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198)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팀.
그중 모두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단연코 레아 데주였다.
– 아, 저기 배우 레아 데주 씨가 나오네요.오늘은 한결 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길게 기른 금발을 높이 틀어올리고, 어깨를 드러낸 푸른색 드레스를 입었다.
그 우아한 자태를 모두가 넋놓고 바라보는 가운데, 진행자들의 멘트가 이어졌다.
– 이야, 지상에 강림한 여신이 따로 없네요.
그런 그녀를 무대까지 에스코트하는 것은 다름 아닌 감독 클로드 마리니.
–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분이죠.
– 오, 오늘은 미중년 느낌이신데요.
그 뒤를 따르는 두 명의 모습에, MC들의 멘트가 이어졌다.
– 배우 엘리오 마레 씨입니다. 유럽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유명하죠.
– 순간 브래드 피트인 줄 알았어요. 어, 엘리오 씨 옆에 계신 분은···. 지금 저분, 박찬영 씨 맞죠?
두 사람의 중계 멘트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층 더 박찬영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러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영은 몹시 굳은 얼굴로 뻣뻣하게 무대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 인지도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고 유명하신 프랑스어 통역사죠.
– 근데 오늘 유난히 잘생기셔 보이는데요. 카메라 샤워, 뭐 이런 건가요?
이 자리에 서기 전.
어떻게 맨얼굴로 레드카펫 무대에 설 수 있냐, 그건 무대에 대한 모독이다.
-라고 분노하던 레아 데주의 코디네이터에게서 찬영이 메이크업을 받고 나왔음을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 박찬영 씨는 얼마 전 디올 수석디자이너와의 대담 행사로 큰 화제가 되었죠.
– 아, 그랬또요?
– ···그건 뭔가요.
– 어 진짜 모르시는 거예요? 이거 완전 난리났었는데. 아, 실망이네~.
개그맨은 ‘했또체’의 유행 배경을 신이 나서 설명해주었다.
– ···그러니까, 어미를 ‘~했또’로 바꾸면 된다 이거죠?
– 네. 윤성국 아나운서님도 해보시죠.
– 알겠···또요.
– 푸흐흐흐.
잠시 후.
네 명은 레드카펫 끝에 도달했다.
인사를 위해 야외무대 위로 올라가자, 주변을 둘러싼 인파에게서 귀가 얼얼해질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레드카펫 행사의 진행을 담당하는 유명 MC가 그들을 맞이했다.
“영화 팀, 반갑습니다! 한국 팬들에게 간단히 인사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박찬영이 옆의 세 사람을 돌아보며 통역했다.
「Bienvenue l’équipe de La Femme romaine.」
부드럽고도 힘 있는 중저음이 마이크를 통해 퍼져 나간 순간, 무대 주변에 적막이 흘렀다.
「Dire bonjour à vos fans coréens, s’il vous plaît.」
덕분에 클로드 마리니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의 영화 사랑이 대단하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이곳에 와보니 그 열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군요. 열렬한 환영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의 소감을 찬영이 빠르게 통역하자, 무대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마이크를 쥔 엘리오 마레 또한 무척 신이 난 기색이었다.
「와, 지금 제가 어디에 있는 거죠? 프레디 머큐리가 된 기분이네요.」
흡사 락스타가 된 것 같다는 그의 말을 통역하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한국 영화의 대단한 팬이며 한국 음식 매니아라고 덧붙인 엘리오는, 머리 위로 커다란 하트를 그리며 한국어로 외쳤다.
“한국, 싸랑해요! 김치 조아!”
열정적인 팬서비스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
마지막으로 레아 데주가 마이크를 쥐자, 그것만으로도 무대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퍼졌다.
「Comme vous savez, la Corée est un pays qui a été une opportunité pour moi à bien des égards.」
그녀가 옆을 돌아보자, 곧바로 찬영이 통역을 시작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국은 제게 여러모로 하나의 계기가 되어준 나라입니다.”
다시 옆을 돌아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J’ai pris une décision à laquelle je n’avais même pas pensé, et cela a changé ma vie.」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결심을 했고, 그리하여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했으니까요.”
진심이 깃든 그녀의 소감에, 사람들의 얼굴 위로 감동의 빛이 번져 나갔다.
「De plus, j’y ai rencontré un bon ami.」
“···또한, 좋은 친구도 만났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찬영이 통역을 이어나가자.
꺄아아아— 또 한 번, 무대가 떠나갈 듯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 결과 이렇게, 속 옥타비아로 여러분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네요. 제 눈앞에 펼쳐진 수없이 많은 선택지 가운데, 지금의 미래로 이어지게 해준 과거의 제 선택에 감사합니다.”
찬영이 통역을 마치자 레아 데주가 직접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에 다시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비교적 정확한 그녀의 발음에 함성은 더더욱 커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진행자는 마지막으로 찬영에게 질문했다.
“찬영 씨는 여기 서보니 기분이 어떠세요?”
“음, 엄청 얼떨떨하네요. 제가 설 자리가 맞나 싶기도 하지만, 이 훌륭한 감독님과 배우분들의 입과 귀가 되는 데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또 다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진행자가 웃으며 외쳤다.
“그럼 마지막으로 네 분, 한국 팬들을 향해 하트 부탁드립니다!”
찬영이 곧바로 통역하자, 나머지 세 사람이 자연스럽게 양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찬영 씨도 하셔야죠.”
“아, 저도···요?”
“그럼요.”
진행자의 말에 찬영이 벙쪄 있는 가운데, 엘리오 마레가 그를 끌고 자기들 사이에 세웠다.
“찬! 하트!”
그러자.
박찬영은 몹시 굳은 얼굴로 어색하게 손을 들어올렸다.
