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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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미드 왕자의 체크인을 마친 뒤, 그를 객실 앞까지 배웅하고 나왔다.
오늘 오전, 입국장에 들어선 하미드 왕자는 나를 보자마자 몹시 반가워했는데.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언제든 즐거운 일이 아니겠소.’
그 소탈하고도 솔직한 반응에 이번 일을 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은 일이 있다면.
“···설마 왕자가 그렇게 딱 잘라 선을 그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KOTRA에서 나온 김상득 주무관.
오혜원 실장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이 사람이 하미드 왕자의 의전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왕자 본인이 프랑스어 담당을 요청하며 나를 지목한 상황이기에 태도가 좀 미묘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상황 자체도 그렇지만, 사실 학생 신분으로 통역에 나가면 무시당할 때가 종종 있긴 하지.’
나 또한 회귀 전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통대 1학년 1학기 재학 중일 때 딱 한 번 통역 일을 맡아 나가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덜떨어진 모습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자.
‘Well, I just wanna say···.’
나를 신뢰하지 못한 한국측 담당자가 아예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그 뼈아픈 경험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은 통역 현장에 나갈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것은 이제 다 지난 일이고.
현장에서 10년을 구른 내게는 저 주무관 또한 얼마든 있을 수 있는 케이스에 불과했다.
다만 하미드 왕자가 대놓고 통역을 거쳐달라, 고 할 줄은 몰랐다.
그러한 요구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뿐.
‘내가 통역사로서 신뢰받고 있구나.’
참 기분 좋은 결론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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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하미드 왕자의 공식 만찬 일정을 끝내고 나오는 길.
‘식사 통역은 늘 힘들단 말이지.’
피곤한 것은 왕자 또한 마찬가지인지, 좀 쉬고 싶다는 그의 말에 호텔 로비의 카페로 향했다.
「이제 좀 살 것 같군.」
시원한 음료를 들이켠 하미드 왕자가 한숨을 내쉬더니, 그간의 근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요지는 대략 이러했다.
지난번 코아펙 행사 때 한국 정부와 논의했던 건이 잘 결실을 맺은 덕에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은성엔지니어링의 모로코 지사 설립은 몇 년 전부터 논의된 건이지만, 정부 인센티브 관련해서는 한아프리카 경협 회의 결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거야 그렇고, 무슈 박의 일정이 괜찮았다니 다행이오. 갑작스럽게 요청한 거라 어떨까 싶긴 했는데.」
아.
그 말에 어째서 나를 특별히 지정한 거냐고 묻자, 하미드 왕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평소 해외 방문이 잦은 편이오.」
한국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유럽 같은 경우 아예 순방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단다.
「새로운 나라에서 달라진 시차에 맞춰 지내는 건 언제든 피곤한 일이지만···.」
자신을 수행하는 인물, 특히 담당 수행통역사와 맞나 안 맞나에 따라 그 일정이 더 힘들어지기도, 한결 즐거워지기도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 코아펙 행사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건, 절반 이상은 무슈 박 덕분이 아닌가 싶었거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번 한-모로코 친선방문은 무려 5일에 걸친 행사.
그런 만큼 더더욱 자신과 잘 맞는 인물을 지명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본심이었다.
「출국할 때쯤엔 지쳐서 나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무슈 박 같은 분이 나를 보좌해준다면 제법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 말이지. ···이거, 말해놓고 보니 너무 내 사정만 생각한 것 같은데.」
그 말에 ‘아닙니다, 전하. 제게도 큰 영광입니다.’라고 상투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닙니다. 오히려 기뻤습니다, 저도 지난번 코아펙 행사 이후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형태의 만남 또한 귀중한 인연이자 우정이 될 수 있다고 말이죠.」
하미드 왕자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 저를 다시 찾아주셨다는 연락에, 그런 생각이 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하하, 그렇지. 이런 게 바로 ‘인연’이 아니고 뭐겠소.」
하미드 왕자는 ‘인연’이라는 한국어 단어를 어색하게 발음했다.
