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43
143
문으로부터 새어 나온 한기가 무분별하게 퍼진 생명을 거둬들인다.
건물들에 들러붙어 덕지덕지 자라나던 뿌리가 시들고, 불길한 홀씨들을 흩뿌리던 포자낭은 새카맣게 말라붙더니 힘없이 후두둑 떨어진다.
아니, 저것들은 생명이라 부르기에도 지나치다. 무저갱의 악마가, 지상의 피조물들을 조악하게 흉내 낸 역겨운 부산물일 뿐.
“모조리, 걷어내라.”
토드의 명령에 따라 영가들이 물결처럼 갈라지며 몰아닥친다. 물리적 형상이 없는 영가들은 자유자재로 잔해와 바닥을 휩쓸었는데, 존재하는 토대는 멀쩡하고 오로지 응어리진 고름들만 쓸어버렸다.
끊임없는 부패 덕에 생겼던 온실이 점점 좁아지자, 해충처럼 기세등등하던 대악마의 시종들은 눈에 띄게 힘이 빠져 있었다.
─내 아이들아, 종을 울려라!
어떻게든 밀리는 기세를 뒤집어보려 임푸트레카가 시종들을 독촉했으나,
때앵.
이전처럼 장중한 종소리가 아닌, 맥 빠지는 소음에 불과했다. 대악마가 당혹성을 삼키자, 덩달아 휘하의 졸개들도 흔들린다.
끼야아악─!!
몰려오는 영가들을 본 집게벌레들의 더듬이가 벌벌 떨리고, 놈들은 맥없이 휩쓸렸다. 그럼에도 대로변을 매운 개체들은 여전히 득시글거린다.
‘원체 개체 수가 많고, 악마라 그런지 피통 자체가 높아.’
저렇게 야금야금 갉아먹어선 수차례 몰아쳐야 할지도 모른다.
엄연히 백귀야행에 소속된 영가들은 뫼를렌푸르트의 희생자들. 하나하나 존귀한 영혼들이다. 허투루 내던져 소모전을 유도할 순 없는 노릇.
‘하수인들의 전략을 보강하자.’
그래서 한 번에 대악마의 부하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마침 「견진의 축가」엔 적합한 대목들이 가득하지.
토드의 머릿속에서 그와 일체화된 서책의 낱장이 넘어갔다.
좌르륵···!
현재 뫼를렌푸르트가 명계와 이어진 덕분에, 하수인 풀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망자들까지 일시적으로 해금된 상황.
어차피 뽑혀 나오는 마력과 업은 어느 때보다도 충만하다.
바삐 활자를 훑어내리던 토드는 영가들을 향해 속삭였다.
“그대들은 형체 없는 그림자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다. 더 기민하게 나아가리니, 적이 그대를 쉽사리 해치지 못하고, 와해되리라.”
선두에서 몰아닥칠 영가들은 돌파력을 위해 이동속도와 회피력을 갖춘 가이스트로.
“그대들에겐 서릿발 손톱을 하사하노라. 스며드는 냉기가 놈들의 살갗에 스며들어, 온기를 거둬갈 것이니.”
제1파가 놈들을 흩트려 놓은 뒤에 몰아닥칠 제2파에는 유효한 살상력을 함양한 스펙터를 포진한다.
“그대들이여. 비탄에 찬 울음을 토해내라. 저들의 마지막 숨결까지도 끊어내리다!”
확인 사살을 위해 제3파는 생명을 빨아들이는 광역기를 갖춘 반쉬로 승격.
즉석에서 백귀야행의 보강까지 마무리 지은 토드는 사령술사는 대악마를 향해 향로를 치켜들었다.
“쓸어내라.”
재차 격랑이 몰아닥친다.
영체들은 경로상의 장애물을 자유자재로 투과하여 내달렸다.
공중, 지상, 지하.
삼면에서 귀신의 군집체가 악마들의 무리를 향해 쏟아진다.
어떻게든 제 졸개들을 지켜보겠답시고 임푸트레카가 앞장서 격랑을 맞이했다.
촤아악!!
