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122
122. 아흐마흐 유적지(1)
로니아드와 이소레타의 두 눈이 마주쳤다.
“…….”
“…….”
둘 다 말없이 알 수 없는 기류를 주고받았다.
‘세 번째 메인 히로인을 드디어 만났군.’
한쪽은 마침내 마지막 메인 히로인을 만나게 된 감회를 느꼈다.
‘이 사람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
다른 한쪽은 상대에게서 나는 낯선 냄새를 느꼈다.
두 사람은 첫 만남이지만 묘한 호기심을 가져야 했다.
‘괜찮군. 마음에 들어.’
이소레타는 로니아드를 보면서 속으로 미소 지었다.
물론 겉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지만.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보는 앨리스의 심정은 복잡하게 꼬여만 갔다.
‘이스릿 저 여자와 엮이면 안 되는데!’
가장 걱정되는 사람과 가장 신경 쓰이는 사람.
그 두 사람이 첫 만남부터 알 수 없는 탐색전에 들어가자, 앨리스는 골치 아팠다.
앨리스가 이곳에 오게 된 계기는 이랬다.
“앨리스, 혹시 더 큰 힘을 얻고 싶지 않니?”
마인 습격 사태가 일어나고 다음 날, 세피로스가 번득이는 눈동자로 그녀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힘? 어떻게?”
세피로스의 흑마법 비전으로 짧은 시간에 눈에 띄는 힘을 얻은 앨리스다.
자연스레 세피로스의 제안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아흐마흐 유적지에서 새로운 유적이 발견됐거든.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유적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달라. 아마 굉장히 위험할 거야.”
“그 유적지에서 힘을 얻을 수 있어?”
“아마도?”
“대가는?”
“그곳에서 내 일을 좀 도와줬으면 해.”
“무슨 일?”
“그건 아직 말해 줄 수 없어.”
마법도, 학식도 뛰어나지 않은 자신이 세피로스를 도울 일이 과연 뭐가 있을까?
앨리스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황궁의 고위층부터 현자의 탑까지, 그 유적을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릴 각오를 했거든.”
제국과 아흐마흐 유적지라는 곳을 향한 호기심, 무엇보다 힘을 향한 갈망이 앨리스의 의구심을 먹어 치웠다.
“좋아, 갈래.”
마인 사태 때 또다시 자신의 무력감을 느꼈던 앨리스는 망설임 없이 세피로스의 제안에 응했다.
“……그러니? 좋아,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으렴.”
너무나 쉽게 승낙하는 앨리스의 모습에 세피로스가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당연하지만 가문에는 절대 비밀이다.”
“비밀로 한다고 해도 너무 갑자기 사라지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떠나기 직전에 내가 아버지에게 짧게 보고할게.”
세피로스는 앨리스와 대화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앨리스, 네가 아카데미에서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막 자리에 일어선 그가 가기 전에 추가로 당부를 더했다.
당부라기보단 명령이다.
세피로스의 명령조에 앨리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데?”
“조만간 고트 아카데미서 룬-아르미 아카데미로 공문을 하나 보낼 거야. 트로이 총장이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려고 얄팍한 수를 쓴 모양인데, 네가 그것 좀 처리해 줬으면 해.”
“처리하라니? 어떻게 처리하라고?”
“가능한 한 아카데미 사람들이 제국으로 많이 못 오게 막아.”
좋은 것은 소수가 경쟁해서 독식해야 한다는 뜻일까?
“앨리스, 너 정도야 내가 어떻게 보호한다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거대한 싸움에 휘말릴 뿐이야.”
“좋아, 한번 해 볼게.”
나름 합당한 사유라 판단한 앨리스는 세피로스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가문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게시판에 걸린 공지를 치웠던 그녀였다.
‘그 과정에서 로지와 데이지가 은근슬쩍 도와준 것은 의외였지만.’
로지와 데이지 두 사람도 아흐마흐 유적지로 가는 듯싶었다.
두 사람이 죽든 말든 그녀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방학 동안 강해져서 놀라게 해 줘야지. 그 사람에게 늘 도움만 받는 것은 지겨워.’
오직 앨리스의 머릿속에는 위험을 통해 얻게 될 힘과 로니아드의 안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모든 게 잘 처리됐다고 생각했던 앨리스였다.
그랬는데…….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
아흐마흐 유적지에서 로니아드를 본 앨리스는 미칠 것만 같았다.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면서…….’
