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83
두 명의 제자, 녹음 (2)
턱-
황 프로듀서의 손에 들려있던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다.
사실 그의 내면에 있던 ‘희망’ 까지 같이 떨어졌다.
그는 급히 컴퓨터를 켠 다음, 사내 메신저를 확인했다.
나는 힐끗, 모니터를 훔쳐 보았다.
– 베즈에서 약속 잡았어. 어떻게 된 거냐면 ······.
– 미안하다 담당자랑 네가 모니터링좀 해줘야 될 거 같다.
– ㅎㅎ;; ㅈㅅ.. ㅋㅋ!!
벅벅벅,
머리카락이 다 떨어질 듯 두피를 긁는 황프로듀서.
“아 ··· 일은 뭐··· 하면 되죠.”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에요~ 오늘은 피아노 녹음만 해서 엄청 한가했거든요~”
세션 말하는 건가?
피아노도 세션을 쓰는구나.
신기하네.
“···.”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말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절망감이 떠올라 있었다.
“돈 많이 벌면 좋죠 뭐.”
야근수당 받으시겠지?
블랙기업이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할 따름이다.
나는 스튜디오 냉장고에서 멋대로 사이다를 꺼내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끼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트라가 도착했다.
오늘도 그의 손에는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 한 대가 들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진짜 다 한솥밥 먹는 사이네.
이게 그 끌어주고 밀어준다는 건가?
승차감이 아주 안정적이구만.
“베즈쪽 담당자분은 10분 뒤에 도착하신다고 하셨어요.”
“아~”
“차 엄청 막히더라고요. 아, 수재씨.”
그는 대뜸 카메라를 나에게 들이댔다.
“요즘 영상 안 올렸잖아요? 브이로그입니다.”
“네?”
“오~ 브이로그~”
내 브이로그 같은 게 인기가 있으려나?
나는 엄격 진지 근엄한 컨셉으로 브이로그 촬영에 임했다.
주 내용은 장비 소개였다.
내 컨셉질을 바라보던 황 프로듀서와 에이트라에게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지금 찍는 게 영상으로 만들어질지는 모르겠지만 … 뭐.
채널 공백 기간이 좀 길었으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짧고 간단한 장비 소개가 끝났다.
“기타 바꾸셨네요?”
“아, 맞아. 저도 영상 보고 나서 눈치챘어요.”
모양이 아주 똑같다.
솔직히 나도 가끔 헷갈린다.
“스콰이어만 고집하시는 줄 알았는데~”
“돈 있으면 펜더죠.”
“하핫. 그렇죠. 색깔 진짜 예쁘다~”
이사람도 펜더 기타 가지고 있다고 했었지.
일렉기타 좋아하는 모양이다.
“근데 베즈랑 다운이랑 무슨 관계예요?”
나는 궁금한 주제를 주저 없이 물었다.
“무소속 아티스트 앨범 발매할 때 저희랑 자주 협업하거든요.”
“협업이요?”
“베즈에서 발굴해서 저희가 임시로 소속시켜드리는 식이에요. 음반에 저희 회사랑 베즈 이름이랑 같이 붙어 나가요.”
관계 참 존나 복잡하네.
“그렇군요.”
“안심하세요~ 저희 회사 좋아요.”
계약서에 독소조항 없고 잘 팔아주기만 하면 됐지 뭐.
17살짜리 하꼬 속여먹으려고 혈안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4층을 어슬렁거리는 그림자가, 스튜디오의 창문 앞에서 멈춰 선다.
베즈에서 온 건가?
나는 벌컥- 문을 열었다.
“···어?”
“···.”
흡, 숨을 삼킨다.
이 사람이 여길 왜 와?
날카로운 인상의 올백 머리 남성이, 나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며 스튜디오로 들어온다.
천재 피아니스트 원재선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황프로듀서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안색이 급속도로 파랗게 변해갔다.
“아 ··· 그··· 저··· 혹시 오늘 앨범녹음에 잘못된 거 있었…나요?”
“아뇨, 물건 두고 가셨길래 가져왔습니다.”
“아후,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황프로듀서는 헐레벌떡 작은 파우치를 받아들었다.
피아노 녹음했다고 그랬었지.
오늘 이 사람 앨범을 녹음한 거였구나.
앨범 발매하려면 엔터를 껴야 하긴 하니까 ···
황프로듀서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격히 안도했다.
‘문제가 생겨서 직접 왔다’라는 말보다 무서운 게 세상에 어디 있을까.
“차 내오겠습니다.”
“커피로 부탁드립니다.”
“넵.”
“처음뵙겠습니다! 에이트라입니다!”
“반갑습니다.”
스튜디오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근데 넌 ··· 여기 왜 있니?”
건반 위의 불독은, 멀뚱히 서 있는 내게 물었다.