대악마의 기운만으로 수십의 영가들이 영멸했으나, 미처 막지 못한 물결은 떨거지 악마들을 타격한다. 떼로 뭉쳐있던 놈들의 몸뚱이가 볼링핀처럼 나뒹굴며 우수수 흩어졌다.
이번엔 땅바닥에서 솟구치는 두 번째 파랑.
촤아악!!
분노한 영가들은 설움을 토해내듯 거침없이 악마들을 난도질했다. 거기에 사자의 영토(靈土) 위에 선 망자들은 임푸트레카가 끌고 온 수행단을 압도했다.
한층 사나워진 맹공에 급기야 임푸트레카조차 버티지 못하고 육중한 거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쿠웅!!
이윽고 도달하는 세 번째 너울.
산성비 구름에 갇힌 뫼를렌푸르트는 사방이 어두컴컴했으나, 수백 기의 영가들이 흘리는 안광에 하늘은 온통 연녹빛으로 번뜩였다.
이를 올려다보던 악마들이 애처롭게 버둥댄다.
끼익, 끼익, 끼익···!
인간의 두려움을 포식하며 배를 불려온 놈들이 공포를 느낀다니. 토드는 피식 웃었다.
잔당은 자비 없이 소탕했다.
흐느끼는 반쉬의 통곡에 사체 사이에 숨어있던 놈들마저 완전히 박멸되었다.
이것으로 뫼를렌푸르트에 불려나온 악마들은 모두 익사.
이제 남은 놈이라곤 그 우두머리뿐.
히야악!! 꺄아악!!
수천의 영가들이 넘실거리며 대악마를 헤집었다. 격류 속에서 임푸트레카는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영가를 녹여버렸다.
겨우 몸을 일으켜도 득달같이 달려들고, 팔로 내쳐도 수백 기가 너울을 일으키며 들러붙는다.
─이 벌레 놈들!!
허우적대는 대악마의 모습은 실로 개미 군단에게 둘러싸인 거인을 방불케 했다.
제아무리 권능을 흩뿌려도, 영혼들에겐 병마에 시달릴 육신 자체가 없다.
담즙을 폭발시켜 영체를 무력화시키면 영멸하는 족족 토드가 환송해주고 있으니 도리어 눈물의 업만 쌓이는 꼴.
‘그래도 꼴에 대악마라고, 잘 죽진 않네.’
타고난 회복력 때문에 망자들만으론 죽이기 어려울 듯 보인다.
혀를 찬 토드는 방울을 흔들었다.
딸랑.
그러자 대악마의 육신을 기어오른 영가들이 사방에서 놈을 옥죄였다.
─놔라, 하찮은 것들아! 나는, 부식의 비를 몰고 오는···
서리 반지까지 실어주니 대악마의 육신은 곳곳에서 수백 번 얼어붙고, 괴사하기를 반복했다. 일단 놈의 움직임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카리나.”
토드는 마법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죽창, 아니. 주문은 준비되었나요.”
힘겹게 주문을 읊던 카리나는 불안한 눈초리로 되물었다.
“···이래도 괜찮은 거야? 저분들도 휘말릴 텐데.”
미처 녹지 않은 조각이 역류했는지, 피를 한 움큼 토해낸 토드는 창백한 낮으로 중얼거렸다.
“쿨럭, 괜찮습니다. 위령제에 불을 피우는 건 꽤 흔한 일이지요. 기왕 많은 분을 올려보낼 장례이니, 성대하게 마무리 지읍시다.”
카리나는 새빨갛게 달궈진 권표를 조준했다. 끄트머리가 익어 용해될 정도의 강렬한 열기.
마법사가 공손히 요청한다.
“나는 여기에, 추락하는 별의 미력한 파편 하나를 기원합니다.”
투웅.
순식간에 솟구친 마력은 상공에 드리운 먹구름들을 걷어내고, 별 무리로 가득한 밤하늘을 내비쳤다.
무시무시한 적막이 그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나먼 창공에서 희미한 빛이 십자로 반짝였다.
대체 뭘 준비하기에 이리 오래 외우나 했더니, 이 정도일 줄은.
“자칫하다간 대악마뿐만 아니라, 뫼를렌푸르트까지 전부 없어지는 게 아닙니까?”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낸 카리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내가 설마 그 정도까지 계산 못 하겠어? 정확히 원점만 타격하는 정도로 그칠 거야.”