제국으로 오기 전만 해도 ‘위험한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막상 도착해서 피부로 느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앨리스는 힐끔 옆을 봤다.
세피로스, 그녀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장본인.
그가 마리아의 사나운 눈총을 받으면서 진땀을 흘린다.
늘 여유롭고 능글맞던 이미지를 생각하면 보기 드문 모습이다.
세피로스를 슬쩍 본 다음에는 반대편 옆을 보았다.
‘…….’
붉은색 기사 제복을 입은 여기사.
현재 앨리스가 가장 경계하는 대상 1호.
그녀의 오라비가 명확히 얘기는 안 해 줬지만, 이 여기사의 정체는 황녀일 것이다.
이어서 앨리스의 눈동자가 정면으로 향했다.
남색 머리에 붉은색 눈동자. 변신 마법을 써서 30대 중후반으로 보이지만, 그마저도 굉장히 잘생긴 외모.
‘저 바보!’
그날 이후 좀 더 강하게 마음이 가기 시작한 사람.
저 남자는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나 할까?
“하하하, 동생아, 이분들을 숙소로 안내해 주겠니?”
세피로스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부탁한다.
이분들이라 해 봤자 로니아드와 루키엘, 두 사람만 안내하면 됐다.
마리아와 율카네스는 폰셔, 세피로스와 따로 할 얘기가 있는지 다른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로니아드와 이소레타가 말없이 지켜본다.
“부탁할게.”
멀리서 메아리치는 세피로스의 목소리.
앨리스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따라오세요. 숙소와 기본적인 것들을 안내해 드릴게요.”
후작가의 영애씩이나 되는 그녀가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여기서 우리 아카데미 학생을 만날 줄이야. 게시판에 붙은 공고문을 본 모양이죠?”
앨리스의 등 뒤로 마리아 총장의 말이 콕콕 꽂힌다.
“……글쎄요? 저는 가문 차원에서 온 거라서…….”
앨리스는 마리아의 말을 흘렸다.
틀린 말은 아니다. 로지와 데이지가 제국으로 떠나고 며칠 뒤, 세피로스와 함께 그리핀 마차를 타고서 제국에 도착한 것이니까.
정작 그녀도 이곳에 온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다.
‘세피로스가 왜 나를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도착한 앨리스가 하는 일이라고는 자잘한 잡무일 뿐이다.
공식적으론 후작가 영애 신분이 아닌 사무직 신분으로 온 것이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의문인 것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제국에 널려 있다는 점이다.
‘뭔가 찝찝해.’
로니아드 일행을 안내하면서 앨리스는 근래 느끼고 있던 불길함을 되새김질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세피로스에게 말했다.
“나중에 힘을 얻게 되었을 때. 믿을 수 있는 아군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잖아?”라는 것이 세피로스의 석연치 않은 대답이었다.
믿을 수 있는 아군? 그녀가 세피로스와 사이가 우호적이라지만, 두 사람 사이가 서로 신뢰할 정도는 아니다.
‘너무 경솔하게 제안을 받아들였어.’
한편으론 자신이 너무 생각 없이 세피로스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나 싶었다.
‘혈연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마법에 미쳐서 가문을 버린 사람인데.’
애초에 유적이 있기는 한 걸까? 이곳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발견한 유적에 대한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이러다 프로스 꼴이 나는 게 아닌가 싶은데.’
대표적인 예로 과거 세피로스와 사이가 유독 좋았던 둘째 오라비 프로스가 떠올랐다.
알렉스의 책임이 강하다지만 결과적으론 세피로스의 책임이 컸던 비극.
‘일단 지금 하는 안내나 제대로 하자.’
앨리스는 불안한 상념을 떨쳐 냈다.
어느덧 앨리스와 일행들은 임시로 세워진 숙소에 도착했다.
임시로 세워졌어도 천막이 아닌 어디서나 볼 법한 여관 같은 건물이다.
마법의 힘으로 뚝딱뚝딱 지어서 그런지, 겉과 내부는 투박했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여기가 숙소입니다. 지금부터 열쇠를 드릴 테니 열쇠의 번호에 맞춰 방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자세한 일정은 짐을 푸신 다음에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앨리스는 그렇게 안내를 마친 후 몸을 돌렸다.
“앨리스.”
막 건물을 나가려는데 앨리스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들은 그녀의 가슴이 쿵 하고 울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로니아드였다.
그의 입에서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왜 여기에 온 것이냐?’ 등의 질문이 나올 것 같았다.
