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84
두 명의 제자, 녹음 (3)
피아노는 입문이 아주 쉽다.
누르면 그냥 소리가 나니까.
음를 내는 데 있어서 최소한의 노력도 안 든다.
입문이 쉬운 축에 속하는 기타도, ‘도’를 치고 싶으면 2번 줄 1프렛을 잡고 튕겨야 하는데.
그 과정에 반드시 연습이 필요한데.
피아노는 그냥 ‘도’ 건반을 누르면 된다.
“봐 봐.”
드르르륵-
원재선은 내 자리를 빼앗으며 코드를 긁었다.
같은 코드임에도, 뉘앙스가 아예 달랐다.
뭐, 아주 당연한 얘기다.
‘입문’이 쉬운 악기는 있어도 ‘발전’이 쉬운 악기는 없다.
내 피아노 실력은 그냥 개야매였다.
박자는 기타를 치다 얻은 감각 덕에 빠르게 익힐 수 있었지만, 어딜 어떻게 터치해야 하는지, 어떻게 뉘앙스를 표현해야 하는지,
아예 몰랐다.
피아노 소리를 곡에 섞고 싶을 때에는, 그냥 지우고 치고 지우고 치고를 반복해서 하나 얻어걸리길 기다렸다.
실수 한 부분이 있다?
로직으로 음을 찍어서 고치면 된다.
강약 조절도, 길이도, 뉘앙스도 전부 후처리가 가능하다.
나의 개야매 피아노는,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잡기술이었다.
“자세를 보아하니 ··· 누구한테 배운 것 같지는 않고 ···”
암. 그 흔한 피아노 학원도 안 다녔지.
“열심히 배운다곤 배운 것 같긴 한데 ···”
밥을 벌어먹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아예 못 치는 건 아닌데, 기본기가 없어. 상당히 충격적인 연주였다.”
“크흑 ···”
엄청난 혹평이 돌아왔다.
하지만 데미지는 0이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생긋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와~ 수재씨 되게 의외네요. 피아노까지 다룰 줄 아시다니.”
“하하 ···”
“멋있었어요~”
양새나도 괜히 분위기에 타서 칭찬했다.
근데 표정이 왜 이렇게 미묘해.
원재선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곡 길이는 ··· 2분이 좀 넘네. 코드 진행도 전부 메이저고.”
“넵.”
“바로 들어가자.”
황 프로듀서는 꿀꺽, 침을 삼키며 되물었다.
“괘, 괜찮으시겠어요? 그… 가상 악기로.”
오늘 막 앨범 녹음을 마친 천재 피아니스트가, 마스터 키보드와 가상악기로 내 자작곡의 피아노 루프를 연주해준다라 ···
피아노 전공생한테 이 얘길 들려주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라는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괜찮습니다. 다 적응 문제니까요 ···”
“···.”
“스승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관리 안 된 5억짜리 그랜드 피아노보다, 매일 치던 1000만 원짜리 디지털 피아노가 낫다고.”
“아···”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 둘 다 존나 비싸다.
내 기타가 250만 원인데.
클래식은 숫자의 단위가 다르구나.
“알겠습니다. 아까 치셨던 스타인웨이랑 최대한 비슷하게 세팅할게요.”
황 프로듀서는 IVORY2 GRAND PIANOS 플러그인을 불러왔다.
··· 저 가상악기 하나에 40만 원 쯤 한다.
스타인웨이의 소리를 원한다면 무조건 아이보리2를 써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놈이다.
디잉-!
세팅이 완료된 건반을 두드리던 원재선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수 백을 투자한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와, 꾸준히 발전한 가상 피아노의 소리.
“괜찮네요.”
현대의 기술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Bpm은 100이지?”
“네.”
“메트로놈 켜주십시오.”
··· 누군가가 참견할 새도 없이 곡 제작은 아주 척척 진행되었다.
베즈에서 미팅하러 나온 양새나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띄울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일류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감상했다.
블루 퍼플 바.
내가 만든 곡.
내가 모든 코드와 멜로디를 구성한 곡.
나의 구상대로, 원재선이 키보드를 두들겨 나간다.
건반 차이에서 오는 감각이 상당히 이질적일 텐데.
··· 환경 쯤은 가볍게 씹어먹는 게 일류라는 건가?
5억짜리 그랜드 피아노 앞에 전공생을 앉혀놓은 것과,
따지고 보면 피아노도 아닌 악기 앞에 원재선을 앉혀 놓은 것.
압도적으로,
정말 압도적으로.
후자가 좋을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구성을 완전히 파악한 듯이, 그는 완벽한 코드 루프를 만들어내었다.
‘이거야 ···’
스타인웨이 피아노 따위는 눈앞에 있지도 않은데.
