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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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영이 본가로 돌아간 주말, 통대 캠퍼스에서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남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의 통대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한 명, 추성원 또한 이번 주는 웬일로 기숙사에 남았다.
어제 저녁, 웬일로 그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탓이었다.
– 성원아,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
– 네 철부지 같은 요청을 들어주는 건 지난 방학까지였고, 이번 학기가 졸업 학기라고 들었는데···.
평소 웬만해서는 무언가를 강요하는 법이 없는 분이지만.
이제는 아버지 역시 추성원의 태도에 학을 뗀 듯했다.
– 한 번에 졸업시험 통과 못 하면, 그때부터는 모든 지원을 끊겠다.
‘아빠, 잠깐만.’
– 아니, 네 변명은 너무 많이 들었다. 그간 내가 너를 너무 무르게 키운 듯하구나.
생활비는 물론이고, 교통비나 통신비 같은 자잘한 용돈까지 알아서 하라는 것.
아예 카드를 회수해가겠다는 말에 추성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다 성원아.
‘···.’
– 언제까지나 부모가 네 방패가 되어줄 순 없는 법이니 말이다.
달칵.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는 전화를 끊었다.
추성원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스마트폰에서 한동안 귀를 뗄 수 없었다.
‘나의 방패라···.’
어릴 적 그는 큰 병을 앓았다 간신히 살아났다고 했다.
···그 자신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사실이지만.
그 탓도 있을 거고, 아버지 직장 때문에 계속 전학다녀야 하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부모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고자 했다.
‘성원아. 우린 네 뜻을 존중할 거야. 그러니 네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렴.’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의 교집합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그렇게 찾아낸 일을 평생 할 수 있는냐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
송하늬의 말에 추성원은 자못 고개를 주억거렸다.
토요일 오전의 스터디실.
그간 밀린 공부를 하자는 투지를 불태운 두 사람은, 짤막한 스터디를 마친 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차였다.
“니가 이런 고민에 동감해줄 줄은 몰랐는데.”
추성원의 말에 송하늬가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소리야. 이 통대 불어과에서 나만큼이나 애매한 능력의 소유자가 또 어디 있다고.”
진로 고민을 하도 많이 한 탓에, 누가 고민을 들고 오든 간에 제대로 된 상담을 해줄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 추성원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오바하긴.”
“오바하는 게 아니라니까? 솔직히 말해서 추야, 난 니가 진짜로 부럽다.”
“···.”
“넌 누가 봐도 언어에 재능이 있잖아? 기본적으로 프랑스어가 유창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는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타고난 외향적 성격 덕분에 누구와든 금세 친해지지 않냐.
그거야말로 통역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아니냐는 것.
‘···민망하네.’
송하늬의 입에서 이어지는 칭찬을 들으며, 추성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야, 그만 띄워라. 이러다 떨어지겠어. 그러는 너도···.”
“나도 내가 어디에 소질이 있는지는 알아.”
“···어?”
추성원은 살짝 당황했으나, 송하늬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너랑 나랑은 좀 반대 성향이잖아?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이래 봬도 난 꼼꼼하고 성실한 타입이니까. 열심히 하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추성원은 시험기간마다 시커멓게 변하던 송하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말대로, 노력이라면 찬영에게 버금갈 정도이지만.
“결과물은 좀 많이 아쉬운 편이지 뭐야.”
송하늬가 농담처럼 한 말에, 성원은 웃지 않았다.
‘때때로 재능의 차이라는 건 눈에 보일 정도로 잔인하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여전히 노력을 멈추지 않는 송하늬가 대단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니까.
“추 너는 내가 엄청 긴장 잘하는 거 알지? 그럴 땐 정말 니가 부럽다니까.”
“뭐 그거야.”
“우리의 장점을 반반씩 나눠 가지면 좋을 텐데, 안 그래?”
송하늬의 말에 추성원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이렇게 말을 받았다.
“야, 근데 노력도 재능이야.”
“뭐래.”
“진짜라니까?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촨용이도 촨용이지만, 너도 그런 끈기는 타고난 재능이라고.”
