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81
뭔가 대단한 생일파티 (5)
소이는 닐 자자의 음악을 좋아한다.
대회에서도 닐 자자의 곡을 쳤으니까, 평소에 연습할 때도 자주 치니까.
계속 붙어 다녔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챌 수밖에 없다.
나와 소이는, 취향의 교집합 영역이 꽤나 넓었다.
지이잉-!
공간에 정적이 들이닥쳤다.
목소리와 숨소리가 사라졌다.
오직, 기타소리와 인스트루멘탈만이 귀를 두들겼다.
같은 기타와 같은 장비에서 나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톤.
방금 전과는 다르다.
미들- 리어의 하프톤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날붙이가 천에 감싸진 듯한 소리.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려, 한 사람을 축하하려 가볍게 시작한 생일축하곡은, 본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일류 피아니스트의 화려한 연주에 기가 죽기도 했지만, 성공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다르다.
진심을 다할 때다.
치잉-!
나는 비스듬히 줄을 내리쳤다.
닐 자자는 감성적인 곡을 쓴다.
곡을 분석하지 않아도, 눈을 감고 긴장을 풀지 않아도.
전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가.
제목도 그냥 go! 다.
진짜 존나 간결하다.
“··· 전국 1등을 괜히 하는 게 아니네요.”
“그러게요 ···.”
소이는 닐 자자의 곡으로 대회의 3등 안에 들지 못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곡과, 그것을 따라 하고 싶은 욕망.
틀리진 ··· 않았다.
닐 자자 특유의 부드러운 속주능력을 습득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2류 기타리스트는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기타는 그게 다가 아니다.
화려한 속주와, 테크닉만이 다가 아니다.
속주능력은 달리기와 비슷해서, 누구나 반복적인 훈련을 한다면 속도를 올릴 수 있다.
잉베이 정도의 규격 외 속주가 아닌 이상에야, 비웃음당하지 않을 정도의 능력은 스스로 키울 수 있다.
다만 ··· 이 부분은 ···
‘감정’을 싣는 부분은.
달리기가 아니다.
비교하자면 정신 수양 쪽에 가까웠다.
손가락은 움직이면서, 음 하나하나에 뉘앙스를 표현하는 것.
음악의 처음이자 끝.
모든 전공생들이, 음악인들이 얻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요소.
난, 닐 자자의 곡을 정말 많이 쳤다.
내가 닐 자자 곡 중에 못 치는 곡이 뭐더라?
“···.”
··· 없는 것 같다.
세션밥을 먹는 사람은, 하루라도 기타를 손에서 뗄 수가 없다.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은, 하루에 연습을 얼마나 하냐는 물음에 황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언제나 play한다.’
연습이 아니라 연주를 한다는, 잘못 해석된 인터뷰가 한때 나돌았었다.
그의 대답은 절대로 거만하기 그지없는 의미가 아니었다.
언제나 연주한다.
어디서든.
항상.
그는, 성실함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연습했고, 언제나 감정을 담았다.
뭐, 손 망가진 상태로야 기타에 제대로 감정을 쏟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허···”
서병훈 피아니스트는 바로 옆에서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시선 진짜 개부담스럽네.
일류의 피아니스트가, 삼류였던 기타리스트의 연주에 집중한다.
삼류.
왜, 그렇지 않은가.
우유곽 주둥이가 찢어지면 컵에 내 의지대로 우유를 따를 수가 없다.
옆으로 다 새버리니까.
찢어졌던 우유곽 주둥이.
그것이, 회귀 전의 내 상태였다.
하지만 ···
내 손은,
찢어졌던 우유곽 주둥이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원래 가지고 있던 나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그저 필사적으로 노력할 뿐이다.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노력의 ‘방향성’을, 소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Go!
곡이, 나를 잡아끌었다.
피크 끝에서 만들어지는 날카로우면서도 둔탁한 기타 소리가, 머릿속에 풍경을 그렸다.
쌀쌀한 가을 냄새가 났다.
시퍼렇기 그지없는 하늘.
저 높이 떠올라 있는 구름.
선선하다 못해 쌀쌀한 날씨.
하지만 아직, 괴롭지는 않은 날씨.
“···.”
찬 바람이 목을 간질인다.
가본적도 없는 한적한 초등학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냥 즐겁기만 한 시절이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 있지 않은가.
반쯤 노랗게 익어가는 가로수길의 나뭇잎과, 어머니가 주머니에 찔러준 천 원짜리에 세상 다 가진 기분으로 학교 주변을 배회하던 어린 시절.
