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23
123
바스러진 거울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오래 묶어두진 못할 거야.’
라노라면 죽은 자의 세상이라도 깽판을 쳐서라도 탈출하기에 충분하지.
느닷없이 저만한 존재감의 산 자를 명계에 떨궜으니, 아마 리퍼가 적잖게 화나지 않았을까.
토드는 손바닥을 말아쥐곤 밀실 밖의 상황을 확인했다.
이스라와 산시아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몸뚱이가 넝마에 가까웠다.
황급히 산시아에게로 달려간 토드는 그녀에게서 피의 업을 거둬들였다. 아슬아슬하게 죽지 않았다. 숨만 겨우 붙어있는 정도였다.
토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숨통을 끊기 직전이었어.’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위치가 노출되는 걸 무릅쓰고 주문을 외우지 않았다면, 라노가 산시아를 끝장내고 이스라까지 마무리를 지었을 것이다.
“둘라한, 치료를.”
망자가 왼손에 들린 머리통을 가리킨다. 토드는 대롱대롱 매달린 마르커스를 타박했다.
“마르커스, 그러길래 제가 이스라의 보조만 맡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릴. 저 계집은 수도원을 어지럽힌 흉악범이다. 어찌 심판하지 않고 방관만 하란 말이냐.】
즉각 몸뚱이가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우리로선 저자를 상대할 만한 수준이 못 됩니다. 그나마 시간을 버는 것도 기적이고요.”
【악, 악! 이 빌어먹을 몸뚱이가!】
마르커스와 몸뚱이는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이스라를 향해 성검을 쓸어내렸다. 신성이 미친 덕에 어긋난 사지를 끼워 맞추긴 했어도, 타격이 컸는지 파멸의 기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암살자가 돌아오기 전에 여길 벗어납시다. 그쪽은 이스라를 받쳐주세요.”
【제길, 빨리 제자리에 돌려놔라! 한 손으로 이만한 덩치를 들 수 있겠냐!】
마르커스의 성화에 몸뚱이가 마지못해 머리를 끼워 넣었다. 극적인 타협을 이룬 둘라한은 힘껏 이스라를 집어 들었다.
반면 토드는 힘겹게 산시아를 들어 올렸는데, 연신 휘청이는 모습에 마르커스가 혀를 찼다.
【허약한 놈 같으니.】
빛무리가 깃들자 토드도 수월하게 산시아를 감당할 수 있었다.
【이번만이다! 네놈에게 성사를 베푸는 건.】
헛웃음을 삼킨 사령술사는 그와 더불어 카타콤을 내달렸다. 가뜩이나 라노가 소동을 피우며 내려온 탓에 곳곳이 내려앉고, 붕괴된 잔해가 길을 방해한다.
【여긴 막혔군.】
천장과 토대를 살피던 토드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아뇨. 지나갈 수 있습니다. 몸으로 뚫어내세요.”
【뭐? 제정신이냐? 여길 몸으로 받으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인간이었던 시절이면 모를까, 지금은 가능하지요.”
토드는 마르커스가 아닌, 몸뚱이를 향해 명령했다. 하반신의 통제력을 쥔 몸뚱이가 무릎을 굽히더니, 힘차게 잔해를 향해 내달렸다.
【이런 미친놈들! 멈춰, 멈춰라아악!!】
콰앙!!
역시 둘라한이다. 죽음의 기사와 달리, 이쪽은 말 그대로 맷집에 특화된 쪽이라 그런지 육중한 석재마저 돌파할 수 있었다.
“거봐요. 되잖습니까.”
다소 들뜬 것처럼 보이는 몸뚱이와 달리, 머리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빌어먹을, 먼지가 입에···】
“저기만 돌면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옵니다.”
토드는 애써 거칠어진 숨을 갈무리했다.
여태까지 버텨준 몸뚱이가 용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돌연 마르커스가 그를 밀쳤다.
【비켜라!】
그는 둘러업고 있던 이스라까지 내팽개치곤, 장검을 뽑았다. 의아함도 잠시.
콰드드득—!!
바닥에서 솟구친 신형이 심문관을 휩쓴다. 세 차례 섬광이 번뜩이고, 마르커스의 몸에 감겨있던 빛을 소거해버렸다.
연기에 휩싸인 존재는 마르커스를 부여잡곤, 카타콤의 바닥에 메다꽂았다.
쿵!!
“···이 개자식은 분명 머리를 베었는데 움직이질 않나.”
단숨에 둘라한을 무력화시킨 형상은 샴쉬르를 휘어잡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개 같은 곳이었어. 아주 온갖 것들이 날 죽이려 쫓아오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에 살이 베이질 않나···.”
라노도 명계를 빠져나오는 게 쉽진 않았는지,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 발겨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기어코 단시간에 탈출해 쫓아왔다는 데에서 그녀의 집념이 느껴졌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암살자가 토드를 향해 눈을 번뜩였다.
“이 씹새끼. 내가 놓칠 줄 알았냐?”
다가오는 라노를 바라보며 토드는 침을 삼켰다.