나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이 5일간의 일정이 의미 깊은 기억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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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첫날은 주무관이 말했던 대로 그다지 큰 행사가 없었지만.
두 번째 날에는 해외기업 초청설명회와 비즈니스리셉션 등 총 두 건의 미팅이 있었다.
그래서 하미드 왕자 본인은 바빴지만···.
‘미팅은 나 말고 다른 통역사가 순차통역으로 진행했거든.’
열 기수 위의 한명외대 통대 선배라고 들었다.
덕분에 나는 왕자를 제 시간에 데리고 다니는 것 외에는 별다른 할 일이 없었다.
세 번째 날은 미니 콘퍼런스가 있는 날이었는데, 내게도 귀중한 경험이 되는 시간이었다.
‘코아펙 때와 달리 담당 VIP 옆에서 모든 콘퍼런스에 참석할 수 있거든.’
동시통역용 리시버가 전 좌석에 부착된 행사장.
오늘의 콘퍼런스에서는 동시와 순차가 혼용된다고 들었다.
몇몇 연사들의 연설은 순차로, 나머지 토론과 질의응답은 동시로 진행되는 식.
‘그리고 오늘의 통역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동시통역은 2학년의 과목을 담당하는 임선혜 교수가, 순차통역은 선욱재 교수가 담당한다.
‘교수님들의 통역을 현장에서 듣다니, 기대되는걸.’
한 시간 반에 걸쳐 진행된 콘퍼런스는 생각 외로 유익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연설을 맡게 된 KOTRA 중아 CIS팀의 홍성국이라 합니다.”
해외 경협 전문가의 말을 선욱재 교수가 능숙하게 프랑스어로 통역해나갔다.
주제는 ‘떠오르는 마그레브 시장,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마그레브란 아프리카 북서부 지역을 총칭하는 단어로,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 4개국을 가리킨다.
전만 해도 전혀 모르던 주제였지만, 코아펙 건과 이번 통역을 준비하며 공부한 덕분인지 제법 그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물론 통역의 퀄리티가 훌륭한 건 두말할 것도 없고.’
통역 리시버를 낀 하미드 왕자 또한 논의 내용에 완전히 집중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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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퍼런스가 끝난 뒤, 동시통역사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하미드 왕자를 데리고 동시통역 부스로 향했다.
그 안에 앉은 것은 언젠가 지나가듯 얼굴을 본 기억이 나는, 2학년 담당 임선혜 교수와 그녀의 파트너였다.
“저, 교수님. 통대 1학년 박찬영입니다.”
임선혜 교수에게 말을 붙인 뒤 하미드 왕자를 소개하자.
교수는 조금 당황한 와중에도 왕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통역이 무척 듣기 편한 덕분에 논의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는 그의 말에, 임 교수가 활짝 웃어 보였다.
「통역이 듣기 좋았다는 말은 언제나 최고의 찬사이자 통역사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이기도 하지요.」
그 둘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나는 임선혜 교수가 앉아 있던 동시통역 부스를 들여다보았다.
부스가 아예 건물 안에 시공된 형태인 통대의 부스와는 달리.
이동식으로 어디든 옮겨서 설치할 수 있는 형태였다.
‘저게 바로 통역 현장의 부스.’
세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저 안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통번역계 최고의 실력자들뿐.
···나 역시 언젠가는 저기에 서겠다.
그런 일념을 담아 동시통역 부스를 응시한 뒤, 왕자와 함께 콘퍼런스장을 나섰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은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했다.
‘연설 통역이 참 좋았소. 듣기 편하면서도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하미드 왕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감탄을 자아낸 통역의 주인공, 선욱재 교수를 향한 경탄과 시기의 감정.
그의 화려한 언변과 청중 친화력을 배우고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
또한···.
