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42
142
임푸트레카의 병에 걸리면 죽지 않지만, 산 자의 영혼은 육신에 갇혀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육신이 파괴되지 않는 한 끊임없이 착취당하는 생체 감옥이다. 대악마는 희생자의 사념을 섭식하며 힘을 얻는 셈.
악독함에 치가 떨린다.
“당신에겐 저들의 읍소가 들리지 않습니까?”
─응? 무엇이 들리냐는 건가.
토드의 눈썹이 구부러졌다.
“안식을 바라는 목소리들 말입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임푸트레카는 눈을 훔치며 훌쩍이는 시늉을 했다.
─나는 꽃이나 뭐든지, 시드는 걸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 이별이란, 언제나 가슴 아픈 법이잖니.
“그렇다면 차라리 박제를 하시지요. 그렇다면 시들지도 않고, 계속 지켜볼 수 있지 않습니까.”
임푸트레카가 얼굴을 찡그렸다.
─흐음, 박제? 품위가 떨어져.
입술을 씰룩인 대악마는 두툼한 손길로 조심스럽게 병자를 쓸어내렸다.
─난 나름 원예가로서 훌륭한 소양이 있거든.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은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어.
악마의 뒤틀린 미의식에 토드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줄 몰랐다.
─게다가, 난 이 아이들을 언젠가 닥칠 파멸로부터 구제해준 셈이야. 필멸자치고 영생을 마다하는 녀석도 있나? 오히려 나한테 감사해야지.
악마의 손길을 받아들인 생화가 몸을 떨었다.
···거기, 누가 있다면. 제발··· 나를···
힘겨운 흐느낌은 영가가 겪고 있을 고초를 방증한다. 하물며 사념밖에 남지 않았을 존재에게 직접 가해지는 고통이란.
영혼을 전송하는 걸 업으로 삼는 사령술사조차 쉬이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럼 저 모습은, 오롯이 저들의 의사가 반영된 겁니까?”
한결 서늘해진 어조.
대악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폭소했다.
─푸핫. 의사? 의사라고! 이봐. 사령술사. 반대로 물어보마.
대악마는 자세를 굽힌 채 나무랬다.
─너희들은 가축을 도살할 때 그들의 동의를 일일이 구하던가? 길을 거닐다가 실수로 땅을 기어 다니던 벌레를 밟았다면 사과하나?
악마가 인간, 나아가 이 땅의 피조물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렇다.
─우리도 마찬가지란다. 크게 다를 바 없다고. 그래도 난 너희가 마음에 든단다.
손뼉을 친 대악마의 입가는 기이하게 비틀렸는데, 악동의 미소를 연상케 해 심히 불쾌했다.
─우리가 볼 땐 하루살이처럼 눈 깜짝할 사이 죽어버리는데, 그 짧은 생애 동안 힘껏 바둥대며 몸을 비틀어대는 꼴이 재밌다니깐.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해!
히죽히죽 실소하던 대악마는 유유히 구부정한 등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 곁에 두고, 보살펴주려는 거야. 내가 물을 주고, 가꿔줄게. 시들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썩어가다가, 다시 피어나길 반복하며.
대악마의 속삭임은 음성만으로 필멸자의 의지를 희롱한다. 토드는 끊임없이 정신을 갈무리하고, 의식을 바로 세웠다.
사령술사로 지내며 연마한 정신 수양이 아니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놈은 가슴팍에 손을 올린 채 속삭였다.
─이게 내가 내리는 은혜이며, 내가 관대한 자라 불리는 이유는 그 까닭이란다.
부우- 부우-
임푸트레카의 어깨에 앉아 있던 나팔수들이 익살스럽게 고동을 불며 추임새를 넣는다.
어느새 카리나의 주문에 휩쓸렸던 수행단은 다시 잉태하여 생장했다.
토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저 가증스러운 놈의 마수에 시달리는 이들을 응시했다.
못해도 수백, 혹은 수천에 달하는 이들의 원념이 생경하다.
‘내가 알고 있는 주문과 잔여 마력으론 저들을 모두 꺼내줄 순 없어.’
이미 패색이 짙다.
