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188)
*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 3조의 발표는 대성공이었다.
상황극 내내 잠시도 눈을 떼지 않던 이미애 교수는 이렇게 평가했으며.
“아주 좋았어요. 일단 ‘창의성’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자면, 내 기대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였고.”
이 수업에서 법정 상황극을 진행한 것이 몇 년째이지만, 같은 문학작품을 각색해온 경우는 처음이라는 이 교수.
“그것만으로도 훌륭했지만, 법정 용어를 정확하게 쓴 것도 좋았어요. 특히 19세기에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용어들이 사용되었는데, 그런 디테일까지 세밀하게 신경 쓴 부분이 엿보이네요.”
그야말로 대호평이었다.
그녀의 평가에, 이번 대본을 직접 쓴 권세미는 몹시 벅차하는 반응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난 뒤에도, 우리 상황극의 여파는 상당히 오래갔는데.
“찬영아.”
“응?”
“장 발장 싱크로율 장난 아니다.”
“···.”
서이준은 뜬금없이 OST를 불러보라고 성화였고.
송하늬는 내 사진을 잔뜩 찍더니, ‘또찬영 페북지기’로서 뭐 하나만 요청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뭔데?”
의심쩍어하며 묻자, 그녀가 싱긋 이를 드러내며 대꾸했다.
“페북그램에 올리면 안 될까, 이 사진.”
“절대 안 돼.”
“촨용아 제발···.”
···이 인간들이 진짜.
나는 송하늬의 요청을 몇 번 더 거절하고 나서야 그녀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
그주 주말.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자 본가로 내려갔더니 부모님이 펜과 종이를 잔뜩 준비해놓고 계셨다.
“···사인이요? 내 사인?”
당황스러워 되묻자 어머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니 사인을 받지 이 엄마나 아빠 사인을 받겠니?”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아버지도 한마디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찬영아. 전부터 주변에서 얼마나 니 사인을 받아달라고 성화던지.”
“얘, 니 고모는 엄마랑 통화할 때마다 ‘여보세요’ 대신 ‘찬영이 사인 좀’으로 시작하는 거 아니?”
그 말과 함께, 어머니가 내보인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봐봐, 이거 엄마가 들어가 있는 단톡방들이잖아. 근데 이 각각 다른 단톡방 여러 개에서 전부 새로운 또찬영 영상이 올라온 거 있지? 영상뿐 아니라 온갖 기사까지···.”
어르신들이 이렇게 정보에 빠를 줄은 몰랐는걸.
내 안일함을 반성하며 혀를 내두르자, 아버지가 내 손에 사인펜을 쥐여주셨다.
“자. 얼른.”
“···.”
“여기 명단 있지? 이 이름대로 사인하고, 아래에 ‘행복하세요 박찬영 드림’이라고 적어라.”
결국.
그 이상의 저항을 포기하고 묵묵히 사인을 하기 시작하는데.
“찬영아, 너 혹시···.”
어머니가 내 눈치를 살살 살피며 물었다.
“엄마 핸드폰으로 영상 하나 찍을 생각 없니?”
“···무슨 영상이요.”
그러자 어머니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또찬영이 또찬영했또!”
“···.”
한순간 식겁했지만.
나는 얼른 심신을 추스르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너도 참 너무하다 얘.”
“엄마, 이건 죽어도 안 돼요. ···수아가 와서 부탁해도 안 된다고요.”
어머니는 그제야 알았다며 포기하고 돌아서더니 아 맞다, 하며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거, 지난번에 수아가 와서 그린 그림이야.”
“이야. 우리 수아 잘 그리네.”
“그치? 이건 할머니랑 할아버지고, 이건 엄마 아빠라는데···.”
나는 수아가 그렸다는, 동그라미와 선 몇 개로 이뤄진 ‘우리 가족’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가족들 전부 ☺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단 한 명만이 거인처럼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이건 누구예요?”
설마, 하며 묻자 아버지가 씩 웃으며 끼어들었다.
“누구긴 누구겠냐, 찬영이 너지.”
“···.”
그리고 그 거인에게 안겨 있는 자그마한 사람이 수아 자신이라고 했단다.
‘아우, 귀여워.’
생각만 해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던 그때, 지난번 레오랑 통화할 때 수아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우와, 수아 진짜 귀엽다!’
전에 촬영장에서 조카가 있다고 지나가듯 언급한 것을 기억하고 있기에 수아의 사진을 보내줬더니.
레오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귀엽다고 난리였다.
‘으으, 나도 이런 여동생 있으면 좋겠어. 그럼 진짜 예뻐해줄 텐데.’
외동에다 또래 친구도 없어서 더 외로움을 많이 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수아는 찬이랑 하나도 안 닮았네.’
레오가 지나가듯 던진 말이, 지금 와서 은근 신경 쓰였다.