언젠가는 꼭 이런 위치에 다다르겠다는 호승심까지.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한 오색의 감정들을,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 아래 꾹꾹 눌러담은 채 그날의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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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덧 4일차가 되었다.
「무슈 박,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호텔로 맞이하러 가자, 하미드 왕자가 내게 물었다.
앞선 2일차와 3일차와 달리, 오늘의 일정은 그야말로 널널했다.
「오늘은 기관지 인터뷰 말고는 별다른 공식 일정이 없습니다.」
이제는 지겨울 지경인 정찬 일정도 없다.
그냥 자기 편한 대로 식사를 하면 그만이라는 의미.
하미드 왕자 또한 그것을 반기는 눈치였다.
「인터뷰 하나가 전부라, 아주 좋군. 인터뷰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으로 예상하시오?」
「길게 잡아도 한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는 일정표를 살펴보며 덧붙였다.
「아마 이 일정만 마치고 나면 개인적인 휴식을 취하실 여유가 생기리라고 봅니다.」
그 말에 하미드 왕자가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요. 오늘은 무슈 박도 좀 일찍 퇴근할 수 있겠군. 그간 너무 바쁘게 보내지 않았소.」
그 말이 맞았다.
지난 사흘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의 연속이었으니까.
그것을 모두 소화하는 하미드 왕자 본인은 물론이고.
왕자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수행하는 나 또한 지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제일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식사 통역’이었는데.
‘오찬이나 만찬 등, 식사 역시 공식 일정 중의 하나이니 옆에서 일일이 통역해줘야 하거든.’
먹으면서 말을 하는 게 어렵다 보니, 통역사들은 보통 식사를 건너뛰거나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 채 진행하게 된다.
‘나도 정찬 통역 직전,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때우고서 들어갔지.’
하미드 왕자는 함께 식사하자고 계속 권유했지만.
먹으면서 통역하는 데는 영 익숙지 않았기에 내 쪽에서 거절했다.
‘이 식사 통역이 은근히 난이도가 있거든.’
인터뷰나 연설 등의 통역은 주제가 정해진 만큼 미리 대비를 하고 들어갈 수 있지만.
식사 자리에서의 통역은 말 그대로 일상대화이기 때문에 어느 주제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만큼 캐쥬얼하게 통역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이게 또 나처럼 해외 체류 경험이 길지 않은 통역사에게는, 오히려 포멀한 통역보다 캐쥬얼한 통역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현지인들만 아는 농담, 언어 유희 혹은 비속어 등이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렇게 바짝 긴장해가며 무사히 식사 통역을 마치고 나면.
직전에 먹은 샌드위치는 이미 배 속에서 흔적도 없이 소화돼버리기 일쑤였다.
「아 그리고 오늘은 무슈 박도 같이 든든하게 식사합시다. 그간은 통역하느라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말이오.」
내가 끼니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표정에 나타났나.
하미드 왕자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인데요.」
이날은 하미드 왕자에게는 제일 덜 중요하지만, 내게는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일정이 있는 날.
‘상공회의소 기관지 에디터와의 인터뷰가 있는 날이지.’
대한상공회의소.
정부와 재계간의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 주요 경제단체 중 하나.
오늘 하미드 왕자는 이곳 기관지 에디터와 ‘모로코의 시장 전망과 주요 경제 이슈’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인터뷰가 어째서 내게 중요하냐면.
내가 이번 일정에서 유일하게 순차로 진행하는 통역이기 때문이다.
‘사전에 질문지까지 모두 받은 상황이지.’
그에 관해 하미드 왕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눈 만큼,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을 터.
그럼에도 오늘 이 통역은, 흔치 않은 실전 경험의 기회였다.
나는 기대감에 들뜬 채 말했다.
「그럼 인터뷰 장소로 모시겠습니다.」
잠시 후.
우리를 태운 차가 상공회의소 회관으로 출발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