점차 가까워지는 불의 궤적을 보면서 토드가 호들갑을 떨었다.
“저 고명한 주문을 제 눈으로 볼 줄이야! 정말 대단한 재능이잖습니까. 카리나!”
카리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다가,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무슨··· 방금 같은 상황에서 주문을 한 개도 아니고, 두 개나 연이어 창안했으면서. 그런 터무니없는 인간이 재능있다고 치켜세워봤자 기쁘진 않거든?”
“그만큼 대가한테 인증을 받은 게 아닙니까.”
토드의 너스레에 카리나는 진절머리를 냈다.
“으, 이젠 아주 겸손 떠는 시늉도 안 하는구나. 재수 없긴.”
그래도 나름 흡족한지, 툴툴대는 어조와 대조적으로 어깨엔 힘이 들어간 것 같다.
불쑥 마르커스가 소리쳤다.
【이 요술쟁이 놈들아! 서로 역겨운 겸양이나 떨어댈 시간에 위를 봐라! 아무리 봐도 저건 단순히 악마를 타격하는 선에서 그칠 수준이 아니지 않나!】
쐐애애액!!
드리운 꼬리가 제법 길지 않나?
게다가 새파랗게 타오르는 광구는 육안으로 보기 힘겨울 정도로 맹렬했다.
갑자기 오싹해졌다.
“저, 정말 후폭풍이 여기까지 안 미치는 게 맞습니까?”
부쩍 가까워진 낙하체를 헤아리던 카리나도 당혹스러워했다.
“아··· 앗. 가속도를 고려하지 못했어. 그래도 위력은 제한적이겠지만, 아마 우리가 있는 곳까진 위험···”
이 빡대가리가.
아니, 애초에 화력 몰빵 누커에게 섬세한 범위 조절을 기대한 게 무리수였을 지도.
급히 카리나를 끌어당긴 토드는 마르커스의 등 뒤에 숨었다.
“마르커스, 막으세요!”
성검을 치켜든 마르커스가 이를 갈아붙였다.
【머저리 같으니! 이제 검에 깃든 신성도 얼마─】
반원의 빛이 토드 일행을 감싸기 직전.
───···!!
사방이 하얗게 물들었다.
삐이, 울리는 이명은 유독 길게 울리고, 찢어질 듯한 굉음이 뒤따랐다.
충격파에 그나마 남아있던 잔해들마저 송두리째 뽑혀나가고, 발아래로 지면이 펄떡대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백귀야행으로 흡수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아니었다면, 복사열에 죽었을 것이다.
마르커스가 가져간 마력만 하더라도 토드의 마력을 단숨에 소진할 정도였다.
이윽고 넘실거리던 열기가 그칠 즈음, 마르커스가 장검을 내렸다.
털썩 주저앉은 심문관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 세상의 안위에 대악마만큼이나 그 마법사도 위협적일지도.】
그녀의 말대로 임푸트레카가 서 있던 반경에 정확히 떨어지긴 했어도, 화력이 조금 지나치다.
별 조각이 지상에 새긴 상흔은 선명했다.
광장은 아예 증발했고, 어림잡아 거주 구역 삼 분의 일이 날아갔다.
토드는 가늘게 마력을 퍼뜨려 기척을 확인하다가 미간을 좁혔다.
“이런.”
그의 탄식에 카리나가 중얼거렸다.
“제발. 살아있다고 하지 마. 이젠 나도 한계야.”
“···죽진 않은 것 같습니다.”
마르커스도 진절머리를 냈다.
【저 불구덩이 속에서도 죽지 않았다고? 지독한 놈.】
토드에게서 새어나간 바람이 자욱한 연기를 훑고 지나간다.
온통 녹아내린 살점 속에, 희미하게 숨을 헐떡이는 고깃덩어리가 있었다.
하얀 점액질에 휩싸인 형태는 살점보단 종양에 가까웠다.
가까이 접근해보니 단백질 탄 내 특유의 역한 악취와 더불어 유황 냄새가 올라온다.
토드가 담담히 말했다.