임푸트레카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토드를 으스러트렸겠지만, 그리 하지 않음은 순전히 놈의 변덕으로 보였다.
대악마는 어깨에 올라탄 시종들을 향해 읊조렸다.
─너희는 저 언덕 너머의 탑으로 가렴. 내 은혜를 받은 녀석들이 어설프게 내 솜씨를 흉내 냈지만, 어설프구나. 가서 돕거라.
심지어 예비 병력을 살점도서관이 만들어둔 표본들에게 포위당한 홍염 마탑 쪽으로 보내는 여유까지.
“···왜 저를 계속 살려두는 겁니까?”
임푸트레카가 키득거렸다.
─난 소소하게 필멸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걸 좋아해. 게다가 날 그토록 몰아세웠던 놈을 발치에 꿇렸는데, 재미는 보고 가야지. 안 그래?
징그러운 미소에 토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완전히 농락당하고 있다.
성전사를 할 땐, 패턴조차 보지 못하고 치워버렸던 놈 따위한테.
이 내가?
사령술사의 어깨가 미약하게 들썩였다.
“하.”
굴욕으로 일그러진 헛웃음이 활짝 만개한다.
“하하하하!!”
─우화화하하핫!!
서로를 마주 보고 폭소하는 사령술사와 대악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일행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내 웃음을 뚝 그친 토드가 낮게 중얼거렸다.
“재밌네요. 색다른 경험이라 신선합니다.”
─재밌어? 역시 넌 좋은 전시품이 되겠는데. 특별히 너만은 내 정원으로 데려가 심어야겠다.
토드를 훑어내린 대악마는 손을 감싸 쥐며 지껄였다.
─과연 몇 세기나 울어댈까. 어떤 음색일지. 무슨 형태의 변천을 겪으며 정신이 닳아갈지도. 그걸 지켜보는 것도 내 즐거움이겠지.
고개를 기울인 토드가 말했다.
“정중히 사양하지요. 색다른 경험은 겪어본 적 없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유한성이 있기에 반대로 삶에 가치가 있는 것이고요.”
─흐흐, 네가 날 가르치려 든다고?
“그거 아십니까? 일단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려면, 상호 간에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이 선행됩니다.”
입술을 삐죽이던 임푸트레카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미물들의 관점에 내가 맞추는 건 곤란한걸. 일단 50년 동안 내 텃밭에 뿌리내리고 시작하는 건 어때! 그럼 내 고상한 취향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토드는 이빨을 드러냈다.
“네 취향은 고상한 게 아니라, 역겨운 거야. 특별히 널 위한 맞춤 교육을 해주마.”
입꼬리를 추켜올린 임푸트레카는 자신만만하게 양팔을 펼쳤다.
─그렇다면 발버둥 쳐 보아라. 벌레야. 난 네가 파멸을 향해 발악하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마.
마지막 남은 방도는, 뫼를렌푸르트로 오기 전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공백으로 남겨둔 주문의 글귀.
째깍.
토드의 머릿속에서 초침 소리가 울려퍼진다.
‘우선 낭송에 이르는 술식, 발현을 거친 제례로의 발전까지 빈틈없이 구성해야 해.’
당연히 현재 국면을 반전시킬 만한 파급력이 있어야만 한다.
주변 환경은 유효한지. 어떤 낭송문을 읊을 것이며, 문구는 인용하거나 창작할 것인지.
거기에 자원의 분배나 대단위 주문으로 시전할 경우 상대를 저지할 방도까지도.
쿵, 쿵, 쿵.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드레날린의 격류에 온몸이 달아오르고, 찰나에 수십 번이고 되풀이되는 연산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문을 창안하는 건, 시전하는 것 이상의 난이도다. 그것도 첫 시도 만에.’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체계 안에서 순차적으로 술식을 구현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던 권능을 창조하는 건 차원이 다른 난제.
하물며 마법 연구가 활발한 마탑에서조차 마법사가 자신만의 주문을 소유하는 건 극히 드문 일.
뭇사람들을 압도하는 기재의 소유자들조차 섣불리 넘보지 못하는 경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마력조차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니, 지금은 의문을 품을 여유조차 없다.
해내야만 한다.