“음반 회사에 음반 만들러 왔습니다.”
“흐음 ···.”
언제나 인상 팍 찡그리고, 얼굴 살이 퉁퉁 불어서 항상 화나 있는 것 같고.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원재선이었다.
그의 연주에는 깔 거리가 전혀 없었다.
연주 스타일도, 이미지도 확실한 피아니스트.
피아노의 거장 서병훈의 제자이자, 또다른 거장.
원재선.
앨범 발매하는구나 ···
지금 시점에는 갸름해서 인기 좀 많게 생겼네.
“참 신기하네, 언제 얼굴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를요?”
“그래.”
나를 …?
왜?
“얘 음반은 언제 나옵니까?”
“아, 그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닌데요. 처리할 게 좀 많아서··· 그런데 둘이 잘 아시네요?”
“예전에 한 번 본 적 있죠.”
똑똑똑-
정중하기 그지없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대화를 나눌 새도 없이, 베즈 측 사람이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외부 음반 지원 담당 양새나입니다! 이번에 김수재 기타리스트 디지털 음반 제작 관련해서 미팅 왔슙! 읍···”
혀 깨물었네.
개아프고 개쪽팔리겠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황민현입니다.”
꾸벅.
“김수재 입니다.”
나는 웃음을 꾹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뭔가 ··· 되게···
젊다.
진짜 햇병아리 신입사원 느낌이다.
이 사람이 내 음반을 유통해줄 담당자라니.
나이 지긋한 사람이 둘 정도는 올 줄 알았는데.
“아 그 ··· 김과장님은 ···”
황 프로듀서가 물었다.
“제, 제가 대신 왔습니다! 과장님은 오늘 일이 있다고 하셔서···”
“아~ 항상 하는 일이니까 괜찮겠죠. 잠시만요, 담당자님 모셔올게요.”
황 프로듀서가 나감과 동시에,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어깨를 떨었다.
짬처리다.
이거, 짬처리다.
사실 회사 일이란 게 그렇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 하는 말은 다 똑같다.
‘내가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게 이걸 할 수 있을까?
‘내가 맡으면 좆될 거 같은데.’
근데 시킨다.
그게 회사다.
원재선이 커피를 홀짝이며 그녀를 뚫어버릴 듯 쳐다보았다.
“금요일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 아닙니다! 호, 혹시 ··· 피아니스트원재선 선생님 ···”
“맞습니다.”
“헤엑! 안녕하세요!”
진짜 유명한 양반이구만.
황 프로듀서와 함께 푸근한 인상의 뽀글머리 중년남성도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음반 담당자였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오신 적 있으시죠?”
짧은 인사와 동시에, 지체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스튜디오의 구석에서 계약서를 꺼내어 일 얘기를 시작했다.
서류들을 받아들고서 꼼꼼히 읽어내려간다.
나는 내 앨범을 내본 적이 없다.
다만, 옆에서 훔쳐본 적은 많다.
연주자한테 돈이 진짜 코딱지만큼 가더라.
“··· 어떠세요?”
“···.”
양새나의 물음에, 에이트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비율 자체는 원래 이렇지.
원곡 저작권자, 유통 회사들이 떼가는 걸 계산하자면 딱 업계 평균이었다.
조회수 ‘1’의 단가는, 유튜브 채널이 압도적으로 높다.
“새로 녹음되는 버전만 저작권 발효되는 거 맞죠?”
“아, 네!”
“유튜브 라이브 버전은 ··· 저희 채널이 가져가고···”
“음반 버전도 에이트라 채널이랑 교차로 ···”
막힘없이 척척 진행되는 이야기들.
근데 뭔가··· 뭔가.
좀 ··· 거슬리는데?
“···.”
나는 원재선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왜 이 사람이 엿듣고 있는 거야.
왜 아무도 나가라고 안 해.
“걱정 마.”
“아 ··· 네.”
그는 벽에 기대어 뻔뻔하게 ‘구경’을 했다.
“우선 사인 전에··· 여, 연주 한 번 들어 봐도 될까요? 그··· 수록곡 목록을 정해야 해서···”
“넵.”
“네.”
“오~ 이거 ···”
에이트라는 싱글벙글 웃으며 카메라 배터리를 갈았다.
뭔 주머니에서 배터리가 여섯 개씩 나오는 거지?
직업병이다 직업병.
“유튜브 각인데요.”
“갑시다. 유튜브각.”
아까까지만해도 할 게 없어서 심심했는데.
참 다행이다.
바빠질 것 같다.
“혹시 양새나씨도 음악 전공하셨습니까?”
원재선이 물었다.
“음대··· 나왔습니다.”
“어디 대학 나오셨어요?”
“··· 대요.”
황프로듀서가 움찔, 몸을 떨었다.