“이게 당신의 본모습이군요.”
왈칵 진물을 쏟아낸 종양 덩어리의 한구석이 찢어지더니, 입처럼 변해 떠들었다.
─너흰, 필멸자치곤, 터무니없는 힘을 부리는구나.
히죽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르커스가 성검을 내리쳤다.
【제길, 칼조차 들질 않는다.】
“방심해서 역으로 당한 것치곤 꽤나 즐거워 보이시는군요. 일개 필멸자 따위한테 패배해서 정신 승리라도 하려는 겁니까?”
토드가 빈정대자 임푸트레카가 몸뚱이를 들썩였다.
─방심? 내가 정말 방심했다고 생각하느냐?
사령술사를 들여다보던 눈알이 휘어졌다.
─난 너희와 놀아줬을 뿐이야. 애당초 데믈러의 공양은 형편없었으니, 이 몸뚱이도 한계가 있었겠지. 어차피 유랑이 길어지진 않았을 텐데, 차라리 진득하고 화끈하게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카리나가 종양을 걷어차며 으르렁댔다.
“이런 꼴로 영락해놓곤, 웃기고 있네. 이제 넌 끝이야. 악마.”
─오, 정말 이게 끝이라고 생각해?
마법사를 응시하던 임푸트레카는 확신을 담아 속삭였다.
─나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어린 미물아. 이 땅엔 천국의 도래만을 바라는 필멸자들만 있는 게 아니거든.
살점도서관의 사서들은 전멸했으나, 그들 역시 사교도 집단의 분파에 불과하다.
─내 본신은 무저갱의 깊은 곳에 비치되어 있거든. 필멸자들이 바라는 한, 난 언제고 비와 함께 내릴 것이다.
악마들은 추종자들의 의식을 통해 이 땅에서 활동할 육신을 구성하고, 명계의 틈을 통과하여 현세에 강림한다.
비유하자면 물질계에서 제약을 우회하기 위해 일종의 VPN을 이중으로 사용하는 셈.
아무리 물질계에서 격퇴하더라도, 결국 본체는 지옥에 있으니 영영 죽일 순 없다.
카리나가 뒷걸음질 치자, 대악마가 덧붙였다.
─걱정 마렴. 얼마 안 가 우리는 다시 만날 테니까. 그땐··· 지금처럼 놀 일은 없겠지만.
인상을 구긴 카리나는 불길을 쏟아냈으나, 마찬가지로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아무래도 이게 대악마를 불러들인 핵으로 보이는데, 좀처럼 파괴될 방도가 없었다.
푸르릉.
홀연히 들려온 투레질에 고개를 돌려보니, 푸른 불꽃에 휩싸인 영마가 서 있었다.
힘겹게 내려온 파멸의 기사는 장검을 쥔 채 중얼거렸다.
【제길, 아직도 머리가 울리는군···! 본인이 너무 늦지 않았나?】
“마침 잘 왔습니다. 이스라. 놈은 거의 끝장났습니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정도지요.”
꾸물대는 종양 덩어리를 훑어본 이스라가 혀를 찼다.
【빌어먹을! 이미 싸움은 다 끝났군! 원통하도다! 본인이 그 상황에서 라인슈테커식 앞구르기만 제대로 활용했더라면! 누굴 탓하리오! 이 또한 본인의 수양이 부족했던 탓이니!】
이스라가 다가오자 그토록 시끄럽던 대악마는 주둥이를 다물고 있었다.
─······.
“명계에서 빚어낸 검이라면 악마의 살점을 타격할 수 있겠죠. 여태껏 우린 이놈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마무리를 지어주세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쉽게도 다음에 강림할 땐 네놈과 재회하진 못하겠구나. 이 땅의 피조물들은 특히 그 음험한 거미의 신자를 배격하니. 아마 내가 돌아올 즈음엔 이미 목이 매달려있겠어.
낄낄거리는 대악마를 향해 토드가 빙긋 웃었다.
“글쎄요. 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신에게 다음 기회는 없을 겁니다.”
─흐, 네놈이? 무슨 수로? 솔마르의 사냥개들조차 우리를 죽이진 못하거늘.
