어온다.
회귀전에 나는, 윤대혁 선배의 far beyond the sun라이브 버전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실수 하나 없더라.
손가락 신경이 하나하나 독립된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인체의 신비다.
틱 틱 틱 –
하이햇 소리와 함께 당당히 도입부에 들어간다.
쟝쟝쟝 -쟝-!
반쯤 맛 간 앰프에서 터져 나오는 하이게인 사운드.
좋은 음질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좋은 음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맛이 사는 것 같았다.
잉베이 하면 딱 떠오르는 소리가 있다.
싱글코일 픽업이 버티지 못해 토해내는 드라이브 톤과, 비장한 느낌의 연주기법.
‘뭉개진’ 펜더의 사운드.
그것이 잉베이였다.
나는 그의 소리를 따라 하지는 않았다.
이 소리는 내 소리다.
윤대혁 선배와는, 정 반대의 소리다.
드르르르르르륵-!
엄청난 속도에도 불구하고, 잉베이의 연주에는 날카로운 감정이 묻어나온다.
클래식 음악과 메탈을 접목시키려는 도전.
한 사람의 도전이 불러온 막대한 영향력.
대단한 뮤지션이다.
요즘 들어서는 빠른 곡이 보편화 되었지만,
당시까지만해도 잉베이급 속주 태크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타리스트는 없었다.
선구자.
기타의 새 장르를 뚫은 선구자다.
뚱베이라고 맨날 놀림받아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힘을 쥐어짜내며 피킹속도를 올렸다.
회귀후, 연주 컨디션이 나날이 좋아져 가는 느낌이다.
크로매틱 BPM이 회귀전보다 5나 올랐다.
쥐어짜내며 막 올린 BPM이 아니라,
잉베이 처럼 딱딱 박자에 맞춰 ‘정확히’ 올린 BPM이다
회귀전에는 오른손 때문에 ‘이게 내 한계구나’ 싶었는데.
20년차 기타리스트가 2달 만에 갑자기 BPM5가 오르다니.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뮬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리면 구라치지 말라며 욕이나 엄청 얻어먹겠지.
– 다라라란~ 다라란 다라란~
두둑-!
픽업 셀렉터를 리어로 바꾼다.
높은 음에서 낮은음으로.
추락하듯 떨어져 내려오는 나의 왼손가락들.
브릿지에 딱 붙은 채, 어마 무시한 속도를 따라가는 피크를 쥔 나의 오른손.
far beyond the sun과 비슷하거나 빠른 곡을, 사람들 앞에서 몇 번을 연주했던가.
회귀 후에는 딱 두 번 인 거 같다.
한 번은 특별반에 들어갈 때.
나머지 한 번은 ··· 소이 어머니 앞에서.
나는 언제나 ‘도전’을 할 때 빠른 곡을 쳤다.
속도에 자신이 있어서?
아니다.
정확도에 자신이 있어서?
아마··· 아닐 것이다.
“···.”
둥 둥- 칙
디리리리리리링-!
빠른 곡이라도, 감정을 묻혀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으니까.
속도에 호소를 태울 수 있으니까.
내가 속주곡을 치는 이유는 그랬다.
드러머 형과 베이스 형이 든든하게 내 연주를 뒷받침해줬다.
체력 엄청 빠질 텐데.
좀 미안하네.
근데 어쩔 수 없다.
사람들에게 ‘나’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그리는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선곡이다.
“잘치네···?”
“근데 느낌 되게 다르다. 그, 대혁오빠가 칠 때는 ···”
“아, 맞아맞아.”
관객들의 작은 대화 소리에 신경이 쏠릴 뻔 했지만, 어김없이 오늘도 머릿속에 풍경이 그려졌다.
“···.”
far beyond the sun.
태양 저 너머에.
이름에서 가리키는 ‘태양’이, 천문학적인 의미의 태양은 아닐 것이다.
태양 저 너머에는 수성 궤도가 있고, 우주가 있고, 먼지가 있을 뿐이니까.
곡은 추상적인 의미의 태양을 가리켰다.
따듯함, 생명, 모든 것의 탄생.
옛날 옛적, 우리의 조상이 생각하던 ‘태양’이라는 개념.
그리고 ···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간망하는 듯한 인간의 욕심.
‘간망’ 이라는 감정이 붓이 되어 내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은 한 인간이,
폭풍우가 내려치는 검은 하늘을 보며, 기도한다.
태양을 바라는 곡.
추상적인 의미의, 긍정적인 의미의, 태양을 바라는 곡.
하지만 얻을 수도, 닿을 수도 없어 절망하는 곡.
나는 더더욱 감정을 이입했다.
드르르륵-
막 돼먹은 스윕피킹으로 현을 훑는다.
프렛을 한 번 잘못 짚기는 했지만, 실수가 크게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다.
준비도 없이 친 곡이었으니까.
이걸 안 틀리고 어떻게 쳐 시발거.
“···.”
나는 관객들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들은 입을 멍하니 벌리며, 나와 윤대혁 선배를 번갈아가며 살폈다.
“난 이게 더 맘에 든다.”
“에이~ 대혁오빠가 더 잘 치지~”
“아닌데 ···.”
윤대혁 선배와 나는, 곡을 해석하는 관점이 달랐다.
윤대혁 선배는 이 곡이 가져다주는 ‘비장함’에 주목하며, 자신만의 고집을 섞었다.
틀리지 않겠다는 고집.
테크닉이 뭔지를 보여주겠다는 고집.