상가 건물 꼭대기의 bar에, 뜬금없이 그랜드 피아노가 들어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두웅-!
모던풍의 맑은 소리가 내 귀를 마구잡이로 두들겼다.
살짝 섞인 재즈의 향기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침묵은 아주 짧게 지속되었다.
순식간에,
정말 눈 깜짝할 새에,
2분이 지나갔다.
“다 만들었어.”
“··· 가,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90도로 허리를 접었다.
··· 이 연주가 내 곡에 들어가다니.
참 ··· 참, 정말.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 수재씨, 이거 잘만 하면···”
에이트라가 꿀꺽, 침을 삼켰다.
“무슨 생각 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Feat. 원재선 넣어도 됩니다.”
“어 ··· 어어!?”
“헤엑!”
황 프로듀서와 양새나가 놀라 자빠지려 한다.
어째 점점 판이 커지는데?
괜찮은 거 맞아?
“진짜 넣어도 돼요?”
“넣어.”
“말씀하신 거 녹음해둡니다?”
“해.”
“사실 이미 녹음됐어요.”
황 프로듀서가 척, 엄지를 올렸다.
원재선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곡 이름에 feat. 원재선의 글자가 들어간다면 ··· 궁금해서라도 무조건 눌러볼 거다.
어떤 곡인지.
무슨 노래인지 파악하려 할 것이다.
“아 그 ··· 그럼 ··· 저희 쪽 배너에도 이름 삽입이 가능한지 ··· 앨범 발매할 때 같이 걸 거거든요···”
“배너에도 넣으세요. 그냥 다 넣으세요.”
“알겠습니다!”
양새나는 흥, 콧김을 뿜었다.
“그러고 보니 수재씨는 곡도 없는데 베즈 어플 상단에 배너가 걸렸더라고요. 왜 그런 거예요?”
“아! 페스티벌에 임원분이 참석하셨었는데, 수재씨한테 관심을 ···”
“오올~ ”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죄송해요.”
손에 땀이 왕창 흘러나왔다.
괜히 존나 궁금하네 ···
베즈의 임원진 사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다만, 안 좋은 얘기는 아닐 것 같다.
“바로 연주 들어 보죠!”
녹음된 피아노 연주 트랙이 재생된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아예 이참에 녹음까지 해둘까요?”
질렀다.
“네!? 근데 mr이 ···”
“여기 다 있죠.”
난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블루 퍼플 바의 인스트루멘탈은, 이미 제작을 끝마쳐 둔 상태였다.
황 프로듀서가 트랙을 따서 추가작업하고, 피아노 코드 라인은 원재선 걸 쓰고.
··· 완성까지 얼마 안 걸릴 거다.
커버곡은 원곡의 인스트루멘탈을 그대로 쓸 수 없으니 제작에 시간이 걸릴 터.
자작곡 먼저 마쳐놓는 게 낫다.
“··· 가죠.”
세 명의 전문가는 기계처럼 척척, 준비를 시작했다.
우물쭈물 방황하는 것은 뉴비 양새나씨 뿐이었다.
나는 기타를 들고,
다시 녹음실에 들어섰다.
펼쳐지는 페달 보드.
Ts808의 게인을 최대한 내리고, 톤노브를 돌려 순전히 부스트 역할만을 담당하게 한다.
딜레이 타임을 최대한 늘리고, 딜레이 양을 2시까지 돌린다.
그리고, 개방현을 치며 와 페달을 힘껏 밟는다.
우우오우왕~
몽환적인 톤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소리 진짜 특이하네요~ 캐비넷 시뮬 조정 들어가겠습니다~”
나의 톤 메이킹 능력과 프로듀서의 엔지니어링.
딱 적절한 소리가 만들어졌다.
에이트라는 멀찍이서 줌을 당기며 나를 찍기 시작했다.
“영상은 예고편 식으로 아주 조금만 올라갈 거예요! ”
“넵!”
“백킹기타 부터 갈게요!”
나는 피크를 손에 쥐고,
아르페지오를 시작했다.
피아노 코드 위에, 기타 아르페지오가 덮어 씌워진다.
G A F E7 A
전부 메이저다.
대충 후려갈기면 마냥 행복하기 그지없는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질 테지만 ···
그렇진 않았다.
이 곡은 일렉기타가 주연이다.
나는 ‘적절하게 쳐낸’ 코드 아르페이지오를 마쳤다.
“좋습니다! 멜로디 들어갈게요!”
황 프로듀서의 표정이 화악 격양되었다.
원재선 피아니스트는 주먹을 앞으로 하며 손을 꽉 쥐었다.
나는,
거세게 와우 페달을 밟으며,
펜타토닉기반의 연주를 시작했다.