···안 닮기는 했지만 아예 안 닮은 건 아닌데 말이지.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 거라든가, 귀 모양이 동그스름한 거라든가···.’
이에 나는, 수아의 그림을 보며 또다시 함박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보았고.
“엄마, 내가 수아랑 그렇게 안 닮았나?”
그러자 어머니는 세상 황당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얘는 무슨 소리야. 수아가 니 형 하고도 안 닮았는데 너랑 닮겠니.”
“아 진짜 너무하시네.”
엄마 팩폭 자제 좀··· 이라고 말하려던 그때.
부우웅-
통번역센터의 서지연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깐만, 전화 와서.”
“우리 또찬영 님 바쁘시네, 호호호.”
“···또찬영이라고 하지 말라니까요.”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녀의 용건을 듣고는 눈을 크게 떴다.
“···크리스찬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와의 대담이요?”
괜찮은 ‘건수’가 들어오길 기다리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건수’가 들어온 것 같았다.
*
파리, 몽테뉴 30번가에 위치한 디올 본사 수석디자이너실.
담당 비서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고서를 안고 들어섰다.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씩 검토하긴 했는데도 불안하네···.’
올해 50대에 접어든 마고 토렐리.
남자들만이 수석 디자이너를 맡았던 디올 역사상 첫 여성 디자이너이기도 한 그녀는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투지와 승부욕, 지칠 줄 모르는 근성은 물론, 꼼꼼하다 못해 까탈스러운 기질의 소유자였으며.
웃거나 농담하는 법이 없고 측근들을 쉴새 없이 몰아붙이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혈관에 피 대신 수은이 흐른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앞의 비서들이 반 년을 채 못 버텼다고 했나.’
그러나 그녀가 수석 디자이너로 취임한 이래 디올은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디올 관계자’가 아닌, ‘마고 토렐리’라는 한 개인에게 강연과 대담 행사가 들어오는 경우도 점점 잦아졌는데.
‘한국 체류 일정에 맞춰 들어온 의뢰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딱 하나만을 받아들였지.’
그것이 바로 한국의 중현대학교에서 들어온 강연 및 대담 의뢰.
마고는 이런 유의 자리에 여러 번 서본 만큼 행사의 디테일에 많이 신경 썼는데, 그중에서도 ‘대담자의 역량’을 매우 중시했다.
‘그간에 영 마뜩잖은 경우를 많이 겪어서이지.’
이런 해외 행사 같은 경우, 대담자가 프랑스어만 잘하고 해당 분야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다든가.
정해진 스크립트를 따라가는 데만 급급해 몹시 지루한 강연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주최 측에서 대담자 겸 통역사 선정에 매우 공을 들였다고 했는데···
「···.」
비서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작성한 보고서를, 마고 토렐리는 휘리릭 훑어보았다.
저렇게 대충 보는 듯해도 사실은 하나 하나 다 살피고 있음을 비서 자신이 잘 알던 그때.
「대담자 프로필이라고?」
「아, 네. 주최 측 말로는 굉장한 실력자라고.」
「흠, 이력은 나쁘지 않네.」
그녀가 보고서를 눈으로 훑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에 비서가 내심 안도한 것도 잠시.
마고의 미간이 좁아졌다.
「잠깐, 아직 학생이라고?」
「대학생은 아니고, 한국의 ESIT 같은 통역 전문대학원 소속이랍니다.」
비서의 설명에도, 그녀의 목소리에서 신경질적인 기색이 묻어났다.
「그래도 학생인 건 맞잖아. 이걸 오케이했단 말이야?」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에 비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지만.
「이쪽 업계에서 꽤 이름난 통역사라고 들었습니다. 설명을 부연하자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자신의 소신대로 말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마고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지켜보았다.
「프랑스어 실력은 두말할 나위 없는 데다, 프랑스 셀럽들 사이에서도 그 이름이 상당히 알려져 있다고 하더군요.」
셀럽들 사이의 인지도가 상당하다는 말에, 마고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그래?」
「네. 배우 레아 데주의 통역사로 활약하다 그녀와 친해졌다고 하는데···.」
「레아 데주···라.」
레아 데주.
한때 CF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녀는, 이전 소속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나서 더욱 승승장구하는 중이었다.
몇 달 전 촬영한 영화가 여러 분야에 노미네이트되며 기대를 모으는 것은 물론, 이제는 디올과 샤넬, 지방시 같은 명품 브랜드의 뮤즈가 되어달라는 러브콜을 받고 있으니.
비서는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우리 측에서도 그녀를 다음 시즌의 얼굴로 고려하고 있고 말이지.’
