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30
30.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카라스 폰 폰테임 후작의 얼굴에 이상이 생겼다.
오른쪽 눈은 한 대 맞은 듯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고, 마찬가지로 앞니도 세 개가 빠져 있어 매우 볼품없었다.
애초에 왕국 최고의 실세라는 폰테임 후작이 저런 꼴을 당했다는 사실도 믿어지지 않지만, 최고위 사제나 치료사, 각종 치유 아티팩트들을 사용하면 금방 없어질 상처를 왜 놔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야야야, 아으으으.”
“괜찮으십니까?”
집무실 안. 카디나는 폰테임 후작의 얼굴을 신기하다는 듯 보면서 물었다.
물론 그녀의 물음에 후작을 걱정하는 마음은 0에 가깝다.
“마도사의 구타는 차원이 다르군. 추기경도 즉시 치료 못 하는 상처라니.”
“평생 가는 흉터가 아닌 게 어딥니까? 치유 주문을 사용하지 못할 뿐이지 자연적으로 회복된다고 하니.”
며칠 전 율카네스가 갑자기 폰테임 후작가 저택으로 왔다.
그리고 후작을 향해 몇 가지 물었다.
후작이 잔머리를 굴리며 말을 돌리려 하자, 율카네스의 주먹이 후작의 면상을 가격했다.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후작에게 펀치를 날리는 율카네스의 앞니도 허전해 보였다.
그러더니 후작으로부터 몇몇 물품들을 강탈해 갔다.
아리아의 각성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던 후작의 계략(정확히는 앨리스의 계략)이 절대적인 힘 앞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그날 이후 후작은 외부 활동을 전부 취소했다.
정 나가게 되더라도 가면을 썼다.
“내가 10년 전 반정 때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느낀 게 뭔 줄 아나?”
계란으로 멍든 눈덩이를 굴리던 후작이 대뜸 물었다.
그는 카디나로부터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라는 듯 곧장 말을 이었다.
“권력, 신분, 재산, 성별, 나이 같은 것은 압도적인 힘 앞에 전혀 소용없다는 사실이야.”
볼품없는 얼굴이지만 말을 하는 후작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10년 전에는 제국의 압도적인 힘 앞에 무력감을 느꼈고, 이번에는 마도사의 압도적인 마력에 허탈감을 느꼈어.”
‘정확하게는 마력이 아니라 물리인데.’
카디나는 후작의 말에 오류가 있는 것을 느꼈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다.
“세상은 힘이 최고야! 나를 봐라. 권력, 돈, 신분 전부 가졌지만, 힘 앞에 이토록 무기력하다.”
똑똑똑.
“아버지, 앨리스입니다.”
“그래, 들어와라.”
‘앨리스? 그 아이를 왜 부른 거지?’
노크 소리와 함께 카디나의 이복동생,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착한 앨리스가 입장했다.
흠칫.
앨리스는 엉망이 된 후작의 얼굴을 보더니 흠칫했다.
어깨가 떨리고 있는 것이 아버지의 안타까운 모습에 슬퍼하는 모양이라고 카디나는 생각했다.
‘앨리스는 효심도 정말 뛰어나구나.’
물론 후작과 앨리스의 속마음은 반대였지만.
‘내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참고 있군.’
‘푸흐읍!’
후작은 눈에 대고 있던 계란을 내려놨다.
“전략이 바뀌었다. 마도사 때문에 렌슬렛은 더 이상 우리가 손을 쓰지 못하는 곳이 됐어. 왕녀도 마찬가지고. 젠장, 속세에 관심 없긴. 욕심 많은 노인네 같으니!”
후작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눈앞의 두 자매에게 명령했다.
“로니아드! 그 로니아드라는 놈을 전적으로 공략한다. 어떻게 마도사를 움직였는지, 또 놈의 진짜 정체가 뭔지를 파악해. 분명히 뭔가 있다. 내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필요하면 두 사람이 미인계를 써도 좋다.”
“후작 각하! 앨리스는 이제 13살입니다.”
후작의 말에 카디나가 이례적으로 반발했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바로 계획을 짜도 될까요? 아버지.”
카디나의 반발이 끝나자마자 들린 것은 후작의 질책이 아닌, 동생 앨리스의 승낙이었다.
“애, 앨리스?!”
카디나는 처음으로 앨리스의 다른 모습을 보곤 낯선 느낌을 가졌다.
늘 천진난만하게 웃던 얼굴에서 탐욕과 흥분이 보였기 때문이다.
후작과의 면담을 마치고 집무실로 나왔다. 카디나는 앨리스에게 참고 참던 물음을 던졌다.
“앨리스! 방금 도대체……!”
“어머~! 그럼 이제 언니와 저는 사랑의 라이벌인가요!”
“그게 아니잖니! 그자의 신분과 나이를 생각하면 너는 어울리지 않…….”
말을 하던 카디나는 하다 말고 멈췄다.
과연 순전히 그 이유 때문일까?
‘청염의 아르미다츠. 10년 전의 왕실 근위 기사.’
며칠 전 카디나가 간신히 북부에서 귀환했을 때.