송하늬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 맞다. 서풍이 너 요즘에 페북그램 잘 나가더라?”
성원의 말에 송하늬가 활짝 웃었다.
그 말대로, 최근 그녀가 게시물을 올리는 족족 반응이 엄청난 상황이었으니까.
“흐흐, 나 요즘 엄청 보람 있는 거 알지?”
“페북지기하면서?”
“음, 사람들이 재밌어하고 웃는 걸 보면 뿌듯하다고 해야 하나?”
원체도 이런 쪽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직접 쓴 게시물로 이렇게 반응이 올 줄 몰랐다며 덧붙였다.
“있잖아, 추야. 니가 진로 얘길 꺼내니 말인데.”
문득 진지해진 그녀의 얼굴에, 성원은 저도 모르게 몸을 그쪽으로 기울였다.
“나 원래는 그냥 막연히 통번역 쪽만 생각했거든. 적당한 회사에 이력서 넣어서 인하우스 통번역사로 일하면 좋겠다, 뭐 그 정도?”
“···.”
“근데, 그럴 거면 굳이 왜 이 학교에 왔나 그 생각이 들더라고. 어차피 회사야 학교 오기 전에도 다니고 있었는데 말이지. 근데···.”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런 쪽 일도 잘 맞을 것 같아서 말이야.”
처음에는 겸업으로 시작해, 성과 나는 것에 따라 차차 일의 범위와 양을 늘려가겠다.
SNS 관리나 이런 유의 컨텐츠 편집자는 물론이고, 너튜브 BJ나 크리에이터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녀의 비전을, 추성원은 어쩐지 묘한 기분으로 경청했다.
“···좋네.”
“응?”
“너랑 잘 맞을 것 같다고.”
희미한 미소를 띤 채 그가 대답하자, 송하늬가 기겁하며 대꾸했다.
“너 추 맞아? 웬일로 진지하게 나오니까 좀 무섭다?”
그런 반응에 픽 웃으며 추성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럴 때도 있는 거지.”
그래. 타고나길 가벼운 성격의 그에게도, 때론 이런 순간들이 찾아오곤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찬영은 물론이고.
동기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자신은 여전히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채로 방황하는 기분이 드는 때가.
‘언젠가 스포츠 전문 통역사 쪽도 고려해보았지만.’
찬영이 말했던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를 비롯, 대부분의 스포츠 조직위 공식통역사는 통역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성원은, 자신이 그런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자리는 찬영이 같은 놈이나 가능한 거지.’
치열한 경쟁,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수련.
그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소수의 천재들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추성원 자신은 그런 선택된 소수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 들으면 싸워보지도 않고 지레 겁부터 먹는다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의 타고난 성격이었으니까.
웃음과 농담으로 무장한 채,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기질적 약점.
그런 자조적인 생각을 하며 쓰게 웃던 그때, 송하늬의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또찬영 – 새 소스??] [이젠 리믹스 식상··· 아예 먹방은?] [찬발찬 올리면 좋을 텐데 아쉽ㅜㅜ]노트테이킹을 한 줄 알았더니.
새로운 SNS 게시물 아이디어를 잔뜩 적어놓은 것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이, 서풍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근데 너··· 공부는 할 만큼 하고 있는 거지?”
추성원의 물음에 돌연 송하늬가 입을 다물었다.
“아, 음, 그게.”
“너 다음 주에 발표 담당 아니었냐?”
“으으으으···.”
“새로운 재능을 찾은 건 좋은데, 그렇다고 아예 졸업도 하기 전에 도피할 생각은 하지 말고.”
머리를 싸매며 신음하는 송하늬, 아니 ‘송서풍이’의 마음을, 추성원은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그럼.’
원래 시험기간에 하는 딴짓이 제일 재미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
월요일 아침, 수업에 들어가기 전.
나는 지난 주말에 통번역센터 서지연 과장과 통화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라니.’
정확한 직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굴지의 명품 브랜드 디올을 이끄는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이의 강연 겸 대담의 진행을, 내게 맡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찬영 씨 생각은 어때요?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조금 의외였던 탓이다.