고집이 가져다주는 ‘개인’의 비장함.
언뜻 보면 정말 1차원적인 해석이었다.
그러므로 이해하기가 쉬웠다.
눈에 띄게 깔끔한 연주 덕에.
처음 본 사람이라도 홀려버릴 만한 화려한 손놀림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 !”
나는 기타를 번쩍, 들었다.
“어 ··· 어!? 저거 뭐야?”
“엥?”
기타를 뒤집는다.
그리고, 입에 가져다 댄다.
뭐냐고?
이빨기탄데?
지이이이잉-!
나는 잉베이 특유의 90도 허리꺾기를 따라 하며 이빨기타를 뽐냈다.
돈 주고 공연 보러온 사람들인데,
이정도는 보여줘야지 안 그래?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80명에 달하는 관객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개쩔어!”
“처음 봤어! 저게 왜 소리가 나!?”
이거야.
이맛이지!
파악- !
기타를 되돌려 피킹을 이어나간다.
잉베이 곡을 치려면 잉베이의 퍼포먼스도 따라하라 이말이야.
나는 윤대혁 선배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연주에 심취하는 거,
좋다.
그런데, 공연은 관객과 함께하는 것이다.
망각하기 쉬운 부분이었다.
카아아아앙-!
날카로운 스트랫의 소리가 지하 라이브 카페에 왕왕 울려 퍼졌다.
화려한 퍼포먼스 덕에, 관객들의 집중도가 더욱 높아진 것 같다.
수 십 쌍의 진심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나는 피로해지려는 왼손에 더욱 신경을 기울였다.
피로해도
힘들어도.
연주 퀄리티가 떨어지면 안 된다.
피로는 나만 피로해지면 된다.
듣는 관객이 피로해지면 안 된다.
관객은, 항상 즐거워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뮤지션의 자격이자 자세였다.
드르르르르륵-!
완벽한 방음능력 덕에,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지하 라이브 카페.
빗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나와 같은 풍경을 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같은 날.
폭풍우가 내리치는 거리 한 바닥에서,
태양이 뜰 거라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고 있는 사람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이이잉-
곡은 ‘극 후반’에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극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듯한 멜로디가 누그러지며, 처음으로
‘상냥함’이 깃든다.
상냥한 멜로디.
아주 짧디짧은, 다독이는 듯한 멜로디.
폭풍우가 내려치는 구름 속에서, 한줄기의 햇살이 내리 쬐었다.
좌아아아아앙-!
곡이 끝났다.
-후우우우우우우우우-!
관객들의 목에서 경쾌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는 사람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멍하니 무대를 감상하던 보컬 형은, 마이크를 머리 위로 올렸다.
“김수재! 김수재!”
그의 호응유도에 따라 라비다의 팬들이 나의 이름을 열창한다.
기분 좀 좋은데?
남의 팬이지만, 내 팬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저기 있는 내 1호 팬처럼.
“김수재! 김수재!”
꺅꺅 소리 지르는 여고생들의 목소리가 귀를 강타한다.
나는 기타를 풀고 척-! 머리 위로 올려 들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라비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동시에,
꾸벅, 기타를 바치듯이 고개를 숙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나를 위해 만들어진 무대는 아니었지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주인공이 되었다.
호다닥,
나는 케이블을 뽑고, 앰프 전원을 끄고,
장비를 챙겨 무대에서 내려온다.
“잘생겼다아~”
“번호 좀 줘!”
대학생 형, 누나들이 나를 놀린다.
개부끄럽네.
“후우 ···”
나는 바 테이블이 있는 쪽으로 피신했다.
“자, 본격적으로 달려볼까요! 오버나이트 갑니다!”
보컬형은 폴짝- 무대로 뛰어 올라가 달아오른 분위기를 이끌며 라이브를 이어나갔다.
와아아아아아-!
쥭쥭쥭 좌아아앙-!
프로들이구만.
분위기 갖고 노는 법을 잘 아는구만.
털썩- 원형 의자에 쓰러지듯 앉는다.
소이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콜라를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어땠어?”
“진짜 좋았어 ···!”
소이의 목소리가 잔뜩 떨리고 있었다.
두리번 두리번, 신기한 듯이 주변을 살핀다.
처음 왔으니까 모든 게 신기하겠지. 암.
“어떻게쳐어떻게쳐? 어떻게 치는 거야?”
내 손에 들린 기타를 뺏으며, 성예린이 물었다.
“뭐?”
“잉베이 곡! 어떻게 치는 거야?”
“한 20년 연습하면 돼.”
뭐, 잡음 엄청 내면서 속도 흉내 내는 거라면, 전공생으로서는 얼마 안 걸릴 거다.
정확히 짚고, 박자를 살리고, 감정을 실을 만큼의 여유를 가지는 게 어려운 거지.
“으으으으···.”
성예린은 김태현에게 쪼르르 달려가 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나도 못 치는데?
상쾌한 표정뿐이었다.
“··· 이빨기타는?”
“그게 사실 비밀이 있는데 ···”
이빨기타의 비밀.
사실 이빨기타는 이로 살살 밀기만 하고 줄은 튕기지 않는 기술이다.
아예 줄에 이빨을 안 대는 사람도 있다.
소리는 해머링과 풀링오프로 낸다.
기타리스트들이 필사적으로 숨기는 비밀이었다.
“어 …?”
금단의 비밀을 엿들은 성예린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소이의 표정도 비슷했다.
미안해.
환상을 깨버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