마침 그때는 공작과 공작 부인 간에 전투가 벌어지던 날이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와중을 이용해 렌슬렛 저택에 잠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격하고 말았다.
‘왕녀 전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청염을 품은 아르미다츠 왕실 기사단 제2근위대 소속 근위 기사! 칸브라만 남작가의 로니아드입니다.’
마치 동화에서 볼 법한 장면을.
청염을 품은 햇빛이 왕녀와 그 기사를 비추고, 모두가 경건히 예를 표하는 건국신화 같던 모습.
당시 카디나는 자신도 모르게 저들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 저런 영광을 동경하여 기사가 되었던 것인데.
그때의 흥분을 떠올린 카디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앨리스에게 말했다.
“아무튼! 네가 훨씬 아깝다고!”
하지만 카디나의 말에 앨리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묻는다.
“저와 로니아드가 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야…….”
카디나는 흠칫했다. 눈앞에 있는 저 아이가 지금껏 자신이 알던 동생이 맞는지 모르겠다.
동생의 얼굴엔 탐욕을 넘어선 자신을 향한 악의가 보였다.
“왜 그렇게 얼굴이 굳었어요~? 물론, 언니의 남자를 탐내진 않아요~. 그냥 저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래요. 정말 그의 정체가 뭔지.”
“그, 그래…….”
“설마 제가 진짜로 미인계를 쓰겠어요? 전 아직 어려요. 로니아드 그가 변태가 아닌 이상 저에게 매력을 느끼진 못하겠죠. 미인계는 언니에게 맡길게요! 그동안 훈련한 결실을 뽐내셔야죠.”
너무 어색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동생의 대역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마치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지금까지 속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우친 기분.
“그럼 저는 먼저 가 볼게요, 언니. 우리 서로 힘을 합쳐서 로니아드를 포획해 봐요!”
앨리스는 그렇게 말한 뒤 사라졌다.
“허어…….”
저 조그맣고 어린 소녀가 사라지자 복도를 무겁게 압박하던 분위기가 풀렸다.
* * *
뭔가 흐릿하고 불투명한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잔뜩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향해 뭐라고 외쳤다.
‘……여 이…… 강……서 그……당…… 리…… 아…….’
그들은 나에게 뭐라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애써 들으려고 용을 써 보다가 이윽고 그것이 꿈임을 깨달았다.
‘로니아드의 잃어버린 기억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나는 꿈을 되새김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셨군요!”
“이봐, 난파선의 생존자가 깨어났어!”
‘여긴 어디지?’
의식을 잃기 직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오스카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고 있었다.
오스카 왕국 최대 도시인 튤페 항까지 하루 정도 남겨 두고 있을 때, 갑자기 기상이 이상해지더니.
……난파당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어찌어찌 육지로 떠밀려와 구조까지 된 듯싶다.
“여기는?”
내 물음에 나와 같은 짐 마차 안에 있던 중년 남성이 입을 열었다.
“여긴 튤페 항 인근의 영지입니다. 폴라라스 남작령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운이 참 좋으시군요. 난파당한 와중에도 살아남아 이렇게 구조까지 되신 걸 보면.”
“그렇군요. 운이 없었다면 살아남아도 인신매매를 당했겠지요.”
내 팔과 다리에 아무 이상도 없다는 걸 확인하며 말했다.
“저를 구해 준 분이 누구시죠?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
내가 이해 못 했다는 얼굴을 하자, 중년 남성 옆에 있던 젊은 청년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필립, 뭘 뜸을 들이십니까? 어차피 × 된 거 후딱 사실대로 말하죠.”
“알았다. 하아……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나를 난파선에서 구해 준 사람은 전쟁 상인이라고 했다.
본래는 그리 좋은 의도로 구해 준 것이 아니라 했다.
“얼굴을 보니 귀족 부인들이 좋아하겠군. 검투사로 내놓아도 되겠어. 가만 보자. 그런데 복장이……?!”
하지만 내가 입고 있던 기사 제복을 보곤 처음 했던 불순한 의도를 접었다고 했다.
“가문의 문장이 없는 제복이면 방랑 기사인가? 하지만 이 제복에 매듭 지어진 인챈트를 보니 보통 실력의 기사가 아니군. 괜히 수작 부릴 바엔 잘 대해 주고 은혜로 만들어야지.”
전에 렌슬렛을 떠날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놓은 옷이었다.
짙은 회색의 기사 제복에 검은색 망토를 견갑과 함께 입는다.
화려하진 않지만 적당한 멋과 단정함이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제복이었다.
“그 전쟁 상인이 죽었다고요?”
의도가 어찌 되었든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인데, 빚을 갚아야 할 대상이 죽었다고 한다.
“그게…… 눈먼 화살에 목을 맞았습니다. 치료사가 어찌 해 보기도 전에 절명하셨지요.”
“상인 정도면 마법 방어구를 입고 있었을 텐데?”
“입고 계셨는데 작동이 잘 안 됐던 거 같습니다.”
‘무슨 방산 비리냐?’