자신을 헤아리던 토드는 불현듯 기묘한 공상을 떠올렸다.
‘당장 마력이 부족한 거지, 그간 쌓아온 업은 충분해.’
게다가 저 너머엔, 안식을 바라는 이들이 차고 넘치지 않는가.
토드는 일찍이 오드람이 던졌던 충고를 떠올렸다.
‘너무 규칙에 얽매일 필요는 없네.’
그가 선보였던 이적은 어떠했던가.
자신의 클래스에 대한 이해도를 기반으로 기존 스킬들을 융화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독창성, 혹은 자신만의 강점을 가미하는 방식이다.
‘나의 강점.’
시곗바늘이 넘어가기 전, 상념은 그쳤다.
현실로 돌아온 토드는 품에는 넋의 거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끝자락을 조각내, 거침없이 입에 들이밀고, 씹었다.
으직, 잘그락, 꽈직.
조각난 거울 조각이 구강의 연약한 점막을 헤집고, 찢어발긴다. 입안에 쇠 비린내가 가득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그러모아 혈액으로 파편들을 적신다.
어머니의 은혜도 곧잘 받아들였는데, 거울 조각을 삼키는 것도 그에 못지 않은 고역이다.
그럼에도 토드는 힘겹게 삼켰다.
난데없는 기행에 대악마가 조소했다.
─자해라니. 예상 밖이었다만, 자신한 것치곤 실망스러운걸. 너무 몸을 해치진 말라고. 고치는 것도 성기시니···
딸랑-
청명한 소리로 마귀의 음성을 몰아내고, 왼손으론 미려한 선을 그린다.
토드가 선명히 고했다.
“정녕 시름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여유롭게 관망하던 임푸트레카는 대번에 토드가 자아내는 마력의 흐름을 간파했다.
─오오, 이건 상당히 독특하구나. 본 적 없는 권능이야. 설마 이 자리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건가?
실타래가 풀리듯 번져나간 마력은 가늘지만, 촘촘하게 방사 무늬를 직조하며 확산한다.
“그대여. 나는 그간 모든 이들이 외면해왔던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다.”
망자는 이승에 남겨진 잔재. 마땅히 혼은 떠나가야만 한다.
“내가 그대의 염원을 들었노라.”
딸랑, 딸랑. 딸랑.
돌연 시체꽃들이 일제히 주둥이를 오므린 채 요동치자, 대악마는 사뭇 당황한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고작 이게 전부인가? 부스러기에 불과한 미물들을 긁어모으는 게. 정말 무의미한 발버둥이야.
토드의 눈동자에 맺힌 귀기 어린 안광이 넘실거렸다. 흥미진진하게 관망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임푸트레카가 손을 뻗었다.
맹렬하게 솟구친 독기가 사령술사를 향해 빗발친다.
그러나 눈부신 역장이 펼쳐지며 대악마의 훼방을 저지했다.
으지직!
대번에 방어막은 허물어졌으나, 마르커스는 성검을 쥔 채 뇌까렸다.
【무저갱의 마귀. 넌 저놈에게 손댈 수 없다.】
임푸트레카는 몸에 매달려있던 시종들까지 던져댔으나, 번번이 심문관의 칼에 분쇄되었다.
─더는 못 봐주겠어!
급기야 격분한 대악마가 직접 토드를 짓뭉갤 기세로 달려왔으나, 낭송이 한발 앞섰다.
“안식을 바라는 이는 내게로.”
토드가 구체적으로 그리는 심상은 무수한 군령이 영혼의 대해를 향해 내달리는 경관.
염원을 향한 질주다.
주문이 완성되어감에 따라, 공백으로 남아있던 의식 한구석의 대접이 점점 차오른다.
와일드 헌트가 풀려났을 때 느꼈던 희열을 기반으로 토드는 자신만의 익숙한 재해석을 가미했다.
“영가들이여. 병마의 몸을 벗어나, 자유로이 행진할지어다.”
백귀야행(百鬼夜行).
영혼의 해방.
토드를 중심으로 망자의 부활을 알리는 진녹색 섬광이 솟구친다.
병자들의 육신에서 풀려난 망령들이 순식간에 부상했다.