‘여기서 영혼 목걸이는 써야겠네. 꽤 시간이 끌렸으니, 일단 사망만 확인하면 바로 빠져나갈 거야.’
그런데 암살자는 히죽 웃더니, 단검을 휘둘러 목걸이 줄을 끊어버렸다.
“아.”
냉큼 공중에 떠오른 목걸이를 낚아채곤, 라노는 눈앞에서 영혼 목걸이를 흔들며 조소했다.
“네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 무슨 목숨이 여러 개라도 있는 것마냥 굴던데··· 왠지 네크로맨서라면 이런 보험이 있을 거 같더라고.”
토드를 들여다보던 라노는 보란 듯이 영혼 목걸이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정답 같네.”
라노는 제딴에 비장의 수단을 봉쇄할 의도였는지 목걸이를 탈취했다.
여기서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거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진, 토드조차 몰랐다.
엄연히 「영혼 목걸이」는 사령술사에게 귀속된 아이템이나, 일찍이 기젤을 비롯해 오드람도 자신들은 불완전한 파편이라 일컬었다.
안톤의 성검이 자신에게 반응했던 것처럼, 과연 영혼 목걸이와 결부되어 어떤 연쇄 작용으로 이어질까.
‘궁금한데?’
“···끝이네요. PVP, 재밌었습니다.”
빙긋 웃는 토드를 보곤 라노가 진절머리를 냈다.
“미친 새끼.”
예리한 파공음이 울린다. 토드는 곧 벌어질 일을 고대하며 눈을 감았다.
“······?”
분명 머리 위에서 섬뜩한 예기가 느껴지는데, 자신의 의식은 계속 이어진다.
눈을 떠보니 선명한 백광이 천장을 뚫고 라노를 내리쬐고 있었다.
쿠구구구——!!
【손 떼라. 고약한 것.】
예의 대주교의 유해가 그녀를 향해 법봉을 겨누고 있었다. 천장을 녹여버린 틈새로 성전사들이 하나둘씩 내려와 라노를 포위했다.
“···이런, 씨발.”
나지막이 욕설을 지껄인 라노는 손등의 혈관이 도드라질 정도로 힘을 주었으나, 머리 위에 다다른 칼날은 허공에서 움찔거릴 뿐, 토드에게 닿질 못했다.
성전사들 사이에서 토드가 익히 아는 얼굴들이 걸어 나온다. 카셀미어 주교후가 라노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네년이 누군지 안다! 비열한 살수여! 너는 성 힐데가르트 수녀원의 수도자들을 살해했으며, 아빠티사 기젤라의 살해 모의뿐만 아니라, 여러 고귀한 교구들의 성직자들과 제국의 제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교후는 도리깨를 단단히 거머쥐고 있었다.
“그 악명 덕택에 필연적 단말마라고 불리던가? 심판을 내리는 건 오로지 구주의 뜻이다. 네년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무수히 저질렀다. 결코 평안한 최후를 기대하지 마라.”
주변을 둘러보던 암살자는 히죽 웃었다.
“나만 잡아가게? 너희 눈엔 살아 움직이는 시체들이 안 보여?”
주교후가 소리쳤다.
“저년을 포박해라!”
성전사들이 금줄을 쥐고 다가가자, 라노는 토드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차라리 방금 죽는 게 나았을 거야. 다음에 보자고. 토드.”
그녀의 발치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주사위를 굴리고 있었다.
달그락.
맞물린 숫자는 1과 3.
인상을 구긴 라노가 중얼거렸다.
“재수도 뒤지게 없지.”
그녀의 몸이 그림자에 삼켜지기 전, 사방에서 빛줄기가 수차례 라노의 몸을 꿰뚫었다.
파바바바방——!!!
신성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가고, 라노가 서 있던 자리는 자욱한 연기와 불씨만이 남았다.
시신이 없음을 확인한 주교후가 분통을 터뜨렸다.
“제길!”
성전사들 사이에서 디터가 다가와 토드를 비롯해 일행들을 부축했다.
“셰우드 님, 괜찮으십니까?”
비록 손가락 하나 가눌 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토드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럭저럭··· 버틸 만합니다. 그보다 다른 일행들을···”
디터는 토드에게 안긴 산시아를 보곤 침음을 흘렸다.
“자상이 깊습니다. 게다가 독이 스며든 것 같군요. 처치가 시급합니다.”
디터의 손짓에 성전사들이 산시아를 둘러업곤 황급히 묘소를 빠져나간다.
벽에 겨우 등을 기대고 있는데, 어느 주교가 카타콤을 돌아보곤 부들부들 떨었다.
“이럴 수가, 거룩한 묘역에, 이런 후안무치한 짓을 저지르다니!!”
곳곳에 토드가 만들어놓은 흔적들이 여실히 남아 있었다. 온통 뒤집힌 관, 붕괴된 통로들, 라노를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함정들, 그리고 살아남은 망자들까지.
경악하던 주교는 토드를 향해 삿대질했다.
“감히! 거룩한 분들이 잠든 성소를 모독해! 불경한 놈!”