··· 엘리트네.
“그럼 충분하겠네요.”
“아하하···”
뭔가 좋은 참견이었다.
하긴.
아무리 짬처리 한다 해도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을 턱 보내지는 않겠지.
힐끔 –
양새나가 나를 계속 쳐다본다.
쳐다볼 거면 대놓고 쳐다보는 게 나을 텐데.
엄청 거슬리네.
주먹구구식이지만 척척 진행되는 이야기들.
나의 미니 디지털 앨범에는 연주곡 ‘네 개’가 실릴 거라 한다.
딱 적당하다.
나는 쫘악, 페달 보드를 펼친 다음, 기타 튜닝에 들어갔다.
“와아아···”
양새나는 신기한 듯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튜닝을 마친 후, 나는 언제나처럼 녹음실의 문을 열었다.
앨범···
앨범이라.
내가 앨범을 내다니.
이러다 진짜 월드 스타 되는 거 아니야?
지금의 나는, 그냥 반짝 어그로 끌린 유튜브 기타쟁이일 뿐이다.
인지도도 지엽적이다.
다만, 이 기세를 쭉 이어 나간다면 ···
5월의 페스티벌보다 더더욱 큰 무대에 서는 것도, 마냥 허상은 아닐 터.
“트립티크 86bpm이요!”
“옙 86bpm이요.”
둥둥둥 탁-!
드럼비트가 울린다.
내 기타소리가 페달 보드와 앰프 헤드, 캐비넷 시뮬을 거쳐 모니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따라라란 다란 다라라란-!
레스폴의 ‘둔탁한’듯한 느낌이 제거된 스트랫 버전 트립티크.
날카롭고 시원하며, 정석적이다.
꽤 좋네.
“표정 좋아요~”
에이트라도 부담스럽지 않게 나의 모습을 촬영했다.
나는 적당히 곡을 축약해서 연주를 끝냈다.
“연주되게 좋다아···”
“대회 때랑은 조금 다르네. 그래도··· 느낌이 참 좋아요··· ”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수재씨랑 어디서 만나셨는지 ···”
“전국 장학 대회에서 제가 심사 본 아입니다. 쟤가 1등 했어요.”
“아 ···”
“딱 잘라 말해, 고등학생 중에 쟤보다 잘 치는 애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양새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스피커로 목소리 다 들리는데?
들리는 줄 모르는 건가?
나는 대회나 공연에서 쳤던 곡의 메들리를 이어갔다.
곡이 바뀔 때마다, 황 프로듀서가 즉각적으로 비슷한 느낌의 드럼비트를 넣는다.
··· 진짜 유튜브각 괜찮다.
빨기좌 메들리. 딱 좋잖아.
디지털 음반 발매 전에 유튜브에 올려주기만 하면 ···
최고다.
진짜 최고다.
에이트라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엄청 밝아졌다.
약 10분.
내가 메들리를 이어나간 시간이었다.
우연히 찾아온 원재선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내 연주를 감상하는 듯 했다.
1류 피아니스트가 저러니까 좀 부끄럽다.
스승과 제자는 경청의 자세도 닮는구나.
“와 ··· 저··· 저. 실제로 빨기좌 연주 처음 봐요. 와···!”
양새나는 감격스러운 듯한 목소리를 터뜨렸다.
개같은 별명 아는 거 보니까 내 조사도 좀 한 모양이다.
나는 턱, 기타를 거치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
“제가 피아노 루프 좀 만들 수 있을까요?”
황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피아노 루프요?”
“자작곡이 있거든요.”
“어··· 괜찮죠~!”
내 자작곡.
이미 다 만들어 둔 blue purpple bar.
아직은 완성이 안 된, 겨울 숲의 노래.
지금 당장 보여줄 것은 전자이다.
탁-!
에이트라는 카메라를 끄며 눈을 크게 떴다.
“자작곡이요?! 수재씨 자작곡도 가지고 계세요?”
“옙. 이참에 제대로 들려드리겠습니다.”
됐다.
커버곡으로만 앨범이 나가면 좀 그렇잖아.
그러니까, 내 자작곡도 끼워서 팔 거다.
까이면 까이는 거고.
되면 되는 거고.
나는 스튜디오로 나가, 황프로듀서의 자리를 뺏었다.
시선이 ··· 엄청 부담스럽다.
그래도 굴하지는 않는다.
나는 마스터 키보드의 건반을 ···
딩- 딩딩-
두들겼다.
1분쯤 지나자 아니나 다를까,
“피아노 그렇게 치는 거 아니야.”
훈수가 돌아왔다.
“자작곡 만든다고?”
“네.”
“피아노가 들어간다고?”
“넵.”
“내가 쳐줄게.”
“네?”
“앨범에 넣어.”
···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