쌀쌀한 날씨에도, 얇은 옷에도.
마냥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게 즐겁기만 한 시절.
나는 푸르기 그지없는 하늘 아래서, 학교 주위를 걸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면서, 익숙한 풍경이다.
문방구 앞에 쪼그려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이 보인다.
주변 친구들은 말로 훈수를 두다가, 다른 아이가 사온 컵 떡볶이에 정신이 팔린다.
참, 해맑은 표정들이다.
좁고 기다란 나무의자는 자리가 날 새가 없었다.
옛날 추억.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억.
-빨리 와!
-갈게!
그때에 나눈, 천진난만한 대화들.
우우웅-!
나는 부드럽게 비브라토를 넣으며 주위를 살폈다.
이 곡은, 어려운 테크닉이 아예 없다.
소이사촌 윤서가 말하는 것처럼, 모두가 기대하는 것처럼, 빠른 속주 리프 따위는 없다.
그저 한음 한음을 짚어 나갈 뿐.
나의 감정을 풍부하게 담을 뿐.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인다.
솔직히 말해, 나와 저 사람들의 공감대는 극히 적을 것이다.
저 사람들은 락을 듣지도, 기타가 주연인 곡을 찾아 듣지도 않을 것이다.
서민의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
하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만큼은.
그들도, 나와 비슷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그 어느 누구도 목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서병훈의 연주에 집중했던 것처럼, 나의 연주에도 집중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그려지길.
이 냄새가, 그들에게도 전해지길.
푸르고 높은 하늘이 노을로 물들어간다.
흙먼지를 잔뜩 묻힌 아이들은,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밥때가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을 찾으려, 어머니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자식의 이름을 부른다.
두들겨지는 등짝과, 마주 잡는 손.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손을 잡고서, 같이 갔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쌀쌀하기 그지없는 초가을의 바람.
치이잉-!
한껏 밴딩을 하며 암을 잡고 브릿지를 떤다.
경박스럽지 않게, 진중하게.
그리고서, 아주 얕은 스트로크로.
-차아아아앙!
곡을, 마무리했다.
머릿속에서 음악의 잔향이 흩어진다.
마지막으로 느껴진 것은, 어느 집에서 흘러나온지 모를 국거리의 향기였다.
“··· 후.”
나는 숨을 토하며 소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이는 닐 자자의 곡을 좋아한다.
나도 좋아한다.
나는 소이가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곧게 나아가길 바랬다.
Go.
시작한 이상, 가야 한다.
이 연주가 그녀의 이정표가 되길.
“…”
소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다가 이내,
활짝-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닮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
그 아티스트를 따라 한다는 것.
지극히 당연 것이다.
음악인은 모방하며 성장한다.
성장한 음악인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소이는 훌륭한 뮤지션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나도.
“···흐···”
나는 울먹이는 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
눈동자가 아주 촉촉했다.
금방이라도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 곡 이름이 뭐라고?”
서병훈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닐 자자의 go 입니다.”
“그래 ··· 그래. 잘 들었다.”
그는 길다란 팔로 나를 한 번 안은 뒤, 뚜벅뚜벅, 레스토랑에서 빠져나갔다.
3류 기타리스트였던 나는,
1류 피아니스트의 감정을 움직였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손벽을 마주치는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첫 곡 때와는 다르다.
음량도 음량이거니와, 뉘앙스 자체가 다르다.
그들은 예의상으로 팔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진심’을 담아 박수를 치고 있었다.
“··· 이런 노래가 있었어요?”
“세상에.”
“좋네요···”
“옛날 생각난다…”
이제서야 관객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풍경과, 저들이 그린 그림이 완전히 같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추억은 각자 다르니까.
살아온 배경도 다르니까.
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기타는 속주가 다가 아니다.
속주가 기타의 전부는 아니다.
머릿속에, 나숙호 선생님의 인자하신 얼굴이 떠올랐다.
“···.”
나는 윤서의 얼굴을 살폈다.
주저없이 멍한 표정 앞으로 다가간다.
이름모를 아재 아지매는 잠시 시야 밖으로 치워두고, 나는 대뜸 물었다.
“어땠냐?”
“···.”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좋았어.”
아주 짧게, 간결한 대답을 내놓았다.
“속주는 없었는데도?”
“어.”
“따라와.”
“··· 왜?”
“할 말 있잖아.”
