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82
두 명의 제자, 녹음 (1)
건반을 누른다.
복잡하게 연결된 작대기와 스프링이 해머를 움직이며 현을 때린다.
피아노는 현악기다.
현에서 소리가 나는 악기이니까.
일례로, 피아노 뚜껑을 열고 고무망치로 내리쳐도 똑같이 소리가 난다.
다만, 그렇게 치는 사람이 없을 뿐.
피아노는 고상한 악기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피아노는 얌전히 의자에 앉아 건반을 두들겨야 한다.
발로 서스테인을 넣고, 뮤트를 하고, 눈을 감고.
감정을 실어 연주를 해야 한다.
“흠 ···”
원재선은 한창 연주를 진행하다 불현듯 건반에서 손을 떼었다.
“··· 이게 아니야.”
“뭐가 아니여?”
연습실 소파에 누워 있던 스승이,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자신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환자가 그런 거 먹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아삭아삭
아삭아삭아삭아삭
아삭거리는 과자 소리가 아까부터 거슬려 죽을 것 같았다.
“왜 안된다냐.”
“아니 상식적으로 암환자가···”
“영감이 안 떠올라?”
갑작스레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원재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
영감이라 ···
“사람이란 게 언제나 영감이 팍팍 떠오를 수는 없어.”
“··· 그건 그렇죠.”
예술가들이 유독 흡연율과 음주율이 높은 이유.
유독 마약에 손을 대는 사람이 많은 이유.
영감 때문이다.
곡···
얼마 남지도 않은 ‘개인 연주회’의 곡.
준비는 잘 되었다.
준비만 잘 되었다.
이미 수천, 수 만 번 연습하여 손에 익은 곡이기에, 실패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 계속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야 한다.
영감이, 떠올라야 한다.
“선생님은 언제 영감을 얻으십니까?”
“나?”
“예.”
“음악 들을 때.”
서병훈은 핸드폰 화면을 원재선에게 돌렸다.
내리치는 폭풍우 속 야외무대.
연한 빨간색의 기타와 소년.
마치, CG 처리된 영상 같다.
“이건 ···”
“네가 심사본 애잖아. 기억 안 나?”
아···
절대 잊을 수가 없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겠다.
김수재다.
대회에서 1등으로 뽑힌 아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심사위원들이 얘는 절대로 떨어뜨리면 안 된다며 입을 모으던, 재능의 소유자다.
그냥 이견이 없었다.
매년 대회 순위를 정하려 말싸움이 벌어지는 게 일상다반사인데.
일렉기타 평가 때만큼은 압도적으로 편했다.
“그러게요.”
아 아이의 얼굴을 보니, 또다시 여름 아침의 바닷가가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정말 ··· 정말.
좋은 풍경이었지.
곡 이름이 ··· 트립티크 였었나.
기타로 피아노를 치듯이, 지판을 열심히 때리던 그 모습.
이질적이면서도, 멋있었다.
원재선은 자신의 스승에게 다가가 핸드폰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빼버렸다.
카아아앙-!
날카롭운 일렉기타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비에 젖은 얼굴, 몸, 빨간 기타.
도저히 ‘연주 환경’ 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열심히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 기타리스트들은 원래 다 이런 겁니까?”
“미쳤냐? 얘만 이래.”
프흡.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자유롭다.
아주, 자유로운 기타리스트다.
···자유?
“자유 ··· 라. 그래.”
원재선은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소리를 들으며, 순간 전율이 돋았다.
“곡 변경해야겠습니다.”
“··· 뭐?”
“사람들이 제 연주를 들으러 오는 것이지, 베토벤의 곡을 들으러 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제 마음대로 칠 겁니다.”
원재선은 핸드폰을 켰다.
“얘 핸드폰 번호 있으십니까?”
“숙호한테 한번 물어볼게.”
“같이…가실래요?”
“지금?”
“아뇨, 나중에.”
“괜찮겠어? 녹음도 하잖아?”
일정은 아주 빡빡했다. 하지만,
“··· 시간은, 쓰기 나름이지요.”
“난 안 간다. 당장 보기에는 부끄러워.”
“부끄럽다뇨?”
“그런 게 있어.”
원재선은 아리송한 표정만을 지은 채, 소년의 핸드폰 번호를 전해 받았다.