그 외에도 파벨 브뤼스, 조르디, 레오 카슬 등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줄줄이 대자 마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심지어는 모로코의 왕족과도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하더군요.」
「흐음···.」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보며, 비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 표정은 철의 여인이 흥미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이건 올 초에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만화가의 대담을 통역했을 때라고 합니다.」
비서는 마고의 데스크탑에서 너튜브 링크에 접속했는데,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누가 들어도 ‘훌륭한 프랑스어’라고 할 법한 통역이 쏟아져 나왔다.
「···.」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마고 토렐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고.
5분가량 집중해 본 후에야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잘하네.」
「주최 측 말로는 섭외 1순위 능력자라고 하더군요. 통역 실력뿐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도 상당한 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덧붙인 비서는, 프랑스는 물론이고 영미권에서도 연일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갱신 중인 소설가 ‘조르주 드뤼옹’의 이름을 꺼냈다.
「드뤼옹? 의 작가 말이야?」
···마고 토렐리가 드뤼옹의 열성적인 팬임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그녀는 파리의 패션 명문이라는 IFM(Institut français de la Mode)에 들어가기 이전, 중세사를 전공했다는 이색적인 경력을 지녔으며, 디자인에 인문학적 고찰이 녹아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네. 이 통역사가 드뤼옹의 한국 팬미팅에서 통역을 담당했다는데, 그 퀄리티가 상당했던지라 프랑스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호오.」
마고는 영상 아래 달린 프랑스어 댓글들을 주욱 훑어보더니, 본인이 직접 영상을 클릭해 재생시켰다.
– En fait, depuis que vous avez parlé de la guerre de Cent Ans(그, 백년전쟁을 언급하셨으니 말인데)···.
– Voulez-vous dire Aliénor d’Aquitaine? La province de Gascogne, qu’elle portait en dot lorsqu’elle épousa Henri II, devint plus tard la cause d’un long conflit entre la France et la Grande-Bretagne.(알리에노르 다키텐을 말하는 겁니까? 그녀가 헨리 2세와 결혼할 때 지참금으로 들고간 가스코뉴 지방은 오랜 영불 분쟁의 원인이 되었죠···.)
통역사의 입에서 중세사적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에서, 마고는 눈을 떼지 못했고.
「···.」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비서는 마고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이 정도면 설득은 다 되었네.’
비서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때, 마침내 마고 토렐리의 한마디가 떨어졌다.
「좋아, 이대로 진행하지.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후우.
속으로 진땀을 훔치며 나간 비서는 열린 문 사이로 마고를 지켜보았다.
‘통역 영상을··· 계속 보고 계시네.’
처음엔 영상에 완전히 심취해 고개를 계속 끄덕거렸는데, 언젠가부터 반응이 묘하게 달라졌다.
중간에 한두 번 고개를 갸웃하는가 싶더니···.
「푸흐흐흐···.」
곁에서 보좌한 지 몇 개월 만에 처음 접하는 기이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
깜짝 놀란 비서의 눈이 동그래졌고, 뭐지 싶어 다시 그쪽으로 다가가려던 순간.
「으하하하하!」
···마고 토렐리, 일명 ‘피도 눈물도 없는 아마조네스’에게서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머쓱해졌는지 그녀가 헛기침을 하는 것이 들려왔으니.
‘대체 뭘 보시는 거지.’
작은 실수에도 가차없으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 아닌가.
대체 무엇이 저 냉혈 여인을 웃게 만든 것일까, 비서의 궁금증이 커져만 가던 그때.
마침 그녀가 회의에 참석할 시각이 되었다.
「디렉터님, 제1회의실에서 준비를 마쳐놨다고 합니다.」
벽에 걸린 시계를 흘긋거린 마고는 조금 아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아, 그리고 데스크탑이 좀 느려졌던데.」
「바로 정리해놓겠습니다.」
그렇게 마고가 자리를 비운 뒤, 그녀의 지시대로 데스크탑을 정리하던 비서는 자연스레 너튜브 히스토리를 보게 되었다.
에르메스 장인을 인터뷰한 영상.
석학 다니엘 세노의 강연 영상에 파벨 브뤼스 인터뷰 영상까진 그렇구나 했는데.
「···C’est quoi ça(···이건 뭐야).」
그 이후의 히스토리를 보고, 이내 눈이 커지고 말았다.
[Nouveau ‘Mukbang’ de Chan! Gout de France 2011(찬의 새로운 ‘먹방’! 2011 구드프랑스)] [Encore Chan – ensemble d’expressions faciales (또찬영 – 표정 세트)] [Encore Chan fanmade film – Comment Chan a conquis le monde(또찬영 팬메이드 필름 – 어떻게 찬이 세계를 정복했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상들이 줄줄이 이어졌고, 마지막에 있는 ‘윙딩동X또찬영 – 무엇이든 마신다’ 리믹스 영상까지.
···이 모두가 알고리즘의 인도에 따른 것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