파파파팟—
사방에서 그들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리고 그때의 찬영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만든 하트가 새로운 붐을 일으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그날, 무슨 정신으로 호텔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일단 주변 반응이 어마어마했지.’
세 사람과 함께 레드카펫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여기저기서 사랑한다는 말들이 쏟아졌고, 지나가던 팬들이 건넨 선물은 세 사람의 수행원이 따로 챙겨서 다녔다.
···그리고 내게도, 몇몇 분들이 내 팬이라며 정성이 담긴 선물을 챙겨줬는데 기분이 되게 이상하고 묘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애정을 받는다는 게 말이지.’
참 감사하고 용기가 나는 동시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뿐이 아니었다.
호텔로 돌아오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온갖 지인들에게서 문자와 톡이 쏟아져 있었다.
그중 가장 큰 힘을 준 것은 무엇보다도 레아가 보낸 메세지.
[자기가 나온 것 봤어. 오늘 너무 멋있더라. 자기 모습이 TV에 생중계되는 거 보니까 내가 다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네(후략)]···메시지 마지막에 적힌 ‘사랑해’와 ‘내일 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다.
긴장했던 탓인지 어마어마한 피로가 몰려왔지만, 마음만큼은 뿌듯한 채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찬, 잠시 커피나 함께하지 않겠어요?]레아 데주에게서 온 메시지에, 나는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그녀를 보러 나갔다.
파크하얏트 호텔에 마련된 비즈니스룸.
공간이 분리된 덕에 유명인들이 잠깐의 휴식을 즐기러 곧잘 이용하는 곳이라 들었다.
「왔네요.」
어제와 달리,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온 레아 데주가 나를 돌아보았다.
「피곤하진 않아요?」
맞은편에 앉자, 그녀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호텔 측에서 준비해준 다과를 곁들여 잠시 어제 행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꿈 같은 시간이었죠.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잠시 말을 끊은 그녀가 나를 마주 보았다.
「그 시간이 끝난 게 아니라는 게 더 놀라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이 자리에 이렇게 와 있는 것도 실감이 안 나는 느낌이지만요.」
「음, 절반은 찬 덕분인 거 알아요?」
「···네?」
내가 당황하자, 레아 데주의 입가에 장난기 섞인 미소가 어렸다.
「그때 당신을 만난 후로 난 좀 변했거든요.」
그녀가 담담하게 제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난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에 모범생이었어요.」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기보다는 주변의 기대에 맞추려 하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자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늘 열심히 살던 아이.
「문제는,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를 만났던 작년 5월이, 그로 인한 슬럼프에 빠져 있던 시기였단다.
「근데 찬이 해준,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이 내 안의 무언가를 바꾼 것 같아요.」
의 명대사 중 하나인 ‘All is well.’
그 영화를 보며 그 문장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을 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가끔은 충동에 나를 맡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파도에 올라타듯, 인생이란 거대한 바다에 그저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지금 내가 바라는 것’에 막연히 손을 뻗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 자신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는 법을 알게 되더군요.」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바라는 것.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녀의 문장 하나 하나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기분이었다..
레아 데주는 해사하게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찬은 늘 자기 자신에게 확신이 있어 보였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한결 부드러워 보이는 느낌이네요.」
「그런가요?」
「네,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분위기나 표정이 좀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가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소중한 사람이 생긴 느낌인데··· 맞나요?」
허를 찔린 느낌에 아, 하고 소리 내자 레아 데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안 그래도 여자친구가 부산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통역 일이 끝나자마자 만나기로 했다고 설명한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는 레아 씨에겐 확신이 생긴 느낌인데요.」
「맞아요. 내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이 생겼으니까요.」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
그렇게 말하는 레아 데주는, 어느새 배우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
오후의 공식 기자회견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국내 팬들이 이 작품에 거는 기대가 큰 만큼, 기자들에게서 온갖 질문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녹초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대부분은 내가 사전에 예습했던, 즉 예상 범위 내의 질문이었던 덕분이다.
–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구상했나.
– 레아 데주가 캐스팅된 데는 어떠한 사연이 있나.
– 실제 역사와 차별화하고자 한 부분이 있나.
– 촬영 당시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었는지···.
기자회견장 안은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였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농담도 계속 나왔는데, 통역하기 까다롭지 않은 농담이라 다행이었달까.
그렇게 약 40분 가까이 쉴새없이 양측의 말을 전달하고 나자.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에 온몸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이따 저녁에 시사회 통역도 해야 하는데.’
카페인이라도 보충해야겠네, 라고 생각하던 그때.
누군가 내 앞 테이블에 캔음료를 올려놓았다.
“···?”
고개를 드니 유난히 열심히 질문하던 기자였다.
“박찬영 통역사님 되시죠? 한성일보의 한우준입니다. 재중 선배한테 통역사님 얘기 많이 들었어요.”
“최재중 기자님 후배셨군요. 반갑습니다.”
“두자와 좋아하신다길래.”
“···아, 감사합니다.”
언제 이렇게 내 취향이 온 국민에게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반가운 기분으로 캔을 따 한 번에 원샷했다.
어딘가 밍밍하면서도 묘한 밀크티향이 입안을 감도는 가운데, 혀 끝에 남는 기분 좋은 달달함까지.
“···캬아, 이거지.”
너무도 만족스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기자가 큭큭 웃었다.
“진짜 맛있게 드시네요. 아, 통역사님 혹시 인터넷 보셨어요?”
네? 라고 대꾸하며 눈을 크게 뜨자.
“지금 통역사님 사진 가지고 난리 난 것 같은데.”
···이 이상 난리가 날 게 또 뭐가 있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