* * *
– – –
[속보] 세후 인터네셔널, (주)레인악기뮤직 주식 14만 부 매입. 지분 50.2%로 사실상 예성 그룹의 산하로 들어가 ···예성 물산이 가지고 있던 4만 부를 추가 인수하여 ···
알짜배기 국내 중견기업 줄줄이 ···
··· 갑작스러운 결정에 우려를 표명해…
일편, 코스피 상장의 기대가 ···
– – –
6월 2일 금요일, 점심시간의 연습실.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심심해서 뉴스 기사나 읽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주식 관련 뉴스 읽고 있었는데.
뭔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소이 아버지가 어색하게 웃는 사진이, 기사에 첨부되어 있었다.
··· 여기 음반이랑 악기랑 종합으로 취급하는 회사 아닌가?
인수당했네.
나는 어제 소이가 했던 말을 머릿속으로 되짚었다.
– 아빠랑 삼촌 내 생일날에 화해하셨대··· 회사 문제도 잘 해결됐어 ··· 수재 덕이야···
– 에이, 내가 한 게 뭐가 있냐.
– 그래도 ···
잘은 모르겠지만 잘 됐구나 싶었는데.
화해의 결과가 주식 인수라니.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집안이야?
스케일이 상상 이상이라 너무 무섭다.
악기 회사 인수하셨으니 뭔가 콩고물 같은 게 떨어지지는···
않겠지 뭐.
남인데.
비트코인이나 열심히 사둬야겠다.
“김수재 유튜브 조회수 지리네.”
“와~ 이거 너한테 돈 안 가냐?”
“에이트라님 채널에서만 돈 들어온다~”
“존나 아깝다 ··· 최소 500은 벌 텐데.”
“리얼.”
“말하지마···”
“키키키키킥”
“나같으면 에이트라님 불렀다.”
“말하지마아아아아!”
존나 배아프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조회수가 많이 오를 줄은 몰랐다.
기성 가수들의 조회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최고치 경신이다.
155만.
빠르게 영상이 회전되는 베즈 채널 특성상, 성장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어그로가 엄청 끌렸다.
– 빨기좌너무보고싶어사랑해
– 빨기좌한테기타배우고싶다사랑해
– 빨기좌한테안기고싶다팔핏줄봐사랑해
– 빨기좌기타되고싶다사랑해
“어우 씹.”
“왜?”
“아 이거~”
도현이랑 혁오가 실실 웃는다.
댓글들이 아주 징그럽다.
심지어 한 사람이 쓴 것도 아니다.
뭐지? 컨셉인가?
뭔 이런 컨셉이 다 있어 ···
– 얀데레좌 댓글 어딨음
-ㄴ 삭제하고 도망감
– 빨기좌 만나는 법 공개한다. 쌍기타 아홉 번 연속으로 돌리면 메일 날아옴.
ㄴ 그거 스트랩락 쓰면 쌉가능 ㅋㅋ
ㄴ 스트랩락 쓰면 쌍기타 돌리기가 아니죠. 알못이네요.
ㄴ ㄹㅇ ㅋㅋ
“너 영상에 댓글 도배하던 빌런 따라 하는 거임.”
“빌런?”
“아 그 애니프사?”
“나중엔 여자 얼굴로 바뀌던데?”
“김수재 인기쟁이 개꿀.”
프사만 여자겠지.
댓글창에는 ‘멋짐’에 이끌린 ‘사나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잘들 노는구만.
드르륵-!
적막한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흠흠~”
최유진이 다리를 쩍쩍 벌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으흐흐~ 이거 봐라~”
Fender마크가 그려진 케이스.
샀구나.
드디어 샀구나.
“올~”
“새기타~”
최유진은 세상 다 가진 듯한 얼굴로 기타를 안아 들었다.
노란색 텔레캐스터.
예쁘다.
심플 그 자체의 디자인이 아주 매력적이다.
“연습 더 안해?”
윤수빈이랑 소이도 따라왔다.
“이거 자랑 좀 하고!”
“김수재 텔레 쳐줘라.”
“맞아. 텔레는 친 적 없잖아.”
··· 그러네.
텔레캐스터는 ‘최초’의 양산형 일렉기타였다.
싱글픽업 두 개.
3새들 브릿지.
식탁을 잘라 만든 듯한 엘더바디.
뭔가 대충 만든 거 같은데 그게 또 예쁘다.
기타를 치다 보면 텔레캐스터가 계속 머릿속에 아른거릴 때가 있다.
텔레병이다.