속을 게워낸 토드는 체액으로 얼룩진 거울 조각을 종양에 끼워 넣었다.
“이렇게요.”
─······?!
명계의 틈은 악마들만 드나드는 개구멍이나 다름없다. 비정상적으로 개방된 세상의 균열이니.
하지만 일부만 드나들 수 있는 뒷문이 아닌, 정식 통로라면.
“죽이진 못하더라도, 영영 가둬둘 순 있겠죠? 앞으로도 마실 나오듯 지상에 튀어나와 난동 피우는 건 제가 용납지 않습니다.”
원랜 이토록 강대한 존재는 쉽사리 명계로 끌어들이기 어려우나, 지금처럼 약화된 상태라면 영혼을 유도하는 게 가능하다.
괜히 명계의 문을 열어뒀겠나.
토드는 이스라의 검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종양 덩어리에 손을 얹은 채 중얼거렸다.
“임푸트레카, 임푸트레카, 임푸트레카. 그대에게 드리운 숙명을 받아들이라.”
이대로 악마의 영혼을 성불시킨다.
배송지는 명계.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그제야 대악마에게서 격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이, 이 버러지 놈! 날 유폐하면 즉각 무저갱 대의회가 널 주시할 거다! 어떤 파멸이 도래할 지, 두렵지 않느냐!!
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세요.”
퍼억!!
이스라의 장검이 단숨에 종양 덩어리를 양단했다. 대번에 뛰쳐나온 임푸트레카의 잔혼이 허겁지겁 날아오르다가, 무형의 구속력에 붙들렸다.
아아아아아···!
명계의 문에서 투명한 손들이 놈을 향해 뻗어 나온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악령은 머리끄덩이를 붙잡힌 것처럼 질질 끌려갔다.
─끼갸아악!! 안 돼! 신중하게 생각해라! 필멸자야! 나조차 무저갱의 위대한 권역을 다스리는 군주들의 심복에 불과하다! 날 건드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토드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활짝 웃었다.
“오! 여긴 정말 지옥의 일곱 권역이 구현되어 있습니까?”
─그래!! 너희 피조물들의 부정이 빚어낸 심연! 죄의 본산···
“안톤으로 갔을 땐 막상 미구현 지역이라 김이 새서 2회차로 넘어갔는데, 지옥 DLC가 그새 나왔을 줄이야. 정말 희소식입니다.”
이 게임은 만렙 이후 후반 컨텐츠가 마땅히 없는 게 유일한 흠이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도리어 희희낙락해 하는 모습에 임푸트레카는 불가해한 것을 마주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땅바닥을 박박 긁으며 끌려들어 가기 직전, 놈이 토드를 향해 흐릿한 손아귀를 뻗쳤다.
─네놈에게 나의 낙인을 새겨주마. 너의 육신은 영영 고름으로 들끓고, 수시로 종기가 피어나며 깨어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도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진득한 악의에 사로잡힌 대악마의 선고.
낙인을 내리는 건 악마들마다 가진 고유한 권능이라, 필연적인 저주나 다름없다.
설마 마지막 남은 한 수가 통한의 저주일 줄은.
손아귀들에 붙들린 대악마가 문틀 앞에서 버티며 소리쳤다.
─날 놓아주지 않으면, 그 낙인이 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령술사! 여태껏 상상조차 못 했을 고통이 네게 임하리니!! 잘 생각해라!!
쿵.
그것으로 명계의 문은 닫혔다.
장검을 떨군 이스라가 황급히 토드를 살폈다.
【토, 토드! 괜찮나? 어딘가 몸이 불편하진 않은가? 심문관, 혹여 남은 성수라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던 토드는 태연하게 말했다.
“아뇨, 이스라.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임푸트레카는 역병을 관장하는 대악마.
게걸스러운 식탐과 연관이 있는 동시에, 무절제한 생장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아무리 그래도 대악마 정도의 저주이지 않은가! 당장 해주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10 증가한다.」
“정말, 정말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아요.”
사령술사의 얼마 없는 클래스 특전.
질병 면역이다.
원작에선 개쓰레기 같았던 특전이, 이렇게 작용할 줄은.
‘어머니가 최고야.’
///