와아아앙-!
일렉기타는 펜타토닉으로 시작해서 펜타토닉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후리면 아리랑이 되고, 잘 알고 후리면 있어 보이는 솔로가 된다.
첫 음을 내딛음과 동시에, 몸이 풍경에 이끌려지는 느낌이 났다.
··· 회귀 전, 미처 완성하지 못한 곡.
회귀후, 시간을 쪼개어 간신히 완성시킨 곡.
Blue purple bar.
직관적인 이름이다.
현대적인 빌딩의 한 켠에 걸린, 네온사인을 뿜어대는 간판.
현대의 밤 풍경.
정말 또렷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커버곡을 연주할 때와는 다르다.
곡을 느끼고 ,해석하고, 표현할 때와는 다르다.
저건,
저 건물은.
내가 기반부터 다져놓은 ‘내 것’ 이었다.
터벅터벅.
나는, 건물의 최상층에 있는 바에 발을 내디뎠다.
회귀전에도 못 가본 곳이다.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지만,
소주에 타 먹을 필라이트 사기도 아까운데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룸 창문 밖 너머로 바라보던, 그림의 떡.
밤의 이상향.
가보지 못했기에,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보라색과 푸른색의 led 바가 은은하게 내리쬐는 실내.
미래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모던 바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콧수염을 기른 노년의 남성은, 나의 표정을 확인하자마자 차가운 유리 테이블에 압생트를 내밀었다.
설탕을 태우지도, 얼음을 타지도 않은,
순수한 압생트.
예술가들이 사랑한 압생트.
나는 망설임 없이 초록색 액체를 들이켰다.
강렬한 도수 덕에,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실제론 취하지 않았는데.
알콜 냄새가 코를 무자비하게 찔러댔다.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몸에 안 좋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푼다.
나는,
술이 아닌.
분위기에 취했다.
지이잉-!
와우 페달에서 발을 뗀다.
드라이브 노브를 끝까지 돌린 sd-1의 페달을 밟는다.
부스트된 클린 사운드가, 오버드라이브 사운드로 교체되었다.
좌아아앙-!
펜타토닉에서 메이저로,
21프렛을 누르며,
밴딩과 암업을 하며 한계까지 음을 올린다.
모던바에 가서,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
주인장에게, 바텐더에게,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에게.
대충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며,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
잔잔한 분위기.
커다란 창밖에 보이는 밤의 네온사인.
스피커에서 작게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가려지지 않는, 자동차들의 경적소리.
내가 만든 풍경이었다.
드르르르르륵-!
풀피킹 속주를 욱여넣는다.
2분이 조금 넘는, 짧은 멜로디가 확실한 향취를 만들어내었다.
피아노 코드와 일렉기타의 코드가 번갈아가며 귀를 때린다.
정말 술에 취한 것처럼.
술에 취해서 귀가 먹먹한 것처럼.
가슴 속에 묵어 있던 스트레스가 술과 대화, 사나운 조명에 씻겨 내려간다.
Blue purple bar.
오늘도, 내일도.
누군가는 술을 마시러, 회포를 풀러,
바에 갈 것이다.
지이이잉-!
일렉기타의 멜로디가 끝났다.
다라라랑-!
두웅-!
거짓말같이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기타와 피아노의 코드도 끝났다.
곡은 끝남과 동시에 완성됐다.
Blue purple bar는, 마침내 세상으로 나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유리창 너머의 스튜디오를 확인했다.
입과 눈을 묘하게 벌리고 있는 세 사람.
마치, 소주 한 병을 한 번에 들이켠 듯한 멍청한 얼굴의 세 사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원재선이었다.
그는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고,
정말,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너 ··· 실제로 술집 가 본 적 있니?”
“푸흡!”
나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뇨!”
“··· 가본 적도 없는 풍경을 대체 곡에 어떻게 녹였어?”
왜, 그렇지 않은가.
서울 가본 놈보다 안 가본 놈이 더 잘 안다고.
바보같은 비유지만, 의미하는 바는 확실하다.
“상상했어요.”
“···.”
상상력.
모든 창작자들의 원동력.
원재선은 스턴건에라도 맞은 듯이 ··· 고개를 푸욱 떨구었다.
“상상력이라 ··· 그래, 그래.”
고맙다.
그는, 나에게 그리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넌, 파묻혀 있을 인재가 아니다.”
다만, 그가 뭔가 굳은 결심을 한 것은 잘 알 것 같았다.
“녹음본 그대로 쓰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영상 진짜 잘 나왔어요. 갑시다! 사인하러!”
“옙!”
우리는 양새나에게서 펜을 강탈하여 계약서에 사인을 휘갈겼다.
날아올라라.
날아올라라!
내 곡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