나는 머뭇머뭇 눈치를 살피던 윤서의 손을 덥석 잡고서 소이에게로 끌고 갔다.
잠깐 느껴졌던 저항감이, 걸어가며 없어졌다.
내 예상이 맞았구나.
얘는, 악인이 아니다.
그냥 사춘기 소녀다.
불만 많고 짜증만 잔뜩 내는, 사춘기를 격하게 나는 ‘애’다.
소이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소이.
그들의 눈에는 눈곱만치도 적대감이 없었다.
친척이니까.
어린애니까.
단순히 투정부리는 거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가방을 뒤적였다.
곡만 딸랑 들려주면 좀 심심하잖아.
생일인데 기념할 게 있긴 해야지.
상자는 두 개였다.
“생일 축하해 소이야.”
“···.”
쿡, 팔꿈치로 윤서의 팔뚝을 찔러본다.
“··· 생일··· 축하해.”
윤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이의 신발 끝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윤서에게 상자 두 개 중 하나를 내밀었다.
소이 주려고 산 건데 ···
동생이랑 같이 고른 건데.
“너도 생일 축하한다.”
소이랑 미묘하게 닮은 눈이, 크게 떠진다.
소이는 그런 윤서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걸 왜 날 ···”
“이건 소이거.”
소이는 푸욱, 고개를 숙이며, 내 선물을 받아들었다.
250만원 짜리 기타를 받았는데 대충 준비할 수는 없었다.
뭐, 이런 부잣집안에 가격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겠지만 서도,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무난한 디자인에 작은 에메랄드가 박힌 팔찌는 윤서에게로.
고뇌의 산물은 ··· 소이에게로.
“피크···?”
“랑 목걸이네 ···?”
“···.”
소이는 작은 상자에 든 피크 하나를 집어 보였다.
5월의 탄생석 에메랄드.
근데 에메랄드는 강도랑 경도가 약해서 피크로는 못 쓴다.
저건, 에메랄드같이 생긴 민트 아이스크림 색깔 사파이어 피크다.
민트 최고야.
“예쁘다 ···”
천연 사파이어 피크는 아니다.
인조 사파이어다.
그래도 되게 비싸더라.
낙원 상가 구석탱이 가게 장식되어 있던 건데.
어그로용으로 가격 500만 원이 써 붙여져 있었다.
3개 30만 원에 가져왔다.
“잘 봐봐···”
나는 소이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 다음, 클립에 뚝, 피크를 붙였다.
기타리스트들의 고뇌.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는 피크.
공연할 때 피크를 잃어버리면 정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럴 때를 대비한 은목걸이와 철피크는, 기타리스트 고유의 감성이었다.
에메랄드를 닮은 사파이어니까 닳아 못쓰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 진짜 예뻐 ··· 고마워 수재야···”
소이의 귀가 아주 새빨개졌다.
나는 코를 스윽, 닦았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다.
그건 그렇고 진짜 예쁘네.
내 것도 사고 싶다.
“이열~”
“김수재 이열~”
아이들도 각자의 선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음악 배틀을 한다곤 했지만, 누가 승리했니, 누가 지니 따지는 건 없었다.
서병훈 피아니스트는 그저 분위기를 풀어볼 겸, 나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한 것뿐이었다.
“언니 ··· 미안해 ··· 나는···”
테이블에 쌓여가는 선물을 보며, 윤서는 말을 더듬었다.
“괜찮아 윤서야.”
소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토닥토닥, 윤서를 안았다.
“언니가 서운하게 했지?”
“아니야 ··· 아니야.”
“미안해.”
“내가 ··· 내가 더 미안해.”
소이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 윤서에게 건넸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길.
부모님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몰라도, 둘은 항상 사이가 좋기를.
툭툭.
“.. 됐습니다.”
소이 아버지는 호텔 직원의 물음에 작게 고개를 저은 다음,
윤서네 부모님에게로 다가갔다.
속닥속닥.
그들은 나를 가리키며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참.”
윤서네 아버지의 얼굴에서 피식, 미소가 터져 나온다.
어깨를 으쓱이는 소이 아버지.
애들 싸움이랑 어른의 싸움은 다를 것이다.
그래도 뭐.
잘 해결이 되기를.
‘옛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동심으로 돌아가,
대화를 나누기를.
5월 31일 화요일.
레스토랑에 감돌던 냉랭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주인공 소이와 윤서는,
서로에게 미소를 보이며
밤늦게까지 쌓아둔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나도 좀 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