주교의 지적에 카셀미어 주교후는 사뭇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세쿤다스. 지금은 묘역의 손상보다도 신경 써야 할 문제는 많네.”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예하! 아빠티사께서 저놈을 불러들였다 한들, 이건 명백한 신성 모독죄입니다! 저놈이 이곳에 저지른 짓들을 보십시오! 여기 안장되신 분들을 일깨운 것으로도 모자라, 불길한 어둠의 마법으로 희롱하다니! 당장 잡아서 배후를 캐내야···”
문득 거한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시···불. 네가 여기 방비를 책임지는 놈이냐?!】
뼈만 남은 육신. 눈자위에 맺힌 샛노란 안광.
주교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가슴팍에 새겨진 광륜 문양을 보곤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아, 거룩하신 분! 용서하소서! 저희가 부덕한 탓에, 오래전 영면하신 고인의 육체를 저 간악한 놈의 술수에 넘겨주고 말았나이다! 허나 염려하지 마소서! 사제들을 데려와 미사를 치러, 저 불경한 자의 마수로부터 해방을···”
뻑.
성전군 기사는 가차 없이 주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놈···아! 네가 도시를 책임지는 주교 놈 맞냐고! 어찌 어릿광대의 칼잡이들이··· 경계를 뚫고 들어와, 묘소까지 침입했는데! 그동안 네놈들은··· 뭣 하고 있었던 게야?!】
성전군 기사의 불호령에 바닥을 구른 주교가 소리쳤다.
“아아악! 역시 사령술사의 사악한 졸개였구나! 빠, 빨리, 정화해라! 저 불경한 존재를 치우라고!”
주교의 추태에 성전군 기사의 안광이 살벌해졌다. 덩달아 그를 호위하던 성전사들까지 검을 겨누자, 망자가 그들을 향해 호통쳤다.
【이··· 어린 놈의 새끼덜···! 경계에 실패해놓곤, 감히··· 어르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본좌가 살아있을 적엔 꿈도 못 꿨을 일이야!】
분명 백골만 남은 시체가 움직이고 있는데, 몸에서 발산하는 신성이 심상치 않다.
성전사들도 어쩔 도리를 모르고 당황한 와중에, 로이니스의 부축을 받은 기젤라가 비틀대며 내려왔다.
“···모두, 검을 거두세요. 저분은 성전군 선봉 구호기사단의 단장이신 성 알베르투스이십니다.”
코웃음 친 성전군 기사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철퇴를 들어 올렸다.
【옛적에 이교도 골통 분쇄기라는··· 미친놈이라고들 들어는 봤더냐? 내가··· 그놈이다. 이것들아.】
이교도를 내리치는 솔마르의 망치.
더욱이 후세에 이르러 실패한 성전군과 달리, 그는 2차 성전군 때 활약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더군다나 수녀원장으로서 권위가 높은 기젤라의 보증까지 있으니,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즉각 성전사들이 일제히 그 앞에 부복했다.
한편 바닥을 뒹굴고 있던 주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대, 대체. 상황이 왜 이렇게.’
가뜩이나 암살자를 놓친 와중에, 자신의 실책을 책잡히지 않으려고 표적을 사령술사에게 돌리려 했는데,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
미소 지은 알베르투스가 그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이리 와라.】
“예, 예···! 고귀하신 분!”
비굴하게 다가온 주교를 내려다보며 알베르투스는 취조에 나섰다.
【네놈은 누구에게··· 성품성사를 받았는고?】
“저는 대주교 마케누스 님께···”
【흐음, 그럼 그놈은 누구에게 받았고.】
그렇게 차근차근 선대를 거슬러 오는가 싶더니, 계보를 대강 파악한 알베르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건방진 자식··· 네놈 할애비의 할애비가, 갓 태어났을 적에, 나는 이방의 사막을 전전하며 신앙을 위해 싸웠어···! 그땐 오로지 열정! 열정만이 있었거늘, 어째 후세 놈들은···! 이런 성전기사단의 정신을 잊었냔 말이야···!】
알베르투스는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훈계를 늘어놓았다. 심지어 성전군 시절의 케케묵은 일화까지 꺼내 가며 요즘 것들의 안일함을 꾸짖는 노인 특유의 화법까지.
누가 봐도 사령술사에게 지배당하는 하수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카셀미어 주교후가 선언했다.
“이곳을 정리한다. 토드, 자네는 이리 나오게. 나머지도 데려오고.”
“감사합니다, 예하.”
참담한 표정으로 묘소를 돌아보던 주교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 할 것 같군.”
라노의 습격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비록 묘소를 훼손한 건에 대한 해명이나, 토드가 일으킨 성인들의 유해에 대한 사후 처리, 이스라와 산시아의 수복, 탈취당한 영혼 목걸이의 향후 행방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산재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았나.’
물러서지 않고 한 방은 확실히 먹였다. 암살자가 마지막에 입은 부상을 감안하면, 아마 몇 달 간 운신에 제약이 생겼을 거다.
이 귀중한 시간을 단 1초라도 허투루 낭비할 순 없지.
사령술사는 비틀거리며 지상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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