전쟁 상인은 전장에서 용병과 병사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인이다.
음식, 옷, 성매매, 무기부터 마법 아티팩트까지 전부 취급한다.
한마디로 군대 보급의 외주라고 보면 된다.
“저희는 원래 그 죽은 전생 상인이 고용한 고용인이었습니다.”
“고용주가 죽었으면 그냥 떠나시지, 왜 아직 여기에 남아 계신 겁니까?”
“그게…….”
필립이라는 중년 남성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하려 할 때였다.
“그 기사 양반이 깨어났다고?!”
마차 문이 덜컹 열렸다.
나이 든 고참 병사 한 명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나는 그 고참 병사를 말없이 응시했다.
“추, 충! 혹시 어디 소속 기사님이신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내게서 풍기는 분위기에 고참 병사는 굳은 얼굴로 경례를 올렸다.
“방랑 기사다.”
내 대답을 들은 병사의 얼굴에서 반가움과 곤혹스러운 얼굴이 순서대로 번졌다.
아마 최소한 내가 그들의 적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한 것일 테고.
두 번째는 내 실력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미심쩍은 것이겠지.
“기, 기사님,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기 송구스러운데…… 혹시 전술이나 지휘를 할 줄 아십니까?”
“무슨 일이지? 이 군대엔 기사가 없는 건가?”
내 물음에 병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기사부터 귀족들은 전부 도망쳤습니다. 저희를 미끼로 놔두고요. 곧 적들이 몰려올 것인데 병사들의 통제가 안 됩니다. 이대로라면 몰살인데…….”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튤페 항 인근에 위치한 영지끼리 영지전이 벌어졌다.
폴라라스 남작령과 카단 자작령 간의 싸움이다.
그리고 내가 있는 쪽은 전투에서 계속 패배 중인 폴라라스 남작 쪽이었다.
내가 전쟁 상인에게 구조되고서 몇 시간 후, 적들의 대대적인 기습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전쟁 상인이 눈먼 화살에 맞아 죽었다.
연이은 패전으로 폴라리스 남작군의 귀족과 기사들은 질려 있었고.
결국엔 병사들을 미끼로 내버리고 지들끼리 도망친 것이다.
‘가만, 폴라라스 남작령? 원작에서 본 거 같은데?’
아공간 가방에(무려 아공간이다. 새벽에 떠나면서 율카네스에게서 뜯어냈다) 있는 원작 정리집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서 참기로 했다.
“기사들이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보통은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나?”
보통 전황이 암울하면 병사들이 탈영을 한다. 그런데 이건 기사들이 탈영을 한 게 아닌가?
‘무슨 이런 심오한 막장이…….’
“한마디로 도망간 기사들을 대신하여 내가 그대들을 지휘해 주길 바란다, 이건가?”
“맞습니다! 저희 좀 살려 주십시오! 항복하게 되면 평생 탄광에서 썩어야 합니다. 그건 죽기보다 싫습니다. 이기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저 포위를 뚫고 탈출할 수 있게 저희를 이끌어 주세요.”
병사가 다시 한번 경례하면서 부탁했다.
“기사님! 저희 좀 살려 주세요~. 저흰 더 억울합니다.”
“으허엉~ 고용주가 죽는 바람에 경황 없어 탈출도 못하고…….”
이어서 필립과 그 옆에 있던 청년이 내게 애원한다.
‘이것들은 기사가 무슨 만능인 줄 아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 하나하나 캐고 싶었지만, 병사의 표정을 보아하니 상황이 급한 모양이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보지. 적은 현재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떻게 몰려오고 있지?”
“그게 놈들은 이미 저희를 포위하고 있고, 사방에 깔려 있습니다.”
한마디로 × 된 상황이란 거네?
“자네 이름이 뭔가?”
“상급 병사 패가스입니다, 기사님.”
“이제부터 자네의 계급은 상사다.”
“상사? 그게 뭡니까?”
“아아, 그건 부사관이라는 것이다.”
나는 짐 마차에서 몸을 일으키며 지시했다.
“지금 당장 자네와 같은 고참 병사들을 내 앞으로 데려와. 명령을 하달하겠다.”
무기를 챙기고는 마차 밖으로 나왔다.
어수선한 전장의 분위기.
패색이 짙었고 언제라도 탈영하고 싶었지만 이미 사방이 막혀 도망치지 못하는 상황.
사기는 바닥을 뚫고 멘틀까지 통과한 상태.
“기사님이시다!”
“기사들 다 도망간 거 아니었어?”
“기사 한 명으로 뭘 어쩌게? 이미 다 패배한 싸움인데.”
본래의 로니아드는 전술이나 지휘 지식이 없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없지. 경험도 없었고.’
8년간 방랑 기사 생활을 했지만 신분을 숨겨야 하기에 보통 홀로 다녔다.
‘이런 식으로 군대 시절 경험을 써먹네?’
하지만 지구에서 나의 경험이라면 다를지도.
이래 봬도 군 복무를 학사 장교로 했다.
최전방에서 소대장을 했고 실전도 경험한, 꽤 인정받던 장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