“이곳의 상황은 어떻지?”
하지만 로니아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좀 의외였다.
‘벌써 이곳의 분위기를 느낀 것일까?’
“글쎄요, 저도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앨리스는 태연하게 로니아드의 물음을 흘렸다.
“그래도 며칠 일찍 왔으니 아는 것은 많겠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줄래?”
그럼에도 로니아드는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동시에 그는 숙소 건물 내부를 둘러봤다. 이곳까지 함께 온 이소레타를 의식했는데, 아마 건물 밖에 있는 듯싶었다.
“이거 단순한 유적 탐사가 아닌 듯싶은데?”
“당연하죠. 세상 어느 유적 탐사에서 마법이나 역사학도 아닌 행정학 전공을 초청할까요?”
그러게 애초에 수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왔냐는 앨리스의 말.
“그렇게 따지면 너도 할 말 없는 거 알지?”
“네, 그래요. 하아…….”
“자아, 진정하고 얘기해 봐. 그래야 내가 널 도와주든가 하지.”
로니아드의 마지막 말에 앨리스는 지금까지 참고 있던 불안감과 비참함이 폭발하고 말았다.
“……앨리스?”
“전 항상 당신에게 도움만 받네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들부들 떠는 앨리스의 모습.
“늘 민폐나 끼치고…….”
B22
“잘 아는군.”
‘아차!’
앨리스의 말이 너무 맞는 말이라서 로니아드는 자신도 모르게 맞장구를 쳤다.
“…….”
더더욱 움츠러든 앨리스의 모습.
그런 앨리스의 모습에 로니아드 또한 솔직히 짜증이 나긴 했다.
‘근데 맞는 말이긴 하지. 그냥 얌전히 방학 동안 아스카랑 붙어 있을 것이지!’
위축된 앨리스를 봐도 솔직히 짜증이 났기 때문에 무조건 위로하기가 힘들었다.
“너와 나는 첫 만남부터 그리 좋지 못했지.”
그래서 로니아드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의 말에 앨리스는 어깨를 흠칫했다.
첫 만남이라면 어디서부터를 말하는 것일까?
“그 이후도 딱히 좋지 못했고.”
더더욱 위축되는 앨리스의 어깨.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를 계속해서 구해 주고 관심을 가졌다.”
어느덧 앨리스에게 가까이 다가간 로니아드.
그의 손이 앨리스의 턱을 잡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물기가 가득한 그녀의 눈동자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앨리스의 눈에는 방금 로니아드가 한 말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다.
‘왜 당신은 이런 나를 계속 주시하고 도와주는 거죠?’
로니아드의 붉은 눈동자가 앨리스의 푸른 눈동자를 응시한다.
“왜 나는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위험할 때마다 도와주는 것일까?”
앨리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로니아드의 입에서 비슷한 말이 나왔다.
‘이유라고 한다면 나의 풍성한 모발을 위해서지만…….’
굳이 머리카락의 비중을 따지자면 9할 정도밖에(?) 안 된다.
“왜죠? 왜 저를…….”
“관심을 가지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어.”
‘애초에 믿지도 않을뿐더러, 머리카락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
그의 손이 앨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종종 아스카에게 해 줬던 방법.
전에 교수실에서도 아스카에게 한번 해 줬는데, 그걸 본 제인과 앨리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그 후로는 잘 하지 않았다.
로니아드의 손길. 더불어 그의 손길에 담겨 있는 마나가 앨리스를 품는다.
“그냥 너라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그래서 도와주는 것이다.”
로니아드도 말하면서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마냥 실없는 소리는 아니다.
‘애증의 정 같은 것일까?’
굳이 모발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천방지축 미소녀를 향한 애증의 정 같은 게 있었다.
아스카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단순히 ‘저’라는 이유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준다고요?”
“그래.”
반면 로니아드의 말을 들은 앨리스의 얼굴이 붉어지고 두 눈은 몽롱해진다.
‘뭐야, 뭐야. 이 남자, 나한테 고백하는 건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로니아드의 손길.
자신의 몸을 잡아 주는, 등에서 느껴지는 그의 손길.
거기에 단순히 앨리스라는 이유로 관심과 도움을 준다는 로니아드의 고백(?).
어느덧 앨리스는 로니아드에게 반쯤 안긴 상태였다.
‘이거, 무슨 미연시 하는 기분인데?’
한편 로니아드는 과거 지구에서 해 봤던 어떠한 게임 장르가 불현듯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