아주 악독한 ‘중증’ 증상이라 절대로 버텨낼 수가 없다.
치료 방법은 텔레캐스터를 구입하는 것뿐이다.
“한 번 쳐보자.”
최유진에게 기타를 받아들었다.
스트랫에 비해 어깨도 불편하고, 갈비뼈도 아프다.
그래도 소리가.
띠잉-!
아주 매력적이다.
띵띵거리고 땍땍거리는 텔레캐스터 특유의 소리.
1번줄 이탈이 심해도, 피치가 잘 안 맞아도.
이 소리 때문에 이 기타를 산다.
나는 한껏 와우를 밟으며, blue purple bar의 연주에 들어갔다.
우웅- 우우웅~!
현대적인 모던바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곡.
나의 자작곡이었다.
“··· 뭐야?”
“들어본 적 있어?”
윤수빈의 물음에 소이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2분정도의 짧은 연주가 끝났다.
“이거 누구 곡이야?”
최유진이 궁금하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내 곡.”
“네 곡…?”
“와 괜찮네?”
“직접 만든 거임?”
“에헴~”
나는 한껏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중에 나도 알려줘.”
“그래.”
“그걸로 앨범 내도 되겠다.”
“앨범 낼 방법이 있어야지.”
“어디 인맥 없냐?”
“이상하게 없단 말이야···”
진짜 내고 싶긴 한데 ···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어디서 연락 안 주나?
그냥 게임회사에 갖다 바쳐?
써줄지는 모르겠고···
커버곡 저작권 처리를 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아야 하는데···
어느덧 점심시간이 끝나갔다.
우리는 주변을 정리한 뒤, 교실로 돌아가 수업을 받았다.
금요일이다.
드디어, 한 주가 끝났다.
“수고.”
“잘 가라~”
“그래.”
내리쬐는 노을을 맞으며 정문을 나선다.
불금인데 뭔가 좀 아쉽다.
소이는 가족끼리 약속이 있다 하고, 도현이랑 혁오는 학원 레슨 당일이라 하고.
노래 들으면서 집 가야지 뭐.
나는 핸드폰을 켰다.
평소엔 그냥 멜론 쓰는데, 베즈도 깔아봤다.
한달에 4900원 스트리밍 이벤트 하더라.
“이야 ···”
라비다의 배너가 어플의 최상단에 걸려 있었다.
잔잔한 감성을 그대에게- 이라니.
문장 진짜 개 낯간지럽···
“어?”
···.
나는 허, 하고 헛숨을 토했다.
··· 왜 내 얼굴이 배너에 걸려 있는 거지?
왜?
왜?
-열정 그 자체인 빨간기타좌-
문구는 맘에 든다.
근데 이게 대체 뭔 일인지.
나는 아리송한 기분을 간직한 채,
플레이리스트 재생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링-~
상쾌한 음악 소리 대신, 전화가 걸려 왔다.
에이트라였다.
“여보세요?”
– 아 네~ 수재씨 진짜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입니다!”
페스티벌에는 에이트라가 오지 못했다.
모든 송출권이 베즈에 있어서 그렇단다.
– 오랜만에 일거리 하나 생긴 거 같아요.
“일거리요?”
– 네! 저희 측으로 ‘베즈’에서 전화가 걸려 와서···
“베즈요?!”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에이트라 쪽으로 전화가 가다니 ···
– 그, 페스티벌 영상이 엄청 떠서··· 유튜브에 올라온 연주곡 디지털 앨범으로 내 볼 생각 없냐고 의향 묻던데요?
“괜히 저 놀래키려는 거 아니죠?”
– 저도 진짜 놀랐어요!
아무래도, 에이트라 채널이 내 본진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본진이 맞긴 하지. 계약도 했고.
나는 쿵쾅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에이트라에게 힘차게 대답했다.
“당장 하겠습니다!”
“그럼 당장 미팅 잡겠습니다.”
“··· 당장··· 이요?”
당장.
당장?
···.
뭔 상황이냐 이게.
나는,
또다시.
다운 엔터테인먼트에 왔다.
페스티벌의 후원사 베즈.
그리고, 특혜로 자신들의 가수를 찔러넣던 다운 엔터.
다 한솥밥 먹는 사이라는 거겠지.
대강 뭔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오오~ 또 만났네요~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황 프로듀서는 세상 다 가진 듯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즈에서 만나자던데요. 곡 좀 들어보자고…”
“··· 어?”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응 야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