아아아아─
수천 명의 영가가 일거에 외치는 귀곡성.
요사스러우면서 장중한 합창에 대악마조차 동요했다.
물결을 이루듯 몰아닥친 영혼의 파도가 대악마를 비롯한 시종들을 휩쓸었다.
카리나의 주문조차 견디던 대악마조차 망령들이 전신을 헤집어대니 고통 섞인 비명을 토해냈다.
─크아아!!
‘아무리 몸뚱이가 튼튼하더라도, 영체의 공격은 존재 자체를 직접적으로 타격하지.’
이스라의 검격이나 카리나의 주문도 곧잘 견뎌내던 대악마였으나, 영가들은 물질계가 아닌 무저갱에 있는 임푸트리카의 본체에 상흔을 남기고 있었다.
격하게 몸부림치던 대악마는 발을 구르며 달려드는 영혼들을 찢어발기고, 녹여버렸다.
─그래 봤자 필멸자였던 벌레들! 무리를 짓는다 한들, 전부 터뜨리면 그만···
토드와 눈이 마주친 대악마가 눈동자를 부릅떴다.
놈을 바라보며 사령술사가 히죽 웃었다.
“익숙한 구도지?”
안톤을 플레이했을 때, 그가 대악마를 딜찍누로 삭제시켰던 비결은 자신이 육성했던 ‘성가대’의 존재였다.
오로지 버프만을 위해 대동하던 대규모 고위 사제단. 거기에 극딜 빌드로 육성한 성전사 캐릭터와 시너지가 맞물려 갓 강림했던 임푸트리케는 곧바로 추방당하는 수모를 면치 못했었다.
그때의 상황을, 토드는 동일하게 재현했다.
그의 등 뒤로 수백 기의 영가가 떠올라 있었다.
딸랑.
사령술사가 방울을 흔들 때마다, 하나둘씩 영혼들이 솟구치고, 쉴 새 없이 마력과 업을 환원한다.
비록 하나하나가 생전에 뫼를렌푸르트의 평범한 주민이었던 탓에 회복 수치는 적어도, 물량이 확보된 상황. 단숨에 마력이 차오른다.
─이 무슨, 터무니없는 짓을···!
본디 제례를 행하기 위해선 적합한 터를 다져야만 하는 법. 이곳은 위령제를 올리기엔 지나치게 불결하고, 악의로 더럽혀져 있었다.
토드는 자신의 가슴팍을 부여잡으며 뇌까렸다.
“나를 지나는 자는 망각의 강물이 흐르는 물가로. 나를 지나는 자는 비탄으로 가득한 후회의 대로로. 나를 지나는 자는 망자에 이르게 되나니.”
─멈춰라! 네놈, 일개 미물 주제, 어찌 권능을 연이어···!!
영혼의 파도가 부닥칠 때마다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으나, 대악마는 필사적으로 안위까지 내버리고 헤쳐나갔다.
그러나 두 번째 주문의 안배는, 이미 넋의 거울을 삼켰을 때부터 예비되어 있었다.
대접에 충분한 여유가 있으리란 계산 덕분이었다.
“내 앞에 선 자, 희망을 버려라.”
사령술사는 스스로를 매개로 삼아, 통로를 열어젖혔다.
입을 벌렸다. 저승의 문이.
명계, 정확히는 토드 자신의 의식계 일부가 뫼를렌푸르트에 펼쳐진다.
사이한 한기가 삽시간에 지면에 뿌리내린 오염을 걷어내고, 살얼음이 내려앉는다.
‘명계에서 망자들의 스텟 증가폭은 못해도 2배 이상.’
가득 채운 은혜는 넘쳐흐르기 직전에 이르러 아슬아슬하게 대접을 채웠다.
아마 저길 넘겼다면,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닥쳤겠지.
막연히 스킬 포인트처럼 생각하여 1개만 만들었다면 대악마를 제압하진 못했으리라.
이로써 사령술에 최적화된 토양과 하수인들까지 모두 준비되었다.
“티배깅을 할 거면, 게임 끝나기 직전에 했어야지.”
전문가로서 한 수 똑똑히 새겨줄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