“음, 솔직히 말하면 조금···.”
– 당황했어요?
“네. 기대는 했지만 기대 범위를 한참 뛰어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런 유의 강연이나 대담이 드문 일은 아니다.
다만, 그 무대에 서는 인물이 누구이냐가 중요한데.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그만 한 인물이 강연을 위해 연단에 서는 경우가 원체 드문 만큼, 실력 있는 ‘대담자’를 뽑기 위해 대단히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 그래요? 나도 놀랍긴 했지만, 기대 범위를 뛰어넘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런···가요?”
그러자 스마트폰 너머에서 발랄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 찬영 씨는 생각보다 자신을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네?”
– 지금 찬영 씨의 위상이 이 프랑스어 통역계에서 그만큼 높아졌다는 거죠.
내가 잠시 말이 없자, 서 과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 생각해봐요. 이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측에서, 지금 이 시점에 찬영 씨 말고 누구를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야 인지도로 따지자면 그럴 수 있겠지만.”
···게다가 중현대 입장에서는 모교 출신 인물에게 의뢰하는 게 마음 편하기도 하겠지만.
– 인지도와 실력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종류의 행사에서는 인지도가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찬영 씨는 인지도에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인재이잖아요?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런 말을 처음 듣는 게 아닌데도,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줄 때마다 여전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 여하튼, 이 행사는 찬영 씨의 커리어와 실력 양쪽에 다 도움이 될 거예요.
명품 업계는 앞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구가할 것이며, 이에 따른 통번역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련 분야 이력을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은, 10년 뒤를 경험하고 돌아온 내가 가장 잘 아는 터였다.
“알겠습니다. 일정은 어떻게 될까요?”
디올 수석디자이너 강연은 이달 말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제법 여유가 있는 덕에 결국 나는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그나저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수업이 시작되기 약 30분 전.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였다.
지난주 금요일에 장발장 역할을 하느라 면도를 하지 않은 김에 주말 내내 면도를 안 한 터였다.
그 결과···.
“···꽤 많이 자랐네.”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낯설게 마주 보았다.
원체 털이 많고, 면도한 후에도 금방 자라나는 편이다 보니.
콧수염은 물론이고 턱 주변, 구렛나룻에 이르기까지 수염이 까슬까슬하게 올라와 있었다.
‘음, 나쁘지 않은 느낌인걸?’
입 주변과 턱을 가려줘서인지 얼굴이 조금이지만 작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날카로운 인상이 조금 중화되는 느낌이다.
어머니 또한 수염 기른 모습이 나쁘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찬영이 너 TV에 나오는 연예인 같다? 약간··· 3초 하종우 같아.’
‘···엄마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니고?’
‘물론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긴 하지만.’
‘···.’
어쨌거나 중요한 건 단 하나뿐이다.
“···레아가 좋아해야 할 텐데.”
그날, 장발장 역할을 위해 가짜 수염을 붙였을 때 레아가 보였던 반응을 떠올리며 나는 차분하게 수염을 다듬었다.
사각사각.
익숙지 않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지만, 레아가 기뻐해준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두근거리며 기숙사를 나와 본관에 들어서는데.
“오, 촨용이.”
“찬영아.”
추와 수용이 형과 마주쳤다.
“오, 오늘은 면도 안 했나 보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수용이 형의 말에 잠시 긴장하는데, 두 사람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크, 찬발찬의 재림이냐?”
“흐흐, 수염 기르니까 꼭 산적 같은걸.”
···찬발찬, 산적.
생각지 못한 단어의 등장에 움찔하는데.
저 멀리서 다가오던 여자 동기 무리, 즉 유정 누나, 은새, 송하늬가 나를 보고는 우뚝 멈춰 섰다.
“어? 찬영이 수염 길렀네.”
“찬영 오빠 오늘 색다른걸? 뭐랄까 좀···.”
···뭐랄까 좀 어떤데.
그래도 여자 동기들은 좀 다른 눈으로 봐주지 않을까 기대하던 그때.
송하늬가 한마디로 결론을 내렸다.
“임꺽정이네 임꺽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